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학진학지도 유공교원 국외연수단>은 연수 3일째에 대만에 온다. 2일을 싱가포르에서 여름을 보낸 우리들은 이제 가을이 한창인 대만으로 들어온다. 이번 여행은 특이하게 <4계절 여행>이라고 누가 명명한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갔다가 봄, 가을을 맛 보고 다시 겨울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한때 우리와 역사의 동반자였던 대만은 오랜 세월동안 우리와 애증의 관계를 가져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국제 정세가 두 나라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인데 누굴 탓할 필요가 있겠는가? 어제의 동지가 오늘에는 원수가 되는 힘 겨루기 국제 외교계에서 의도치 않게 서로간에 비정함을 내비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은 여전히 우리와는 가까운 나라다. 뗄레야 뗄 수 없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영향을 서로에게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2012.1.12일 오후에 대만 타이페이 도원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싱가포르의 여름에서 갑자기 가을로 온 것이다. 도원국제공항은 타이페이 중심가에서 북서쪽으로 약 40㎞ 떨어진 곳에 있었다.
대만(타이완)은 타이완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국 푸젠성과 마주하고 있는 나라로 중국 본토에서 약 150㎞ 떨어져 있다. 1885년 하나의 성(省)으로 독립하였고, 청일전쟁 뒤 일본 최초의 해외 식민지가 되었으며, 1949년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 패배한 국민당의 장제스 정권이 이주해 와 성립된 국가이다. 공식 국호는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이지만, 올림픽 또는 국제기구에 참가할 때는 중화타이페이(Chinese Taipei)라고도 한다. 원래는 부속제도인 펑후제도, 훠사오섬, 란위섬 등 79개 도서를 합하여 중국의 1개 성(省)인 타이완성을 이루었었다. 그러나 1949년 이래 타이페이를 임시수도로 정하고 있는 타이완 국민정부의 지배 지역이 되었고 그 범위는 타이완 및 푸젠성에 속하는 金門島와 馬祖島이다. 지방정부로서의 타이완성 정부는 타이중[臺中] 교외의 중싱신춘[中興新村]에 있다. 세계 각국이 1992년 하나의 중국을 지향하는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단교하여(한국도 그랬다) 국제적 고립화가 진행되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은 현재에도 타이완섬과 그에 부속된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2개 직할시, 22개 현(縣)·시(市)로 구성되어있다.
먼저 국립대만대학으로 왔다.
국립대만대학(國立臺灣大學)은 대만 타이페이시에 있는 중화민국의 국립 대학이다. 1928년 일본제국에 의해 다이호쿠제국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경성제국대학이었던 서울대학교와 비슷하다) 1945.11.15일에 국민정부가 이 대학을 접수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노벨상 수상자 및 중화민국의 유력 정치인들을 배출했다. 현재 중화권(중화인민공화국, 대만, 싱가포르)내에서 최고의 대학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국립대만대학의 캠퍼스에 들어가 본다.
참고로 영국의 대학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가 22일 발표한 ‘2011 아시아 대학평가’에서 대만 소재 대학 11개가 100위 안에 들었다. 대만의 1위 대학인 국립대만대학은 그 전 해와 같은 아시아 21위로 평가됐다. QS가 2009년부터 매년 실시해온 ‘아시아 대학평가’의 2011년 1위는 홍콩과기(科技)대학이 차지했다.
이번 평가에서 아시아 100위 대학 중 대만은 11개, 중국은 14개, 일본은 26개가 포함됐다. 이에 대해 평가단의 아이너 박사는 “대만이 국토가 좁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비교해 이 같은 성적을 거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100위 안에 든 대만 소재 대학은 대만대학(21위), 대만청화(淸華)대학(31위), 성공(成功)대학(32위), 양명(陽明)대학(40위), 교통(交通)대학(52위), 중앙(中央)대학(59위), 대만과기(科技)대학(62위), 중산(中山)대학(70위), 장경(長庚)대학 및 대북의학(臺北醫學)대학(89위), 중흥(中興)대학(99위)이다.
