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의 품성을 오해할 만한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사기 2장에 나오는데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시며 재앙을 내리셔서 자기 백성을 괴롭히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신약의 예수님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므로 신자나 비신자 할 것 없이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하나님, 괴롭히는 하나님,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 심지어 사람을 죽이시는 하나님일까요? 그렇지 않다면 왜 구약성경에는 그렇게 묘사한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해입니다. 화잇은 “이 세상을 덮고 있는 어두움은 하나님께 대한 오해의 어두움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리고 있다. 하나님의 품성은 잘못 이해되고 그릇 해석되고 있다. 이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 곧 그분의 인자와, 긍휼과, 진리의 빛을 비춰 주어야 한다. 세상에 비칠 마지막 자비의 빛 곧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마지막 긍휼의 기별은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그들은 저희의 생애와 품성을 통하여 저희를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야 한다.”(실물, 415-416)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오해를 성경에서는 네 가지측면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1) 오직 사람을 죽이고 파괴하는 장본인은 사단입니다.(욥 1:9-16, 요 8:44, 계13:11-13, 계7:1, 눅 9:52-56)
(2) 멸망과 죽음은 사람이 자기 꾀에 빠져 스스로 하나님을 떠난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떠나가면 그 순간부터 그는 하나님의 보호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됩니다. 온갖 죄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롬1장. 롬 6:23).
(3) 하나님은 사단과 사람이 저지른 모든 일에 대하여 책임과 비난을 감수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만물의 창조주시며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죄의 문제까지도 그분은 자신이 책임지시겠다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는 모두 하나님이 하신 것처럼 기술된 것입니다. 사울은 자결하였지만 하나님은 “내가 죽였다”고 기술하게 하십니다.(대상 10:2-14)
(4) 하나님은 사람을 죽이시는 신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위해 죽으신 신입니다.(요 3;16-17)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신 분이십니다(말 3:6; 히 13:8). 오해받으시는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신 사건이 십자가입니다.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마 22:29; 막 12:27).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렘 29:11).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일 4:16)
Crossabbath Gospel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안식하세요,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설교전문/
내가 죽였다 (사사기 2장:8-15)
오늘 본문 사사기 2장의 말씀을 가지고 “내가 죽였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1. 오늘 본문 사사기 2장 2절과 20절을 보면
(1)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1장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백성을 모두 다 몰아내고 그들이 섬기는 단을 헐라고 말씀하셨건만
모든 지파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가나안 백성과 서로 언약 맺고 더불어 살았다고 했습니다.
(2) 그 결과 13절과 17절에 보면 이들이 가나안 민족의 신들을 좇아 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신이 어떤 신인가? 바알과 아스다롯입니다. 바알은 가나안과 근동지역의 남신이고 아스다롯은 여신입니다. 둘 다 풍요와 다산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이들을 섬기는 의식이 아주 음란했고 이스라엘이 여기에 빠졌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다.
(3) 그러자 14-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사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재앙을 내리셨고 이스라엘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사사기 2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모든 권리를 가지고 계신 것처럼 기술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볼 주제입니다.
(1) 3절/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 내지 아니하리니”
(2) 14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고”
(3) 14절/“ 또 사방의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4) 15절/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5) 16절/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니..”
(6) 21절/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 지 아니하리니.”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다는 식의 기술입니다.
3. 여러분
구약성경은 전체가 이런 식으로 기술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주권은 주도적으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인가? 하나님에 대한 오해입니다. 어떤 오해입니까?
● 하나님은 자기를 섬기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진노하시는 하나님)
● 보복하고(네가 그렇게 했으니 나도 이렇게 한다는 식입니다-31절 - 한마디로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구약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이런 인상을 갖게 됩니다.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상이 우리의 신앙을 주도해 갑니다. 좋은 말로 심판이지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실제로 구약성경 전반에 걸쳐 하나님은 사람을 죽이고 척결하는 분으로 기술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악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예) 출 35:2-3 무릇 이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
창 6:5-7 내가 지면에서 사람을 쓸어 버리되
창 19:24-25 그 성들과 온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대상 10:13-14 “여호와께서 사울을 죽이시고”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악인들을 죽이시는 하나님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우리 인간과 똑같은 수준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잘못하면 화내고 보복하고 괴롭히고 결국 파괴하는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식이었습니다. 이방신 수준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두려움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뿐 만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1) 오늘 이스라엘이 누구에게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본래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가나안 이방민족에게 괴로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똑같이 우상을 숭배하는데 한쪽만 재앙과 괴로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누구한테 당하느냐? 같은 우상 숭배하는 자들에게 당합니다.
(2) 더구나 10절에 보면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어찌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길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여 섬기지 못하였는데 지금 섬기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이방인의 손에 팔아버리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15절에 보니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다”고 합니다.
