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715m의 천태산은 뛰어난 자연경관과 잘 정돈된 등산로 그리고 주변에 많은 명소가 산재되어 있어 등산 동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가족단위 등산지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특히 양산팔경이 이곳 천태산 영국사를 제 1경으로 시작되고 많은 문화유적들이 그 신비함을 더해주는 곳이다. 천태산은 4개의 등산코스로 이루어져 특히 75m의 암벽 코스를 밧줄로 오르는 맛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천태산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기도 하다. 천태산의 입구에서 가을 단풍길을 따라 20여 분 가다보면 기암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용추폭포의 빼어난 절경을 맛 볼 수 있으며, 조금 더 길을 걸으면 1,300 여년 동안이나 이산을 지키고있는 영국사의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 233호)의 뛰어난 자태를 엿볼수 있다. 영국사는 신라 문무왕 8년 원각대사가 창건하였고 그 후 효소왕이 육궁백관을 인솔하고 피난했다는 전설이 있는 옥새봉과 육조골이 있고, 고려 문종때 대각국사가 국창사라 한 것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함으로써 국난을 극복하였다 하여 영국사라 개칭한 곳으로 지금은 청소년들의 역사 교육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양산팔경의 제1경 영국사(寧國寺)는 송호국민관광지에서 서북쪽으로 약6.3km 떨어진 양산면 누교리 천태산 자락에 위치하는 신라 때의 고찰이다. 고려문종 때 대각국사가 국청사라 했던 것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 곳에서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안정된 삶을 기원함으로서 국난을 극복했다 하여 영국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영국사에는 5가지 보물과 1개의 천연기념물이 있다. 보물 제532호인 영국사부도(浮屠), 보물 제533호인 영국사삼층석탑, 보물 제534호인 영국사원각국사비, 보물 제535호인 영국사망탑봉 3층석탑(望塔峯三層石塔)과 천연기념물 제223호인 영국사의 은행나무가 그것이다.
이들 보물과 천연기념물 중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영국사의 은행나무이다. 나무의 둘레를 치자면 어른 서넛이 손을 맞잡고 둘러서야 나무를 제대로 안을 만큼 거대하다. 공식적인 나무의 나이는 1000살로 알려져 있으며 실측 자료에 의하면 높이 31.4m, 가슴높이 둘레 11.54m의 거목이다. 특히 서쪽으로 뻗은 가지 가운데 한 개는 땅에 닿아 뿌리를 내리고 또 다른 은행나무로 자라고 있는 신기한 광경도 이 은행나무의 유명한 볼거리이다.
사철 끊임없이 이어지는 천태산 등산객과 영국사를 찾는 신도들과 답사객 모두의 인기몰이의 주인공 영국사은행나무를 뒤로하고 천년고찰 영국사로 향하는 길은 은행나무 언저리의 언덕으로 향한다. 대웅전 보수공사를 하느라 대웅전의 주불은 만하루로 모셔져 있고, 공사가 끝날 동안 만하루는 임시 대웅전으로 사용되고 있다.
만하루는 정면 5칸 측면3칸이고 겹처마팔작지붕의 멋스러운 누각이다. 대웅전의 고풍스러움과 단아한 삼층석탑이 있는 절집마당으로 가려면 누각의 아래로 가거나 만하루 왼쪽으로 돌아가도 같은 장소로 이어지지만 눈높이의 차이에 의해 풍경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만하루 아랫길은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며 맞이하는 대웅전과 삼층석탑의 풍경이 그렇고, 만하루 왼쪽으로 돌아드는 길은 만하루 추녀 아래로 펼쳐지는 대웅전과 삼층석탑의 풍경이 그렇다.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은 2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상륜부가 잘 보존된 완전한 형태이다. 탑신을 받히고 있는 2층의 기단 중 위의 기단 네 면에 새겨진 안상(眼象)이 매우 크고 넓은 것이 이채롭다. 기단 맨 윗돌에는 네 모서리 끝부분에서 약간의 치켜 올림이 있고,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하고 네 귀퉁이는 바짝 치켜 올려진 상태이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각 4단씩인 것이 특징인 이 탑은 기단과 탑신부가 간결하여, 조형미술품의 규모가 작아지고 양식도 간략화 되던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주불전인 대웅전은 수리중 이어서 십 수년 전 그 고풍스럽고 아담한 모습의 대웅전이 못내 그립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인 대웅전은 다포식 맞배지붕의 용마루가 곱게 늘어져 절집의 고적함을 더욱 느끼게 했던 기억이다.
수리중인 대웅전과 그 곁의 요사(寮舍), 만하루, 삼층석탑이 오종종한 절집 마당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100m 정도 길을 잡으면, 낮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원각국사비와 석종형부도가 있는 곳으로 이어진다.