덧붙이자면 이번 평가에서 아시아 20위에 든 대학은 홍콩과기대학(1위), 홍콩대학(2위), 국립싱가포르대학(3위), 도쿄대학(4위), 홍콩중문대학(5위), 서울대학(6위), 교토대학(7위), 오사카대학(8위), 도호쿠대학 및 도쿄공업대학(9위), 카이스트(11위), 포스텍(12위), 북경대학(13위), 나고야대학(14위), 홍콩시티대학(15위), 중국청화대학(16위), 싱가포르난양이공대학(17위), 큐우슈우대학 및 연세대학(18위), 홋카이도대학(20위) 순이다.
아이너 박사는 홍콩 대학들의 평가가 높은 것은 대부분 영어로 강의를 진행하기 때문에 국제화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강의의 질이 우수하고 외국인 교수와 학생들이 많아 졸업생에 대한 고용주의 평가가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나가면서 촬영해 본 물리학부 건물
본관 건물이다.
타이완 섬의 북쪽에서 남쪽 끝까지 중앙산맥이 이어지고 최고봉은 옥산(玉山)으로 높이는 3.950m이다. 타이완의 동부해안 지역은 거의 산맥이며 반면 서부해안 지역은 타이완해협까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넓은 평야지대인데 타이완의 농작물은 거의 모두 이 평야지대에서 생산된다. 이러한 지형적 특징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게 되었다.
어두워지면서 방문한 곳은 용산사다. 용산사는 1738년에 세워진 사찰로 2차대전 때 소실되고 1957년에 다시 건립되었다고 한다. 꼭 불교의 사찰만이 아니라 삼국지 시대의 관운장을 모시는 곳 등 토속신과 유교신까지 합쳐서 총 6신을 모시는 사찰이다. 주로 방문자들이 기복을 하는 사찰인데 성적향상을 위해서 기도하는 신, 건강 증진을 위해서 기도하는 신...등등해서 여러 신을 모시는 절이다.
용산사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민들이 찾아와 기도를 하는데 모시는 신도 여럿이고 기복의 내용도 다 달랐다.
타이완의 원주민은 말레이-폴리네시아계에 속하며 전 인구의 2%를 차지한다. 대륙에서 이주해온 한민족(漢民族)은 조기 이주자인 타이완인과 1949년 전후에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권과 함께 건너온 외성인(外省人)으로 나뉜다. 타이완인은 전인구의 85%, 외성인은 13%를 차지하고 있으나 상류층은 거의 가 외성인이다.
용산사 바로 옆의 야시장
때 마침 모레(2012.1.14) 다시 대만의 대선이다. 이번에는 재선을 노리는 국민당의 마잉주 후보와 야당인 민진당의 채영문 후보간의 대결이다. 마잉주는 친 중국 외교를 지속하려 하고, 채영문은 대만의 정체성, 독립성을 주장하고 있다. 당선 예측이 박빙세라 대만 전역이 시끄럽다.
결국 이번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중국 정책을 추진해온 국민당 마잉주 총통이 재선에 성공해 중국-대만 간 ‘햇볕정책’의 큰 틀이 유지되게 됐다. 마 총통의 양안 화해 정책에 중국이 경제적 유대관계 강화로 호응해온 ‘햇볕정책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번에 치러진 선거 개표 결과 마 총통은 51.6%를 득표해 45.6%를 얻은 야당 민진당의 차이잉원 주석을 6%포인트(약 80만표) 차이로 눌렀다. 마 총통은 이날 밤 당선 축하 행사에서 “나의 승리는 양안 화해를 추진해 위기를 경제적 기회로 만들어온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보여준다”며 “(중국과) 더욱 조화롭고 신뢰하는 관계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 전문가들도 양안관계를 둘러싼 논란이 이번 총통 선거의 승부를 결정지었다고 분석했다. 차이 후보는 중국과의 경제 밀착으로 얻은 부가 소수에 집중돼 빈부격차와 실업난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중국 없이 살 수 있느냐’는 현실론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옌전성 대만국립정치대학 교수는 “차이잉원 후보의 메시지에 공감하는 유권자들이 많았으나, 경제 우려 때문에 막판에 마 후보에게 표가 쏠렸다”며 “민진당 지지자들 중에서도 중국과의 사업·거래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늘면서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마 총통에게 투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2008년 취임한 마 총통이 양안 화해 정책을 표방하자 중국도 대만 독립을 막기 위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강경책을 강조하지 않고 경제적 우호관계에 집중하는 ‘중국판 햇볕정책’으로 전환했다. ‘선거의 해’의 첫 대선이자 동북아 정세에 중요한 변수로 꼽혔던 이번 선거가 ‘안정 유지’로 마무리되자, 미국과 중국은 즉각 환영 메시지를 발표했다.
