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강 화법
석야 신웅순 시인․평론가․서예가 중부대 교수
신라 진평왕이 재위에 있을 때 당나라 태종이 홍색, 자색, 백색의 모란꽃 그림과 꽃씨 세되를 보내왔다. 진평왕은 대신들과 덕만 공주에게 아름다운 모란꽃 그림을 보여주었다. 진평왕은 대신들에게 당 태종이 그 꽃을 보내온 이유를 물었다. 대신들은 진의를 알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훗날 선덕여왕이 된 덕만 공주는 이렇게 말했다.
“이 꽃은 아름답기는 하나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
진평왕이 물었다.
“왜 이 꽃에는 향기가 없다고 생각하느냐?”
“꽃이 활짝 피었는데도 벌, 나비가 날고 있지 않습니다. 여자가 국색이면 남자들이 저절로 따르는 법인데 벌, 나비가 따르지 않으니 이 꽃은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
진평왕은 꽃씨를 대궐의 뜰에 심었다. 1년 후 모란꽃이 활짝 피었다. 과연 향기가 없었다. 그림에 없는 ‘벌과 나비’로 ‘향기 없는 모란꽃’을 말한 것이다. 시창작은 이와 같다.
신라 활리역에 지귀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지귀는 미모에 반해 선덕 여왕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사랑한 까닭에 눈물로만 세월을 보냈다. 몰골이 초췌해졌다.
어느날 여왕은 국태민안을 위해 영묘사로 행차했다. 그 말을 들은 지귀는 그 절 탑 밑에서 기다렸다. 그러다 그만 깜빡 잠이 들었다.
지귀가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선덕여왕은 잠들어 있는 청년의 가슴 위에 자신의 팔찌를 조용히 얹어놓고 환궁했다. 지귀는 잠을 깼다. 지귀에게 이 안타까운 사연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갑자기 마음에 불이 일어 그 탑을 에워싸더니 마침내는 불귀신으로 변했다. 이 불귀신이 결국 화재의 원인이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선덕여왕은 그것을 막기 위해 시를 지어 나라에 공표했다. 이 때부터 신라 풍속에 시를 대문이나 벽에 써붙여 화재를 막았다고 한다.
지귀의 가슴에 얹어놓은 팔찌로 선덕여왕의 휴머니즘을 말한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선덕여왕의 휴머니즘이다. 그러나 휴머니즘을 말하지 않고 휴머니즘 대신 팔찌로 말을 해준 것이다. 이것이 시이다.
윤석중 작 홍난파 곡 동요「낮에 나온 반달」이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 갈 때
치마끈에 딸랑딸랑 채워 줬으면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신다 버린 신짝인가요
우리 아기 아장아장 걸음 배울 때
한 짝 발에 딸각딸각 신겨 줬으면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빗다 버린 면빗인가요
우리 누나 방아 찧고 아픈 팔 쉴 때
흩은 머리 곱게 곱게 빗겨 줬으면
화자는 낮에 나온 반달을 바라보며 반달은 해님이 쓰다버린 쪽박, 신다버린 신짝, 빗다버린 면빗이라고 말했다. 사실은 그것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반달을 바라보며 쪽박, 신짝, 면빗으로 할머니에 대한 사랑, 아기에 대한 귀여움, 누나에 대한 우애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시인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대로 말을 한다면 그것은 이미 시가 아니. 하고 싶은 말은 보물처럼 숨겨놓아야 한다. 독자들이 그 보물을 찾았을 때의 희열은 누구에게도 비길 수 없다.
조선시대 시조나 그림에서 승려와 양반가 여성들의 성관계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조선시대 부녀자들은 절에 갈 수 없었다. 이런 법은 조선시대에 철저하게 지켜진 것은 아니다. 사실 법회나 불공, 기도를 드리러 간다는데 부녀자들의 사찰 출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당시 사찰 출입은 부녀자들이 집과 남성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였다. 승려와 부녀자와의 접촉은 사찰뿐만이 아니라 일반 여염집에서도 이루어졌다. 제도적으로 막는다고 해서 인간의 본능조차 억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승려와 부녀자와의 성묘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장시조(사설시조)이다.
