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말씀/ 시편 23:1-6 요절/ 시편 23:1 | 2022. 11. 20 | |
특 강 추수감사절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추수감사절은 주님께서 한해 동안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돌아보고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다윗의 감사시입니다. 다윗은 인생살이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만족과 행복이 넘쳤습니다. 원하는 것들을 다 가졌기 때문에 감사했을까요? 아니면 무엇 때문에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의 노래를 불렀을까요? 우리는 어떤 감사제목을 가지고 예배의 자리에 나왔습니까?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는 어떤 분이십니까?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 분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입니다(출34:6). 다윗은 여호와를 어떤 분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까? 나의 목자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목자는 양치는 사람, 가축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당시 근동 지방에서는 목자라는 말을 왕이나 신에게 사용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라고 불렀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축복할 때 하나님을 목자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말한 대로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목자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스라엘의 목자를 나의 목자라고 부릅니다. 이는 다윗이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고백은 다윗의 신앙고백이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고백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다윗의 관계는 목자와 양의 관계, 가장 친밀한 관계입니다.
목자의 임무는 무엇입니까? 양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고 양을 보호하고 양을 인도하는 일입니다. 여호와를 목자로 만난 시인의 삶은 어떠합니까? 그는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모든 것을 가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내게 꼭 필요한 것은 다 있다는 말입니다. 시인은 그동안 부족함이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 없을 것입니다.
왜 부족함이 없습니까? 첫째, 목자가 양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목자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는 양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양에게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목자 하나님은 양에게 먹을 것을 풍성하게 공급해 줍니다. 목자로부터 푸른 풀과 물을 공급받는 양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만족과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광야는 황량한 곳이요 사람 살만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물도 부족했고, 빵도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힘든 현실 앞에서 자주 불평했습니다. 하지만 목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물을 주셨고 빵을 주셨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고기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에 그들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부모들은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공급해 줍니다. 좋은 음식과 좋은 물이 떨어지지 않게 해 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의 부모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에게 푸른 풀을 공급해 주십니다. 푸른 풀은 싱싱한 풀입니다. 시든 풀은 맛이 없고 건강에도 좋지 못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푸른 풀과 같은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 주십니다. 또한 시원한 물과 같은 생명수를 공급해 주심으로 우리에게 쉼을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목자로 만나 그의 공급하심을 받고 있는 사람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둘째, 목자가 양을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목자의 인도하심에 대해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목자 하나님께서 시인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 다시 말해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바른 길은 생명의 길, 행복의 길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좋은 길로 인도하고자 하지만 그 길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인도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목자 하나님은 어떤 길이 가장 안전하고 옳은 길인지 알기 때문에 자기 이름을 위하여 그의 양을 의의 길로 인도합니다. 목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은 인생목적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사는 사람은 그의 영혼이 소생하게 되고 참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셋째, 목자가 양을 안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좋은 날도 있지만 힘든 날도 있습니다. 때로는 절망하기도 하고 죽음의 고통에 던져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죽음의 그늘이 가득한 곳’입니다. ‘푸른 풀밭’과 완전히 다른 곳입니다. 시인은 비록 그런 길을 다닐지라도 재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목자 하나님은 어떻게 그와 함께 하십니까? 주와 지팡이와 막대기로 함께 하십니다. ‘지팡이’는 짐승이나 적으로부터 목자와 양을 보호해 주는 도구입니다. 끝이 금속이나 못으로 되어 있습니다. ‘막대기’는 양을 인도하고 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지팡이보다 길고 나무로 만든 도구입니다. 막대기는 맨 윗부분이 활처럼 구부러져 있어서 목자는 그 막대기로 양이 곁길로 가면 뒷다리를 잡아끌고 왔습니다.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끌어올렸습니다. 목자는 양을 이렇게 안위합니다. ‘안위한다’는 말은 ‘측은히 여긴다’, ‘위로한다’는 뜻입니다. 목자가 양을 이렇게 보호함으로서 위로하니 어떤 상황에서도 양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넷째, 주님께서 그의 잔을 넘치게 하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주님은 원수가 보는 앞에서 시인에게 상을 차려 주십니다. 이 모습은 사나운 짐승 앞에서 양떼가 풀을 뜯는 모습입니다. 사방이 맹수로 둘러싸인 광야의 푸른 초장이야말로 원수의 목전에서 베풀어주신 식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상은 산해진미로 가득 찬 잔치상이요, 그 상은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기름을 그의 머리에 부으셨습니다. 당시 주인이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면 그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것은 손님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습니다. 그리고 목자는 양의 털에 기름을 발랐습니다. 그것은 파리와 같은 해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목자의 돌봄을 받는 시인은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내 잔이 넘칩니다라”라고 고백합니다.
