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오 2 - 라쿠엔(樂園) 을 나와 케이슈엔을 거쳐 다케오 온천에 가다!
11월 10일 사가에서 기차로 사세보를 거쳐서 조선 도공이 일군 도자기 마을인 아리타 를
구경하고는 기차를 타고 오후 4시경에 다케오( 武雄 무웅) 에 도착해 인포에서 지도를
얻은 다음 무료 셔틀버스 를 타고 미후네야마 라쿠엔 御船山 樂園 (어선산 낙원) 을 봅니다.
원래 계획으로는 제주 올레 를 본뜬 다케오 온천 올레 코스 를 걷자면 시와이와
운동공원 白岩 運動公園 쪽으로 올라가서 대나무 숲과 야노우라 고분을 거쳐...
미후네야마 御船山 남쪽으로 하산해 기묘지 貴明寺(귀명사)를 보고 저수지 池の內池 를 지나
다케오 진자 武雄 神社 에서 3천년된 녹나무 를 보는 것이었으나.... 우린 무료
셔틀 버스를 타고 하산하는 곳인 라쿠엔 으로 왔으니 올레 코스 는 구경도 못하고 말았네요?
그래도 서운하니 바로 셔틀 버스를 타지는 않고 몇백미터를 걸어내려오다가 케이슈엔 에
도착하는데 여기 케이슈엔 慧洲園(혜주원) 은 다케오정에 있는 3천평 일본정원
으로 영산홍과 철쭉 외에도 차밭 과 계곡에 단풍나무 등을 멋들어지게 조성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유지 로 센추리 호텔 의 정원인데 미술관 겸용 티켓은 1,500엔 이라지만.....
시간이 늦어 입장하지는 못하고 안쪽을 기웃거려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매주 화요일 을 "한자 火(화) 가 꽃 花(화)" 와 통한다고 보았는지
"꽃사는 날" 로 정해놓았고... 1월의 꽃은 심비디움, 2월은 프리지어 그리고 11월
에는 시클라멘 꽃 등으로 정한 것은 마치 "가을을 독서의 계절" 로 정한 것과 마찬가지라?
가을 이 1년 중에서도 가장 책을 읽지 않는 계절 이라 독서의 계절 로 정했듯이
한때 1조원을 넘던 꽃 소비액 은 요 근래에는 8천억원 대로 떨어졌으며.....
1인당 꽃 소비액 은 2005년 2만원 에서 2017년에는 연간 1만 3천원 으로 감소했으니...
일본인들은 7만원이고, 노르웨이 16만원, 스위스 15만원에 비하면 불과 "10분지 1"
이라? OECD 37개국 에서 한국은 독서율이 꼴찌 인데 꽃 구입 까지 저러니 난감합니다!
그나마 꽃은 대부분이 결혼식이나, 장례식, 졸업식과 어버이날 에 소비되고 선물용
으로 인기 있는 난초도 80% 이상이 중국산 이라는데 조선시대 선비들은
매화, 난초, 국화 를 즐겨 그렸고 열하일기 저자 연암 박지원 은 시조를 남겼으니...
“어제 내린 비에 살구꽃은 졌으나
복사꽃은 아직 고우니
조물주가 사사롭게 어느 한쪽을 좋아하는 것일까? ”
오늘날 외국에서는 "꽃 선물" 이 빈번하니 3월 8일 여성의 날에는 노란 미모사 를
주고 4월 23일 장미 축제 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장미꽃을 선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린 젊은 연인 끼리 주고 받는다는게 초콜릿 이며 사탕 아니면 빼빼로 라?
꽃으로 바꿀수 있으면 좋으련만.... 케아슈엔 은 사시사철
꽃이 핀다고 들었건만... 오늘은 늦가을이라 꽃보다는 단풍나무 만 엿보고 가네요?
미후네야마 라쿠엔 으로 되돌아와 무료 셔틀 버스 를 타고는 다케오역
앞에 내려 다시 걸어서는 반대편으로 다케오 온천 을 찾아갑니다.
주택가를 가로질러 산쪽으로 걸으니 나가마스와 탕원장등 온천 호텔 이 몇
보이고..... 그 뒷편으로 빨강색 문 이 보이는 건물이 다케오 온천 입니다.
다케오 온센 武雄 溫泉(무웅온천) 은 1,200년의 역사 를 자랑하는 온천으로
주홍빛의 樓門(누문) 을 들어서면 바로 공중 목욕탕 으로 제주올레
에서 로열티 를 주고 수입했다는 그 규슈올레 다케오 코스의 도착점 입니다.
