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釋迦牟尼, Sakyamuni)
본명은 Gautama Siddhartha.
인도 코살라 왕국 샤키아 공화국 카필라바스투 인도 마가다 왕국 말라 공화국 쿠시나라.
BC 6~4세기경에 활동한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라 칭할 때, 석가(釋迦)는
북인도에 살고 있던 샤키아(Sakya)라 불리는 한 부족의 총칭이며,
모니(牟尼)는 성자를 의미하는 무니(muni)의 음사이다.
따라서 석가모니는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의미이다.
이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그가 세상의 진리를 깨달아 성자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며,
같은 취지에서 세존(世尊:또는 釋尊)으로도 불리는 등 많은 호칭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것이 '붓다'인데,
중국에서는 이를 음사하여 '불타'(佛陀)라 하고,
더 약칭하여 '불'(佛)이라고도 부른다. 불교 특유의 용어로서 붓다는 '깨달은 자'를 뜻하며,
교리의 전개 과정에서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구제자로서
다수의 붓다를 상정하여 소위 '부처'로 통용된다.
남방불교에서는 '고타마 붓다'라고 부르는데,
고타마(Gotama:산스크리트로는 Gautama)는 석가모니의 성이다.
일부의 경전에서는 BC 1~AD 2세기 무렵
서북인도에 침입하여 인도에서 널리 사용된 사카력(曆)을 만들어낸 사카(Saka)족도
석가로 쓰는 예가 있으므로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시대적 배경>
BC 1500년경 서북인도의 펀자브 지방에 침입한 아리안족은
서서히 동남으로 이주하여 갠지스 강 상류에 정착했고,
BC 9세기 무렵까지 베다 문화를 형성했다.
이후 다시 동쪽의 중류 지방으로 이주하여 원주민과의 혼혈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그 사회의 구성과 문화에는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브라만교의 전통적인 습속이나 의례를 지키는 기풍이 약화되고 새로운 사고가 양성되어
BC 6세기 무렵에는 새 계급이 출현했다.
비옥한 갠지스 강 유역에서 산출되는 농산물 등의 물자가 풍부해짐에 따라
점차 상공업이 성행하게 되어 다수의 소도시가 성립하고 있었다.
도시의 출현은 종래의 부족적 계급제도를 무너뜨렸고,
이와 동시에 소도시를 중심으로 점차 군소국가가 구성되어 귀족정치나 공화제적 정치가 실행되었으며,
이런 국가들은 이윽고 국왕이 통치하는 대국으로 병합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도시의 발전은 화폐의 유통을 성행하게 했으며,
상공업자들은 각기 조합을 구성하여 도시의 경제적 실권을 장악해 가고 있었다.
이처럼 경제적 지위의 향상과 더불어
종래의 고정적 사상이나 종교에 만족할 수 없었던 토착부족이나 혼혈화된 새로운 부족의 지위도 향상되었고,
이에 따라 자유로운 사상을 품은 사람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특히 갠지스 강 중류의 마가다와 코살라라는 두 대국을 중심으로 많은 사상가들이 배출되었다.
이들 혁신적인 자유사상가들은 사문(沙門:노력하는 사람)이라 불렸다.
이들은 보통 6사외도(六師外道)로 분류되는데,
그중에도 자이나교의 개조인 니간타 나타푸타,
유물론자인 아지타,
회의론자 또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인 산자야,
도덕부정론자인 푸라나,
결정론자인 마칼리 등이 특히 잘 알려져 있었다.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도 그런 사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탄생>
석가족이 거주하던 지역은
네팔과 인도의 국경 부근에 있는 한 지방인데,
현재의 지명으로는 우타르프라데시의 북방이다.
북으로는 히말라야 산맥,
남으로는 갠지스 강으로 유입하는 많은 지류가 있어서
풍부한 물을 이용한 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농업국이었으며,
일종의 공화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다만 남쪽의 대국인 코살라국에 인접한 탓으로
주권은 코살라국에 종속되었지만, 자치권은 인정되고 있었다.
그런 석가족의 우두머리인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이 석가모니의 아버지였고,
어머니는 마야(Maya)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정반왕이라는 호칭에서 나타나듯이
석가족 집단의 우두머리는 라자(raja:왕)라고 불렸지만,
이는 통치자를 의미하는 군주의 칭호가 아니라
단순히 행정상의 수장(首長)이라는 직권을 의미하고 있었다.
석가모니는 BC 6세기 혹은 BC 5세기에 석가족의 수도인 카필라바스투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출생연도에 대해서는 약 100년의 시차로 견해가 갈리는 많은 이설(異說)이 있고,
특히 남방의 불교도는 BC 624년에 태어난 것으로 믿고 있다.
석가모니의 탄생은 태몽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머니 마야 부인은 석가모니를 낳기 전 아름답고 은처럼 하얀 코끼리가
그녀의 옆구리를 통해서 자궁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왕비와 수행원은 카필라바스투를 떠나 데바다하에 있는 친정으로 가던 중에
두 도시의 주민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던 룸비니(Lumbini)라는 동산에서 석가모니를 낳게 된다.
전설에 의하면
부인이 살라나무에 오른쪽 팔을 올려 가지를 붙잡았을 때,
그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석가모니가 탄생했다고 한다.
석가족의 토템인 살라나무 숲은
룸비니라는 지모신(地母神)을 받드는 곳이었으므로 출산의 장소로는 적격이었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는 것은
왕족 계급인 크샤트리아가 신의 양팔로부터 발생했다는 〈리그베다 Rigveda〉 이래의 전승과 관련되어,
석가모니가 크샤트리아 계급의 출신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석가모니와 같은 종교적 위인은 보통의 방식으로는 태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또 인도에서는 오른쪽을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전설이 성립했다고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