‘잔이 넘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내 그릇과 비교하여 주신 은혜가 풍성하다’는 뜻입니다. 내 그릇은 커피 잔에 불과한데 주신 은혜는 바가지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작은 사람에 불과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쓰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목자의 풍성하고 따뜻한 사랑을 받은 양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목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한 시인은 어떤 놀라운 고백을 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인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그가 사는 날 동안 따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 거라고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산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먼저는 이 땅에서 생명과 풍성한 삶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성전으로 들어갈 수 있고 성전의 모든 예배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언제나 교제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에는 늘 평화와 안전, 생명과 행복이 넘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목자가 되시니 그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 땅을 떠난 후에도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고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목자 주님과 함께하는 삶은 얼마나 은혜롭습니까? 요한계시록 7장 16,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임이라.”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요 우리는 그의 양입니다. 양은 목자의 품에서 만족과 행복을 누립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린 아기가 엄마의 품에서 만족을 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인생살이를 하면서 많은 결핍을 느낍니다. 옛날 가난하게 살 때는 돈에 대한 목마름이 컸습니다. 지금은 그때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돈에 대해 목마르고 더 좋은 것들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부자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할까요? 돈이 우리의 목마름을 채워줄 수 없습니다.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잡으면 만족이 있을까요? 좋은 스펙이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의 결핍을 채워줄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마음 속에는 세상의 물질이나 스펙으로 채울 수 없는 근원적인 목마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 목마름입니다.
영적 목마름을 누가 채워줄 수 있습니까?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의 목자이신 여호와만이 내 목마름을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내가 영적으로 목마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영접해야 합니다.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나의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나의 영적 목마름을 채워주시고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0,11)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선한 목자는 진짜 목자, 참 목자라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목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참 목자는 오직 한 분뿐입니다. 예수님만 참 목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 대신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 때문에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못 박히시고 그 몸이 상하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 목자요 나의 참 목자입니다. 목자 예수님만이 우리의 근원적 결핍을 채울 수 있고 우리에게 참 만족과 행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죄와 죽음에서 구원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은 나의 열심으로 된 것도 아니요 착한 일을 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좋은 양이 됩니다. 좋은 양이 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좋은 양이 될 때 예수님 안에서 풍성한 꼴을 얻게 되고 생명력이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하게 됩니다. 그럴 때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께 이끌 수 있고 생명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 김한결 강찬솔 형제가 목동선서를 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복음을 믿고 구원 받고 이제는 그 이름을 위하여 살고자 결단했습니다. 캠퍼스 학우들과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목자가 되고자 하는 비전을 품고 목동으로 선서했습니다. 이들은 참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청년입니다. 가능성이 많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들이 참 목자 예수님을 따르고 배움으로서 믿음이 자라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가운데 참 목자 예수님을 닮은 작은 목자들을 많이 일으켜 주시고 성서한국 세계선교 장막터를 넓혀 주시길 기도합니다.
육이오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국 정부는 인민군에 쫓겨 진해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처음 예배할 때였습니다. 그때 나운영 교수는 시편 23편을 작곡하여 찬양했습니다. 그 곡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입니다. 찬양을 들으며 대통령과 예배자들 모두가 울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한국의 목자가 되셔서 전쟁에서 구원해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여호와는 대한민국의 목자이셨고 지금도 목자이십니다.
올해도 코로나 상황이었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계속 되고 경제가 어려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사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과 출애굽기 17장을 신년말씀으로 주시고 민수기와 누가복음 말씀을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코로나 감염자들이 계속 나오는 가운데서도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세계 각처에서 충성하신 선교사들을 많이 보내어주시고 말씀의 교제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해 주셨습니다. 오프라인 여름수양회를 3년만에 갖게 해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희망으로 넘치게 하셨습니다. 김한결 강찬솔 형제가 세례 받고 목동으로 세움 받게 하심으로 청년학생회 주역이 되게 하셨습니다. 김형수 지혜 가정에 딸 지아를, 김바울 민서 가정에 딸 슬아를 낳고 키우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수요소감모임에 여러 양들을 보내어주시고 청년리더들의 성장을 이루어주셨습니다. 학사목자들과 사모들이 새벽기도와 말씀역사를 자원하여 섬기게 하심으로 생명구원역사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동아리 홍보와 캠퍼스 전도를 통해 캠퍼스에 말씀의 씨를 뿌리고 양들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한 해 동안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시고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삶의 모든 영역을 통해서 예수님을 배우게 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데 우리를 사용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몸의 연약함 때문에 병원을 많이 다니며 많은 치료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치과 치료와 허리 통증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약도 여러 종류를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인생을 돌아볼 때 다윗과 같이 저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백하며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때마다 말씀을 주시고 코로나와 질병으로부터 보호해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춘천에서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소양강가와 공지천 길을 걸으며 춘천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참 좋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말하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가족들이 있고 양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새벽을 깨워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고 배우고 가르치며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알아가고, 인생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역사에 대해서 눈을 떠가며 늘 새로워질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내 평생에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겠습니다.
환난과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돌아보고 감사드림으로 우리의 인생에 만족과 행복이 넘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