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숙 관장이 호수가를 거닐며 꿈틀대는 생명과 대화하는
표현 하나하나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형상을 낭송하는 시이며 독백이다.
새벽길 나설 때
방현재 튜립 수줍게 입다물고 있었다.
Setting out on the road at dawn
the tulips of BangHyeonJae kept their mouth shyly.
숲속에서 만난 키 작은 붓꽃
낙엽 속에서 빛난다.
The short irisesl met in the forest
shine in the fallen leaves.
첫 작품 "꽃 구름"
담장에 피어난 등꽃으로 꽃말은 "사랑에 취하다."
두번째 작품 "청향"
화제는 "만정청원미풍발 홀송청향도죽래"
晩晴庭院黴風發 忽送淸香度竹來
(만청정원미풍발 홀송청향도죽래)
늦게서 맑게개인 정원에 미풍이 부니
갑자기 맑은 향기 대나무 건너온다.
When a breeze blews in the garden where it became clear late
Suddenly, the clear scent comes across to the bamboos.
위 화제는 다음 원문 중 후미에,
朱筋红莲瓣,亦叫粗筋红莲瓣,通称红莲瓣。花色淡红,丝纹浅红,
主脉殷红。主瓣、副瓣间角均匀,主脉粗显如朱筋。捧瓣捧口微开,
内侧红艳,唇瓣红斑清朗。属莲瓣上品。引语赏评:奕奕幽兰傍砌栽,
紫茎绿叶向春开。晚晴庭院微风发,忽送清香度竹来。
▶ 文嘉(문가) 明대 문인화가. 자 휴승(休承). 호 문수(文水).
晩晴庭院黴風發( 만청정원미풍발)
忽送淸香度竹來( 홀송청향도죽래)
늦게나 개인 정원에 미풍이 부니
홀연 맑은 향기 대나무 넘어온다.
'신사임당' 초서 오언절구;
병풍의 시구;
제1폭 "此意靜無事 閉門風景遲 柳條將白髮 相對共垂絲" |
제2폭 "輦路江楓暗 寒潮野草春 傷心庾開府 老作北朝臣" |
제3폭 "歸人乘野艇 帶月過江村 正落寒潮水 相隨夜到門" |
제4폭 "江南兩初歇 山暗雲猶濕 未可動歸橈 前溪風正急" |
제5폭 "東林送客處 月出白猿啼 笑別盧山遠 何須過虎溪" |
제6폭 "海岸畊殘雪 溪沙釣夕陽 家貧何所有 春草漸看長" |
위 글 . 정해년 추절에 방현재에서 초서로 박내후 화백 씀
드디어
필적(筆跡)의 필적(匹敵)이
신사임당 : 박내후
6폭 병풍에서...
1
제 1폭
차의정무사 폐문풍경지(此意靜無事 閉門風景遲)
유조장백발 상대공수사(柳條將白髮 相對共垂絲)
(唐 戴幼公의 詩)
이 내뜻 고요하여 일없이 지내는데
문 닫고 앉았으니 봄날조차 더디 가네
휘늘어진 버들가지 백발되면
마주보며 흰머리 드리울테지..
My heart is quiet and I do not work.
Since I closed the door and sat down, even spring day go slowly.
When the drooping willow branches turn grey.
Looking at each other, they let their grey hair drape.
* 대숙륜(戴叔倫, 732~789)
당나라 윤주(潤州) 금단(金壇) 사람. 자는 유공(幼公) 또는 차공(次公)이다. 어렸을 때 소영사(蘇潁士)에게 배웠다.
시를 잘 지었고, 청청담을 잘했으며, 문학으로 유명했다. 은자의 삶을 동경하여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가는
도중 청원협(淸遠峽-成都 북쪽)에서 세상을 떴다. 그의 시는 은은자의 삶을 노래한 것이 많다.
2
제 2폭
연로강풍암 한조야초춘(輦路江楓暗 寒潮野草春)
상심유개부 노작북조신(傷心庾開府 老作北朝臣)
(唐 司空曙의 詩) *원문은 宮潮가 아니고 宮庭인데 위에는 宮潮
행차길 강가엔 단풍이 우거졌고
조수는 차건만 봄풀이 푸르구나.
유개부 생각자니 마음이 아픈데
늙어서 북조의 신하가 되란 말인가.
Autumn leaves grew thick along the river on the way to go.
The tide is cold, but the spring grass is green.
My heart aches at the thought of YuGaeBu.
Do you mean to become a subject of the Nothern Dynasty when you are old?
* 사공서(司空曙, 740~790 추정)
자는 문명(文明). 하북성(河北省) 광평(廣平) 출생. 인품이 결벽하여 권신(權臣)과 가까이하지 않고 가난을 감수하였다고 한다.
전기(錢起) 등과 함께 ‘대력십재자(大曆十才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시집 '사공문명시집(司空文明詩集)'이 있다.