저녁식사........싱가포르보다는 우리 입맛에 맞는 편이다. 한국에 가까와져서 그런가? 그러나 인근에 대규모 뱀탕집이 있어 징그러운 느낌도 있다. 뱀도 우리 뱀과 다르게 구렁이 같은 대형 뱀들이다.
역시 샤브샤브와 뷔페를 곁들이는 식사이다.
아시아 최고의 빌딩.....타이페이101.......빌딩이다. 촬영해 보니 중간부터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 있다.
OEM과 중소기업 위주의 국가경영을 통해 20세기 아시아의 강국으로 군림하던 대만이 경제위기, 중국의 급부상, 사스 등의 영향으로 지속적인 경제 위축을 타개하고, 새로운 21세기의 도약을 위한 의지로써 추진한 '타이페이 101[국제금융센터]'을 건설했다. 타이페이101은 건축 기간만 6년에 달하며 현재 세계에서 두번째로 가장 높은 빌딩으로 기록되고 있다. 또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빌딩이라는 타이틀 외에도 수많은 세계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게 된다. 대만은 태풍과 지진이 많아 당초 본 계획이 수립될 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연 대만에 이러한 건축물이 세워질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게 했다. 그러나 21세기 아시아의 금융 중심으로 자리잡기 위한 대만 정부의 의지는 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고, 실현이 되었다. 총 투자액이 미화 16억달러에 달하는 타이페이 101의 주요 프로필을 보면...................
'阻尼球' dashpot 직경 5.5미터 규모로 세계 최대규모의 이 "阻尼球" dashpot 는 총 제작비만 400만달러가 투입됐다. 물리학 반작용의 원리를 이용해 외부의 역할이 없이 자동으로 직접 움직임이 가능하며, 강풍이나 지진 등에 의해 이동이 필요할 시 자동센서가 작동해 이동 방향과 진동폭을 계산해 자동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며 17급 강풍을 견딜 수 있도록 고안됐다. 물리학 원리에 의해 원형으로 제작된 본 dashpot는 세계 최초로 건물 외부에 자리잡게 되며 87층에 6층의 높이 규모로 제작됐다. dashpot은 예술적인 설계까지 곁들어져 본 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는 88층과 89층엔 식당이 자리하게 되며 본 건물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도 한몫하고 있다. 완성도 면에서는 지난 몇 번의 대규모 지진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성공적 이다는 게 주위의 평이다.
초고속 엘레베이터는 총 높이가 508미터에 달하는 타이페이 101에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가 선보이게 된다. 이 엘레베이터 시스템은 대당 제작비만 200만달러에 달하며 29초 만에 89층을 오를 수 있는데 한국의 삼성에서 제작했다고 한다.
자동화 쓰레기 시스템은 인도에서 제작한 것으로 101층에서 지하 2층까지 직접 통한다. 101층에 대형 beam-tron설치 되어 있으며 각 10층 마다 분쇄기와 처리 시스템의 설비가 장착되어 있어, 중력가속을 이용한 쓰레기 분리가 가능하다. 이 시스템은 지하 2층까지 떨어지는 중력의 속도를 계산하여 쓰레기 분리수거가 가능하고 분리수거 후 기계처리를 거쳐서야 비로소 밖으로 운송될 수 있도록 고안 되어 졌다.
Window clean system은 대만 자체기술을 채택하였는데, 전체 건물 조형에 따라 10종류의 시스템이 도입됐다. 일반적인 건물의 경우 5종류여서 일반 건물보다 5종류 시스템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대만의 21세기 새로운 도약의 의지로 해석되는 타이베이101의 완공은 초창기의 적자 경영을 넘어서 이제 흑자로 전화되기 시작했다는데 대만 경제와 무역, 금융의 상징적인 존재물이 되고 있다. 아울러 아시아의 미래에 대만이 지리적・정책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고수할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1층 라운지에 들어가면 넓은 공간에 설치물과 광고물이 늘어섰는데 그중 루이비똥 전시관이다.
