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3일 ~10월 5일
첫째날 10월 3일 금요일 동인천역 ㅡ김포시
둘째날 10월 4일 토요일 김포시 ㅡ 파주시
세째날 10월 5일 일요일 파주시 ㅡ 파주 임진각
추석이 지나가고 10월로 들어 섰다.
먼저 밤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더니 낮에도 그늘로 들어서면 흠칫 놀랄 정도로 서늘해졌다.
가까운 산 속에서는 옻나무와 산 벚꽃나무와 싸리나무와 도토리 나무와
이름을 알지 못한 온갖 나뭇잎들과 풀잎들이
주황색으로, 빨간색으로, 노랑색으로 단풍이 들기 시작하여
바야흐로 산 속에 불이 환하게 켜진듯 하기도 하고
온갖 나무가 제철 만나서 화려하게 꽃으로 피어 난듯도 하였다.
동네마다 길가녘 코스모스는 차가 지나갈 때마다 일으키는 바람에
한껏 아름답게 흔들리던 분홍 꽃잎이 지고 난 뒤로
까아만 꽃씨가 뾰족하게 날을 세우며 여물어가고 있었다.
들깨 밭의 들깨 잎도 노랗게 변해가면서 대기 중으로 들깨 향기가 퍼져 나가고,
콩밭의 콩잎도 노랗게 물들면서 콩 꼬투리가 단단하게 여물어 가고,
벼가 익어가는 들판은 나날이 짙은 황금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서해안 860km의 해안선을 따라서 걷는 길의 마지막 구간 ,
동인천 역에서 출발하여 아시안 경기가 열리고 있는 인천 경기장을 지나고
김포를 지나고 일산 대교를 건너서 파주쪽으로 자유로를 따라서 걸어서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파주 임진각에 이르게 된다.
홍천에서 6시 첫차를 타고 동서울 터미널에서 내린 당신과 나는
숨이 차게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지하철 계단을 뛰어 올라서
방금 역으로 들어와 닿아서 문이 열리고 있는 지하철에 뛰어 들었다.
두 개 남은 의자에 앉아서 배낭을 벗어서 발 아래 놓고 숨을 돌리고 생각하니,
횡단보도 신호도 딱 맞게 떨어졌고,
지하철도 딱 맞게 들어 와서 기다리지 않고 탔고,
앉아서 갈 수있는 의자가 두 개 딱 있었고,
그래서 오늘은 어쩐지 재수가 있을 것같은 예감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강변 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가다가
동인천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갈아 타기 위해 신도림 역에서 내렸다.
동인천 역,
급행 열차의 종점이라 차안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 섰다.
열차 문이 열리고 플랫홈으로 내려섰다.
우리가 탄 열차의 다른 칸에서 탔다가 내리는
언제나 두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사이 좋은 황금 부부님과
우리가 가야할 길의 공지를 하고 숙식을 예약하고 지도를 마련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수고를 하는 든든한 부메랑님과
광주에서 심야를 타고 왔다고 형수님하고 약간 콧소리를 내면서 반가워하는,
길을 가다가 사라졌는가 걱정을 하고 찾아보면 벌써 그날의 마침점에 앞서가서 기다리고 있는,
걸어다니는 네비게이션 분도님을 만났다.
지하철 1호선 인천행 급행 열차를 타고 동인천 역에 내려서 1번출구로 나와서
지하 상가로 들어갔다가 만나는 장소인 4번 출구로 가는
길을 물어 보니 손가락으로 이리 저리 가리키며 복잡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알록달록 꽃무늬의 들고 다니는 가방, 한줄로 어깨에 메고 다니는 가방,
끌고 다니는 핸드 캐리어등을 파는 가방가게 아저씨가
긴 막대기를 들고 상품을 높이 걸어 진열하고 있는 가방가게,
옻칠을 한 둥글고 네모나고 크고 작은 상들을 쌓아 놓은 상가게,
온갖 화려한 무늬의 바지와 티샤스를 파는 양품점,
떡볶기와 오뎅과 라면을 파는 분식집,
조금 어수선한 이러 저러한 가게들이 모여 있는 재래 시장 골목 비슷한 곳을 돌아 나가서
시내 버스가 다니는 큰 길을 만나는 곳에 4번출구가 있었다.
미로 찾기를 하듯이 헤매면서 4번출구의 북쪽 광장으로 나왔다.
동인천 역의 북쪽 광장.
어느 산에 등산을 가세요? 역으로 들어가던 사람들이 궁금했는지 물어 보았다.