위치 :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높이 : 1,242m
안내전화
043)743-8843 (영국사) 043)740-3201∼6(영동군청 문화체육과)
산행코스
주차장 →용초폭포 →은행나무 →송판서묘 →암벽 →정상 →헬기장
주변관광지
송호국민관광지, 옥계폭포, 난계사
교통정보
자가운전시
경부고속도로 옥천I.C.-> 4번 국도 -> 이원면 -> 501번 지방도 -> 개심저수지 -> 율치 -> 양산면 누교리 -> 영국사 ※ 승용차로는 영국사 만세루 바로 밑에까지 갈 수 있다. 누교리 대박식당(043-744-3033) 바로 옆으로 난 좁은 마을 길을 따라 누교저수지를 지나면 아랫도 가실 마을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영국사 팻말을 따라 좌회전, 산길을 계속 들어가면 영국사에 닿는다. 대박식당에서 영국사까지는 총 4.3km 거리이다.
현지교통
영동읍내에서 영국사 입구를 거쳐가는 누교리/명덕리 방면 시내버스 이용. 영국사 입구에서 하차 후 영국사까지 1시간 정도 걸어가야 한다. (버스시간표 : 영동역에서 06:20, 08:10, 11:00, 13:10, 17:00, 19:10/ 6회/ 30분 소요)
약도
영동군 양산면 일대에 금강(이곳에서 금강은 양강이라 부른다)과 소백산맥 자락이 어울려 빚어낸 여덟 가지 절경을 뽑아 양산 팔경이라 부른다. 영국사, 봉황대, 비봉산, 강선대, 함벽정, 여의정, 용암, 자풍서당을 말한다. 강선대는 양산 팔경의 하나로 송호국민관광지 건너편 양산면 봉곡리 금(양)강 기슭에 1956년 5월 10일 지은 시멘트 육각 기와집이다.
이곳은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옥퉁수를 불다가 구름을 타고 승선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동악 이안눌과 백호 임제의 시가 있다. 제8경은 송호유원지앞 양강에 솟아 있는 용암이다.전설에는 이곳에서 용이 승천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 : 강선대
영동에서 서쪽으로 약 13km 떨어진 양산면(陽山面) 송호리(松湖里) 앞을 휘 돌아 흐르는 양강 물 속에 우뚝 솟아 있는 한 바위가 있으니 이 아름다운 바위를 강선대(降仙대)라 일러 온다. 일찍이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이 강선대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시를 남긴 이 대(대)는 오늘날 양산팔경(陽山八景)의 하나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아 오고 있거니와 강선대란 이름이 그야말로 신비스러운 지상의 낙원이었다. 하늘에 있는 선녀 모녀는 어느 화창한 초여름날 신비스러운 땅을 내려다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마마마 소녀는 어디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 가서 목욕이나 하고 오렵니다.」 선녀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기를 「보아라 저 아래 아름다운 강물 속에 소나무 우거진 석대가 솟아 있고 그 옆의 강물에 몸을 담그어 보고 싶지 않는냐-」 선녀는 어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 보았다. 과연 강 속에 우뚝 솟은 3십여척(약10m)되는 석대에 해 묵은 소나무가 그림처럼 솟아 있고 초여름의 강물이 햇살에 비쳐 은비늘처럼일렁이고 있었다. 선녀는 기쁨의 소리를 지르고 그곳에 내려왔다. 구름을 타고 석대에 내려 온 선녀는 주위 산천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한동안 눈을 바로 뜰 수가 없었다. 눈을 뜨고 동쪽을 보니 푸른 잎이 공중에 떠서 푸른 안개가 된 것은 천마산(天摩山)이요, 서쪽을 바라보니 공중에 가득하여 하늘을 가린 것은 묵험산이며 남쪽을 보니 오색이 하늘에 나르는 것은 비봉산(飛鳳山)이오 북쪽을 보니 눈섭같이 눈을 사이에 두고 꿈틀거리는 산은 마니산(魔尼山)이라 언덕과 산이 무르녹은 모습을 그려내어 마치 선녀가 사는 하늘과 비슷한 이 땅의 별천지에 선녀는 그만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선녀는 지금의 저 양산 송호리 강가 모래밭에 옷을 벗어 놓고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 모양을 강물 속에 있는 용바위가 힐끔 힐끔 훔쳐보고 있다가 어느 사이에 용바위는 선녀의 아름다운 몸매에 그만 넋을 일고 말았다. 용바위는 바위이기는 하였지만 숫용이었다. 이 숫용 바위는 목욕하는 선녀를 보더니 금새 검은 마음이 일었다. 용바위는 물 속에서 선녀 쪽으로 한 걸음 두 걸음 옮겨갔다. 한참 정신없이 목욕을 하던 선녀는 물 속에서 무엇이 자기쪽으로 옮겨 오고 있는 것을 눈치 채고 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용의 모양을 한 바위가 조금씩 이쪽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선녀는 그만 기겁을 하고 놀라 서둘러 옷을 걸쳐 입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이 바위를 강선대라 부르기 시작했다.
