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부 가슴둘레 검사
민들레 / 대통령 후보 벽보가 / 첫사랑 / 생강나무 / 가슴둘레 검사 / 시집가던 날 그리고 / 돼지 파는 옆에서 / 돼지 돌림병 / 다시 한 판 붙자 / 해루질 / 타이거 파는 날 / 안녕, 타이거 / 흑염소를 잡으며 / 봉선화 / 복자야 / 차마 그 뚱딴지꽃 / 얼레리꼴레리 / 천장에 꽂힌 화투 / 돌아온 외팔이 / 뛸 거여 말 거여 / 적돌만에서 / 갈마리 가는 길 / 달맞이꽃 / 쥐잡기 / 유월 장마 / 동백꽃 / 옷 벗던 소년은 지금
2부 아부지 꿈
김현송 여사의 이력 / 구십삼 세 / 엄마의 밥상 / 수유리 재활병원 / 빈센트 제2병동에서 / 국립재활원 / 어머니의 한가위 / 광천 새우젓 / 아부지 꿈 / 야스다의 훈장 / 철둑길 대결
3부 취한 스승과 취한 제자
언덕길 꽃다지 / 이별의 청량리역 / 할머니 무덤가에서 / 병아리 떼 뿅뿅뿅 / 비워야 사는 거지요 / 담배 피우는 여자 / 열아홉, 나일강의 소년 누쿠 / ‘글을 낳는 집’ 고양이 / 취한 스승과 취한 제자 / 스승 김종철 / 대전역 오후 세 시 / 조치원역 해장국집에서 / 코로나 입춘 / 철도원
4부 소년공에게
동지여, 설국의 새해에 / 나목 / 각서 / 열반 / 사랑을 위하여, 둘 / 춘장대 포장마차 / 마량 포구에서 / 초로를 위로하며 / 다시 금강에서 / 소리 넷 / 그 소년은 지금 / 저무는 우금치에 서서 / 다시 살아나는 우금티 / 코로나 초가을 / 나싱개 / 목공이세요 / 간지름 나무 / 벼이삭 단풍 / 라떼는 말이야 / 소년공에게 / 버스는 떠나야 하는데 / 산수유 / 공납금 날아갔다
책 속으로
사랑방 마루에 붙은 후보 사진은 일곱 장이지만 2번 윤보선과 5번 박정희가 맞상대라고 물꼬 트던 행구 아재비가 훈수 두다가
누가 될 것 같으니? 빙철아
삽자루 찍던 어깨 너머 몰려오던 저녁놀이 땡감나무 그늘까지 냉큼 잡아먹었다 선글라스 장군 출신 그 남자가 국수라도 배불리 먹게 해줬다는 이장님 떠올리며
박정희……?
그러다가 설레설레 흔들며
저, 빙철이 아니구 병철인디유
병 처리한다구? 엿장수헌티 가그라 음하하
아재비네 그 아들 짱구 박사 쌍둥이 형제 소행이 틀림없다 찔레꽃 여린 순으로 공복 채워도 여전히 심심해지자 마루에 깡충깡충 뛰어올라 당선될 후보 입술 찢거나 라이벌 후보의 눈동자 못으로 콕콕 쑤시다가 키득키득 구슬치기에 빠져 있다
---「대통령 후보 벽보가」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이 ‘겅중겅중’ 뛰듯이 웃고 있다. 문청 시절부터 흠모했으나 여러 번의 인연에도 불구하고 낯가림이 심해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스승 김종철’이 한 말씀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망자가 된 윤 시인의 상갓집, 스승께서 새빨개진 중년의 눈동자에 호오호 불어주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강 선생의 시는 자기 이야기야”. ‘스승’은 강병철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시의 패턴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자기 이야기를 시로 쓰는 일을 자전적 시 쓰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고 자라 현재까지 경험한 이야기가 시적 대상이 되다 보니, 자기 이야기 속에는 ‘자기’가 직간접적으로 겪은 남의 이야기가 더 많이 자리하게 되기도 한다. 따라서 ‘스승 김종철’이 말한 ‘자기 이야기’란 강병철이 순간을 미학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객관적 서정보다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과 연계되는 주관적 서사에 더 치중했다는 의미를 포괄한다. 이미지 중심이냐, 인과관계로 엮인 에피소드 중심이냐가 그 기준이 된다.
