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인생 맛집은 어디인가요?" 따뜻한 밥에 십여 가지 맛있는 반찬이 따라 나오는 한정식집이 되기도 할 것이고, 막 발효시킨 생선을 갓지은 밥에 올려놓는 일식집이 되기도 할 것이다. 또 다양한 요리법으로 기름진 음식을 내어놓는 중화요리 전문점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각자 자기만의 인생 맛집이 생긴다. 먼 산길을 돌아가서 외진 곳에 있는 한적한 식당이기도 할 것이고, 또 탁트인 바닷가 전망 좋은 곳에 멋진 횟감을 제공하는 횟집이 되기도 할 것이다. 또 가게는 적고 초라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지만 식당 주인 할머니는 분명 나이 드신 분이고 주름진 얼굴에 가게도 허름하지만 정말 음식만은 신선한 요리 재료와 맛있는 손맛으로 순두부나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내어놓는 그런 맛집이기도 할 것이다.
필자도 세월이 흘러 중년의 나이에 이르다 보니 따뜻한 밥 한 끼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나이가 되었다. 필자만의 잊을 수 없는 인생 맛집은 어머니 살아생전에 가족들을 위한 따뜻하고 행복한 밥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흘러 돌아보니 한겨울 동지 섣달을 맞아 어머니가 해주신 동짓날 팥죽 한 그릇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수십년 지났어도 지금 생각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또 시원한 동치미를 같이 곁들여 먹으면 천상의 음식인 듯 어머니 행복한 밥상이 아련한 추억 속에 오늘따라 유독 그립다.
울산은 제철 음식만 아니라 생선이 늘 풍성한 음식으로 밥상에 제공되었다. 옛날에는 명태가 엄청 많이 잡혔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팔뚝만한 명태 한 마리를 사오시면 온 가족이 저녁 밥상에 먹고도 남았다. 김치를 곁들인 비지찌개도 한없이 먹었다. 울산 바닷가에서 나오는 작은 게들은 된장찌개에 들어갔고, 또 맛있게 튀겨 씹어 먹으면 아삭 바삭 맛있는 게튀김 요리가 되었다.
철 따라 계절 따라 늘 싱싱한 야채가 곁들여졌던 어머니의 밥상은 김장철에는 배추 겉절이나 시래기로 허기진 배를 든든히 채워줬다. 깻잎이랑 상추나 미나리를 돼지고기 쌈으로 먹기도 했다. 어머니의 밥상은 어느 유명한 셰프의 요리보다 맛있는 행복한 밥상이었다.
연기자 최불암 선생이 나오는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유명한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인의 밥상은 6.25 전쟁 통에 또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삶의 갖가지 우여곡절이 있는 삶의 환경 속에서 자연스레 형성됐다. 한국인의 밥상은 6.25 전쟁 통에도 이어졌고, 근대화나 산업화에도 이어져 우리 한국인의 밥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때로는 민물 생선이, 때로는 바닷가의 생선이, 때로는 산골 깊은 곳의 더덕이나 도라지, 또는 뒷마당 텃밭에 배추나 상추나 깻잎이 한국인의 밥상에 올랐다. 바닷가 어부는 갑자기 허기진 배를 달랠 길이 없어 갓잡은 물고기를 급히 손질해 숭덩숭덩 썰어 물에 넣고, 초장을 좀 풀어 훌훌 마시면 인생 최고의 맛이 되었다.
빼놓을 수 없는 한국인의 밥상은 6.25 전쟁통에 미군들이 남기고 간 음식을 골라 담아 깨끗한 부위들로 골라 부대찌개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요즘 신세대들이야 이런 부대찌개 이름에 들어간 역사의 한 톨이라도 알지 모르겠다. 미군 부대가 들어선 곳에선 부대찌개가 별미로 생겨났다. 우리 한국인의 밥상은 광복이나 휴전을 맞아 기쁨의 밥상이었고, 88올림픽을 치르면서 감격의 밥상이 되기도 했다.
필자의 어머니는 직장생활을 병행했기에 남편 직장생활 가는 아침 출근길과 자녀들의 등굣길에 따뜻하고 맛있는 밥상을 차려낸다는 것은 정말 정신없이 바쁘고, 무척 힘든 노동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자녀들 아끼고 챙기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헌신적인 밥상이 어머니의 밥상이었다. 필자가 살아가면서 따뜻한 밥 한 끼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나이가 되었다. 지난 세월 가난한 세월에 먹을 것이 없어서 입에 풀칠한다고 먹었던 그런 한국인의 밥상은 이제 기름진 음식으로 대체 되었다. 한국인의 밥상이 아니라 세계인의 퓨전 밥상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각종 색다른 음식의 경연장처럼 되었다. 그럼에도 눈물날 때 눈물 나는 사연을 잠잠히 들어주고 등을 토닥여주며, "어여 밥 먹으라. 그래 니가 최고다. 누가 우리 얼라 헌테 뭐라카더노!" 하며 격려해주던 어머니의 손길은 이제 어디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의 밥상은 내 인생의 자양분이며 동시에 힘이 되었고, 세상에 맞설수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어주었다.
필자의 인생 맛집은 산골 깊은 곳에 있지도 않고, 전망 좀 바다가 넓은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지도상에 나타나는 그런 맛집도 아니다. 한국인 최고의 밥상은 솔선수범과 정성 가득 담긴 어머니의 밥상이라고 감히 단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