양산8경 중 2경과 8경이 송호국민관광지 금강 가에 발을 적시고 강물에 몸을 적시며 서로 마주보고 있다. 이 두 가지 명물이 가까운 곳에서 서로 마주보게 된 사연은 설화로 전해지는데 이름 하여 제2경인 강선대(降仙臺)와 제8경인 용암(龍岩)에 얽힌 설화이다.
이 두 명물에 얽힌 설화는 서로 독립적이지만 용암이 전하는 설화가 강선대를 제 설화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어 재미있다. 강선대는 양강(양산면 지역에서 금강을 일컫는 이름)의 맑은 물이 하도 좋아서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하늘로 올라가던 용이 선녀들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반하여 양강의 바위로 떨어졌는데 그곳이 용암이다.
하늘로 승천하는 그 중요한 순간에 한눈을 팔다가 결국 강으로 떨어져 이무기가 되었을 것이니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짐짓 교훈적인 내용도 들어 있겠다. 하늘로 승천하는 용을 유혹한 적 없는 강선대 설화 주인공 선녀들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선대는 양강의 절경과 함께 선녀의 설화를 품고 있다. 양산팔경 중 제2경 강선대(降仙臺)는 양산면 봉곡리 금강 기슭에 있는 누대(樓臺)로 1955년 정자가 세워졌다. 강가에 불쑥 솟아 오른 약 10여 미터의 바위 봉우리에 소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있는 봉우리의 중앙에 강선대 정자는 위치한다.
강선대는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 해서 강선대라 한다는데, 승천하려던 용이 선녀가 목욕하는 것에 반하여 승천하지 못하고 떨어졌다는 용암(龍岩)가 강 건너로 마주 보이며, 그 너머는 무성한 송림이 장관인 장계관광지가 소나무 숲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강선대에서 바라다 본 양강은 주변의 연능과 썩 잘 어우러져 아름답고 가곡리 강가 모래톱을 적시고, 그 건너 송호국민관광지도 함께 적시며 흐르는 금강의 유장함과 강선대의 소나무 가지가 그 풍경에 걸쳐져 더욱 아름다운 풍치를 자아낸다. 한여름 더위 식히고 풍류삼아 이곳을 찾는다면 용틀임치는 소나무가 에워싸 숲을 이루는 호젓함 속에서 한여름의 망중한으로 잠시 더위도 잊겠다.
강선대는 올라서 즐기는 풍치도 그렇지만 오르지 않고 바라보는 풍치도 빼어난 금강변의 암봉(岩峯)이다. 강선대 곁에서 금강을 가로지르는 봉곡교를 건너며 바라다보면 금강이 강선대의 발치를 적시고 흐르는 속에서 기암괴석을 이루는 암봉과 소나무. 그 안에 오도카니 자리 잡고 있는 정자가 있는 풍경은 자연과 우리의 전통문화가 만들어낸 멋들어진 합작품이다.
자연을 즐길 줄 알았던 우리 민족은 이렇게 자연과 함께 살아왔으며 그 절경 속에 어울리는 건축물도 세울 줄 알았다. 암봉의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강선대의 정자가 썩 어울린다.
송호국민관광지 양강의 수면 위로 불쑥 솟은 바위가 용암이다. 이 바위는 송호국민관광지 강변 쪽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며 강선대를 동북쪽으로 마주보고 있다. 용암의 설화를 방증 하는 증거의 절묘한 배치이다.
영수(靈獸)인 용과 선녀에 얽힌 설화가 전해지는 용바위. 바위가 편평치 못해 물놀이 중에 쉴만한 장소는 아니지만 울퉁불퉁 기암괴석인 유선형의 이 바위는 마치 고래가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척박한 바위에 잔 나무 두어 그루와 잡초들이 뿌리를 내려 수석에 난 친 듯한 모습이 근사하다.
위치 :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봉곡
비봉산 비봉산은 가곡리에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금강과 양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 고층산 또는 남산이라 불리다 훗날 봉이 난나고 해서 비봉산이라 불렀다.
여의정 여의정은 송호국민관광지 솔밭 바위 위에 새워놓은 정자로 만취당 박응종 선생이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비봉산은 가곡리에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금강과 양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 고층산 또는 남산이라 불리다 훗날 봉이 난나고 해서 비봉산이라 불렀다.
여의정은 송호국민관광지 솔밭 바위 위에 새워놓은 정자로 만취당 박응종 선생이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양산8경 중 제3경인 비봉산과 제6경인 여의정은 방문객에게 양산면 일대와 그곳을 휘도는 양강의 장관을 선사하며 산행 후 양강 가의 100년 수령의 소나무가 빼곡한 송림과 유장히 흐르는 양강의 풍경을 함께 안고 있는 여의정 풍광을 즐기게 한다.
