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나의 오랜 꿈의 나라였다. 대학교 2학년때쯤 부터 미국으로 가게 되는 날을 손꼽았을 정도로...
왜 미국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시골 사람들이 서울로의 상경을 꿈꾸듯이 ^^;; 나에게 서울은 미국이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본능이다. 내가 있는 곳 보다 나은 곳으로의 진출..
어쩌구 저쩌구 해도 미국은 세계1위의 선진 국가고 그만큼 그곳으로 유학이나 이민을 꿈꾸는 사람이 많은 건 사실이니까.
나는 처음부터 철저히 혼자였다.
사전조사부터... 그래서 많은 시간이 걸렸고 또 어려운 점도 많았다. 막연히 미국을 가려고 준비를 하다 보니 뜻밖에 많은 것들이 문제였다.
졸업을 하고 회사를 1년 정도 다니던 나는 회사에 있는 동안 틈틈히 준비를 해야 했다. 다행히 회사를 다니는 동안 미국을 가야 하는 이유를 더 분명히 할 수 있었다. 직업의 특성상 더 많은 경험과 공부가 필요하다 는걸 느꼈으므로… 그렇다고 대뜸 돈 많이 드는 유학을, 그것도 디자인유학을 감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 일단 미국을 가보자. 그곳이 어떤 곳인지, 내가 혼자 공부나 일을 해낼 수 있는 곳인지 한번 가보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아무리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글들을 읽어도 직접 내가 해보는 것과는 많이 다를 꺼라 생각하고는, 저지르고 보는 성격 때문에 '저지르고 말았다.' 뉴욕으로 목적지를 정한 이유는 디자인을 느끼고 싶어서 였다. 큰 도시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그들의 생활을 보고 싶어서 였다. 여러 민족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문화를 느끼고 싶어서 였다. 그렇게 정하고 나니 친한 친구와 친척도 있다는 걸 생각해 냈고 덕분에 마음도 든든해 졌다.
드디어 ‘그날’이 되었고 부러움 반 서운함 반으로 날 보내던 친구들과 엄마를 뒤로하고 기약 없는 미국 으로의 여행을 떠났다. 과연 어떤 일들이 내게 일어날까 하는 생각과 상상들로 비행기 안에서의 14시간은 지루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첫인상이 조금은 허름한 JFK공항은, 잔뜩 기대를 하고 내린 내게는 조금 실망이었다. JFK공항을 빠져 나와 몇분 을 달렸을까. 고모가 "저기가 맨하탄이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숨이 탁! 막혔다. 너무나 거대한 도시였다. 밤이라 그런지 수많은 마천루들이 제각각 불을 밝히고 있었고, 엠파이어 스테잇 빌딩도 보이고, 크라이슬러 빌딩도 보였다.
'나는 뉴욕에 있는 거다....뉴욕에 있는 거다..' 너무 설레는 밤이었다.
뉴욕에서 조지워싱턴 다리를 건너면 뉴저지다. 뉴욕과는 달리 주택들이 많이 있고 조용한 도시다.
내가 살던 집은 뉴저지에 있었다. 집들마다 크리스마스 츄리를 다투어 장식해 놓았고, 알고 보니 동네에서 제일 잘한 집에 상을 수여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집들을 돌아다니며 장식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다. 며칠동안의 적응기간을 갖고 일단 영어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친구가 다니는 학교에 등록을 하기로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맨하탄에 있는 학교로 갔다.
미국에 도착이후 그렇게 떨리던 순간은 아마 처음이었을 것 같다. 영어 쓰는 사람은 전부 '외국사람' 이라는 단순무지한 고정관념 때문에 학교에 들어선 순간 '영어 배우는데 왜 이렇게 외국 애들이 많은 거야..'하는 생각을 하며 두리번거려 한국사람을 찾았던 나의 바보스러움이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미국인 선생님한테 몇 가지 테스트를 받은 후 레벨을 받았는데.. 이런~ 영어라곤 'hi~'만 겨우 말할 정도로 대화하는데 익숙하지 않는 나를 level 10 에 넣어버리다니.. 앞이 깜깜했다.
교실 문 앞에서 몇 분을 망설였는지 모른다. 들어가면 선생님이 모라고 할까, 애들이 말 시키는데 하나도 못 알아 들으면 어쩌지, 수업이 어려워 나 혼자 헤매면 어떻게 하나, 분명히 비웃을 꺼야.... 별의별 생각을 하며 몇 분을 망설이는데 맘 좋아 보이는 청소부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직접 교실 문을 열어줘 버리는 바람에 떠밀리듯 들어갔다. 키가 크고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남자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건넨 인사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Hello~"인사를 하고는 얼굴이 빨개지는걸 느꼈다. 그렇게 시작된 영어공부는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흥미를 느끼게 해주었고, 반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말하는데 자신감도 생겼다. 집으로 가면 항상 TV를 틀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쇼 프로나 드라마를 들여다 보았고 잘 때도 꿈속 너머로 들리는 TV소리를 들으며 잤다.
역시 level 10 의 아이들은 영어를 술술 잘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일본 아이는 미국에 온지 1년이 되었다며 지금 높은 건물의 유리창 닦는 일을 하는데 아주 재미있고 스릴 있다고 했다. 내가 못 알아 들으면 몇 번이고 다시 이야기 해주어서 그 애 덕분에 영어 공포감은 많이 해소되었다. 수업은 speech와 reading, writing으로 되어 있었는데 난 역시 말을 하지 않는 writing시간이 제일 좋았다. Speech반에서의 내 별명은 shy girl이었을 정도로 말이 없는 아이었는데 선생님이 하도 집중공격을 하는 바람에 오히려 반 아이들과 더 많이 친해지고 말았다. 더구나 나중에 speech선생님과 친해져서 저녁을 함께 할 정도로까지 shy의 껍질을 조금씩 부수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배울 때 선생님이 이야기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들은 척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알아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더 많으니 그것이 한국사람이 영어를 배우는데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한다. “understood?”라고 물으면, 무조건 끄덕 이다. 언젠가는 영어 강박감때문이었을까? 나에게 소리치며 쫓아오는 흑인을 따돌리고 버스에 올라타서 기사아저씨한테 도와달라고 하니 돈을 받지 않고 태워주는 꿈을 꾸었다. 물론 다 영어로 된 대본이었다. 깨어나서도 선명하게 대화들이 기억 날 정도로... 우스웠다. 누가 영어로 꿈을 꾼다고 하더니만 정말 내가 그렇게 되다니, 환경의 힘이 크도다.
이렇게 나는 언어부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적응을 해나가며 앞으로의 미국에서의 일들, 미래의 일들을 혼자 계획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