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굴리가 떠나기 전에 그녀를 데리고 관광을 했다. 덕수궁을 돌아보고 명동을 걸었다. 명동은 연말이라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고 들뜬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굴리는 상점의 쇼윈도를 살피면서 즐거워했다.
“여기는 명동에서 가장 유명한 칼국수집이야.”
나는 굴리를 칼국수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는 줄을 서서 20분을 기다려서야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거 굉장히 맛이 있어요.”
굴리는 칼국수를 신기해했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야 해.”
나는 굴리가 칼국수를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굴리는 칼국수를 먹으면서 눈에 덮인 서울 시가지를 신기해했다. 나는 굴리에게 많은 선물을 사주었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그녀의 딸과 가족들의 선물도 샀다. 이튿날 오후 2시, 나는 굴리를 데리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물건을 화물로 부치고 탑승 수속을 마친 뒤에 굴리와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김용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장님, 히트맨이 일본에서 온다고 합니다.”
김용호의 전화를 받은 나는 바짝 긴장했다.
“언제?”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습니다. 이미 불렀다고 합니다.”
“다른 일은?”
“마천동에 불법 다단계 업체가 2개 있습니다.”
“거여동에는?”
“거여동에도 하나가 있습니다.”
“알았어.”
나는 오성파가 히트맨을 일본에서 불러온다는 사실에 긴장했다. 일본에 히트맨이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한 번도 그들에 대해서 조사한 일이 없었다. 사무실에 돌아가면 그들에 대해 조사를 해야하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들이 닌자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비행기 이륙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굴리의 눈에 눈물이 괴었다. 나는 굴리의 눈물을 보자 가슴이 아팠다.
“굴리.”
“남편,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나는 굴리를 포옹했다. 굴리가 여권과 탑승권을 들고 출국 게이트로 향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도 손을 흔들면서 게이트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게이트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기분이 미묘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시간은 아직도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나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오르기 전 담배를 한 대 피우면서 주위를 살폈다. 멀리서 선글라스를 쓴 여자가 주차장으로 또박또박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이상하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작고 아담한 체격을 갖고 있었으나 몸이 민첩해 보였다.
글:이고운 그림:김선학 <904>
나는 차에 올라탔다. 여자가 내 차를 지나 주차장에 있는 검은색 차에 올라탔다. 여자는 좀처럼 출발하지 않고 있었다.
‘왜 출발을 하지 않을까?’
나는 여자가 수상했다. 나는 기다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30분이 지나서야 출발했다. 나는 그녀가 출발하고 5분이 지나서야 출발했다. 여자가 탄 차는 렉서스였다.
‘여자가 히트맨이면 나를 미행한 자가 있을 것이다.’
나는 소름이 끼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뒤를 경계한다고 생각했는데 미행자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주차 요금을 지불하면서 뒤를 살피자 차 한 대가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차가 미행자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김용호에게 전화를 걸어 이철구를 출동시키라고 지시했다. 미행자를 제거하지 않으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사장님, 어디에 계십니까?”
이철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인천공항을 나오고 있어. 자네는 어디에 있나?”
“마포에 있습니다.”
“그럼 가양대교에서 내려가는 길에서 기다려.”
“예.”
“가양대교를 내려갈 때 비상등을 켤 테니까 알아볼 수 있을 거야. 주의해서 살필 차는 흰색 소나타야.”
나는 이철구에게 지시하고 주차장을 나왔다. 흰색 소나타도 서서히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히트맨이 여자라는 것도 놀라웠고 빨리 나타난 것도 뜻밖이었다.
“오성파 두목 김해송이 소재 좀 알아봐.”
나는 김용호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했다. 상황이 점점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럴 때는 김해송을 잡아서 처리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공항도로는 차량이 많지 않았다.
“가양대교에서 빠져나간다.”
나는 가양대교에 이르자 이철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철구가 대답했다. 가양대교를 내려오자 이철구가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비상등을 켰다가 껐다. 이제는 이철구가 알아서 할 것이다. 뒤를 살피자 흰색 소나타가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장님, 차가 바뀌고 있습니다.”
이철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무슨 소리야?”
“흰색 소나타가 빠지고 렉서스가 사장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무슨 색이야?”
“검은색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렉서스를 미행해.”
“예.”
선글라스를 쓴 여자는 서울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가 내 뒤를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글:이고운 그림:김선학 <905>
나는 여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여자를 유인하기로 했다. CC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주차장이 있는 건물을 찾기 시작했다. 문득 흥신소 사무실 옆 건물이 떠올랐다. 건물이 작았기 때문에 주차장 관리인조차 없었다. 그곳이라면서 여자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날이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어두워지면 주차장도 차들이 빠져나간다. 제기동까지는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퇴근 시간이 되면서 차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나는 내 사무실 옆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벽에 바짝 붙어섰다. 뜻밖에 여자는 따라오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철구에게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인적이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주차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주차장은 희미하게 백열등이 켜져 있었다. 그림자가 먼저 들어오고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짧은 스커트에 검은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가죽장갑을 끼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여자를 향해 뛰어나갔다. 여자가 빠르게 뒤로 물러나면서 반사적으로 대응자세를 취했다. 나는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빠르구나.’
여자에게 구둣발을 내질렀으나 여자가 몸을 비틀어 피했다.
‘아.’
여자가 등 뒤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허리를 바짝 숙이고 있었다. 다시 여자를 공격했으나 빠르게 피했다.
‘대단한 솜씨인걸.’
나는 여자의 민첩한 몸놀림에 감탄했다. 그때 여자가 나를 향해 공격해 왔다.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고 몸을 회전시켜 발로 공격했다. 내가 몸을 눕혀 피하자 칼날이 얼굴을 찔러왔다. 숨 쉴 틈도 없는 공격이었다. 얼굴이 화끈하면서 칼날이 스쳤다. 여자는 춤을 추듯이 몸이 가볍고 빨랐다. 나는 여자에게 빈틈을 보여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고양이 같은 여자였다. 여자가 다시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나도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여자의 발길이 내 가슴팍에 꽂혔다. 나는 일부러 비틀거리는 체했다.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날려 칼로 공격해왔다. 나는 몸을 눕히면서 여자의 복부에 구둣발을 내질렀다. 발끝에 묵직한 감촉이 실렸다. 여자가 비명을 지르면서 자동차의 보닛 위로 나가떨어졌다. 나는 여자를 향해 달려갔다. 여자가 나에게 발길질을 했다. 예상 밖의 공격이라 복부를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다. 여자가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여자는 나를 덮쳐 칼로 찍으려고 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 몸을 옆으로 굴렸다.
창!
칼이 시멘트 바닥을 찍으면서 요란한 쇳소리를 냈다. 나는 몸을 굴려 일어서면서 동시에 여자의 턱을 걷어찼다. 여자가 휘청했다. 그 틈에 또다시 연속으로 여자의 턱을 돌려차고 비틀대는 여자의 복부에 구둣발을 내질렀다. 여자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허리가 접히면서 벽에 쾅하고 부딪쳤다. 나는 재빨리 여자를 덮쳐 팔을 꺾었다. 여자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여자의 복부에 정권을 강하게 꽂았다. 여자가 헉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입을 딱 벌렸다. 여자의 눈이 몽롱하게 풀어지더니 축 늘어졌다. 그래도 안심을 할 수가 없어서 복부에 다시 한 번 정권을 꽂았다.
글:이고운 그림:김선학 <906> |
첫댓글 즐~감!
ㅎ늘 감사히 잘읽고 갑니다
계속 잽나게 즐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