제3경 비봉산의 높이는 460m로 낮은 구릉지에 속하는 양산면의 산세로는 비교적 높은 산이다. 이 산은 금강이 인접하여 흐르고 양산면 대부분을 조망 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송호국민관광지에서 직선거리로 정상까지 2.4km 거리, 양산면 가곡리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비봉산은 정상에 올라서면 금강과 양산면 일대가 한눈에 조망되는 곳으로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을 때 고층산 또는 남산이라 불리다가 훗날 봉황이 난다 하여 비봉산이라 불리었던 것이 현재의 산 이름이 되었다.
비봉산은 산세보다는 정상의 풍치가 빼어난 곳으로 이름 나 있다. 산이 그리 높지 않고 험하지 않으니 산보삼아 오르고, 내려와서 송호국민관광지의 멋들어진 소나무 숲과 선인의 풍류가 깃들어 있는 여의정에서 송림과 양강의 풍치에 젖어든다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겠다.
비봉산 산정(山頂)의 상쾌함을 맛보고 송호관광지로 들어서면 송림의 기암 위에 지어진 제6경 여의정(如意亭)에 다다른다.
여의정은 300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는 소나무 수백그루가 주변에 빽빽이 들어서 소나무 숲의 장관이 함께하는 곳이다. 겹처마 팔작지붕을 한 정면 두 칸 측면 두 칸의 규모를 갖는 이 정자는 울퉁불퉁한 바위 위와 바위와 바위 사이의 틈새를 메꾸어 편평히 기초를 다진 후 그 위에 육각의 기둥을 세우고 지은 정자이다.
그늘도 그늘 나름인지 송림의 그늘과 여의정의 그늘은 분명 맛이 다르다. 주변은 평지여서 마냥 올려다 봐야했던 시선은 이 정자에 올라 아래를 굽어보는 여유로움이 있으며 볕을 피하는 맛이 한결 시원하고 상쾌함을 느끼게 한다.
여의정의 풍광은 송림만 아니라 금강 변에 조성된 은행나무 숲 너머로 도도히 흐르는 금강이 조망되어 기분마저 시원하다.
한편 여의정은 이요당(二樂堂) 박흥거(朴興居)의 후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연안부사(延安府使)였던 만취당(晩翠堂) 박응종(朴應宗)이 관직을 사직하고 이곳으로 낙향하여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하며 선생은 이곳에서 예의와 풍속 및 정치와 역사를 설교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다.
봉황대 제4경은 봉황이 깃들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수두리의 양강변에 있는 봉황대이다. 옛날 처사 이정인이 소일하 던 곳으로 누각은 오래전에 없어졌다. 함벽정 1897년 정유년에 건립한 것이다. 송호리에서 강물을 따라 500m쯤 올라가 강언덕 반석 위에 지어졌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멀고 가까운 곳의 산이 어울려져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2칸의 8작 와즙으로 대층이 있다.
위치 : 충북 영동군 양산면 봉곡리 산 54
조선 중기의 유학자 동천 이충범(1520∼1598)이 제자들을 양성하던 곳이다. 조선 초기에 양강 강가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는데, 인조 4년(1626) 이후 숙종 46년(1720)까지 여러 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처음에는 풍곡당이라고 부르다가 광해군 6년(1614)에 한강 정구 선생이 이곳에 머무르며 자법정풍(資法正風)으로 학문을 장려하였다는 뜻으로 자풍당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으로 18세기경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현재 매년 10월 19일 제사를 지내며, 이곳의 책 읽는 소리는 양산 8경의 하나이다.
