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혜암아동문학상 동시 부문 당선작.
김들(본명 김민지)
둥지
요즘엔
쓸 만한 것들이 꽤 많아졌어
보들보들 헝겊자투리
도막도막 고무 전깃줄
뽁뽁이라 부르는
오동통 비닐 쪼가리
오늘은
바람에 구르는 스티로폼을 건졌어
운이 좋은 날이지
나뭇가지, 솜털, 깃털 따위는
이제 필요 없어
나는 넓고 튼튼한 둥지를 지을 거야
새 둥지를.
<심사평>
세련미와 능숙함보다는 진정성을
혜암아동문학상이 6년째를 맞는 그 연륜만큼 작품 수가 많았고 소재도 다양했습니다. 그러나 발상이나 표현이 고만고만한 작품도 많았습니다. 응모작 한 편 한 편을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러나 시적 대상의 물질적 특징을 묘사하거나 기발한 소재의 선택, 유행에 치우쳐 기교를 앞세운 작품, 또 유희적 상상에 그치고 만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또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 시적 난이도 조정에 실패한 경우, 즉 지나치게 쉽게만 풀어버린 작품도 눈에 띄었습니다. 무엇보다 오늘을 사는 어린이의 감정과 욕망을 다루지 않은 점이 아쉬웠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소감을 글머리에 밝히는 것은 이것이 나름의 심사 기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인에게 거는 우리의 기대가 익숙함에 대한 거부와 낯섦에 있기 때문입니다. 후보작으로 24번 응모자의 「둥지」‧「전단지 아저씨」‧「같아요」와 39번 응모자의 「지문」‧「요요 현상」‧「여름방학 보내는 법」 등을 선정해 놓고 뜸을 들여가면서 몇 번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최종 당선작으로 24번 응모자의 「둥지」을 올립니다. 이 작품은 낯익은 소재 ‘둥지’를 인간의 욕망으로 치환하였습니다. 새들은 마른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둥지를 만듭니다. 그런데 이 시적 화자(새)는 ‘헝겊자투리, 고무 전깃줄, 미닐 쪼가리’ 등으로 ‘새’(새로운) 둥지를 짓겠다고 다짐합니다. ‘나뭇가지, 솜털, 깃털 따위’는 필요 없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적 상황은 우리가 이미 개발과 자본의 논리에 포획되어 있음을 지적한 표현입니다. ‘넓고 튼튼한 둥지’는 분명 반자연적인 것으로 ‘새의 둥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그 ‘새 둥지’를 갈망합니다.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거론하면서도 개발 이익을 포기하지 못하는 지금 우리의 단면을 비판적으로 읽어내고 형상화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외 「전단지 아저씨」는 조손가정을 시적 대상으로 한 작품입니다. 동네 맛집 홍보를 하는 아저씨의 지나치는 말에도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화자는 주눅이 듭니다. 또 「같아요」는 요즘 어린이들의 말투 ‘~같아요’에서 자기의 감정도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어린이의 태도를 비판하면서도 재치있게 다루었습니다.
비록 세 편의 작품이지만 여기서 ‘부재 하는 것’을 통해서 ‘있어야 할 것’을 말하는 시인의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 작품이 세련미는 다소 부족하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함께 보내온 작품들에서 인간들, 인간과 비인간, 생명과 환경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풀어내려는 시작 태도가 그렇습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 동시의 영역을 새롭게 열어갈 역량을 갖추었다고 생각됩니다.
39번 응모자의 「지문」과 「요요 현상」은 그 발상이 비교적 참신했습니다. 「지문」은 손가락 지문을 미로에 비유한 점이 좋았고, 그 미로를 따라 디지털 도어락과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푼다는 발상으로 디지털 시대의 특징을 담아냈습니다. 「요요 현상」은 다이어트 후 일시적으로 감량한 체중이 다시 돌아오는 현상인 ‘요요 현상’을 존댓말 사용에 접목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작품이 그 발상에 비해 감동을 끌어내지 못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또 「여름방학 보내는 법」은 한낮에 동생과 놀았던 일을 형상화한 작품인데 시적 상황이 생동감 있고 활달합니다. 그러나 그 능숙함 이면에 기시감이 느껴져 긴장감이 떨어졌습니다. 이런 단상을 밝히는 것은 비록 이번 응모에서 기회를 놓쳤지만,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냅니다. 앞으로 재미와 감동의 두 축을 함께 고민하면서 우리 동시 문단에 주목받는 작가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아쉽게 이번에 기회를 놓친 많은 분께도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곧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심사위원 김종헌(동시인, 문학평론가)
첫댓글 <당선 소감>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는 책이 많았습니다. 소파와 텔레비전이 있어야 할 거실의 삼면이 책장으로 둘러 있고, 그 안에는 온갖 책들이 빼곡히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각 방의 벽마다에 책장들이 우뚝우뚝, 그도 모자라 베란다 벽까지 차지했습니다.
책이 많은 우리 집이 영 싫었습니다. 친구들 집과 다른 우리 집이 싫었고, 친구들의 엄마와 다른 우리 엄마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 때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엄마가 선생님을 대신해 강의를 하러 학교에 왔습니다. 엄마가 어린이책 작가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왜 맨날 우리 엄마가 와야 하는 거지?’
그 일에 대해 불만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주목받는 일이 싫었나 봅니다. 당시 제게 ‘책’이라는 것은 ‘적’과도 같았습니다. 자리만 차지하고, 텔레비전보다 재미없는 책. 저는 심리적으로 책과 먼 아이가 되었고, 절대로 집에 있는 책을 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책’ 혹은 ‘글쓰기’와는 전혀 다른 업을 삼겠다고도 생각했지요.
스무 해쯤이 지났습니다. 대학 졸업 뒤 바로 취업을 못한 채 아르바이트로 벌이를 할 무렵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무심코, 책장에 있던 어린이책 한 권을 꺼내 읽었습니다. 그 책의 제목도, 장르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린이책이라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뒤늦게야 깨달았습니다. 그 뒤로 저는 그림책, 동화책, 동시집 등을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있는 책을 다 본 뒤에는 날마다 도서관에 가서 어린이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렇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저는 어린이문학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를 계기로 어린이책 편집자가 되었으며 한편 어린이책을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눈앞에 놓여 있던 길을, 참 멀리도 돌고 돌아왔습니다. 이제 와 저는, 마치 머릿속 서랍 하나를 열어 둔 듯 저조차도 모르게 글 쓸 거리를 궁리하고 또 궁리합니다.
홀로 동시 습작을 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꾸준히 쓰고 꾸준히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동시를 쓰는 것은 여전히 너무나 어렵습니다. 이토록 귀한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과 혜암 최춘해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선자의 당선소감문을 옮겼습니다.)
쥐불놀이님.
당선 소감문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처음에 쥐불놀이님 얘기인 줄 알고 읽었는데 끝에 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울컥했습니다.
사실은 저도 1회때부터 혜암문학상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혜암 최춘해 선생님이 저와 고향이 같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 순간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사명감 같은 게 생겼습니다.
1회때 동화가 본선 후보작으로 올랐으나 떨어졌고 그 동화는 다른 곳에서 빛을 보았습니다.
저는 올해도 도전했으나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내년에도 도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렇게 멋진 당선 소감문을 쓸 수 있기를 바라며....
감사합니다.
@망고 망고 님, 응원합니다.
두 분의 수고로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동시문학이 항상 풍요롭습니다.
신극원님 당선작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