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고 닦아야 비로소 빛나는 인격 5/23
인간은 인격의 주체요, 인격은 인간의 최고 가치다. 이러한 자각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세월이 걸렸다.
서양에서 최초로 인격을 발견한 것은 철인 소크라테스다. 인격을 인간의 최고 가치로 보고 인격의 완성과 실현을 인간의 목적이라고 역설한 것은 독일의 철학자 칸트다. 그의 사상을 인격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앞서서 인간이 인격의 주체임을 강조한 것은 유교다. 중국 고전에 이런 말이 있다.
"이 천지간에 있는 만물 중에서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 사람이 귀중한 까닭은 다섯 가지의 인륜(人倫)이 있기 때문이다.(天地之間 萬物之衆唯人最貴, 所貴乎人者, 以其有五倫也)."
천지만물 중에서 인간이 가장 존귀한 이유는 도덕이 있고 인륜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에게 도덕도 없고 인륜도 없다면, 한낱 무력한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근본은 도덕과 인륜에 있다. 인간만이 도덕이 있다. 동물은 도덕이 없다. 동물은 도덕 이전, 도덕 이하의 존재다. 동물은 도덕의 단계에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동물은 본능과 폭력의 단계에서 살아간다.
인간에게서 도덕과 인륜을 뺀다면 무엇이 남을까. 소금에서 짠맛을 빼고, 사탕에서 단맛을 빼면 소금이 아니고 사탕이 아닌 것처럼 인간에게서 도덕과 인륜을 빼면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가진 도덕의 주체요, 선과악, 정(正)과 사(邪), 의(義)와 불의(不義)를 구별하는 도리의 감각을 가진 존재요, 도를 구하고 덕을 닦는 인격적 존재다. 도덕은 인간의 특권이요, 영광이요, 긍지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인간이 인간 구실을 하려면 어떤 덕목을 갖추어야 하는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4원덕(四元德), 즉 인간의 네 가지 으뜸 가는 덕으로서 지혜와 용기와 절제와 정의를 강조했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의 근본 덕목으로 믿음(信), 소망(望), 사랑(愛) 3덕(三德)을 역설했다.
불교는 보시(布施)와 지계(持戒)와 인욕(忍辱)과 정진(精進)과 선정(禪定)과 지혜(智慧)의 여섯 가지 바라밀(波羅密)을 제창했다.
유교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5상(五常)을 역설했다.
미국의 정치가 프랭클린은 절제, 침묵, 규율, 결단, 절약, 근면, 성실, 정직, 중용, 청결, 평등, 순결, 겸손의 13덕을 강조했다.
도산은 무실(務實), 역행(力行), 충의, 용감의 4대 정신을 역설했다.
덕을 아는 것보다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도덕은 이론이 중요하지 않고 실천이 중요하다. 우리는 덕이 무엇인지를 이론으로 아는 사람이 되지 말고 덕을 지니고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간이 일생 동안 노력해야 할 근본 사업이 무엇인가. 수신(修身)이다. 내가 내 인격을 갈고 닦아 자기 완성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 죽는 날까지 힘써야 할 평생 사업이 무엇인가. 정기(正己)다. 내가 나를 바로 일으켜 세워 자아 확립을 하는 것이다. 수신과 정기, 이것이 우리의 평생 사업(life work)이다.
중국의 유교 경전인 《대학(大學)》은 이렇게 갈파했다.
"위로는 임금님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자기의 인격을 갈고 닦는 길을 인생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여기서 수신위본(修身爲本)이란 자기 수련을 인생의 훈련 목표로 삼아야 하며 내가 나를 갈고닦아 자아를 완성하는 것을 인간의 근본 사업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또 주자학의 입문서인 《근사록(近思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자기 자신부터 바르게 함이 우선이다(正己爲先)"(<정사편政事篇>) 《근사록》은 주자(朱子)가 송나라의 위대한 네 사람의 유학자 주렴계(周濂溪), 정명도(程明道), 정이천(程伊川), 장횡거(張橫渠)의 글 중에서 좋은 내용을 뽑아 엮은 책이다.
여기에 나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는 뜻의 정기위선(正己爲先)이라는 말이 나온다. 수신과 정기, 유교의 인생관과 가치관의 근본이 이 두 단어 속에 간결 명쾌하게 요약되어 있다. 우리는 무엇을 인생의 첫째 목표로 삼아야 할까. 바로 정기다. 내가 나를 바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첫째 과제다.
정기라는 말은 《맹자(孟子)》에도 나온다. "유대인자 정기이물정자야(有大人者 正己而物正者也)"(<진심상盡心上>). 이 세상에서 대인, 큰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 사람이 있다.
여기서 대인은 최고의 인간이다. 자기를 바로잡기만 하면 그의 지성이 상하에 두루 미쳐 모든 사람이 다 바로 설 수 있다는 뜻이다.
'정기'란 내가 나를 바로 일으켜 세우는 자기 확립이요, 자기 건립이요, 자아 완성이다. 모든 국민이 저마다 수신과 정기를 인생의 기본 사업, 제일 과제로 삼고, 수덕(修德)에 힘써야 한다. 자기를 갈고 닦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덕자득야(德者得也), 즉 덕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수련과 교육을 통해서 후천적으로 획득하는 것이다.
덕은 노력의 산물이요, 공부의 결과요, 수련의 성과다. 우리는 덕을 배우고 덕을 갈고 닦아서 덕을 쌓아야 한다./안병욱, 인생의 열매들 중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