버버리, 프라다 등이 보인다. 건물이 너무 광대해 세입자가 다 들어차지 못해 작년까지 적자였다는데 그래서 이렇게 공간을 넓게 사용하는 것인가?
타이페이101 건물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면 대만 지형의 네온사인이 붙어 있다. 보시다시피 타이완섬 남북으로 길게 큰 산줄기가 동서를 가로막고 있다. 그렇기에 장경국에 의해 동서 산간지역에 도로를 내는 대공사가 벌어진 것이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지형은 호조건이다. 겨우 영호남 지역만 큰 산줄기로 갈라져 있다. 그것도 해발 1,000m 정도로.................여기는 해발이 3000m가 넘는 고산의 산줄기이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순식간에 91층으로 올라왔다.
91층에는 밖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그 전망대에서 101층 꼭대기를 바라다 본다.
91층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경치. 우리는 구름 속에 있다.
타이페이시
전망대 풍경
이게 그 유명한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공이다. 이것이 101층의 높은 건물이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주는 공이다. 88층-92층 사이에 지름 6m, 무게 660톤의 강철공이 매달려 있는 이름하여 동조질량강쇄기..........이 장치는 건물이 바람에 흔들릴 때 균형을 잡아 건물의 흔들림을 방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태풍이 많은 대만에서는 별 방법이 없었는 모양이다.
위에 언급했지만........그 '阻尼球' dashpot 다. 직경 6미터 규모로 세계 최대 규모의 이 "阻尼球" dashpot 는 총 제작비만 400만달러가 투입됐다. 물리학 반작용의 원리를 이용해 외부의 역할이 없이 자동으로 직접 움직임이 가능하며, 강풍이나 지진 등에 의해 이동이 필요할 시 자동센서가 작동해 이동 방향과 진동폭을 계산해 자동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며 17급 강풍을 견딜 수 있도록 고안됐다. 물리학 원리에 의해 원형으로 제작된 본 dashpot는 세계 최초로 건물 외부에 자리잡게 되며 87층에 6층의 높이 규모로 제작됐다. dashpot은 예술적인 설계까지 곁들어져 본 조형물을 감상할 수 있는 88층과 89층엔 식당이 자리하게 되며 본 건물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도 한몫하고 있다. 완성도 면에서는 지난 몇 번의 대규모 지진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성공적이다는 게 주위의 평이다.
내려와서 다시 올려다 본 101층 건물
숙소로 돌아와 주변을 둘러보니 주점이 없다. 무슨 나라가 이러냐? 그 흔한 술집도 없으니........겨우 찾아낸 곳이 탕 집이다. 주로 오리, 닭, 사슴, 양 같은 동물들을 끓여내는 음식점 같은 곳인데 맥주도 있어 잠시 들러 마신다. 역시 모인 사람은 사립학교 선생 5명이다. 경주고 강대춘, 포항동지고 김진영, 안동풍산고 조준제, 왜관순심고 우병걸, 예천대창고 잭 니콜슨, 박춘욱 선생이다. 공립, 사립이 무슨 차이가 있겠냐만은 은연중에 문화가 좀 차이가 나는 모양이다. 행동 반경부터가 조금씩 다르다. 어투도 다르고................ㅋㅋㅋ
다음날 관광을 위해 아침에 도원(주도)호텔을 나선다. 이곳에는 스튜어디스가 들끓는다. 스튜어디스 전문 숙박호텔인 모양이다. 훤칠한 키의 그녀들이 향기를 풍기며 우리 앞을 지나간다.
타이페이시 주변에 있는 양명산으로 가서 유황온천장에 든다. 그 온천장 중에서 고급 티엔라이 스파 (Tienlai Spring Resort)에 들어갔는데 몽땅 온천장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수영장을 놓친다. 한국은 양쪽을 다 이용할 수 있는데 여기는 그렇지 못하다. 두 곳을 막아 놓아 한군데만 선택하게 되어 있다. 때문에 마음먹고 가지고 갔던 수영장비들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비가 오는 가운데에 다음으로 찾은 곳이 기륭 야류해양공원이다. 자연의 힘과 침식에 의해 생성된 다양한 기암괴석이 늘어선 해변이다. 세계에서 이런 모양의 해변은 여기 뿐이라는 해양생태공원이다. 그럴듯 하여 여기저기 둘러본다.
