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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다지구의 아침
호텔 부다페스트에서 바라 본
09;00 호텔을 출발합니다!
오늘도 100자를 적고
1,000자를 읽으며
10,000보를 걷는 21세기 유목민의 하루 일정의 시작 입니다
▼ 시내도로와 고속도로 진입 초반부 까지는 약간의 교통량이 많아 시간이 지체 됩니다
11;06 터터바녀시 입니다
북쪽으로 고속도로 반대편으로 에스테르곰과 붙은 시가지 입니다
에스테르곰은 북쪽에 도나우강변을 두고 서쪽으로 헝가리 대평원을 둔
부다페스트로 부터 북,서쪽 40Km 지점의 지정학적 위치로
도나우강을 넘지 못한 로마제국이
서기 89년에 아쿠인성을 건설하고 부터
13세기 중엽까지 초기 아르파드 왕조의 수도겸 왕궁소재지로
알려진 역사 도시입니다
▼ 끝없는 지평선이 이어지는 헝가리 대평원에
덴마크 기술지원으로 건설된 풍력발전기가 연이어
설치된 광경을 봅니다
▼ 휴게소에서는
우리와는 달리 화물수송 트럭이 대부분입니다
여기서도 휴게소내 화장실 시설은 유료
다양한 먹거리와 음식들은 깔끔하게 잘 진열되어 있고
다행이 여기서는 옥외 무료 화장실이 있어
사용하였지만 관리가 안되 불결합니다
▼ 오스트리아 국경검문소 입니다
휴게소에서 대평원을 달려 11;41분 경
같은 EU회원국이며 쉥겐조약 이행국으로 프리패스합니다
▼ 국경직전과 국경직후
헝가리,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 3국의 국경에 붙어 있는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로 가는 JC를 지난후
오스트리아 빈 공항을 지난 직후 만나는 OMV정유공장 입니다
(빈과는 12Km거리)
▼ 빈 고속도로IC를 벗어나
시내도로에서 도나우강의 샛강의 다리를 지나고
시내 교차로(12;23)지점의 시경입니다
▼ 서쪽방향의 시내 고가도로를 따라
시 중심가를 우회
▼ 쇤부른 궁전 근처의 오래된 유명음식점에서
정통 현지식 "호이리게"로 중식후
※ 호이리게
900년 전통의 오스트리아 대표음식으로
어원은 "햇와인" 이란 뜻으로 포도농장이 많이 있는 그린칭 마을
에서는 농장 입구에 소나무 가지를 걸어 두고 햇와인을
훈제고기,소시지,샐러드,감자등과 함께 맛을 보는 음식을 말한다
▼ 쇤부른 궁전
합스부르크의 여름 궁전으로 매우화려한 외관을 가지고 있으며
1619년 마티아스황제가 사냥도중 "아름다운 샘"(쇤부른의 의미)을
발견한데서 유래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실로 선택 1742~1780년 까지 공사
그레이트 팜 하우스, 열대식물 재배의"오랑제리", 1752년 세계 최초의 동물원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44개의 대리석상,등의 거대 정원을 갖추고
그 후 약간의 확장과 변경 만으로 합스부르크왕가의
강력한 위상을 상징하는 바로크양식 궁전과 정원은 종합예술물 개념으로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1996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
※ 합스부르크왕가(1273~1918)
유럽의 가장 긴역사와 전통을 지닌 대표적 가문
스위스 알프스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었던 아르가우 지방의
합스부르크성에서 유래
1273년 백작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의 왕으로 선출되면서
왕가의 반열에 오르고
1278년 보헤미아 군주 계승문제로 전쟁에서 승리
오스트리아,보헤미아,헝가리왕으로 등극
1282년 두아들에게 독일왕과 오스트리아왕으로 물려주면서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왕가로 후세에 명성을 더 높힌다
1519년 카를 5세때 부터 1598년 페리페 2세때 까지
독일,헝가리,이탈리아,폴란드,체첸,크로아티아,세르비아,
