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선 전 대변인의 ‘12월 신당 창당’ 선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25일 “민주당이 스스로 자기혁신을 하기를 기대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며 “민주당 중심으로 사고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이사장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주관으로 이날 저녁 7시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사 메트로룸에서 개최된 ‘노무현 시민학교’의 제1강좌 강사로 나서 ‘민주개혁 대타협과 시민주권운동의 과제’라는 주제로 진행한 강연에서 참석자의 신당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같이 대답했다.
이 전 총리는 “시민정치활동 영역을 넓혀서 민주당의 혁신을 더 촉구할 수 있고 이 역량을 가지고 더 많은 연대활동을 할 수 있다”면서 “민주당이 없이는 안 되지만 민주당 중심으로 사고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정당을 개혁해 내는데 시민정치 영역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지금 정치인들끼리의 집단으로 끝나고 만다”며 “문호도 개방이 안 되고 민주적 절차도 못 갖추고 있고 지역주의 빠져 있는 정당에 가서 하는 정치는 더 이상 안 하겠다”고 현 정당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이 전 총리는 또 “노무현의 가치를 따르는 분들 중에는 신당을 만들려는 사람도 있고, 민주당에 속해 있는 사람도 있고 시민 정치 활동을 하려는 사람도 있고 서거 이후 새로운 지지자도 많이 생겼다”며 “이들이 어느 하나로 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고 민주개혁진영의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민주당이 신당이나 시민사회 영역에서 요구하는 수준으로 자기 개혁을 하면 좋지만 내부 실정이 거기까지 될지는 자신할 수 없다, 더구나 지역적 한계도 있다”며 “신당을 하려는 사람들도 의도가 나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아울러 “분열이 되면 민주개혁진영의 영향을 약화시키는 것이 되기에 신당을 하는 사람들도 연대 정신을 살려가면서 하려고 한다”며 “화이부동(和而不同), 서로 다르지만 함께 연대해 나가는 정신을 가지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로 가긴 힘들어…시민정치조직, 허브역할 할 것”
이 전 총리는 향후 구상과 관련 “노무현 추모 기념사업회를 만들어서 이른바 노무현 가치 공동체를 만들겠다”며 “노 전 대통령이 추구하던 정책을 더 개발하고 발전시키고 교육시키고 알리는 일을 기념사업회 중심으로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또 “시민들의 왕성한 활동이 이뤄져야만 정당의 한계, 언론의 한계, 지역주의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며 “시민이 정치활동을 하는 조직을 만들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오는 10월 재보궐 선거부터 2012년 18대 대선까지 선거 일정을 거론, “이겨 나가는 연대활동을 하려면 지금부터 서로 간에 인식을 같이 하면서 보완해주고 격려해주고 나눠야 한다”며 “시민주권 모임이 큰 틀 유지해가면서 연대를 촉진시키기도 하고, 분열을 막아주기기도 하는 큰 허브 기능 할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치는 정당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며 “바로 깨어난, 행동하는 시민들이 움직일 때 그 나라의 독재, 파쇼를 막을 수 있다”고 시민들의 참여를 촉구했다.
이 전 총리는 “사회가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민생이 안정되고 평화가 정착되려면 6가지의 핵심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정당구조의 현대화 △언론과 사법 개혁 △민생경제에 대한 구체적 대안 제시 △인적 자원과 기술개발 △남북공존 교류 협력 △ 동북아 평화 공동체 등 연대를 통해 해결할 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는 “6대 과제는 야4당, 시민단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시민, 지식인, 전문가, 중소기업가,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등 힘없는 약한 사람들이 주최가 돼서 서로 연대해서 뚫어 나가야 된다”며 “큰 방향에 관한 공동의 인식을 하고 합의를 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믿음, 신뢰”라고 강조했다.
그는 “신뢰하는 과정 속에서 성공 사례를 자꾸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그렇게 해서 더 믿음이 가고 작은 성공을 하게 되면 심리적 가치와 실질적인 것을 공유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 전 총리는 또 “민주개혁 진영이 그나마 우리 사회의 방향을 올바르게 잡을 수 있는 역사적 시기라는 게 시간적으로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면서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그는 “2020년이 되면 인구가 40만 밖에 안 돼 노인들은 많아지고 20대는 팍 줄어버리면서 사회의 진취성이 없어진다”면서 “2017년 대통령 선거가 민주개혁 진영이 해볼 수 있는 마지막 선거가 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이 전 총리는 “2022년이 되면 인구 구조상 일본처럼 보수화된다”며 “일본은 경제 성장을 많이 해놓고 보수화됐기에 국민의 기본 생활이 안정화됐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참여정부 때 국민소득을 겨우 2만불로 올려놨는데 1만 6천불로 다시 내려갔다”며 우려했다.
“MB, 1년 반 만에 100조 빚…국민들이 이자 갚아”
이 전 총리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북한 조문단을 다른 나라 조문단과 동급으로 대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자평한 것에 대해 이 전 총리는 “남북간, 민족간 대화의 창구로서 만나준 게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등의 조문 특사단처럼 북한도 그 조문단의 하나로 만나 준 것을 ‘하나의 패러다임’이라고 했다”며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니라 골탕먹이기이다”고 비판했다.