버섯바위들. 생긴대로 이름 붙이면 되는 모양이다.
이런저런 모양의 바위들.
해변이 여기저기 볼록볼록하다.
닭다리 바위들에 서서 한 커트.
야류해양공원
촛대바위다. 근데 내가 보기에 젖꼭지바위같다. ㅋㅋㅋ
완전히 알을 박아 놨군.
여왕바위. 그러고 보니 크레오파트라 상 같다. 머리 모양까지..................
절리
점심은 야류에서 먹는다. 약간 비위가 틀리지만 그런데로 참을만하다. 고기튀김, 미역국 같은 친숙한 것도 있어서.......
우리 그룹의 본부팀. 포항동지고의 김진영 선생과 예천대창고의 박춘욱 선생이다. 박선생은 웃을 때면 영판 할리우드 배우 잭 니콜슨을 닮아 내가 그렇게 별명을 지었다.
오후에는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 들른다.
런던의 대영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주박물관과 함께 세계 5대박물관에 속한다는 데 그 이유가 있겠지. 중국문화 전체를 대만으로 피난 올 때 싣고 왔으니 엄청난 보물들만 골라서 왔을 것 아닌가? 여기의 유물들을 보면 대대로 중국 황실에서 전해 내려온 진귀한 보물들이 대거 전시되어 있는데 명,청 왕조의 유물들이 많다. 북경 자금성, 심양 고궁, 열하행궁 등에 있던 황실 유물들로 중국 문화재의 백미들이 여기에 있다.
그 넓은 중국 박물관 전체를 합쳐도 이 대만고궁박물관보다 못하다고 하는데, 이곳 유물은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제스 장군이 상해에서 대만으로 옮긴 유물들이다.
중국의 국부, 쑨원(孫文)의 동상이다.
쑨원은 중국 혁명의 선도자, 정치가로 공화제를 창시하였다. 그의 정치는 삼민주의(三民主義)로 대표된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한 공으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이 충렬사. 내전과 항일운동 당시 전사한 군인과 열사의 영령을 모신 곳으로 우리나라 현충사와 비슷한 곳이다.
돌같이 꼼짝하지 않고 굳어 있는 근위병. 옆에서 사진을 찍어도 눈 하나 깜짝을 안 한다. 영국의 버킹검 궁전과 비슷하다.
어크! 잭 니콜슨이네.
항일전쟁을 치루는 벽화
매시 정각마다 거행되는 위병교대식에 관광객이 많이 모여든다. 오늘은 비가 와서 적었지만..............
가이드의 안내로 어느 상점에 가서 중국차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자뭇 진지하지만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녁은 이곳에서 샤브샤브로............어제보다 조금 고급으로 보인다.
조준제 선생은 면 전문이다. 어제 샤브샤브 집에서는 라면을 줄곧 집어 넣더니 오늘은 쌀국수이다. 그는 비위가 비교적 약해서 외래 음식을 잘 못 먹고 있었다.
이런 식이니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막 넣어서 끓여 먹으면 된다.
오늘은 용케 좋은 주점을 찾았다. 튀김이 종류별로 있고 맥주도 든든하게 보유하고 있는 주점이다. 무엇보다도 주인이 죽인다. 술 취하니 모두 공짜란다. ㅋㅋㅋ 여주인이 죽을라 한다.
이런저런 튀김들. 우리 입에도 맞다.
자! 건배다. 마시자. 마시는 게 남는다.
14일에는 타이완 섬 중동부로 온다. 화련의 유명한 협곡지대를 보기 위해서이다. 산간지역이라 비행기보다 기차가 더 편하다고 하여 타이페이 역으로 온다.
저 열차를 타고 화련으로 갈 것이다.
기차 내부
화련 전 역 신성에서 내렸다. 태로각협곡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신성이 더 가깝다고 했다.
타로코 신쳉............태로각협곡으로 들어가는 신성 이라는 지역이다.