이 오언절구의 시는 중국 당(唐)나라 시절 문인 사공서(司空曙)가 육조시절 양(梁)나라 신하로써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유신(庾信)을 회고하며 나라가 망한 뒤에 슬픈 모습으로 방황하는 신하의 애닯은 모습을 주제로 삼았다.
* 유개부(庾開府)
중국 남북조시대 북주의 유신(庾信)을 가리킴. 유신은 南朝인 梁나라에서 右衛將軍에
임명되고 武康縣侯에 봉해졌다. 元帝 때에 북주에 사신으로 갔다가, 문학을 좋아하는
북주의 明帝와 武帝에 의하여 억류 당하였다. 융융숭한 대우를 받아 여러차례의 승진으로
驃驥將軍에 이어 開府儀洞三司라는 벼슬에 올랐으므로, 세상에서 庾開府라 불리웠다.
그의 문학은 북조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여 지은 '애강남부(哀江南賦)'가 유명하다.
3
제 3폭
귀인승야정 대월과강촌(歸人乘野艇 帶月過江村)
정락한조수 상수야도문(正落寒潮水 相隨夜到門)
(唐 劉文房의 詩)
돌아가는 사람 거룻배를 타고
달 아래 강촌을 지나가네
지금 바로 조수 한창 들어오는 때라서
물 따라 한밤중이면 문 앞까지 갈걸세
People returning by boat.
Passing the river village under the moon .
Because right now is when the tide is full swing
Follow the water, and in the middle of the night, I'll go to the front of the door.
* 유장경(劉長卿, 725? ~ 791?)
자는 문방(文房)이다. 안휘성(安徽省) 선성(宣城) 출신이라는 설과 하북성(河北省) 동남쪽에 위치했던
하간(河間)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젊었을 때는 낙양(洛陽) 남쪽의 숭양(嵩陽)에서 살면서
청경우독(晴耕雨讀)하는 생활을 하였다.
733년(개원 21)에 진사가 되었다. 강직한 성격에 오만한 면이 있어 시에 서명할 때는, 자기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는 자부심에서 성을 빼고 ‘장경(長卿)’이라고만 표기하였다.
오언시(五言詩)에 능하여 ‘오언장성(五言長城)’이라는 칭호를 들었다. 시의 동일표현이 돋보이며,
전원과 산수묘사는 도연명(陶淵明)과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과 통하는 바가 있다. 관리로서도
강직한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며 자주 권력자의 뜻을 거슬리는 언동을 하였다. 그래서 2차례나 유배를 당하여
실의의 세월을 보냈다. 그의 시에 유배당하여 실의 속에 보내는 생활과 깊은 산골에 숨어 살려고 하는
정서를 그린 것이 많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4
제 4폭
강남우초헐 산암운유습(江南雨初歇 山暗雲猶濕)
미가동귀요 전계풍정급(未可動歸橈 前溪風正急)
(唐 戴幼公의 詩) *원시에는 溪가 아니고 程.
강남은 비 개었는데
산은 컴컴하고 구름 아직도 젖었구려
노를 저어 돌아가지 못할 것 같네
앞 냇가에는 바람이 거센걸 보니..
It stopped raining in Gangnam
The mountains are dark and the clouds are still wet
I can't seem to get back rowing
Seeing that the wind was strong in the river
이 글은 첫 번째에 쓰여져 있는 시와 같은 작가인 중국 당나라 중기 대 시인이었던 대숙륜이 지은 시인데,
시의 내용은 강남의 산수를 노래하면서 당시 처해있는 정국(政局)을 빗대어 표현한 내용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독재자나 간신 또는 난을 일으킨 자는 제거 되었으나
그 잔당의 세력이 완전히 평정되지 않고 남아 있으면서 저항이 심하여 변화나 개혁에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신사임당 쓴 글씨를 보면 대숙련이 지은 시 중 네 번째 구,, 일부 글자를 다른 글자로
옮겨 적었다는데, 한석봉이 쓴 글씨에서도 이와 똑 같은 글자가 적혀 있어 이렇게 바뀌어진 문장이
신사임당이 임의로 바꾼 문장이 아니라 당시 이미 보편적으로 원시(原詩)에서 응용되어 회자되었던
문장임을 알 수 있다.
前溪風正急(사임당)-前程風浪急 (原詩)
* 대숙륜(戴叔倫, 732~789)
당나라 윤주(潤州) 금단(金壇) 사람. 자는 유공(幼公) 또는 차공(次公)이다.
어렸을 때 소영사(蘇潁士)에게 배웠다.