자전적 시 쓰기는 할 말이 많을 때 선택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기와 독재체제기를 모조리 겪은 세대가 흔히 자기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몇 권이 넘을 거라고 자탄하는 것과는 달리 기구한 이야기 자체가 문학이 되지는 않는다. 유의미한 가치가 있는 어떤 이야기만이 문학의 범주에 들 수 있다. 한국전쟁 직후 태어나 빈곤과 독재, 5·18이라는 전대미문의 폭력과 광기, 신자유주의라는 미증유를 고루 경험하고 근래 일선에서 물러난 시인에게 유의미한 가치란 무엇일까. 강병철이 시집에서 보여주듯 순진무구했던 유년기와 이웃의 아픔을 머금은 개인사, 사건과 사고를 내포한 사회사, 역사적 진실이라는 시대성 같은 것이 아닐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로서 교사 출신의 시인은 문어체보다는 구어체를 선택하였고, 지역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사투리와 당대의 언어를 구사하였으므로, 시집은 가공하지 않은 원색의 정황과 인물들이 본모습대로의 존재성을 내뿜는 장소가 되었다. 이야기는 시간성을 갖는다. 좀 신비로운 대목인데, 시인은 필생의 업을 이미 열두 살에 예감했다. “수평선 너머 안면도 어디쯤에서(〈시인의 말〉에 의하면, ‘격렬비열도’ ? 필자) 소년의 백사장 하염없이 바라볼 미지의 누군가를 떠올렸던” 것이다.
이 시집에는 “인생의 시계추 오후 일곱 시가 막”(「다시 금강에서」) 지난 그 미지의 누군가가 다시 금강을 찾아 열두 살의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까지의 한 생이 다 들어 있다. 유소년기가 없는 성인은 없을 것이나, 유소년기가 풍요로운 성인은 없을 수도 있다. 강병철은 물론 풍요로움 쪽에 거주했지만, 그것이 물질적으로 유복하고 문화적으로 충족된 삶이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충남 서산을 중심으로 시에 등장하는 지명들을 통해 시인의 고향이 주는 정서적 부요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천수만과 금강(「다시 금강에서」), 갈마리(「갈마리 가는 길」), 적돌만(「해루질」), 안면도(「적돌만에서」), 한머리(「김현송 여사의 이력」·「다시 한 판 붙자」), 마량포구(「마량포구」), 당재골(「천장에 꽂힌 화투」), 광천(「광천 새우젓」), 춘장대(「춘장대 포장마차」) 등이 그곳이다. 여전히 여자에게 가혹하였고(「생강나무」·「봉선화」·「복자야」·「구십삼 세」·「달맞이꽃」·「유월 장마」·「언덕길 꽃다지」), 학생의 인권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으며(「가슴둘레 검사」·「옷 벗던 소년은 지금」), 키우던 개를 식용으로 팔거나(「타이거 파는 날」·「안녕, 타이거」) 흑염소를 쇠망치로 때려잡아(「흑염소를 잡으며」) 소년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더 크게는 이 모든 것을 포용한 바다마을이 소년을 성장시켜 ‘남의 이야기’에도 애정을 담아 ‘자기 이야기’로 만드는 시인이 되게 하였다.
강병철은 자신의 어머니를 포함해 여성이 겪은 부당한 생의 차별과 질곡을 그려내면서도 직접적으로 인습이나 제도를 비판하지 않는다. 시적 대상을 선악으로 가르지 않으며, 누구의 편을 들지도 않는다. 재활병원에 있는 입원 중인 어머니를 찾았을 때 ‘흑룡강 출신’의 ‘간병인’이 자신을 ‘정년퇴임 교사’가 아니라 ‘농부’로 인식할 때 “가슴이 화초처럼 밝아지는” 성정 그대로 지식인연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시 밖에서 시 안에 드러난 진실에 개입하지 않는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에도 시인이 어떤 인물에 더 마음이 얹히는지를 약간이나마 추정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시도 마찬가지이지만, 표제작이기도 한 이 시에서 강병철 시의 그러한 특징을 구별해내는 일은 퍽 흥미롭다.