여기 다케오 온천에는 나베시마 번주 전용인 별채 토노사마유 殿樣湯(전양탕)
가 유명하며 신공황후가 온천 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고 합니다.
바다속 용궁 을 상징하는 선명한 주홍빛 루문 을 지나 산으로 향하는 언덕에
불상이 도열해 있다는 계단을 찾아 두리번 거리는데..... 그런데 저
다케오 온천의 문루는 나에게는 마치 개선문 이나 서울의 독립문 처럼 보입니다.
1896년 7월 서재필, 이상재, 이승만, 윤치호와 친러파 관료인 이완용, 안경수가 창립한
독립협회 는 청일전쟁후 조선이 부모의 나라 중국 사신 을 영접하던 영은문 을 헐고
독립문 을 지었는데 1910년 이후 조선 총독부는 헐지않고 "고적으로 지정해" 보호했습니다!
독립문 은 서재필 이 발의하고 1년전에 생긴 독립협회 가 나서 1897년 11월에
세웠는데..... 당시 독립협회 초대 위원장 으로 뽑힌 "이완용" 은
독립문 건립 자금으로 쌀 20가마에 해당하는 거금 100원 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獨立門(독립문)”이라는 현판 글씨 도 독립협회 초대 위원장이던 당대의 명필 "이완용"
이 썼다는데, 이때만 해도 친일파 가 아니고 "친러파" 였지요? 그는 원래 친미파였다가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이겨 얻은 요동을 3국간섭으로 토해놓는 것을 보고 친러파 가 됩니다!
조선에 자주독립파는 찾아 볼수 없었으니 명성황후는 친청파이고 1882년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등은 친일파 이며 친미파에서 변한 이완용과 이범진등은 친러파
인데 독립협회가 1898년 3월 대중집회인 만민공동회를 열고 자주독립 을 주장하자 고종은
해산령을 내리고 황국협회는 보부상 수천명을 동원해 테러 를 가하니 12월 25일 해산 됩니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고종은 1896년 2월 11일 새벽에 엄상궁 가마 뒷쪽에 끼여
타고는... 러시아 공사관 으로 도피해 숨어있던 俄館播遷(아관파천) 와중인 1896년
11월 친러파 정권 에서 독립문의 초석을 놓는 정초식 에 수천명의 조선인들이 운집했습니다.
당시 독립협회 위원장 으로 후일의 매국노 이완용 은 “독립을 하면 미국 처럼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요, 조선 인민이 합심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면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로 세조각 난 폴란드 꼴 이 될것 이라고
사자후를 토했으니 을사 5적 으로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것은 9년후의 일 이라!
다케오 온천 윗쪽에 자리한 코후쿠지 Koufukuji 廣福寺(광복사) 경내 정원에는
가을 단풍이 절경 이라는데..... 멀리 가마쿠라 시대 에 창건된
절로 사천왕상을 보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지만 날이 어두워졌으니 어쩌랴?.
단념하고는 걸어서 다케오 온천역 에 이르러 기차를 타고 사가역 에 도착해서는 우리 호텔
도요코 인 바로 앞에 있는 이자까야 와라와라 (笑笑 소소) 에서 맥주 를 마십니다.
이자까야 (居酒屋 거주옥) 에서 나오다가 보니 옷에 술 안주 를 조금 흘렸는데.....
어두운데도 용케 마눌이 알아보고 옷을 빨아야 하니 호텔에 가면 바로 벗으랍니다.
한상복 씨는 동아일보 신문 칼럼에서 대부분의 여자들이 싫어하는 것 이 세가지가
있으니.... “촌스러운 것, 못생긴 것에다가 더러운 것”이라고 했던가요?
내가 보기에는 그냥 지나칠 정도로 별 표시가 나지 않는데도.... 마눌이 이토록 성화
인 것은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은 칠칠치 못하다는 뜻" 으로 받아 들이는 걸까요?
밤에 호텔방 텔레비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정명훈 이 지휘하는 음악회 를 봅니다.
그러고는 다른 채널에서 한국 드라마 를 보는데 2003년 겨울연가의 용사마와 지우희메
가 한류(韓流) 를 일으킨 이래 장금이 이영애, 동방신기, 빅뱅, JYJ,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2PM, 이병헌, 장동건, 원빈에 티아라등.... 2012년 MB 의 독도방문과
일왕사과 발언으로 침체 되었다가 최근에 트와이스와 BTS 활약으로 한류는 되살아 났네요?