신성 역을 나온다.
우선 점심 먹고.................
태로각협곡으로 들어가기 전에 타이완 원주민 아미족의 민속쇼부터 관람한다. 관광코스에 필수적으로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공연하고 있는 원주민들. 마음에 드는 여자는 어린 아가씨 하나 뿐이다.
우리 류필수 단장님이 게스트로 불려나가 뚱뚱한 신부를 지게에 태운다. 어이구! 견뎌 내실까?
이제 우리는 태로각협곡으로 들어간다. 화련 태로각협곡 지대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곳이 장춘사이다. 넓은 계곡의 기슭에 자리 잡은 장춘사는 꼭 중국의 무협영화를 생각나게 하는 데 우리는 장춘사로 들어가기 위해 위에 보이는 반 터널을 지난다. 길이 없던 태로각 지역의 동서 횡단 공사를 하다가 희생 당한 212명의 영령이 이 장춘사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그 당시 건설 장비가 없던 시절에 수십만의 군 병력과 노동자들이 이 공사에 참여했다는 데 국가의 운명이 걸렸던 엄청난 대공사였음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오늘 그 지역의 일부를 둘러보고 나올 것이다.
장춘교를 건너면서............
우리나라의 화강암과는 다르게 여기는 석회암 지역이다. 석회암은 물에 녹아 둥글둥글한 면을 가지게 되는데.............
장춘사 지나서 계곡을 따라 한참 들어가면 연자구가 나온다. 여기서 부터 태로각협곡 경관의 백미 지대가 펼쳐진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이 협곡을 구경할 것이다. 헬멧을 쓰고..........
워킹 코스의 중간중간에 작은 테라스가 있다. 이른바 조그만 전망대(view point)이다.
나의 룸메이트 풍산고 조준제 선생. 멋있고 부담 없는 친구이다.
좌우로 바위벽이 솟아 있으니 협곡은 협곡이다.
이런 식의 협곡이 끝없이 이어진다. 들어갈 수록 협곡의 좌우 벽은 더 거대해진다.
동서횡단 공로 건설이라는 대규모 토목 공사를 했다는데......... 소위 길 없는 절벽에 저렇게 구멍을 내어 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대공사를 기념하는 비 같은데..........장경국인지 아닌지 자세히 몰라 설명을 회피한다. 글씨가 작아 한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저 길을 걸어나오고 있다. 앞으로도 한참을 걸어 갈 것이다.
이제 협곡은 구곡동을 지난다.
좌우의 벽은 더 높아만 가는데, 우리들이 지나는 길은 저 밑에 조그많게 보인다. 그것도 캄캄한 굴이다.
협곡을 걸어 걸어................
이제 자모교에 이른다. 여기서 하늘이 넓게 열린다.
아래 계곡의 바위들은 석회암이라 기묘한 형세와 색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타이완섬 동편의 태로각에서 시작하여 장춘사, 연자구, 구곡동, 자모교로 들어왔다. 앞으로도 합류, 녹수, 천상까지 갈 것이다.
태로각협곡을 관광한 후 이제는 신성이 아니라 화련에 와서 석식을 한다. 아까 신성보다는 비위가 좀 낫다. 하지만 조준제 선생과 과학고 박진현 선생(그는 나의 경주고 8년 후배이다. )과 나만 그렇지 다른 분들은 비위고 뭐고 없다. 잘 들어간다. 특히 순심고 우병걸 선생은 싱가포르부터 음식을 너무나 즐긴다. 부러울 뿐이다.
우리가 타이페이로 떠날 화련역이다.
대만 어디에 가도 국부 쑨원의 동상이 이렇게................중국 본토에서는 그렇게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이제 밤 늦게 타이페이 역에 도착하여...........경산고 성낙길 선생님은 피곤해 보이고..............그는 경주공고에 근무한 관계로 나와는 면이 익다.
오늘은 공사립이 다 모여 화끈하게 한잔 때린다. 미리부터 삘랑 하나씩 씹고 위장이 우리~~하게 술을 마셔댄다. 조준제 선생의 코는 이제 수준에 올랐다. 이번 여행에서 나 때문에 고생하는 1인이다. ㅋㅋ
마지막 날이라 진도가 잘 나간다. 많이 마셨다고? 이건 시작일 뿐이다. 우리 류단장님이 환후라 어울리지 못해 아쉽다. 공립학교에서도 야간총무로 소문나신 분인데................