시를 잘 지었고, 청담을 잘했으며, 문학으로 유명했다. 대종(代宗) 대력(大曆) 연간에 유안(劉晏)의
부름에 응해
염철전운사(鹽鐵轉運使) 부중(府中)에서 일을 맡아보았다. 덕종(德宗) 건중(建中) 때 조왕(曹王) 이고(李皐)가
호남관찰사(湖南觀察使)와 강서절도사 (江西節度使)를 맡으면서 막부에 들어갔다. 일처리가 깨끗하여
칭찬을 들었다. 나중에 무주자사(撫州刺史)에 올랐다. 주민들이 해마다 관개(灌漑) 때문에 싸우는 것을
균수법(均水法)을 실시해 골칫거리를 해결했다. 정원(貞元) 4년(788) 용주자사(容州刺史)로 옮기고,
어사중승(御史中丞) 용관경략사(容管經略使) 를 겸했는데, 위명(威名)을 크게 떨쳤다.
다음 해 표(表)를 올려 출가하여 도사가 되기를 청했는데,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가는 도중
청원협(淸遠峽-成都 북쪽) 에서 세상을 떴다.
5
제 5폭
동림송객처 월출백원제(東林送客處 月出白猿啼)
소별려산원 하수과호계(笑別廬山遠 何須過虎溪)
(唐 李白의 詩) *원시는 須가 煩으로 되어있다.
동림사(東林寺)의 손님을 보내는 곳에
달이 뜨고 흰 원숭이 울어대네
담소하느라 여산을 멀리 떠나왔으니
어찌 호계(虎溪) 지나는 것을 번거로워 하리.
Where to send guests to DongLimSa temple.
The moon rises and the white monkey cries.
I left Mt. Lu to chat.
How can you be bothered about going through the Hogye?(虎溪)
송(宋)나라 진성유(陣聖兪)의 <여산기(廬山記)>에, "동림사(東林寺)의 중 혜원(慧遠)은
평소
‘영불출산 적불입속(影不出山 跡不入俗)’
(그림자는 산을 나서지 않고, 발자취는 속세에 물들지 않는다)라는 글을 벽에 걸어두고
있었다.
동림사 삼문(三門)안에 작은 개울이 있는데 혜원이 어떤 손님을 배웅하더라도
이 개울을 지나지 않았으며, 또 이곳을 지나면 반드시 혜원을 인도하는 호랑이가 울어
호계(虎溪)라고 하였다.
어느날 시인인 도연명(陶淵明)과 도사인 육수정(陸修靜)을 전송할 때, 이야기에 심취해
그냥 호계를 지나며 호랑이가 우는 소리도 듣지 못한 것을 나중에야 깨닫고 서로
마주보며 한바탕 가가대소(呵呵大笑)했다" 고 쓰여 있다.
세상에서는 이때의 일을 그림으로 그려 '호계삼소도(虎溪三笑圖)'라 한다.
동림사(東林寺)는 여산(廬山) 제일 명찰(名刹)로 뒤로 동림산에 의지하고 남쪽으로
여산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강서(江西)성 북부(北部) 구강(九江)시 여산(廬山) 서쪽
기슭(西麓)에 있다. 지금도 동림사에는 삼소당(三笑堂)이 있으며 호계교(虎溪橋) 옆에는
돌로 만든 호랑이가 엎드려 있다.
6
제 6폭
해안경잔설 계사조석양(海岸畊殘雪 溪沙釣夕陽)
가빈하소유 춘초점간장(家貧何所有 春草漸看長)
(唐 皇甫孝常의 詩) * 註; 畊은 耕과 同
바닷가 눈을 헤치고 밭을 갈다가
해질녁 시냇가에 고기를 낚지요.
가난한 집에 무엇이 있으리
봄풀만 점점 더 자라고 있다오.
While plowing through the snow on the beach.
At sunset, we fish by the stream.
What's in the poor house.
Only the spring grass is growing more and more.
영역; Park Jeong Seon [박정선] 재미영문학자
...................................................................................................................
원시의 제목이 「왕옹신이 섬중에 있는 옛 거처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인 이별하는 사람을
전송하는 시이다.
중국 성당시기 저명한 시인이었던 황보염(皇甫冉)의 벗이었던 왕옹신(王翁信)은 원래 섬중(剡中) 사람으로
청운(靑雲)에 뜻을 두고 살 곳을 경사(京師)에 정했었는데, 금서(琴書)를 휴대하고 옛날에 살던 곳으로
돌아가 은거하면서 구름속의 밭을 갈고
달빛 아래서 낚시질을 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게 되었다고 한다.
송대 성리학자였던 주돈이(周敦頤)는 「周茂叔 窓前草 不除曰 觀天地 生物氣象」라 하여
“창문 앞의 풀을 제거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천지 생물의 기상을 관찰한다.”라고
하였으니, 이 시에서 ‘풀이 자란다’ 함은
곧, 자연의 순환 이치에 대한 공부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
※ '신사임당'의 초서를 Park Jeong Seon [박정선] 재미영문학자가 작업한
영문 번역은 여기, 이 글에서 처음 시도된것이라 생각 됨.
- Shin SaimDang's cursive writing -
Shin SaimDang commissioned a six -panel folding screen with verses
written by poets of the Tang Dynasty in cursive handwriting.
|
첫댓글 맞다. 다시금 박 내후 그가 동양화과였다는 게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