그런데 별안간 의문이 드는게 일본에서는 몇십년전 부터 김연자와 이미자, 조용필에서 부터
배용준과 동방신기를 거쳐 현재 까지 한국 연예인이 수백명은 활동 하고 있습니다!
전직 총리 부인 에 이어 현직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 등 열렬한 한류팬 들이 많지요?
현직 총리의 부인인 두 여사는 한국 연속극 을 잘 이해하기 위해 한국말 을 배우고 황실
까지 참여시켜 김치 담그는 행사를 벌이며 또 인도네시아 APEC 회의 에서는
아키에 여사는 먼저 박근혜 대통령에게 다가와 한국말로 다정한 인사 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한국 TV 에서는 일본 연속극이나 일본어 노래 가 거의 보이지
않고..... 한국에서 활약하는 일본 연예인 들은
초난강과 사유리 등 일본에 비해 그 100분지 1 이나 될른지 모르겠네요?
황규인 씨가 쓴 칼럼에는“사유리” 라고 부르는 35살 후지타 사유리는
KBS 미녀들의 수다 로 데뷔했을 때 “개고기가 해장에 좋다”
라며 망가지는 등 솔직하고 엉뚱한 매력으 로 인기를 끌었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햄스터와 비둘기를 친구 로 삼아 학창 시절 을 보냈다고 회상할 만큼
이지메(왕따) 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자꾸 안으로만 갇혀 살았답니다.
어느날“내가 뭔데?”하는 질문이 떠올라 스님들 화두 처럼 붙잡고 늘어진 결과 남과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볼수 있게 된 자신을 사랑 하게 되었다는데 그녀는 자신의 트위터
에 새로운 명품 가방을 메는 여자는 자신을 과시하려는 여자 라고 말하는 이를 보고는....
저런 표현은 곧 "도덕적인 말속에서 자신의 울분을 풀려고" 하는 것을 읽고는...
"나는 매일 1만 5천원짜리 가방을 메고 다니지만 남의 가방에 대해
뭐라고 말할만큼 몰락하지 않았다" 고 생각했답니다?“돈잃고 거지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선물 받을려고 생각 하는 '정신 거지' 가 제일 부끄럽다”
“한국 친구가 내 인생을 맡길수 있는 사람 과 만나고 싶다” 는 얘기를 듣고는 내 인생은
내 스스로에게 맡겨야 내인생에 대한 피해자와 가해자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남자가 가장 멋있어 보일때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사줄 때가
아니라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에게 '친절한 모습' 을 보일때 이고
고급 외제차를 타고 있을때가 아니라... 끼어드는 차에게 양보해줄 때 이다”
사유리는 2008년 위안부 할머니들이 사는 나눔의 집 을 방문해 100만원 을 기탁
하면서.....“일본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끄러움 을 느낀다. 우리가
최고다 라고 외치는 사람 보다는 창피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애국자 이다”
2012년에는 광고 출연료 3천만원 전액을 나눔의 집에 기부 했다고 하니.... 일본에서
활동하는 수백명 우리 연예인들도 "일본에 기부문화" 를 심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런데 신문에 보니 저런 돈 88억원이 할머니들에게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재단에서
장래에 유료 양로원 을 만들기 위해 땅 사고 건물짓는데 쓰였다고 하니 말문이 막힙니다!
첫댓글 요즘 다녀오신거는 아니지요. 다케오온천은 규슈 1호 올레길이라고 해서 한번 가보고 싶던 곳인데, 이곳 저곳 다 가고싶기만 하니 카페에 와서 대리만족 합니다. 일본역사는 언제 공부 하셔서 이리 박식하신지요. 저는 보고 쓰라해도 잘 못쓸것 같은 일본 사람들 그이름이 그이름이고, 지난거 포스팅 하시는거라면 여행 못가서 몸이 쑤시겠네요. 얼릉 진정이 되어야 할텐데, 여행을 좋아하시는 님을 위해서.
아...... 물론 지금 여행기는 아닙니다.
지금에사 일본 여행은 커녕 입국도 안되는지라?
예전 여행을 돌아보며 일부 수정하고
또 빠진것을 보충해 새로 구성해 봅니다!
물론.... 여행을 가지 못하니 좀이 쑤셔서.......
하지만 언젠가는 좋은 시절이 돌아와
다시 배낭을 꾸릴날이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