종목 : 시도유형문화재 제73호 (영동군)
명칭 : 영동자풍서당(永同資風書堂)
분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서당
수량/면적 : 1동
지정일 : 1980.11.13
소재지 : 충북 영동군 양강면 두평리 561
시대 :조선시대
소유자 : 자풍당(18문중)
관리자 : 여운철
안내전화 : 043)740-3201∼6(영동군청 문화체육과)
박연폭포라고도 불리는 옥계폭포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무려 20여m 에 이르며 수려한 주변경관과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이룬다. 예부터 난계 박연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들이 모여 옥계폭포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는 글을 많이 남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 : 파랑새
영동에서 북쪽으로 국도를 따라 약 12Km 정도 가다 다시 왼쪽 산으로 접어들면 영동 유일의 폭포에 이르게 되는데 이 폭포가 유명한 옥계폭포이다. 옥계폭포(玉溪瀑布)는 이중환(李重煥)의 저 유명한 택리지 (擇里志)에도 소개된 폭포이며 일찍이 최남선(崔南善)도 그의 저서에 서 소개했던 폭포인 것이다. 옥계폭포 위쪽에 라는 사각형 바위로 된 못이 있는데 오랜 옛날에 그 연못 속에 용(龍)이 살았다고 전해 온다. 이 연못은 아무리 큰 장마가 져도 흙으로 메워지는 일이 없었으며 어찌나 깊은지 그 깊이를 가늠 할 수가 없었다. 어느 해던가 못의 깊이를 재어 보려고 마을 사람들은 명주실 한 꾸러미를 들고 나와 돌을 달아 집어넣어 보았지만 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가도 끝이 나타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못의 구멍이 북쪽 옥천군(沃川郡) 이원면(伊院面)으로 뚫려 있는 것으로 믿게끔 되었다. 어느 해 극심한 가뭄이 들어 폭포 위쪽의 예저수 물을 푸게 되었다. 차츰 못의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말로만 들어오던 용의 모습이 실제로 못 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귀가 집신 크기만 하고 몸길이는 꼬리가 폭포 아래쪽까지 내려갈 정도였고 폭포 위쪽에 척 걸쳐진 용의 머리를 보고 물을 푸던 일꾼들은 기겁을 하여 모두 도망가 버렸다. 용이 사람의 눈에 뜨이자 그 뒤 못은 차츰 메워져서 지금의 형태로 남아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옥계폭포 위쪽에 계수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는데 어느 해 봄날 한 쌍의 부부가 이 계수나무에다 그네를 매어놓고 놀이를 하다 그만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폭포수 아래로 떨어져서 죽어 버렸다. 그들 부부는 죽어서 한 쌍의 파랑새로 변하였다. 파랑새는 폭포 근처의 아름다운 산수를 잊을 수가 없어 이곳을 떠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지금도 매년 봄이 되면 한 쌍의 파랑새가 폭포수 근처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폭포를 찾는 많은 시인들은 그들의 느낌을 시로 남겨 놓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그 부근에 있는 난계사당과 금강유원지의 개발로 더욱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오가고 있는 실정이다.
해발 1,242m의 민주지산은 한반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에서 분기하여 남서로 뻗어내린 소백산맥의 추풍령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기개를 일으키면서 형성된 산으로 충북 영동, 경북 김천, 전북 무주의 3도에 걸쳐있는 삼도봉과 북으로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산으로 해발 1,100~1,200m의 고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쌓여 20여 km의 깊은 골을 만들었는데 이곳이 바로 물한계곡이다.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물이 차다는 한천마을의 상류에서부터 시작한다. 여름이면 물한계곡은 많은 피서객들이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또한 민주지산, 삼도봉, 각호산은 사철 등산 애호가들이 즐겨찾는 곳으로 정상을 잇는 능선에는 각종 잡목과 진달래, 철쭉등이 자리잡고 있어 어느 계절이든 장관을 이룬다. 물한리 종점에서 삼도봉을 향하다 보면 옥소폭포, 의용골폭포, 음주암폭포 등이 있고 장군바위를 비롯 많은 소와 숲이 어우러져 더욱 시원하고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다. 또한 삼도봉에는 3도(충북,경북,전북) 화합기념탑을 건립하여 매년 10월10일이면 3도 만남의 행사가 개최된다.
지장산(772.4m) 기슭에 있다. 반야사에서 황희의 위패를 모신 옥동서원까지 6㎞에 이르는 계곡으로 곳곳에 기암절벽이 즐비하고 맑은 물이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흐른다. 하천이라고 해도 될 만큼 폭이 넓으며 황간에 이르러 송천과 합쳐진다.
위치 :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안내전화 : 043)740-3201∼6(영동군청 문화체육과)
교통정보
영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황간행 직행버스를 타고 황간에서 내려 수봉리(옥동서원 입구)행 시외버스로 갈아탄 뒤 반야사 입구에서 내란더, 승용차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 황간인터체인지로 나와 황간면에서 상주 방면으로 977번 지방도를 타고 우매리에서 좌회전한 뒤 7㎞ 가량 더 들어가면 계곡이 나온다.
약도
강이나 내가 흐르는 어느 지점. 사람들이 길을 내어 오가면서 발을 적시고 배를 띄우니 세월이 흐르면서 그곳은 이미 무심히 흐르는 강이나 내의 어느 한 지점이 아니라 오가는 길손의 사연을, 향리의 내력을 간직한 곳이 되었다.
이처럼 사람 사는 이야기가 오고가는 여울목 중, 영동군의 서북부 지역인 양산면과 심천면을 두루 적시고 흐르는 금강에 유명한 곳 하나 있다. 양산면 호탄리 금강 가, 68번 지방도와 501번 지방도가 만나는 지점. 501번 지방도가 호탄리 강여울을 건너면서 2차선 도로와 인도를 갖춘 ‘호탄교’를 지나면서 687번 지방도와 합류하는 곳이 그곳이다.