스페인과 포르투갈,네덜란드까지 아우르는 유럽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군주가 되었다
왕가의 통치방식 (가문의 영토와 분활금지,장자상속 제도 도입)
과 정략결혼(힘센 왕가와 혼인, 혼인의 중첩, 지속된 근친혼으로
후손들은 모두가 주걱턱 유전)이 대제국의 완성과 유지에 있어
근간이 되기도 했었지만 흥망성쇠로 역사는 반복 되는 법
오스만투르크와 전쟁, 프랑스와 영국의 견제, 프로이션의 확장
프랑스 혁명등 세상의 변화에 따를 수 없었고
1914년 6월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처가 세르비아
사라예보 방문중에 암살된 사건으로 발발된
제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1918년 합스부르크왕가의 645년의 유서 깊은 역사도 끝을 맺는다
※ 마리아 테레지아 (1718~1780)
오스트리아,헝가리,보헤미아 여왕(1740~1780)
유럽 나라들의 세력확장 각축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가장 유능하고 가장 인간적인 인물로
오스트리아,헝가리,보헤미왕인 카를 6세 황제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남자의 대가 끊어져
왕가의 영토 분활과 권력 투쟁을 막기위해
장자상속의 원칙을 1713년 "구사조칙"을 발표하고
1740년 사망후 맏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상속 한다
1737년 토스카나 대공 상속자 프란츠 슈테판과 연애 결혼
16명(성인 까지 성장자녀는 10명)의 자녀를 낳았고
남편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프란츠 1세;1745~65)로 옹립
큰 아들 요제프 2세(프랑스 파르마가,독일 바이에른가와 정략결혼)
대를 이어 신성로마황제(1765~90)때 북,동 유럽으로 영토 평창
작은 아들(스페인가 정략결혼) 신성로마황제(1790~92)
딸 셋은-프랑스 부르봉왕가의 파르마왕과
-이탈리아 나폴리왕과
-프랑스황제 루이 16세와(마리, 앙투아네트)
유럽 전체의 권력있는 왕가와 이중,삼중의 근친혼으로
정략결혼 시켜 왕가의 안정과 유럽 전역의 통일성을 기하나
후손들은 유전적 주걱턱을 갖었다
그 녀는 신앙심이 투철했었고 "신을 즐겁게 하는 평등"을 주장
헝가리 대지주들의 잔인한 행동에 제동을 걸고
"농민들은 세금을 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계도 유지 할 수있어야 한다"
영주들로 이루어진 의회의 권한을 과감하게 축소 하였고
정부의 검열 제도화, 교회가 속세와 연관 문제를 분리,
교육개혁,사관학교설립,복리후생,초등교육 의무화,등
인간성을 기초로한 사회개혁정첵을 수행하였으며...
루이 16세의 왕비인 딸(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충고와 설교
경고까지 하기도 했었으나 "빵을 달라"는 프랑스 국민들의
배고픈 외침에 "왜? 빵을 달라 하지" 라고 했을 정도로
국민의 원성을 몰랐고 1789년 프랑스의 대혁명으로
1793년 루이 16세와 황금빛 내인생도 단두대의 이슬로
영에롭지 못한 생을 마감 했다
▼ 궁전내는 촬영 금지
천장엔 합스부르크왕가의 상징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고
바닥엔 나무를 깍은 벌집 모양의 원목을 세웠고(상,좌)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과 실권없는 남편 신성로마제국 황제 슈테판과 자녀들(상,중)
그리고 가문과 가족들의 결혼식등의 행사 그림(상,우)등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 묘사 유화 그림들의 접견실
중국식 원형,타원형방과 일본 도자기와 가구 장식방,
동양칠기 장식방,끝없는 거울방등
마리아 테레지아의 증손녀와 재혼한 나폴레옹의 방도 있었고...
