상데미봉 기슭으로
새벽부터 비가 내리는 삼월 넷째 일요일이다. 날씨가 궂음에도 보름께 전부터 약속된 일정으로 친구와 동행한 산행이 잡혔다. 연전 초등 교장으로 퇴직한 친구는 시골의 낡은 농가를 헐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집을 지어 귀촌했다. 텃밭이라 하기엔 규모가 상당한 논에 농사를 짓고 처는 친정 모친을 부양하며 노인요양원 요양 보호사로 나가는데 부부가 신중년에도 전원에서 바삐 지낸다.
친구는 주말에 예식장 하객 참석차 창원으로 와 미혼의 아들이 사는 아파트에 하룻밤 머물고 산행을 위해 기점인 마산역 광장으로 나왔다. 나와 산행에서는 으레 자동차 운전과는 거리 두기를 하고 대중교통에 익숙하다. 마산역 광장 모퉁이에서 출발하는 삼진 방면 농어촌버스를 타기로 했다. 가늘게 내리는 빗줄기에도 우리는 여항산 깊은 골로 가는 76번 농어촌버스를 타고 떠났다.
마산 시내를 벗어나 밤밭고개와 동전터널을 거쳐 진동으로 향하는 차창 밖 산기슭에는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다. 진동 환승장을 둘러 진전면 소재지 오서에서 진주로 가는 옛길 국도를 따라 달렸다. 곡안에서 동촌에 이르는 제법 긴 구간 줄지은 고목 벚나무는 꽃이 피려는 즈음이었다. 근동에서 도로변 벚꽃길 명소 하동 쌍계사 가는 길이나 남해 설천의 왕지 벚꽃길에 견줄 만하다.
온천의 맥을 잇는 양촌에서 일암과 대정을 지났다. 의산보건진료소를 지난 원산에는 폐교에 신축한 학교 급식연구소가 눈길을 끌었다. 여러 해 걸쳐 진행 중인 지방도 확장 공사는 진척이 더뎠다. 술인방에서 대량을 지난 골옥방에서 기사는 종점 둔덕을 출발할 시각에 맞추려고 시동을 끄고 이십여 분 정차했다. 정한 시각에 버스는 시동을 켜 둔덕에 닿아 마지막 손님으로 내렸다.
성근 빗방울은 옷이 젖지 않을 정도라 우산을 펼치지 않고 포장길을 따러 오곡재로 향했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에워싼 둔덕마을 북쪽을 버틴 여항산으로는 운무가 걸쳐 있었다. 친구와 산행을 나서기 이전 낙남정맥 미산령에서 상데미봉을 거쳐 군북으로 가자고 의논되어 있었다. 둘은 봄이면 몇 차례 거쳐 갔던 동선이어도 비가 오는 날이라 산행에 무리가 되지 않도록 하자고 했다.
오실골을 지나다가 산기슭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으로 가 머위 자생지를 살폈다. 지난해 폭우로 냇바닥 흙이 유실되어 생태계가 바뀌어 갔다. 산중이라도 볕이 바른 곳이라 움이 일찍 터는데 먼저 다녀간 이가 버린 귤껍질이 보이기도 했다. 선행 주자가 지나가도 이후에 머위는 더 자라 우리는 배낭을 벗어두고 몇 줌 캐 모았다. 칡넝쿨이 덮쳐가는 언덕 머위도 몇 가닥 더 보탰다.
머위를 캔 봉지는 배낭에 채우고 군북 오곡으로 가는 찻길을 따라 걷다가 미산령 갈림길에서 친구가 삶아온 달걀을 꺼내 먹었다. 친구도 나처럼 오후는 그곳 생활권에서 치안 보조 인력으로 시간을 보내 화제 공통점이 있었다. 전에는 과일 담금주나 곡차를 비웠는데 내가 술을 끊고부터 챙겨올 일 없다. 쉼터에서 일어나 오곡재 길섶에 보이는 청정지역 쑥을 주섬주섬 뜯으며 지났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된 낙남정맥은 옥종을 거쳐 진주 발산재에서 오곡에 이르렀다. 오곡재를 넘어간 산중 숲에 뭔지 모를 파릇한 순이 자랐다. 산주가 임야를 약초 농원으로 개간 중인 듯했다. 한국전쟁 당시 적군과 치열한 교전을 치뤘던 상데미봉은 피바위 능선으로 이어졌다. 미색이 뛰어났던 처자가 배필을 고르고 고르다가 구렁이가 변신한 신랑감을 만난 전설이 서린 바위다.
길섶에 이즈음 피는 산괴불주머니꽃을 봤다. 참취와 바디나물이 일찍 움터 자라 몇 가닥 뜯었다. 웃자란 쑥을 더 뜯은 봉지는 친구에게 안겼다. 나는 올봄 캔 쑥을 아직 냉장고에 채워둔 상태다. 상데미봉이 북으로 뻗친 지맥 산허리로 새로 개설된 임도를 따라 내려서니 폐광 동굴 얼음굴이 나왔다. 오곡으로 들어와 가야로 나가는 버스로 군북면 소재지로 가서 창원으로 복귀했다. 24.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