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수수죽 한 그릇 *
북한 동포를 생각하는 옥수수죽 만찬에 참석해서 떨리는 숟가락으로 심각하게 옥수수죽 한 그릇을 다 먹고 집에 돌아와 다시 저녁을 먹는다.
북한에서는 옥수수대까지 한꺼번에 갈아 죽을 끊여 먹는다는 이야기를 중학생 막내 아들에게 하면서 그것도 못 먹어 굶어죽기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되풀이 하면서 쌀밥 한 그릇을 다 비운다 나는 그런 놈이다
* 탈북시인의 시집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
슬프다. 이토록 슬픈 시집이 어디 있으랴, 아프다. 이토록 아픈 시집이 어디 있으랴, 눈물이 난다. 이토록 눈물 나는 시집이 어디 있으랴. 시집 어디를 펼쳐도 붉은 피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그 눈물이 끝내는 강을 이룬다.
그렇다. 이것 은 시집이 아니라 '통곡'이다. 이것은 시집이 아니라 '분노'다.이것은 시집이 아니라 '고통'과 '절망'과 '비극이다. 그래도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서 마지막으로 부여잡고 놓지 않는 '희망'이다.
이 시집은 탈북시인 개인이 쓴 것이 아니다, 이 시집은 고통과 절망 속에 사는 북한의 모든 인민이 쓴 시집이다. 북한에서의 삶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탈북자들의 아리고 쓰라린, 상처투성이 마음이 저절로 모여 쓴 시집이다. 따라서 이 시집은 인간이 쓴 시집이 아니다. 시가 쓴 시집이다. 도저히 숨죽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시 스스로 인간에게 걸어 나와 쓴 눈물의 시집이다.
나는 이 시집을 읽는 내내 고통스러워 읽기가 힘들었다.먹먹한 가슴속에 크고 날카로은 돌 하나 박혀 빠지지 않는 듯해서 몇 번이나 책장을 덮었다가 펼치기를 되풀이했다. 독일의 철학자 테오어 아도르노가 왜 "아우수비츠 이후 서정시는 불가능하다"고 했는지, 그 까닭을 다시 한 번 깊게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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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은 시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다. 나는 지금까지 시를 써오면서 서정의 물기가 촉촉이 베어 있는 시를 쓰려고 노력해왔다. 서정이 있어야 시가 문학적 완성미를 지닌다는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다. 그러나 이 시집에서는 서정을 찾기가 어렵다. 서정도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야 존재한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일깨워줄 뿐이다. 그동안 내가 쓴 시들의 서정이 이 시집 앞에서는 너무 사치스럽고 부끄럽다.
구체 또한 시의 구성 요소 중 하나다. 나는 평소 시는 추상보다 구체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가능한 한 구체의 힘에 의해 시를 쓰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 시집에 나타난 구체의 힘 앞에서 그동안 내가 쓴 시의 구체는 참으로 초라하다. 이 시집은 신인 겪은 체험의 구체적 힘만으로도 읽는 이의 가슴을 벼랑 끝에 세운다.
이 시집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마디는 바로 '생존'이다. 그리고 또 한마디를 덧붙인다면 바로'밥'이다. 생존과 밥은 동질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인간은 밥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집에는 즉 밥이 없다. 밥에 대한 절망의 처절한 부르짖음만 있다.
밥이 없기 때문에 생존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죽음의 고통 속에서 나뒹구는 모든 상황이 적나라하다. 시 한 편 한 편마다 생존에 대한 갈망과 자유에 대한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시집은 전체 5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에서 3부까지 40여편의 시가 온통 밥과 굶주림, 그 굶주림에 의한 죽음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드러낸다.
〈우리의 밥은〉 〈밥알〉 〈밥이 남았네〉 〈 우리는 밥을 먹는다〉 〈 밥이라면〉등 밥이라는 말 자체가 그대로 시의 제목이다. 이 시들은 굶주림에 의해 생존을 위협당하는, 아니 결국 생존하지 못하고 축생처럼 죽어간 참상을 노래한다. 300만 명이 굶어죽은 이 참상 앞에 굶주림을 경험해보지 못한 남한의 시인인 나는 그거 고개를 숙이고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다.
우리의 밥은/쌀밥이 아니다/나무다/나무껍질이다/우리의 밥은/산에서 자란다/ 바위를 헤치고 자라서/ 먹기엔 너무 아프다 (〈우리의 밥은〉부분)
이 시는 밥에 관한 서시 격의 시다, "밥이 나무껍질"이라고 말하고 있고, "먹기엔 너무 아프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쌀을 배급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배를 채우기 위해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하는 참상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전개되고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마치 한 장면 한 장면 동영상으로 찍은 듯하다.