궁전 정문 방향으로 시원하게 열어 재낀 넓은 주변 환경을 보며
▼ 정원으로 들어 갑니다!
▼ 궁전 측면의 정원
▼ 앞 정원? 후원? 으로~
▼ 중앙정원 좌,우로 그리스 신화 대리석상과
넵툰분수,
언덕 상단에 글로리에타
▼ 우측으로 동물원 방향
▼ 동,북의 빈 시가지 중심가 방향 입니다
※ 빈 (비엔나)
오스트리아(871만)의 수도 인구 180만
최근 수년간 세계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선정
알프스 카르파티아산맥의 동쪽 끝자락
도나우강의 강변에 위치 BC500년 켈트족이 정착후
1440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들어 오면서 정치,문화 예술,과학
음악의 중시지가 되었으며 사실상 신성로마제국의 수도
1805년 오스트리아제국의 수도,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등
유명 음악가 배출의 음악 도시
1955년 오스트리아 영세중립국의 수도
석유 수출국 기구(OPEC), 유럽 안보 협력 기구(OSZE),
국제 원자력 기구(IAEA),등 중요한 국제 기구들의
본부가 이 곳에 위치한다
비엔나 커피, 소세지가 유명하고 음식은 짜다(소금의 많은 사용은
대접 받는다는 느낌 때문)
커피의 종류는 다양하고 오스만투르크제국의 빈공격때 퇴각시
두고 간 원두자루와 커피 관련 도구들에서 커피문화가
튤립과 함께 전파
한국 교민은 2천명
※ 오스트리아 (동쪽에 있는 나라 라는 뜻)
남북 300Km 동서 560Km 알프스 산맥지역이 국토의 2/3를 차지
1/4 목초지 , 2/5가 산림지 수력 발전이 70% 나머지는 화력 발전
제조업이 GDP의 34% 농업이 4% (기타 사항은 6부 게제 지도 참조)
포도재배는 중요 수출품인 포도주의 기반 산업
도나우강 주변 평야 옥토지에는 옥수수,유채,양귀비,엉겅퀴등 재배
터널 공법기술이 발달한 건설업은 8% 제조업과 상업에 기초를 둔
자유시장경제와 국영경제가 발달 기계,수송장비,종이,종이제품,화학제품
등 독일에 수출하는 경제 협력국, 1인 GDP는 서유럽 국가들과 비슷하다
15세 까지 의무 교육, 대학교 진학 30%(졸업 10~15%)
토,일은 트럭은 운행 중단, 고급시계는 스위스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에서 산다(소비세 면세 환급으로 싸다)
역사는 구석기 시대후
BC 400년경 노리쿰 왕국에서 시작
6세기 아바르족,
976년 바벤베르크가 레오폴트 1세 (그리스도교의 게르만족)
1156년 바벤베르크가의 공국
1278년 합스부르크가 루돌프 4세에 패배
1519년 합스부르크왕가 카를 5세때 부터
1598년 펠리페2세 까지 유럽 최대 영토 보유
1918년 제1차 세게대전 패배로 합스부르크가 멸망
(지금 영토의 작은 독립 공화국으로 영토 축소)
1938년 제 2차 세계대전시 나치 독일에 합병
1945년 공화국 재건 연합군(미,소,영,프) 지배지
1955년 영세 중립국으로 독립
(중립국가 유지, 독일 연합 불가, 합스부르크가 회복 불가 조건부)
1960년 세계 20위 경제 대국(한국 31위)
1965년 한국과 국교 수립
1966년 사회당이 여당된후 부유하고 안정된 경제 지속 발전
1995년 EU가입국, 쉥겐조약 이행국
2017년 1인GDP (46,500달러=세계 14위 국가)(한국 27위)
국가GDP는 세계 30위 국가(한국 12위)
▼ 쇤부른 궁전!
오늘의 주인님들 이십니다!
소유자가 주인이 아니라 사용자 즉 누리는 자가 주인입니다!