이 전 총리는 “이번에 북한을 외국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그러면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합의한 10.4 정상선언은 외국으로 인정할 것 같으면 이행을 해야 된다”며 “미국이나 중국과 합의했어도 이행하는데 왜 북한과의 합의는 이행하지 않는가”라고 꼬집었다.
그는 “통일은 외교라는 것, 통일부 없애려고 했던 사고방식이 그대로 적용됐다”며 “비핵 3000을 주장하는데 남의 나라를 어떻게 국민소득 3000불로 만들겠다는 건가”라고 비꼬았다.
이 전 총리는 “우리가 정상회담 하는데 50년 걸렸고 또 7년 걸렸다”며 앞서 성사된 정상회담을 지적한 뒤 “이렇게 형제국가와 만나기가 어려운데 이 대통령은 취임 한 후 미국 대통령은 3~4번이나 만나서 어깨도 막 얼싸안고 했다”고 힐난했다.
이 전 총리는 또 “4대강 살리기에 30조원쯤 들어간다고 하는데 연봉 3000만원 일자리 100만개를 만들 수 있는 돈이다”며 “그 많은 돈을 강물을 파는데 뭐 하러 쓰려고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지금 대학생들 후불제 등록금제 한다고 하는데 대학에 다니기만 하면 되나, 취직이 돼야 빚을 갚지”라며 “못 갚은 등록금이 전부 국가의 빚으로 가고 다음 대통령, 정부가 다 책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IMF로 김대중 대통령은 167조의 빚을 김영삼 정부로부터 떠안고 갚느라고 고생했다”며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1년 반밖에 안 지났는데 100조원의 빚을 냈다”고 악화된 재정 구조를 우려했다.
그는 “100조만 해도 이자가 5조”라며 “써보지도 못한 돈이 나가야 한다. 순전히 은행에 예금해준 사람들의 이자를 국민이 대줘야 하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이 전 총리는 “앞으로도 저런 식이라면 200조도 훨씬 넘어 갈 것이다”며 “그러면 다음 정부는 빈 금고에 빚 독촉 문서만 갖고 시작해야 한다. 이런 운영이 이뤄져 있어서 큰 걱정이다”고 말했다.
“내 반대에도 노 대통령 유시민 장관 임명 관철”
한편 이 전 총리는 가까이서 본 노 전 대통령의 성품에 대해 묻는 질문에 책임 총리제를 시행하면서 일어났던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나보다 6살 많지만 친구처럼 동지적으로 일을 해왔고 총리할 때는 책임총리제를 실시해서 좋은 사례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며 “한 번도 내가 하는 정책에 대해서 제동을 거신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이어 “그런데 딱 한번 안 된다고 한 일이 있었는데 유시민 전 장관을 꼭 복지부 장관을 시켜야 되겠다는 것이었다”면서 당시 상황을 전했다.
“딱 한번 있었는데 안 된다고 한 게 재미난 얘긴데, (노 전 대통령이) 유시민 장관을 꼭 장관을 시켜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안 된다고 했다. 왜냐면 그때 이상수 장관도 같이 시켜야 하는데 대통령 선거 때 정치자금 때 구속도 되고 부천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두 분을 같이 청문회를 같이 통과시키기가 만만치 않겠다 해서 유 장관은 다음에 하고 우선 이상수 장관 하겠다 했더니 (노 대통령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부담스럽습니다. 당에서도 그렇고, 어 그럼 제 제청권 뺏어가는 것 아닙니까. 제청은 제가 하는 건데.’(라고 대통령을 설득했지만 실패했다.) 할 수 없이 내가 제청을 안 할까 하다가 제청을 안 하면 내가 쫓겨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할 수 없이 제청을 했다. 그때 견해 차이 빼놓고는 서로 간에 믿음을 가지고 잘 했다.”
이날 ‘노무현 아카데미’ 첫 강연에는 마련된 300여석의 좌석이 꽉 찼으며 20~30대가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젊은 층의 열기가 높았다. 참석자들은 이 전 총리의 강연이 시작되기 전 상영된 노 전 대통령의 동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한 교사는 이 총리에게 질문을 하던 도중 말을 잊지 못하는 등 고인을 잃은 슬픔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반면 이 전 총리는 ‘만담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청중을 연신 웃기며 활기차게 강연을 이어나갔다. 사회자 서영교 전 춘추관장의 “이 전 총리가 왜 좋으세요”라는 질문에 젊은 여성들이 서슴없이 “잘 생겨서요”라고 외쳐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서 전 춘추관장은 “아주 극소수 여성들이 독특한 취향을 갖고 계시다”고 농담을 한 뒤 쿨#48561;(쿨한 부엉이), 볼매(볼수록 매력있는 남자),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등 이 전 총리의 별명을 소개했다.
강연에 앞서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이사장인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이 “두 분이 남기신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킬 사람은 우리 밖에 없다”며 인사말을 했으며 장하진 전 여성부 장관, 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도 참석해 경청했다.
‘노무현 아카데미-제1기 시민주권강좌’는 총 6강으로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국민일보사 메트로룸에서 열리며 두 번째 강좌는 오는 9월 1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위기의 민주주의, 시민주권으로 극복하자’는 주제로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