산에 가는 것이 아니구요 국토종주를 한답니다.
이주일 전 동인천 역에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친구들.
반갑고 벅찼다.
마지막 구간의 깃발 시골애님이 가져온 빵 주머니는
하루 종일 먹어도 남을 정도로 빵이 하나 가득이었다.
시골애님 말씀 마따나 밤늦도록 코로아상, 컵케잌, 모닝빵, 단팥빵 같은 빵을
길동무들에게 한 봉지씩 나누어 줄 수있게 비닐 주머니에 종류별로 담아 넣은 그 정성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아침 출발 시간에 닿게 나오느라 거른 아침 식사로 충분하였다.
거기다가 2년전 지리산 여름 장기도보 이후로 정말 오랫만에 만나는 멋진 엄마님의
씹히는 맛이 그만인 잣이나 호도와 밤을 넣은 네모나고 거무스럼한 찰떡과
거기에 곁들인 김이 나는 따뜻한 생강차는
먼길을 급히 오느라고 숨이 찬 우리에게 잠시 숨돌릴 여유를 주었다.
릴레이도보 플랭카드를 펼쳐놓고 사진을 찍기위해 나란히 늘어선 우리들,
손목에 카메라를 다섯개나 걸고
하나씩 하나씩 카메라를 바꿔가며 똑같은 사진을 찍는 부메랑님,
건너편 아파트 창문이 불타는듯 해가 비쳐 보이는 눈 부신 시간에 사진을 찍으면서
내 마음은 졸업식 날처럼 뿌듯하고 자랑스럽게 설레였다.
해수야 놀자 라는 좀 웃기는 간판의 찜질방과 헬스가 있는 길 맞은 편
인도의 가드레일에 기대어 앉아서 다리 쉼을 하였다.
더러는 누워서 쉬기도 하고 ,
배낭을 뒤져서 사과를 꺼내서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주기도 했다.
갑자기 저쪽에서 연두색 웃옷을 입은 경찰들의 호르라기 부는 소리가 들렸다.
자리를 펴고 앉아서 물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쉬다가
마라톤이 온다는 바람에 모두들 일어나서 우루루 뛰어 갔다.
마라톤을 뛰고 있는 선수들이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케냐에서 용병으로 사온 아시아 어느 나라의 선수들이 대여섯명 선두 그룹을 이루며 달려 오고
선도 차량과 방송국 중계차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나갔다.
그들이 가고 난 뒤로 한참 뒤에 한두명의 선수가 달려 지나가고
또 한참 뒤에 대여섯명의 선수가 슬로우 비디오처럼 지나갔다.
보스턴 마라톤이나 동아 마라톤같은 큰 대회의 중계를 텔레비젼으로 중계 할때 보았던
구름같이 뛰어 나오는 수많은 선수들이 열기 넘치는 마라톤의 모습을 기대했었는데,
뛰는 선수들이 몇명 안되어서 그런지 우리나라 선수가 없는 탓인지
손뼉을 쳐서 응원을 하는 것이 약간은 김이 빠진듯 싱거웠다.
사람들은 스마트 폰과 카메라로 선수들을 찍고 박수로 격려를 하였고,
그 와중에서도 우리는 재빨리 릴레이 플랭카드를 펼쳐들고
우리의 응원하는 모습의 사진을 찍었다.
파장을 연상시키는 한가한 아시아 경기장 앞에서 평상에 배낭을 올려 놓고 한참을 쉬고,
중봉대로를 지나고 인중로와 만나는 견지로를 지나고,
차가 끊임없이 오가는 차로와 벽으로 완전히 차단된 신원 터널을 기분 좋게 지나고 ,
공항 철도의 철로가 검암역을 향하여 곧장 뻗어 있는 것을 바라보고,
인천 공항 톨게이트에 차들이 멈추어 서 있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다리 위에서 아라뱃길의 물길을 헤치며 내려 오는 하얀 유람선을 구경하고,
나주 곰탕집에서 맛있는 곰탕을 먹고,
강화와 검단으로 가는 길을 왼쪽에 두고 우리는 김포를 향하여 걸었다.
길옆 우거진 잡초밭에서 우리의 특별한 기억속에 있는 자리공이
씩씩하게 자라서 포도 송이처럼 보랏빛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김포를 떠나 파주로 향하였다.
이산포에서 김포와 일산을 잇는 임진강 위에 놓인 일산대교 긴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시골애님은 인터체인지가 이리저리 갈라지는 복잡한 길속에서
우리가 걸어서 건널수 있는 인도를 용케도 찾아 내어
앞장을 서서 파주 출판단지가 있는 길로 들어 섰다.