▼ 좌측으로 빈 시의 외곽 전경
▼ 글로리에타(공원등에 있는 사방이 트인 정자, & 음료 마시는 곳)
▼ 궁전 외곽 도로변에
궁전의 옛 주인들의 초상화로 사진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엘리자베스(일명;시시) 황후 (가운데)
오스트리아의 황제-프란츠요제프(1848~1916재위)의 황후
쇤부른 궁전의 마지막 안 주인
허리둘레19~20인치 유지,175Cmdp 45Kg 우아하고 위엄있는 자태
왕가 가족들과의 갈등, 남편의 외도
헝가리를 무척 이나 사랑 했었던 왕후
자유로운 사상과 승마,수영,여행을 즐겨했던 여인
아들의 자살(1989년)로 엄청난 슬픔이 있었고
조카에게 왕권 양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 속에
1898년 스위스 제노바 여행도중 암살을 당한
영예로웠지만 결코 행복한 삶이 되지 못한
비운의 삶을 살았던 황후 이자 여인 이였습니다
그러나 헝가리 국민들로 부터는 무척 존경받고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황후가 떠난 후 양위 받은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부처도
1914년 세르비아 사라예보에서 암살 당하고 그 원인으로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되어 전쟁에 패함으로서
1918년 합스부르크의 645년 왕가 역사도 종말을 맞습니다!
▼ 시내의 오래 된 건물색은 밝슴니다
지속적인 유지관리와 리모델링이 있었던 것 같슴니다
부다페스트나 자그레브같은 한 국가의 수도임에는 같은데...
정치적 요인으로 인한 자유경제 체제와 공산 사회경제 체제속의
잃어 버린 몇 십년이 경제 발전 비교의 단면이 됩니다!
▼ 다른 지역도
부다페스트와 자그레브와는 비교가 됩니다
▼ 벨베데레 궁전
측문으로 ~
▼ 벨베데레 궁전의 상궁앞에서 본 하궁입니다!
프랑스식 정원,
멀리 뒤로는 도심의 정중앙에 위치한 137m 높이의 성 슈테판 성당 첨탑입니다
하궁은 1716년 건축된 오이겐 장군의 여름 궁전 입니다
지금은 전시회장 등으로 사용
※ 오이겐(유진)장군 (1663~1736)
합스부르크왕가의 레오폴드 1세~요제프 1세~
카를 6세(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때 까지
3대 왕에 걸쳐 헌신한 위대한 장군 입니다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바로크 건축의 메니아이며 예술 보호자
나폴레옹이 지목한 역대 최고의 7대 전략가 중 한 사람
으로 선정 하고 연구 대상으로 삼은 장군
사실상의 국왕에 준하는 예우를 받음
왕가의 본 궁전인 호프부르크성에 기념동상외
수많은 기념상과 그림, 흉상, 기념물등이
헤아릴 수없이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제국
영토에 산재해 있다
그는 프랑스 사보이 왕가(유진왕자)의 출신으로 파리에서 출생
프랑스 군입대를 거절 당하고 신성로마 군대에 입대
1689년 오스만투르크의 빈 2차 공격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1693년 프랑스 군대와 이탈리아에서 전투
1697년 오스만투르크 공격을 완전 물리쳐 34세에 신성로마제국군의 총사령관
1700년~1708 이탈리아,프랑스,토리노해방,프랑스군 전투에서 승리
1716~18년 베오그라드 전투에서 4배나 많은 오스만투르크군에 승리
점령지 절반과 중부 유럽을 오스만투르크로 부터 해방 시켰고
비엔나의 성벽을 완성하였고 외교술로 제국 동맹을 굳건히 하고
1736년 빈의 저택(중심가 오이겐 궁전)에서 죽었다
▼ 벨베데레 궁전 상궁
내부로 들어 갑니다 (촬영허용)
@ 벨베데레 궁전 상궁
1723년 오이겐 장군이 연회장으로 건축
사망 이후 증축하여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처가 살았던 궁전
현재는 왕가의 미술 수집품 보관장으로
▼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
나폴레옹의 명언록 중에서 발췌되어
그림과 함께 교과서에서 본 그 그림의 진품을 봅니다!
