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스 통신] 1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올해는 제가 만주 선양 문광서원에서 간행한 첫 한글 복음서 누가복음이 출간된 지 140년이 되는 해입니다. 정확히 140년 전 1882년 (광서 8년) 3월 중순에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가 출판되었습니다. 저는 3월 24일 3,000부 가운데 2부를 런던 영국성서공회에 발송했습니다. (따라서 기존에 3월 24일 발간했다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나중에 그 한 부를 대한성서공회 120주년 기념으로 영국성서공회는 한국에 기증합니다. 아마 전 세계에서 단 2부가 존재하는데, 그 중 한 부는 캠브리지대학교 BFBS 도서실에, 다른 한 부는 서울 대한성서공회 도서실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대한성서공회는 그 원본을 바탕으로 거의 흡사하게 복간본을 만들어서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판매해 왔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 표지입니다.)
그래서 다음 달에 대한성서공회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공동으로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합니다. (*기조 강연 옥성득 교수) 그 기념대회를 빛내기 위해서 앞으로 10차례 정도 편지를 보내어 당시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여러 분의 공부를 위해서 숙제를 드리니, 흔히 아래와 같은 글이 한국 교회에 떠돌아 다니는데, 역사적 사실이 아닌 내용이 최소한 일곱 가지는 됩니다. 어느 부분이 팩트가 아닌지 댓글로 달아주면, 제가 바른 내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1882년 3월 만주 선양에서 존 로스 올림
---------- 존 로스는 존 매킨타이어와 함께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파송된 중국 선교사였다. 먼저 중국에 왔던 알렉산더 윌리엄슨 선교사가 있었는데, 로스는 그에게 조선에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면서 로스는 조선에 대한 마음을 간직한 채 1874년 10월, 만주의 고려문을 드나든다.
고려문은 조선과 중국이 자유롭게 물물교환을 하던 곳이었다. 존 로스 선교사는 그 곳에서 조선인들에게 한문성경을 가지고 전도했는데,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성경책을 비롯한 서양문물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럼에도 로스로부터 한문성경을 받았던 한 50대의 조선 상인이 있었다. 그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 아들이 성경을 2~3년간 읽고 공부한 후 존 매킨타이어를 찾아가 더 깊이 공부하기도 한다. 그 아들이 백홍준이다.
백홍준은 1876년, 존 로스에게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고향인 평안도 의주에 돌아가 복음을 전하려 한다. 그래서 로스가 번역한 성경을 가지고 의주에 들어가는데, 백홍준은 성경을 그대로 들이다 3개월간 감옥에 들어간 적이 있다. 이에 백홍준은 성경을 한 장씩 뜯어내어, 시장에서 산 책과 함께 묶어서 들어가 통과했다.
백홍준은 성경을 숨겨둘 장소가 마땅치 않아 태우거나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 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을 표백시킨 물을 마시는 자마다 생명을 얻게 될 것이며 성경을 태운 재를 입는 자마다 크게 성장하리라.”
그렇게 백홍준은 몰래 전도하며 의주뿐만 아니라 강계, 부성, 삭주 등 전도의 지경을 넓혀간다. 1885년에는 약 18명이 예수를 믿어 백홍준 집에서 예배를 드린다. 1887년 9월에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14명의 세례교인과 함께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를 창립할 때 백홍준은 최초의 장로로 추대되기도 한다.
1892년에는, 백홍준이 존 로스를 비롯한 외국인들과 만난 게 드러나 봉천 감옥에 들어간다. 그리고 2년 동안 옥고를 치르다 순교한다. 백홍준은 조선 최초의 개신교인이자 조선인 최초의 순교자가 된다.
---------------------- **표지 설명 광세 8년 = 광서 8년으로 1882년이다. 예수셩교 = 예수교 대신 예수성교라고 표현했다. 누가복음젼셔 = 발췌역이 아니라 누가복음 전체를 번역한 판본. 심양 = 지금의 선양 문광서원 = 글빛 활판소 겸 출판사
(출처 / Sung Deuk Oak 님의 페이스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