친절했던 여주인과 한 커트. 역시 나는 마셔도 포카 페이스.............
마지막 날인 15일 아침에 방문한 중정박물관
중정박물관은 이른 바 대만에 중화민국을 세웠던 장제스의 기념관이다. 장제스의 본명이 中正이다. 물론 그 보다 더 건국에 공이 컸던 그의 아들 장경국도 같이 있다.
장제스(蔣介石)는 본명이 중정[中正]으로 저장성 출신이다. 1906년 바오딩[保定]군관학교에 입학하고 다음해 일본으로 유학 갔다. 그 무렵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하고 1911년 신해혁명에 참가하였다. 1918년 쑨원[孫文]의 휘하에 들어가 주로 군사면에서 활약하고 1923년 소련을 방문, 적군(赤軍)에 대해 연구하였다. 1924년 황푸군관학교 교장, 1926년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에 취임하여 북벌을 개시하였다.
여기저기 전시된 장제스의 사진과 기록들
장제스 못지 않게 유명했던 그의 아내 쑹메이링.
송미령은 광둥성[廣東省] 출신으로 저장재벌 송씨가(宋氏家)의 3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미국 웨슬리대학을 졸업하고 1927년 장제스[蔣介石]와 결혼하였다. 그 후 장제스의 통역으로 활약, 대미관계 조정에 수완을 발휘하였다. 국민정부 입법위원·항공위원회 위원·비서장·부녀협회 실생활운동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폭넓게 활약하였는데, 이재(理財)에도 밝다는 평을 들었다. 1936년 시안[西安]사건 때는 강경파의 의견을 제지, 시안으로 들어가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단독면담을 한 끝에 장제스를 석방시켜 역량을 과시하였다. 항일전(抗日戰)과 공산당과의 내전 중에는 상이병 간호·난민대책 등을 지휘하는 한편, 1942년 미국 각지를 돌며 지원강화를 호소하였다. 1943년 카이로회담 때는 장제스를 수행하였다.
1950년 타이완으로 건너간 후에는 국민당 중앙평의위원, 타이완부녀반공항소연합회[臺灣婦女反共抗蘇連合會]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5년 장제스 사망 이후에는 10년간 미국에서 살면서 타이완과 미국과의 유대강화에 힘썼다. 1986년 장제스 탄생 100주년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하여 귀국, 이후 타이페이[臺北]에서 살았다. 그후 1991년 장기요양을 위하여 다시 미국에서 살다가 2003년 뉴욕에서 사망하였다. 그녀는 1966년 대한민국의 독립을 지원한 공으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송미령의 아버지는 챨리송으로 그는 비천한 신분을 딛고 미 유학후 귀국하여 거부가 된 뒤 혁명가 쏜문의 후원한 사람이다. 그의 세딸 중 첫째 송애령은 거부 공상회와 결혼하여 더 엄청난 부를 쌓은 장본인이며, 둘째 송경령은 혁멱가 쑨원과 결혼하여 후에 중국명예주석에 까지 오른 여걸이다. 세째 송미령은 장제스와 결혼하여 30여년동안 미국 대중 외교정책을 막후에서 움직인 여인이 되었다. 송씨가의 3자매들의 인생이 바로 중국 근대사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근대사에서 이 송씨가의 재매 중 첫째는 돈과 결혼하고 둘째는 중국과 결혼하고 세째는 권력과 결혼했다...라는 말이 있다.
장제스가 탔던 캐딜락
장제스의 생전 실제 근무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우리는 중정박물관의 옆문으로 빠져 나오고..................우리는 귀국하기 위해 공항으로 간다. 그리고 대만의 가을에서, 춥지만 그리웠던 고국의 겨울로 돌아온다.
첫댓글 좋은 경험하셨군요! 부럽습니다...^^*
멋진 여행을 하셨군요. 장개석은 대만섬으로 도망가면서도 고대 중국의 보물들은 가져갔다던데,
대만가면 박물관을 꼭 보라는 말이 생각나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