‘호탄교’는 호탄여울목 이름을 따서 지은 다리 이름이다. 이 다리 이름의 연원이자 이곳 여울목 이름의 연원은 전해지는 전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경주 김씨 금희라는 효자가 이곳 인근의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효성이 극진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연로하신 아버님이 계셨는데, 아버님이 병이 든 어느 겨울 날 갑자기 딸기가 먹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생전 부모말씀을 거역한 일 없는 효자는 산딸기라도 구해 드리려는 마음으로 강 건너 갈기산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럴 때 갑자기 곰이 나타나 딸기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고. 금회는 곰의 인도로 아버님께 드릴 딸기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희는 딸기를 구하여 집으로 돌아가던 중, 해는 저물어 어둠 속에 갇혀 금강을 건널 수 없게 되었다. 아버님 드릴 딸기는 구하였으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애를 태우고 있을 때 호랑이가 나타나 금희를 자기의 등에 태우고 여울을 건너 집 앞에 내려주고 사라졌다. 호랑이 덕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금희는 병환 중의 아버지께 기쁜 마음으로 딸기를 드리자 아버님은 그 딸기를 먹고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전설이다.
그 후 금희가 천수를 다하고 죽자, 호랑이가 다시 나타나 3년을 여막에서 금희를 보호했다는데,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가 효자 금희를 등에 업고 건넜던 여울이라 해서 범호(虎) 자, 여울탄(灘)자를 써서 여울 이름을 ‘호탄’이라 했으며, 마을 이름도 이때부터 호탄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옛날 길손들이 고개를 넘나들면서부터 생긴 주막거리는 세월의 변천을 겪으면서 쇠락하여 없어지거나 그 명맥을 이어 오다가 옛길이 명소가 되면서 맛집과 멋집 거리로 번성하기도 한다. 강나루도 예외는 아니다. 오가는 길손을 기다리는 배는 더 이상 뜨지 않지만 그곳의 내력과 정취와 낭만을 즐기는 사람들이 더러 찾기도 하며, 오래전부터 전해져 온 토속음식을 즐기려는 식도락가 들 또한 찾고 있다.
향리 사람들이 오가던 호탄 여울목도 세월의 변천에 따라 길로서의 여울목은 더 이상 아니다. 여름철 시원한 강가에서 물놀이를 즐기려 찾는 사람들의 물놀이 명소가 되었으며, 수심이 얕고 맑은 물이 흐르는 이곳은 여울낚시를 즐기는 낚시꾼들의 명소이기도 하다.
강폭이 넓고 바닥은 자잘한 자갈이 가득한 이곳은 가족과 연인이 한여름 강가의 정취와 낭만을 즐기며 물놀이와 함께 더위를 피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보통의 강가는 그늘이 없어 햇볕에 노출되지만 폭 넓은 다리는 대형 그늘막이 되어 이곳을 찾는 휴양객들의 피서처가 되고 있다.
호탄여울목은 주변이 막히지 않고 트여 호방한 강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곳 보다 주변 산의 자락을 적시고 흐르며 그 사이로 곡류하는 강의 정경과 강 언저리 농경지에 매어 놓은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아름다운 강마을의 여울목이라면 어떨까?
강촌의 평화로움 물씬 묻어나는 또 다른 여울목을 가자면, 호탄여울목에서 68번 지방도로를 따라 금산방면으로 4.1km 진행하면 우측에 가선리로 들어가는 소로로 이동하라. 이 길로 들어서면서 마을로 이어지는 다리가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가선리 여울목이다.
이곳은 호탄여물목과는 대조적으로 강폭이 좁으며 다리 주변을 제외하고는 수심이 깊은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금강이 활처럼 곡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변의 산자락을 적시며 흐르는 강의 정취가 유별난 곳이다. 특히 강물이 휘어 들어오는 서쪽은 농경지의 숲과 그 아래서 평화로이 풀을 뜯는 누런 황소, 강가를 먹이 찾아 유유히 날아드는 왜가리, 백로 등이 어우러진 정경이 인상 깊은 곳이다. 강물이 휘어나가는 동쪽 또한 산과 강이 어우러진 멋진 풍광이 있어 좋다.
강 낚시와 여울낚시를 즐기는 사람, 어항을 놓고 물고기를 유인하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영동의 명물 올갱이 잡으려 강 바닥을 헤집는 사람들 또한 어우러져 평화롭고 정감 넘치는 가선리 여울목. 이곳에 가면 명심해야 할 것 하나 있다.
여울 주변은 수심이 깊고 물살이 빠르니 절대 들어가지 말 것! 괜한 호기심이나 만용은 물 앞에서 부릴 일이 아니다.
