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의 그물
하늘의 그물은 성글지만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다만 가을밤에 보름달 뜨면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기러기들만
하나 둘 떼지어 빠져나갑니다
* 모성의 힘*
노자의 '도덕경' 73자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천망회회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 이는 '한늘의 그물은 광대하여 엉성한 것 같지만 놓치는 일이 없다'는 말씀이다.덧붙여 다시 풀이하면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성글어 보여도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나는 이 말씀을 읽고 하늘의 그물에 대해 곰곰 생각하게 되었다. '하늘의 그물은 어떤 것이며 어떠한 의미를 지닌 것일까. 왜 내가 사는 이 세상의 하늘은 그물로 덮여 있는 것일까. 그것도 성글고 엉성하게....아마 하늘이 너무 크고 넓어 누가 그물로 다 덮는다 해도 성글 수밖에 없을거야.
그런데 아무리 성글어도 누가 그물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없다. 그물로서의 본연의 입무를 결코 소홀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오랜 생각 끝에 노자의 이 말씀에 담긴 가르침의 의미를 나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일 수는 있지만 결국 하늘은 속일 수 없다, 인간은 인간이 만든 법망은 벗어날 수 있지만 하늘이 정한 법망은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눈에는 하늘의 법망이 보이지 안하 온갖 죄를 짓지만 언젠가는 하늘의 법망에 걸려 심판을 받는다.
따라서 오늘 이 시대를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하늘의 그물도 빠져나라 수 있는 진실한 삶을 지향해야 한다. 하늘의 그물은 진실과 양심, 도덕과 정의, 즉 인간의 가장 기본적 본질을 의미하며, 그것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것은 그 본질을 결코 잃지 않는 인간다운 인간이 되라는 말씀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하늘의 그물을 시로 형상화헤보고 싶었다.일단 제목을 '하늘의 그물'로 정해놓고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시는 써지지 않았다. 하늘의 그물은 쉽게 시로 쓸수 있는 형상물이 아니였다. 노자의 깊은 깨달음의 말씀과 그 뜻을 작고 어리석은 내 시의 그릇에 어찌 담을 수 있을까 싶어 끝내 시 쓰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계절이 지나가고 해가 바뀌고 다시 가을이 되었다, 가을 하늘이 눈부시도록 맑고 푸르렀다. 문득 이 푸른 가을 하늘을 덮고 있는 그물은 아무리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어딘가에 아무 거리낌 없이 빠져나갈 수 있는 존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맞아! 이게 바로 하늘의 그물을 빠져나가는 장면이야!' 섬광처럼 한 줄기 강한 빛이 내 시의 가슴을 꿰뚫고 지나 갔다. '죄 많은 인간은 하늘의 그물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사랑을 지닌 기러기 떼만은 하늘의 그물을 빠겨나갈 수 있는거야!' 감사하게도 그날 밤 나는 그토록 써지지 않던 '하늘의 그물'을 단숨에 쓰게 되었다.
기러기 떼는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새끼들을 데리고 가는 어미가 있을 것이다. 바로그 어미의 힘, 즉 그 모성의 힘이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하늘의 그물을 빠져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시 〈하늘의 그물〉을 쓸 수 있었던 이러한 생각은 우리 인간의 모습, 특히 나 자신의 삶의 모습을 깊게 들여다 보게 했다. 나에게도 하늘의 그물을 빠져나가는 어머니라는 기러기가 있었다. 어머니는 인간으로서 많은 죄를 지은 나를 데리고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천망天網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것은 바로 모성의 힘, 즉 절대적 사랑의 힘이었다. 모성은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행동이다. 지금까지 내가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은 바로 모성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세상에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니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 힘의 원천 역시 모성에 있다.
자칫 잘못 천길 아래로 떨어질 삶의 벼랑에서 그래도 나 자신을 지탱해주는 가장 큰 힘,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의 힘이다, 만일 내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댜면, 만일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켤코 인간다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모성 속에는 사랑의 본질적 가치가 다 들어 있다.가장 먼저 희생이라는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우리가 누구의 의 희생으로 오늘 이렇게 건강하고 온전한 삶을 유지하는가, 바로 나에 대한 내 어머니의 희생이다, 나는 나 자신이 잘나서 이렇게 오늘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어머니의 희생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희생 없는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어머니의 사랑은 아무런 조건이 없다,무조건적이다,자식인 내가 무엇을 해드리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한다 남보다 공부를 잘해야만, 사회적 출세를 해야만, 다달이 용돈을 많이 드려야만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없다.어머니는 그저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식을 사랑할 뿐이다.
또 어머니의 사랑은 무한하다,어느 시점까지는 사랑하고 어느 시점부터는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는 없다. 결호늘 했으니까,이제 마흔이 넘었으니까 이제 더 이상 자식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하는 어머니는 없다. 내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한 달 전쯤부터 툭하면 무척 측은하고도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어머니, 왜 자꾸 나를 그런 눈빛으로 보세요? 무슨 걱정 있으세요?" "그래, 내가 요즘 걱정이 많다." "아니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세요?" 내가 어머니에게 일부러 큰 소리로 말을 붙이자 어머니는 뜻밖의 말씀을하셨다."
"내가 이제 아무래도 한 달을 못 넘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죽고 나면 니가 어떻게 살까 그게 걱정이다."
"어머니, 무슨 그런 걱정을 하세요? 내가 나이가 몇입니까, 내년이면 일흔입니다. 일흔,아무 걱정 하지 마세요." "그래도 걱정된다."
곧 닥쳐올 죽음을 걱정해야 할 아흔다섯의 어머니가 일흔이 다 된 아들을 걱정한다 싶어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이렇게 어머니의 사랑은 무한하고 절대적이다.
내가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나를 상대적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다. 어머니는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할 뿐이다. 절대자에게만 절대적 사랑이 존재한다. '신의 사랑은 모성을 닮았디'고 하는 까닭은 바로 모성의 절대적 사랑 때문이다.
'나는 지금 하늘의 그물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기러기와 같은 모성적 삶을 살고 있는가.'
시 '하늘의 그물'을 다 쓰고 나서 나는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저 민망하고 부끄러울 뿐이었다. 내가 아무리 기러기처럼 한 가정을 이끄는 어머니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하늘의 그물, 그 천망을 빠져 나갈 수는 없다. 그것은 내 삶에 모성적 절대적 사랑이 결핍돼 있기 때문이다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
첫댓글 어머니는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할 뿐이고 .
신의 사랑은 모성을 닮았디'고 하는 까닭은
바로 모성의 절대적 사랑 때문이라는 글
정말 맞는 글인거 같아요
정호승 님의 글 감사합니다
오후 시간도 해피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