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 머위를 캐서
삼월이 가는 토요일이다. 등산화 끈을 조여 묶어 빈 배낭을 둘러메고 스틱을 짚었다. 올봄 주중 아침나절 근교 들녘으로 산책을 나서 오후는 시골 초등학교 주변에서 아동안전지킴이 역을 수행하느라 산행다운 걸음을 나서지 못한다. 주말을 맞아 산행과 함께 봄날에 산중에서 채집이 가능한 나물을 마련해 올 요량으로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는 벚꽃이 만개해 화사했다.
집 근처 정류장에서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소답동에서 내려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주말 아침이라 버스는 혼잡하지 않아 자리에 앉아 갈 수 있었는데 용강고개를 넘은 남산리 입구에서 내렸다. 구룡산을 가려는 참인데 주 등산로는 굴현고개로부터 가거나 다호리에서 오른다만 나만이 알고 있는 호젓한 길을 택해 갈 참이다. 남산리 동구 밖에서 용전마을 앞으로 향해 갔다.
근년에 구룡산 기슭으로는 감계 신도시로 통하는 터널이 개통되면서 생태계가 많이 달라졌다. 터널 진입 도로 부지로 산자락이 잘려 나가고 단감과수원들도 상당히 편입되었다. 용전마을 앞으로도 전에 없던 새로운 도로가 개설되었다. 구룡산은 근교 야산에서 작대산과 여항산과 함께 봄철이면 산나물을 채집하는 텃밭이나 마찬가지다. 이미 엉겅퀴와 방가지똥을 채집한 바 있다.
용전마을에서 남산리 사이로 난 터널 진입 직전 교차로로 올라 구룡산으로 가는 희미한 등산로를 찾아냈다. 아주 오래전 땔나무를 마련해 오던 초동이나 산나물을 뜯던 아낙이 오르내렸겠으나 지금은 아무도 다니질 않아 묵혀진 길이다. 동읍 남산리와 용잠에는 40여 년 전 부산 시내 있던 육군 정비창이 옮겨 와 전답이 수용되고 구룡산 동쪽 산기슭은 등산로가 폐쇄되기도 했다.
구룡산 터널이 민자로 개통되어 용전마을 뒤에는 통행료를 징수하는 요금소가 생겼다. 요금소 인근에서 묵혀진 길을 따라 구룡산으로 오르니 건너편 남해고속도로엔 오가는 차량이 보였다. 가까운 구룡산 터널로는 드나드는 차가 드물었는데 화물 물동량 이동이 아닌 감계 신도시 주민 출퇴근 혼잡을 줄여주는 도로여서였다. 주말 아침에는 지름길 터널을 이용하는 차가 많지 않았다.
소나무가 자라는 숲을 지나자 신우대가 무성해 정글을 이루다시피 했다. 대숲을 빠져나가니 송전탑과 함께 정비창 경계로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다. 산마루를 넘으니 식생이 달라져 오리나무와 아카시나무가 우거진 낙엽활엽수였다. 가랑잎이 삭아 부엽토가 쌓인 비탈을 내려서니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나왔다. 계곡이 끝나는 곳은 정비창이라 그곳으로는 통하는 길은 막혔다.
계곡을 거슬러 오르니 석간수 흐르는 바위 틈바구니에 남산제비꽃이 피어나고 내가 목표한 머위도 자랐다. 머위는 이른 봄 움이 트면 곰취와 같이 잎사귀를 둥글게 펼쳐 자라 눈에 쉽게 띈다. 집 근처나 밭둑에도 흔하게 자라지만 가끔 깊은 산중에 자생하기도 하는 머위다. 고라니나 노루가 뜯어 먹지 않고 남겨둠은 특유의 쌉쌀한 쓴맛으로 녀석들은 주둥이를 대지 않아 온전했다.
배낭 속 준비한 칼을 꺼내 산중에 자생하는 머위 순을 잘라 모았다. 계곡물이 폭포를 이룬 골짜기에서 머위가 자라는 언저리를 몇 군데 찾아내 순을 잘라 봉지에 나누어 채워 담았다. 청정지역 자란 머위를 캐 배낭은 물론 보조 가방까지 채웠다. 연초록 잎이 돋는 산비탈을 거슬러 산등선으로 올라 고갯마루를 넘어 비탈로 내려서니 아까 올랐던 희미한 등산로를 만나 하산했다.
용전마을에서 남산리 동구 밖 식당에서 점심을 요기하고 시내로 들어가는 정류장으로 가니 노부부가 쑥을 가득 캔 배낭을 지고 보따리는 손에 들고 같은 버스를 탔다. 명서동에서 한 차례 환승을 해서 집 근처에 닿았다. 간식으로 삼는 과자를 가끔 보내주는 제과점 주인 아낙한테 머위 봉지를 하나 보냈다. 같은 아파트단지 꽃대감 친구와 이웃에게도 보냈더니 배낭이 가벼워졌다. 24.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