문산과 통일 동산,임진각의 길 표지를 바라보며,
자유로와 나란히 가는 오른쪽 아래로 난 2차선 도로를 따라서 걸었다.
평화 누리길을 따라서 걸어 갔다.
젊음의 상징처럼 간편하고 프로다운 차림새로
자전거를 타고 마주쳐 지나가는 자전거꾼들이 아주 많았다.
한낮의 햇살은 뜨거웠지만 하얗게 피어있는 갈대사이로 지나가다가
내 머리칼을 날리는 바람은 그럴수없이 싱그러웠다.
참 걷기 좋은 가을 날이었다.
철조망이 높게 쳐진 송하교 다리를 건너서 황금빛 벼가 출렁거리는 논길을 걸어 갔다.
논에는 농약 때문인지 메뚜기는 보이지 않았고, 벼보다 웃자란 피가 많았다.
파주 아울렛으로 들어가는 차들이 꼬리를 물고 주춤거리는 법흥리 입구를 지나서
장준하 공원을 지나서
축구 국가 대표팀 트레이닝 센터를 지나서
오두산 전망대를 지나서
돼지 갈비, 한우 불고기를 파는 음식점과
영어마을과
까맣게 번쩍거리는 모텔이 있는 헤이리를 지나서
빨간 영국의 이층차를 찻집으로 전시해놓은 공터에서 조금 쉬었다가
프로방스 마을을 지나서 걸어 갔다.
금산리 , 금송 사거리, 동오리, 내포리, 황희정승의 반구정, 사목리를 따라서
평화 누리길을 걸어 갔다.
아파트 옆 빙돌아 내려가는 미끄럼이 있는 놀이터를 지나가기도 하고,
동그랗고 작은 산밤이 머리위로 아프게 툭 떨어져서 깜작 놀래키기도 하는
낮은 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바알갛게 익어가는 대추나무의 주렁주렁 달린 대추를 올려다보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려 잃어버려서 다시 찾으러 되돌아 가기도 하고,
인도가 없는 2차선 찻길을 걷기도 했다.
2년전 2012년 가을에 휴전선 따라서
서쪽 임진각에서 동쪽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걷기 시작하던 날
서울 서부역에서 경의선을 타고서 내렸던 추억 속의 임진각 역을 지나갔다.
아마추어 마라토너 들이 지친 듯이 발을 끌며 걷듯이 뛰어들어오는
평화 통일 마라톤의 결승선 뒤로
임진각의 하얀 기둥이 우리의 눈앞에 나타났다.
.임진각 !
드디어 우리의 서해안을 따라서 목포에서 떼기 시작한 첫걸음 이후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이어온 서해안 길의 마침점 임진각이 우리의 눈 앞에 나타났다.
지금 이 순간 ,
임진각에서 우리의 서해안 따라서 걷는 대 장정이 끝나는 순간에
나는 감격적인 그 아무 말도 생 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다 읽은 책을 덮고 오래동안 바라보고 앉아있듯이
서해안의 길고도 길게 이어진 그길을 내 마음을 다해 조용히 싸 안았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순레자 되어 34일을 걸어서 까미노를 마치던 날,
산티아고 대 성당 마당에서 미친년처럼 머리풀며 울부짖으며 뛰어다닐 것 같던
길을 걸으면서 기대 했던 그 벅찬 감동이,
막상 그곳에 다다라서는
대 성당 광장의 먼지가 되고 바람이 되어 가벼이 날아가 버리고
형체 없이 공 (空)으로 남았던 나를 깨달았던 날이 생각났다.
겨울, 봄, 여름, 그리고 가을.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 날들 사이에서
서해안의 해안선을 따라서 걸어 온 길과
그 길을 걸어온 날들이 내 의식 속에서 뚜렷하게 솟아 올랐다.
구석골에서 밤에 현관 문을 열고 별을 보러 나가면
저 멀리 가로등이 켜진 큰 길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솟아 올라 보이는 것 처럼
내가 지나온 곳의 동네 이름들이 하나씩 가로등이 되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첫댓글 아!
장하십니다
멋지십니다
연약한 여인의 몸으로
온 나라
내조국 이 사랑스러운 나라를
걸으며 눈속에 마음속메 다 담으십니다그려ᆢ
작은 영종백운산을 올랐다 오는 날은
천하를 얻은듯이 통쾌하기 짝이없는데ᆢ
두 분은 참으로 겸허하십니다♥
기립박수를 홍천으로 올려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