주소 : 충북 영동면 양산면 가선리
민주지산 자연 휴양림은 충청북도 최남단인 영동군 용화면 조동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충청 · 전라 · 경상도와 이웃하고 있습니다. 민주지산 자연 휴양림은 소백산맥 줄기에 분포하는 각호산(1,176m), 민주지산(1,241.7m)등 주변의 명산에 둘러싸여 사계절 숲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자연 그대로의 휴양림입니다. 깨끗하게 정돈된 숙박시설, 철 따라 산행의 즐거움이 달라지는 등산로, 피톤치드 풍부한 신림욕장, 건강지압을 위한 맨발숲길, 야간조명이 갖춰진 사방댐 분수, 13.4㎞의 임도시설을 활용한 MTB(산악자전거)코스는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맑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휴양림 관리도를 따라 조성된 산열매향수길은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하고, 곳곳에 수목에 대한 해설이 있어 가족 단위나 학생들에게 자연학습의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영동의 맑은 산수(山水)로 빚은 곶감, 포도, 사과, 배, 호두, 고로쇠수액, 표고, 산약초 등 전국에서도 유명한 영동의 특산물을 만나는 행복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인간최적의 생활환경 민주지산 자연휴양림
해발 700m의 효과
인체에 가장 적합한 기압상태로 생체리듬에 가장 좋습니다. 고기압과 저기압이 만나는 지역으로 인간의 생활과 모든 동식물의 생육에 최적의 조건 뇌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 호르몬의 증가로 충분한 수면효과 충분한 혈류 공급으로 젖산과 노폐물의 제거에 효과가 있어 피로 회복이 빠릅니다. 노화를 지연시키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게 합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편안한 마음의 휴식처 계곡의 신선한 바람으로 머무는 자체가 휴양
울창한 숲에서 자연과 하나 될 수 있는 해발 700m의 민주지산 휴양림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위치 :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 조동리 산 4-129
구역면적 : 180 ha
주변관광지 : 송호국민관광지(양산팔경), 천태산 영국사, 조동산촌마을
민주지산 자연휴양림 종합안내도
284,000㎡의 부지에서 조성된 송호관광지는 관리사무소를 비롯하여 주차장, 취사장, 체력단련장, 어린이 놀이터, 산책로, 방갈로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관광객에게 보다 즐겁고 쾌적한 휴식공간과 놀이공간을 제공하고자 최신식 공법과 시설을 갖춘 송호 물놀이장이 울창한 소나무숲사이에 펼쳐져 있다. 물놀이장에는 유아풀, 성인풀, 유수풀, 높이 2m, 길이 13m의 유아용 슬라이드풀, 높이 6m, 길이 43m의 청소년 및 성인용 슬라이드풀, 모래찜질장 등의 시설을 갖추어 놓고 있어 많은 피서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또한 분수대, 장미꽃터널, 살구꽃동산, 특산물을 형상화한 조각공원 등 송호관광지를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많은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금강상류의 맑은 물과 100년 이상된 송림이 어우러져 삼림욕과 더불어 가족 단위 및 청소년 심신수련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송호관광지 주변에는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는 강선대와 승천하려던 용이 선녀가 목욕하는 것에 반하여 승천하지 못하고 떨어졌다는 용바위, 만취당 박응종이 말년에 후학을 가르쳤다는 녹음방초의 여의정이 있다.
(양산8경) 영국사, 강선대, 비봉산, 봉황대, 함벽정, 여의정, 자풍당, 용암
위치 : 충북 영동군 양산면 송호리 일대
안내전화 : 송호국민관광지 관리사무소 (043-740-3228)
개요
우리 국문학상 신라가요 목록에서 중요하게 헤아리는 양산가(陽山歌)의 고장 송호국민관광지는 양산을 꿰뚫고 남에서 동북으로 흐르는 금강 상류 연안에 위치한 명승지로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다울 뿐만아니라, 신라와 백제의 끊임없는 싸움의 역사 속에 신라 김흠운 장군의 애환과 양산가의 유래가 깃든 곳으로 유명하다.
"사나이로서 몸을 나라에 바친 다음에야 남이 알건 모르건 마찬가지다. 어찌 구태여 이름을
구할것이냐." -김흠운-
관광지 매력
86,000평의 부지에 조성된 송호국민관광지는 관리사무소를 비롯하여 주차장, 샤워장, 취사장, 체력단련장, 어린이 놀이터, 산책로, 방갈로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을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 보다 즐겁고 쾌적한 휴식공간과 놀이공간을 제공코자 송호 물놀이장을 최신식 공법과 시설을 도입하여 건립하였다. 물놀이장에는 유아풀, 성인풀, 유수풀, 높이 2m 길이 13m의 어린이 슬라이드풀, 높이 6m 길이 43m의 청소년 및 성인용 슬라이드풀, 모래 찜질장 등의 시설을 갖추어놓고 있으며 분수대,
장미꽃 터널, 살구꽃 동산, 특산물을 형상화한 조각공원 등 송호국민관광지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많은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금강 상류의 맑은 물과 100년 이상된 송림이 어우러져 산림욕과 더불어 가족단위 및 청소년 심신수련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주변에는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는 강선대(降仙臺)와 승천하려던 용이 선녀가 목욕하는 것에 반하여 승천하지 못하고 떨어졌다는 용바위(龍岩), 만취당(晩翠堂) 박응종(朴應宗)이 말년에 후학을 가르쳤다는 녹음방초의 여의정(如意亭)이 있다.