중놈도 사람인양 하여 자고 가니 그리워라
중의 송낙 나 베고 내 족두리 중놈 베고 중의 장삼 나 덮고 내 치마란 중놈 덮고 자 다가 깨달으니 둘의 사랑이 송낙으로 하나 족두리로 하나
이튿날 하던 일 생각하니 흥글항글 하여라
중을 사람 취급 안했던 시대였다. 중과 관계한 어느 여인이 중을 보내고 지난 밤의 즐거웠던 일을 회상하는 장면이다. 함께 자는 데에는 신분 차별과 도덕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신분은 사람이 만들고 성은 신이 만든 조화이니 음양의 교합은 인간에게도 당연지사가 아닌가. 송낙은 중이 쓰는 모자이며 족두리는 부녀자들이 쓰는 모자이다. 송낙과 족두리로 중과 부녀자를 대신했다.
창 밖에 어른어른하니, “그 뉘오신고?”
“소승이 올소이다. 어제 저녁에 노시(老媤)보러 왔던 중이러니 각씨네 자는 방 족두리 벗어 거는 말곁에 이내 송낙을 걸고 가자 왔네.”
“저 중아, 걸기는 걸고 갈지라도 훗말 없이 하시소.”
어느 중놈이 지난 밤에는 늙은 시어머니와 사랑하고 오늘은 며느리를 찾아와 사랑을 청하고 있다.
노시는 ‘시어머니’를, 말은 말코지로 ‘물건을 걸기 위하여 벽 따위에 달아 두는 나무 갈고리’를 말한다.
며느리는 자신의 몸은 허락하겠지만 대신 소문이 나지 않도록 소승에게 부탁까지 하고 있다. 후자의 말수작에서 보고 싶다는 말, 사랑하고 싶다는 말 같은 언어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족두리 걸어두는 말 곁에 송낙을 걸어두는 것으로 대신했다. 직접말하지 않고 에둘러 말했다. 숨은 이야기가 그려진다.
어떻게 언어를 설계해야 숨은 그림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것이 시인들이 할 일이다. 작가들은 그리고 싶은 이야기를 깊숙이 숨겨둔다. 다른 그림으로 숨겨둔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다. 독자들은 시인이 숨겨둔 그림들을 찾아내야한다. 숨겨져야 할 그림이 바로 드러나면 직설적 표현이 되어 예술적 가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의미의 숙성을 위해 그리고 싶은 그림이나 전하고 싶은 메세지를 깊숙이 감춰두는 것이다. 그래야 감칠맛이 난다.
남녀를 송낙과 족두리로, 장삼과 치마로 대신했다. 후자의 말수작에서 그립다거나 보고 싶다는 직설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족두리 걸어두는 말 곁에 송낙을 걸어두는 것으로 말을 바꾸었을 뿐이다.
이미지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다. 그 그림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의미는 여기서부터 생겨난다.
이런 표현들은 시에서만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그림도 시처럼 그림으로 숨은 그림을 표현해야한다.
송나라 휘종 황제의 그림 이야기이다.
화가들에게 감추어진 절을 그리라고 했다. 어떤 화가는 숲 속 사이로 절 집을 희미하게 비치게 그렸고 어떤 화가는 숲 위로 절 탑이 삐쭉 솟아 있는 그림을 그렸다. 또 어떤 화가는 절은 그리지 않고 깊은 산 속 작은 오솔길로 물동이를 이고 올라가는 스님을 그려놓았다.