나폴레옹이 알프스의 생 베르나르 협곡을 늠늠하게 넘는 모습의 그림
궁정 화가 였던 자크 루이다비드(1748~1825)(프랑스)가
1801~05년 사이 그림으로 당초에는 1점 이였으나
나폴레옹이 3점을 더 그려 줄 것을 명함에
그 3점과 화가 자신이 추가로 한점 더 총 5점의 그림이 전함
베르사유궁전 2점,루브르박물관,말메종과 부아프레오성,
그리고 이~그림은 1803년 작
" 그림 한 점이 천마디의 말 보다도 낫다"
--나폴레옹의 명언록 중에서--
▼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엘리자베트(시시) 황후 초상화
▼ " 오스트리아는 영세 중립국임을 선언 합니다"
이 창문가 바닥에 동판(붙임)의 위치에서
창문 밖에 운집한 많은 국민들을 향해서~~(역사의 현장)
오스트리아는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잃은 영토의 회복 일념으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치 독일에 합병 주축국으로 참전
패전국이 되어 오스트리아의 동,서 분활론이 급 화두에 오르자
영세 중립국 선언을 외쳐 베를린만 동,서로 분활 되고
연합군의 (전제조건 3가지) 승인으로 분활을 면하고
1955년 연합군의 철수와 독립이 완성 되었다
▼ 엘리자베트 황후의
19인치 허리와 우아한 모습
▼ 유디트
황홀한 듯 관능적인 표정이 인상적이며
화려한 배색에 고혹적인 분위기
--구스타프 클림트 1901년 작--
※유디트
기원전 2세기 앗 시리아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수도 예루살렘 함락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
수도 진격전야 젊고 아름다운 과부 유니트가
침략의 수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만취하게 하고
그가 잠든 사이 목을 베어 들고(그림의 우,하에) 성벽에 내 걸었고
날이 밝아 이 광경을 본 앗시리아 군대가 지리멸열 퇴각하였고
이스라엘을 구한 유디트의 용기는 길이길이 찬송 받았다
<구약성서 유딧기에 나오는 이야기>
--우리나라의 주 논개 같은 인물--
▼ <빈 센트 반 고흐> 작의 풍경화
자화상으로 유명 화가
@ 뭉크(절규의 화가)의 타 작품도 있었고...
▼ <키스>
캔버스 유채에 금으로 (오스트리아의 국보급 그림)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1707~8년)
자신과 운명의 연인인 에밀리 플리게라고 한다
두사람 사이의 구분이 사라 지고 단단히 결합
여인의 수동적인 자세, 금으로 채색된 화려한 색체가
사랑의 환상을 느끼게 한다
※ 구스타프 클림트(1862~1928)
20세기 오스트리아의 대표화가
벽화 전문화가에서 장식화가로 성장, 여성의 초상화로 인기
빈 사교계 여성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
현실세계와 환상세계를 몽환적으로 중첩 시키고
죽음과 염세주의, 관능과 에로티시즘의 작품 세계
금 세공가의 집안 출신으로 금 사용을 과감히
사용하기도 한 황금의 화가
▼ <포옹>
에곤실러(1890~1918)의 1917년 작
구스타프 클림트에 이어 오스트리아의 20세기 대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를 빈에서 만나 그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받았고
수학하였으나 어둡고 절망적인 느낌이 그림에서 많이 나타남
28세로 일찍 요절 하였으나 그 후 그림은 재 평가 되기도...
▼ 궁전의 앞 정원
정문 방향으로
▼ 벨베데레 궁전 상궁
정문에서 본~
▼ 시 중심가로 가기 위해
도나우강 샛강변로 정차장에서 본 주변 시경
유럽 여행은~~궁(성)~성당~성(궁)~성당의 연속 입니다!