영동군 상촌면 물한계곡과 둔전리에서 발원한 계류가 하도대리에서 합쳐져 영동군 심천면을 지나는 금강에 흘러들기까지 약 46km의 하천이 있다. ‘초강천’이라 불리는 이 하천은 상촌면과 매곡면, 황간면, 영동읍, 용산면, 심천면 등 영동군의 6개읍면에 걸쳐 흐르는데, 영동군의 최북단에 위치한 용산면을 지나면서 ‘송천’(松川)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이곳은 여름철엔 물놀이의 명소로 겨울철엔 빙벽등반 훈련의 명소이며 천연기념물 원앙이가 월동하는 생태의 보고이다.
경부고속도로 영동나들목과 연결되는 용산4거리에서 영동읍 방면으로 4.8km 지점에 이르면 동남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길이 박달산(478m)에 부딪혀 남쪽으로 급히 물길을 돌리며 굽이쳐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하천이 송천이다. 송천은 율리의 박달산과 그 주변의 크고 작은 산들의 자락을 적시며 용산면의 남서부를 관통하며 흐르는 용산면의 젓줄이면서 용산면을 대표하는 유원지로 여름철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이다.
송천유원지를 가자면, 용산사거리에서 영동읍 방면으로 길을 잡아 6.5km지점. 박달주유소가 위치한 곳에 이르면 송천의 명소에 도착한 셈이다. 이곳에서 천변을 따라 한석리로 이어진 소로로 접어들면 주유소부터 마을 초입까지 2.1km 에 걸쳐 여름휴양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가 펼쳐져 있다.
특히 남쪽으로 흐르던 송천이 주유소 부근에서 박달산을 휘감으며 북서쪽으로 급히 곡류하는데, 박달산을 마주보고 있는 돌산의 기암절벽에 부딪혀 흐르기 때문이다. 이 돌산의 기암절벽은 북쪽을 향하고 있어서 1년 중 볕드는 날이 없는데 경관도 좋아 여름에 그늘을 찾는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또 송천의 기암절벽은 겨울철 빙벽등반의 명소로 산악인들을 불러 모은다.
2007년 1월 영동군이 후원하고 영동군산악회가 주관하면서 바위벽에 인공으로 빙벽을 조성하여 안전하게 빙벽등반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시작 되었는데, 하루종일 햇볕이 들지 않아서 날씨가 비교적 푸근한 겨울철에도 이곳의 얼음은 녹지 않기 때문에 겨울철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자리 잡을 예정이다. 이 빙벽훈련장은 영동군산악회에서 관리하며 빙벽장 이용료는 없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빙벽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갖추어야 빙벽장을 이용할 수 있다.
두루미와 왜가리 같은 텃새들이 물고기 잡이 하며 살아가는 송천은 겨울철엔 진객이 찾아든다. 우리나라에 사는 텃새이면서도 인적이 드문 산중의 계류 등지에 서식하기 때문에 흔하게 볼 수 없는 새가 원앙이인데 무리지어 다니는 모습도 보기 드문 새이다. 이 새들은 대개 소수의 무리들이 겨울철 북쪽에서 추위를 피해 날아와 월동을 하는 생태적 특성을 보이는데 송천에서 월동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원앙은 세계적으로 20,000∼30,000여 마리 밖에 남아있지 않은 새일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진귀한 새이므로 천연기념물327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송천에서 이들을 만난다면 새들이 놀라지 않게 주의하여 관찰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송천에서 원앙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 모른다.
경부고속도로 영동나들목과 연결되는 용산4거리에서 영동읍 방면으로 4.8km 지점에 이르면 동남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길이 박달산(478m)에 부딪혀 남쪽으로 급히 물길을 돌리며 굽이쳐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하천이 송천이다. 송천은 율리의 박달산과 그 주변의 크고 작은 산들의 자락을 적시며 용산면의 남서부를 관통하며 흐르는 용산면의 젓줄이면서 용산면을 대표하는 유원지로 여름철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이다.
첫댓글 보는것만으로도 시원해보이네요
영동..시원한 물이 넘 좋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