휘종은 그림들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 이 그림을 보아라. 내가 그리라고 한 것은 산 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 절이었 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라고 했는데, 다른 화가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절의 지붕이 나 탑을 그렸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절을 그리는 대신 물을 길으러 나온 스님을 그렸 구나. 스님이 물을 길러 나온 것을 보니, 근처에 절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산이 너무 깊어서 절이 보이지 않는 게로구나. 그가 비록 절을 그리지는 않았지만 물 을 길러 나온 스님만 보고도 가까운 곳에 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느냐? 이것 이 내가 그림에 1등을 주는 까닭이다.(정민,『한시 이야기』(보림,2002),28쪽.)
말하지 않은 스님의 물동이 그림으로 산 속의 보이지 않은 절을 그린 것이다. 이것이 시이다.
벌과 나비를 그리지 않고 향기 없는 모란꽃을 그렸고, 팔찌로 휴머니즘을 그렸다. 남녀의 사랑을 송낙과 족두리로, 보이지 않는 절을 물동이를 인 스님으로 말을 했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은 다른 말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신윤복의 「기다림」이라는 그림이다.
신윤복의 「기다림」
이미지를 포착하고 추적하는 힘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으로 여러가지 사건들을 추단해낼 수 있다. 이 여인은 송낙을 말아쥐고 담장 쪽을 연신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연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화가는 몇 가지 구체적인 상황만을 제시했다.
여인의 신발은 짚신이다. 민가 여염집 아낙일 시 분명하다. 꽃이 핀 것으로 보아 화창한 봄날이다. 봄은 모든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이다. 송낙을 말아쥔 것으로 보아 연인은 중이다. 여인 옆에는 큰 나무 하나가 서 있고 여인은 연신 뒤를 바라보고 있다. 독자는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사건의 전말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다.
이것이 시이다. 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의미 전달에 있다. 이를 위해 시인은 언어로 숨은 그림을 설계하고 독자는 시인이 설계한 숨은 그림을 찾아내야 한다.
섬뜩한 칼끝이 불의 꽃으로 핀,
온 몸이 절절 끊어 시뻘건 쇳물로 핀,
아 식어 내리 꽂히기 전
쪼개져 붉게 진다
- 김영수의 「칸나」전문
칸나꽃이 질 때 쇳물이 쪼개져 붉게 진다고 했다. 칸나꽃을 쇳물로 말했다. 얼마나 삶이 아쉽고 처절했으면 그랬을 것인가.
하나 더 감상해보자.
풀벌레 울음 소리 옥양목 가위질 같다
차가운 별빛은 물에 씻어 박은 듯
잊고 산 세상일들이 오린 듯이 또렷하다
- 서숙희의 「처서 무렵」
처서 무렵 한 때의 수채화이다. 그림은 붓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시는 언어로 그림을 그린다. 초·중장은 맑고 깨끗한 바깥 풍경이나 종장은 잊고 산 시인의 내면 세계이다. 이즈음이면 여름 내 습기찬 옷가지, 이불 홑청도 꺼내어 말려 두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내내 잊고 산 것들일 게다. 새삼 꺼내놓으니 그 때 그 기억들이 또렷하다는 것이다. 묻어두었던 습기 찬 기억들, 더더욱 아픈 기억들은 계기가 되면 또렷하게 떠오른다.
종장이 압권이다.
바위에 새긴 고전
층층이 쌓였구나
한 권쯤 슬쩍 뽑아
달빛에 읽어 보면
구운몽
팔선녀들이
까르르 나오실까.
- 김옥중의「채석강 단애」
층층히 쌓인 돌을 고전 책으로, 등불을 달빛으로, 슬쩍 뽑은 책을 구운몽으로 대신했다. 팔선녀들이 까르르 웃으며 춤이라도 출 것 같다는 것이다. 시조의 멋은 이런 것이다.
시인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거나 다른 말로 말을 하거나 한다. 상황만을 제시해줄 뿐이다. 이것이 시인의 화법이다.
2021.7, 서예문인화,132-135쪽.
[출처] 제 31 강 화법|작성자 석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