쌀이 없는 집이여서 그런지/ 그 집엔 숟가락이 없다[ '숟가락'부분]
멀건 죽물에/쌀알이 얼마나 섞인다고/ 어머니는 매끼마다/ 쌀 다섯 알씩 절약하셨네// 알알이 모아지고/한 줌이 되었을 때/어머니는 밥을 지으셨네/나에게 생일 밥차려주셨네// 더운 밥// 목메어 세어보니/어머니가 그동안 못드셨던/ 450개 밥알이었네['밥알'전문] 옥수수몇 알씩 놓고도/ 우리는 말한다/ 밥 먹자고/ 씁쓸한 나무껍질 씹고도/우리는 생각한다/바밥먹었다고/ 소금 탄 맹물/한숨에 마시고도/그것도 밥이라고 한다//밥/그 말조차 없다면/ 먹은 날이 없기에['우리는 밥을 먹는다'전문]
이 시들은 굶주림에 의해 생존의 기로에 서 있어보지 않은 자는 쓸 수 없는 시다. 일찍 우리 시에 "밥이 먹고 싶다"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이 본능적 사실을 이토록 처절하게 노래한 시는 애초부터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시가 아니던가.
왜 집에 숟가락이 없겠는가.먹을 밥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밥 먹을 숟가락을 한 줌 밥을 먹기 위해 팔아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끼니마다 다섯 알씩 쌀을 모으는 어머니의 심정을, 그 쌀로 생일 밥을 받은 아들의 심정을 남한에 사는 배부른 우리가 어떻게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옥수수 몇 알을 먹고도, 나무껍질을 씹고도, 소금 탄 맹물을 마시고도 밥을 먹었다고 말하는 상황,즉 밥이라는 말로 밥을 먹는 상항을 나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다. 영남이는 오늘도/ 배고픈 우리에게/ 큰 소리로 자랑했다/자기는 어제도 그제도/밥 세끼 먹었다고// 애들은 소리 내어 웃었다/ 한 끼면 몰라도/새하얀 쌀밤을/ 세끼나 먹었다는 그 말은/ 새 빨간 거짓말['새빨간 거짓말'전문]
밥이라면/ 시퍼런 풀죽으로만 알던 아이/ 생일날 햐얀 쌀밥을 주었더니/ 싫다고 발버둥치네/ 밥 달라도 내 가슴 쥐어 뜯네[밥이라면'전문]
밥을 먹었다는 사실이 친구들에게 자랑이 되는 현실, 또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다 아는 현실은 그 얼마나 비극적인가 쌀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는, 시퍼런 풀죽만 먹던 아이가 생일날 햐얀 쌀밥을 줘도 싫다고 밥 달라고 발버둥치는 모습에서 더 이상 시집을 읽어나갈 수 없다. 그러나 시집은 '밥이 사람을 잡아 먹는 이 땅'이라고 노래하며 굶주림에 의해 인민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으로 계속 이어진다.
꿈 속에서/ 아이는 무엇을 보았기에/ 간밤에 밖으로 달려 나갔을까// 꿈속에서/ 아이는 무엇을 보았기에/ 총쏘는 군대도 무서워 안했을까// 꿈속에서 아이는 무엇을 보았기에 / 손에 그것을 꼭 쥐고 죽었을까// 그 꿈은/ 죽으면서도 놓지 않은 그 꿈은/ 작은 옥수수 하나['아이의 꿈'전문]
석달 전에 내 동생은/ 세상에서 제일로 맛있는 건/ 따뜻한 옥수수라 했습니다// 두 달 전에 내 동생은/세상에서 제일로 맛있는 건/ 불에 구운 메뚜기라고 했습니다.// 한 달 전에 내 동생은/ 세상에서 제일로 맛있는 건/어젯 밤 먹었던 꿈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내 동생이 살아 있다면/ 세상에서 제일로 맛있는 건/ 이 달에는 이달에는 뭐라고 했을까요...['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전문]
아. 정부가 배급해주지 않은"쌀 한 가마니 훔친 죄로" 공개 처형당한 한 농사꾼의 피눈물은 누가 닦아줄 수 있을까. 나는 먼저 이 시를 쓴 시인의 손이 그 눈물을 닦아주는 것을 본다. 그것이야말로 두만강을 건너 탈북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이 시집 원고 뭉치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녀온 까닭이니 아닐까.
시인은 북한을 탈출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시인이 되었다. 시인은 조국을 버리지 않았으나 시인의 조국은 시인을 버렸다. 그리하여 시인은 남한에 와서 지금 탈북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탋북자
우리는 먼저 온 미래
오고야 말 통일을
미리 가져온 현재
['탈북자'부분]
나는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이 시를 소중히 가슴에 품는다. 그가 진정 "먼저 온 미래" "통일을 미리 가져온 현재"가 되기위해서는 북도 변해야하고 남도 변해야 한다. 특히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눈치만 보고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남한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생존의 밥, 자유의 밥 한 그릇을 위해 짐승처럼 죽어간 북한의 인민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배불리 한 끼 밥을 먹을 때마다 굶주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탈북시인 장진성이 이 시집을 굳이 남한에서 펴낸 의미는 상실돌 것이다.
- 정 호 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첫댓글 무엇보다도 우리는 생존의 밥,
자유의 밥 한 그릇을 위해
짐승처럼 죽어간 북한의 인민들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밥 한 그릇을 먹기 위해 몸부림치는 북한 주민들의 자유를 찾기 위해
속히 자유 통일을 이뤄내야 겠습니다
정호승 님의 글 감사합니다
주말 장마가 예고 되어 있네요
유의하시기 바라며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