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미녀와 야수 01

[리얼리즘]

01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이 넘어서야 셀럽들의 파티가 끝이 났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 사이로 수트 위에 두꺼운 코트를 걸친 지호가 파티장을 빠져나왔고, 원이 그의 뒤를 따랐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겨우 와인이라니... 아니, 와인 못 마셔서 죽은 귀신이라도 달라붙었어? 박건우 그자식은 왜 파티 때마다 와인만 주는 거야?"

"다른 걸로 바꿔올까요?"

"됐어. 뒀다가 스테이크 먹을 때나 마실래."

지호가 손에 들고 있던 와인을 자연스레 원에게 건네며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차로 향했다.

"뭐야, 누구야?"

지호의 차 앞에 웬 낯선 여자가 고개를 푹 숙인채 서 있었다.

여자는 지호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붉은 입술이 매력적이게 느껴졌지만 표정은 차가웠다.

"..박건우씨?"

"사람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 박건우 애인?"

"..."

"애인이 아니면... 그냥 잠자리 파트너?"

"..."

지호의 질문에도 여자는 묵묵부답이었다.

"아오, 답답해 죽겠네.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요."

"실례했습니다.."

여자가 발걸음을 떼자 지호의 뒤에 가만히 서서 지켜보던 원이 빠르게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

갑자기 손목이 잡히자 살짝 휘청이던 여자는 이내 중심을 잡고 원을 쳐다보았다. 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상처. 심해보이는데..."

원의 말에 지호가 다시 여자에게 다가와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손목과 종아리를 슥 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그리곤 여자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리고 상체를 약간 숙여 눈높이를 맞추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박건우 안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냥 보내주세요."

"상처 입은 몸으로 어딜 간다고..! 내가 박건우랑 아는 사이니까 걱정 말아요. 병원까지만 데려다줄게요."

"박건우는 모를 거 아니예요. 그쪽 상태가 지금 이런.."

"도와주세요."

"네?"

지호가 여자를 계속 이끌며 얘기하자 여자는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지며 지호의 팔을 잡았다.

그리곤 약간의 울먹임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제발 저 좀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세요. 그 사람이 곧 여기로 올지도 몰라요."

"..알았어요. 일단 내 차에 타요. 어디든 숨겨줄테니까."

지호가 여자를 부축하며 뒷자석에 함께 올라탔고, 두 사람이 차에 타는 것을 확인한 원도 운전석에 탔다.

"어디로 갈까요?"

"...집으로 가자."

"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시간이 새벽 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들어와요."

지호의 집은 외곽에서도 좀 더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2층짜리 주택이었다.

블랙과 화이트로 인테리어 되어있는 조금은 차가운 분위기에 여자는 머뭇거리다가 이내 소파 한 구석에 앉았다.

"약 가져올테니까 잠깐 기다려요."

지호가 2층으로 올라가고, 소파에 가만히 앉아 고개만 두리번거리며 집안을 구경하던 여자 앞으로 따뜻한 녹차가 담긴 잔이 건네졌다.

"마셔요."

"아, 고마워요.."

여자는 원이 건네는 녹차를 받고 한모금 마시며 얼었던 몸을 녹였다.

"이쪽 동네는 외부인들도 잘 안다니는 곳이니까 걱정하지 마요."

"당신이 걱정하는 사람 절대 안오니까 무서워하지 말라고요."

"아, 네.."

원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이자 여자는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듯 몸을 편안하게 하며 다시 녹차를 한모금 마셨다.

"그러고보니까 아직 통성명도 안했네."

지호가 약상자를 들고 2층에서 내려오며 얘기하자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저는 차 승하예요."

"난 한 지호예요. 옆에 서 있는 녀석은 제가 특별히 아끼는 동생이자 비서인 원이."

"윤 원입니다."

지호가 픽 웃으며 승하의 맞은편에 앉아 약상자를 열었다.

"흠흠, 상처가 어디에 얼만큼 있는지는... 내가 확인할 수 없으니까 우선 보이는 부분만 치료해줄게요."

"다른 부분은 제가 할 수 있어요."

"그래요, 그럼. ..잠깐 이쪽으로 다리 올려볼래요?"

승하가 지호 쪽으로 다리를 들어 올리자 상처가 더욱 적나라하게 보였다.

지호는 준비해둔 연고를 조심스럽게 상처에 발랐다.

"실례가 안된다면 어쩌다가 상처를 입은건지 물어봐도 돼요?"

"..사실은 저도 오늘 그 파티에 갔었어요."

승하는 지호의 예상보다 쉽게 입을 열었다.

"줄곧 박건우씨의 잠자리 파트너였던 저는 그 사람의 이미지를 위해서 오늘만큼은 그저 애인 신분으로 갔었죠."

"파티장에서는 못 본 것 같은데... 같이 안 있었어요?"

"그 사람이 술에 잔뜩 취해서 저를 억지로 호텔 방에 끌고 들어가 때렸거든요. 아마... 지호씨가 그 사람을 봤을 때 저는 이미 침대에서 끙끙거리면서 옷을 입고 있었을 거예요. 그 사람이 파티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거든요."

"아, 그래서 제 차 앞에서.."

"술에 취해서 그냥 검은색 차 앞에 서 있으면 된다고 그랬거든요. 만약 차 주인이 지호씨가 아닌 그 사람이었다면.."

"그만. 억지로 얘기 안해도 돼요."

승하가 다시 울먹이자 지호는 상처를 다 치료했는지 약상자를 닫고 승하에게 가까이 다가가 토닥였다.

"집은 어디예요?"

"그 사람이 마련해준 집에서 혼자 살고 있어요."

"그럼 당분간 여기서 지내요. 박건우 문제는 내가 해결해볼게요."

"미안해요.. 괜히 나 때문에.."

"그냥 쓸데없이 호의 있는 사람이라고 해두죠."

"...고마워요."

승하는 조금은 밝아진 얼굴로 웃어보였다.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녀를 매력적으로 보여지게 하는 미소였다.

***

[wowoys]

잘보고갑니다.

[달과 제비꽃]

뭔가 애매하게 끝나버려서 다음편이 궁금하네요ㅋㅋ 기대할께요!

[아침이슬e]

기대만땅~ ^*^

[태화]

왠지 승하와 지호가 서로 사랑할 것 같은데..

[심영의닻]

잘보고가요

[rlfls67]

으.너무 다행이에요 ㅎㅎ 승하가 숨었던걸로 또 아프지 않길 바래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