세 명의 등장인물은 나름의 전형성을 가지고 있다. 태생적으로 우월한 신체 조건(‘딱 벌어진 어깨’)에, 일정한 사회적 신분(‘육군 중사 출신’)을 보유한 ‘꿩잡이 동석 씨’는 자신의 캐릭터를 즐기는 자임을 ‘병상에서도 벗지 않는’ ‘검은 라이방’으로 입증한다. 그는 누구에게 별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단지 “밸이 꼴린다”는 이유로 부지불식간에 ‘종달 씨’에게 ‘낭심’을 걷어차이고 “읍내에 입원”을 하게 된 외지인이다. ‘종달 씨’가 뒷배를 부탁한 ‘논두렁 주먹 선배 강씨 할아버지’는 왕년에 주먹을 휘두르던 인물인지 어떤지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뚝심도 있는 현지 농부다. ‘노름꾼 종달 씨’는 객기는 충만하나 힘과 뚝심은 부족하여 ‘박카스 한 통 들고’ ‘병문안’을 갔다가 “열흘 뒤에 다시 붙자”는 ‘동석 씨’의 ‘선전포고’에 전전긍긍하는 인물이다. “새벽마다 평행봉에 매달린 채 근육 만드는 중”이지만, 근육이 단기간에 생기는 게 아니므로 “닷새 남은 기간을 따지는 것”도 부질없는 노릇인 것만 같다. 이 셋 중에 누가 가장 선하고 누가 가장 악한가. 시인은 다만 관망할 뿐이다.
그러나 “리턴 매치 이제 닷새 남았다”는 ‘종달 씨’의 다짐을 통해 여전히 선수권을 가진 자는 ‘동석 씨’이고, ‘종달씨’ 자신은 힘과 기량이 부족한 도전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따라서 “다시 한 판 붙자”는 결기의 주체는 ‘동석 씨’가 아니라 ‘종달 씨’다. 이쯤에서 돌이켜보면 ‘동석 씨’는 힘이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자를, ‘종달 씨’는 그에 저항하는 자를, ‘강씨 할아버지는’ 저항에 동참하는 자를 가리키는 듯하다. 시인도 “새벽마다 평행봉에 매달리는” ‘종달 씨’에 무언의 응원을 보탠 것은 아닐까. ‘검은 라이방’이 묘하게 옛 독재자와 겹쳐지면서 새로운 시 읽기가 시작되는 지점도 이 시의 미덕 중 하나다.
시인의 말
서해안 바닷가에서 유년을 보냈다. 떡갈나무 언덕을 넘자마자 푸른 물결과 개펄이 번갈아 나타나던 그 자리이다. 새우젓 배 타는 어부들은 드물었고 대부분 고샅에 허리 굽힌 채 농사를 짓던 그 마을이다. 나는 백사장에서 씨름판 벌이던 벗들이 오구르르 떠나면 혼자 남아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저물녘까지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건너편 격렬비열도 어디쯤에서 맞은편 소년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동자를 떠올리곤 했다.
6학년 어느 초가을, 아버지가 나를 부르더니 서울행 완행버스에 몸을 밀었다. 그 후 청파동 후미진 골목에서 셋방 사는 서울 유학생으로 변신하면서 모든 시스템이 바뀌어버렸다, 야간 중학교에 다니면서 강박증이 더욱 깊어졌다. 배가 고팠다. 연탄불이 꺼지면 무조건 굶었고 올빼미 수업이 끝나면 종로구 수송동에서 용산구 원효로까지 도시의 밤길을 걸었다. 3년 동안 키가 딱 7센티만 크는 더딘 사춘기에 날마다 적돌만 저녁노을을 떠올린 것 같다.
그 아스라한 사연들을 정리한 것이다. 공납금이 없어서 중학교에 못 가던 벗들, 노름판에서 논문서 날린 아버지들, 밤바다 해루질에서 귀신 흉내 내던 형님들, 저수지에 뛰어들고도 오래도록 아리랑 사진관 통유리 너머 화사하게 웃던 누이의 얼굴까지 모두 신산의 스토리이다. 그 유년을 떠올리면 지금도 심장에서 경운기 엔진소리가 쿵, 쿵, 쿵 들리는 것 같다.
그 후 열한 명의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세월의 빛의 속도이다. 한때 열혈 청년으로 아스팔트 한복판에 서서 깃발을 올리기도 했으나 시나브로 등이 굽고 잇몸이 무너졌다. 어느새 인생의 시계추로 밤 아홉 시 언저리이니 이제 곧 배추 뿌리 뽑아낸 자리마다 억새꽃 하얗게 날리는 계절이 오리라. 그 와중에 글을 쓰는 시간이 자존을 높이는 도정이었다. 지난봄, 담양 ‘글을 낳는 집’ 앞에서 벚꽃 사태만 바라보다가 남해안 진도 ‘시에 그린’ 앞바다로 옮겨 조개잡이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은 강원도 횡성의 ‘예버덩’ 푸른 벌판에 망망 몰입되는 중이다. ‘이렇게 태평하게 살아도 과연 괜찮은 것일까?’ 그런 자책감을 무릅쓰고 시집 『다시 한 판 붙자』를 세상에 선보인다. 나의 언어들이 숲속의 나무보다 따뜻한 평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