이젠 성당 차례 입니다!
▼ 한글에 이끌려
기념품들은 화려하고 고급스럽슴니다
클림트 그림 소재의 양산겸 우산이 가장 인기(한화 42,000원)
▼ 오래 된 건물 럭셔리한 분위기의
상가 거리를 쇼핑하며
▼ 성 슈테판(그리스도교 최초 순교자) 성당
137m 엄청 높은 첨탑과 합스부르크왕가의
날개 편 독수리 문장으로 25만개의 청색과 금색 벽돌로
만든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이 아름답다
@ 모짜르트 빈 생활 10년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가장 부유롭게 살았던 3년(1784~87년)의 집(아파트) 앞 에서...
▼ 우측 부분
▼ 성당 정문 방향으로~
▼ 성당 정문과 가장 번화가인 케른트너거리
▼ 성슈테판 성당은
1359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65년 공사로 완공된
길이 107m 천정 높이 37m 첨탑 높이 137m의
오스트리아에서 최대의 고딕 양식 건물로 빈의 중심부에 상징
성당 이름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 이름을 딴 것
1683년 1945년 각각 파괴되었으나 대부분 옛 모습으로 복원 되었다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이 매우 아름다우며
1450년에 만든 지하 유골 안치소에는 흑사병으로
사망한 2,000여구의 유골과 합스부르크 왕가 황제들의
심장이 들은 항아리및 백골이 쌓여 있고 오이겐 장군의 석관이 있다
모차르트의 결혼식(1782)과 장례식(1791)이 치러진 곳이며
매년 12월 31일 빈 시민들이 성당앞 광장에 모여 새해를 맞는다
▼ 케른트너 거리
비엔나 관광의 시작점, 가장 중심 번화가, 관광의 필수 코스
국립 오페라 하우스에서 슈테판 성당 광장까지
고품질 상품 가게 즐비,세계 유명 디자이너 상품,
골동품, 기념품등 보행자 전용도로로
그라벤과 콜마르크트로 이어 진다
▼ 석양빛에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빛나고..
▼ 미카엘광장에서
※ 호프부르크성
합스부르크 왕가의 겨울궁전
13세기에 처음으로 건축 되었고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황제들이 거처 하는 동안 세력 과시를 위해 아름답고
웅장하게 보이도록 지은 것이 특징
마리아 테레지아가 1754~1773년 리모델링 공사로
지금의 로코고 양식의 장엄하고 간결한 외관 형태
아들 레오폴드 2세의 결혼식, 부군 프란츠 슈테판이 사망한 궁전
오스트리아 마지막 황제 카를 1세 퇴위 1918년 까지 황제 기거
전황제가 사용하던 방은 다음 황제가 사용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로
방이 무려 2,600개로
19~20세기 건축된 신왕궁과 구분 된다
마지막 황제 퇴위후 공화국이 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빈 소년 합창단,예배당과 승마학교, 국립 도서관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 섰다
1938년 히틀러가 성을 차지 했고 신궁전에서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병합됨을 선포헀다
신왕궁은 무기,악기 박물관, 미술관등이 있다
▼ 베토벤 기념관과 오이겐 장군 겨울궁전은 건너 뛰고
케른트너 거리에서 롤렉스시계(한화 2천5백만원), 다이야 몬드(5케럿;가격은 ?)
애플 휴대폰 매장(사람 많음)과 삼성 휴대폰 매장의 고객수 도 비교해 보고...
▼ 아카키꼬 일식집에서 한식으로 저녁후
도나우강 샛강 강변로 하차장에서 차량 대기중
맞은 편 건물 상단에 반가운 우리 기업 로고가
▼ 시내에서 외곽으로 벗어나
호텔 애드머럴에서 또 하루를 ~~~
♥ 감사합니다!
행복하셔요!
8부에서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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