4. 여러분
이정도 되면 차라리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결국 진노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1) 두려움으로 섬기든지
(2) 차라리 믿지 말자든지 둘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사단이 완전히 성공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성공했고 지금도 완전히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풀어야 합니다.
5. 여러분
저는 오늘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성경적으로 네 가지 측면에서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화잇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품성을 오전(誤傳) 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의 이해력은 흐려지게 되었다. 우리들의 선하시고 은혜스러우신 주님께서 마치 사단의 속성들을 지니신 분처럼 백성들 앞에 증거되었으며 진리를 탐구해오던 남녀들은 오랫동안 거짓된 빛 가운데서 하나님을 생각하여 왔으므로 저들의 시야에서 주님의 영광을 가리운 구름을 쫓아버리기 힘들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의혹의 분위기에서 살아왔으며 그리스도의 복음 가운데서 저들 앞에 놓여진 소망을 굳게 붙잡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1기별, 355)
이 세상을 덮고 있는 어두움은 하나님께 대한 오해의 어두움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리고 있다. 하나님의 품성은 잘못 이해되고 그릇 해석되고 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이 전해져야 한다. 이 기별은 광범위한 감화력과 구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품성이 널리 알려지게 해야 한다. 이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 곧 그분의 인자와, 긍휼과, 진리의 빛을 비춰 주어야 한다.. . . .신랑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은 백성들에게 “너희 하나님을 보라”고 외쳐야 한다. 세상에 비칠 마지막 자비의 빛 곧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마지막 긍휼의 기별은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그들은 저희의 생애와 품성을 통하여 저희를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야 한다.”(실물, 415-416)
하나님은 과연 진노의 하나님인가?
하나님은 과연 사람을 괴롭히는 신인가?
하나님은 과연 보복하는 신인가?
하나님은 결국 사람을 죽이는 신인가?
성경이 말하는 네 가지 진실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1. 사람을 죽이고 파괴하는 장본인은 사단이다.
증거 1.
요 8:44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증거 2.
욥기 1:9-16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를 치소서
그의 소유물을 네 손에 붙이노라 (허락)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살라 버렸나이다.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니다. (하나님은 허락만 하셨고 재앙은 사단이 주었는데...욥의 저자는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왜 이렇게 기록했는가? 후에 살펴보겠습니다.)
사단도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할 수 있는가?
계시록 13:11-13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하고... (마지막 때 사단의 기적행사)
증거 3
눅 9:52-56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촌으로 가시니라.
2. 멸망과 죽음은 사람이 자기 꾀에 빠져 스스로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증거 1.
사랑의 본질은 거부당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신뢰하고 수용할 때 사랑은 완성됩니다. 강압과 힘으로 얻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이 거절당할 수도, 거절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신 것입니다. (창 2:16-17) 그러므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진정 사랑이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으면 정녕 죽으리라라는 결과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죽이시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것은 창조 무효를 선언하는 것이며, 생명을 반납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결코 강제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증거 2.
롬 1:21-24 하나님께서 버려두심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가는 것을 버려두심)
롬 1:28-31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
눅 15:11-13 탕자를 떠나게 하심 (사랑의 아버지라면 다리라도 부러뜨려 가지 못하게 하지만)
시 5:10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고 (막지 않으시고, 허락하시는 표현)
자업자득입니다. 흡연이 폐암을 일으키듯이, 과도한 걱정이 위궤양을 일으키듯이, 음주가 간경변을 일으키듯이, 방종한 성적 타락이 에이즈를 일으키듯이, 과식이 심장발작을 일으키듯이 말입니다. 화, 분개, 원한, 후회, 죄책감, 낙담, 수치심, 미움, 괴로움은 모두 생명력을 약화시키고, 쇠약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어떻게 됩니까? 혼돈과 고통이 온다. 결국 우는 사자의 희생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내 생각과 내 판단이 결국 나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
3. 하나님은 사단과 사람이 저지른 모든 일에 대하여 책임과 비난을 감수하십니다. 왜나하면 그분은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의 책임을 지십니다. 비난을 감수하십니다. 심지어 죄에 대한 책임과 사망에 대한 책임까지 지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책임을 회피하면 그 순간 주권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을 책임지듯이 말입니다.
참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1) 우리가 하나님을 거절할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단 한 구절도 하나님의 진노를 하나님께서 “화가나서” 그의 진노를 나타내셔서 징벌하거나 죽이셨다고 기술하고 있지 않다. 그저 하나님은 “내어버려두셨다”다고 만 기술하고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간다. 그 결과 각종 죄악과 결과가 등장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신적 비탄과 슬픔을 주권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 일어나는 각종 고통과 파괴가 마치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처럼 보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슬픔과 비탄으로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낸다. 이런 사실을 가장 잘 묘사한 부분이 예루살렘 성에 대한 예수님의 눈물일 것이다.
마 23:37-38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눅 19: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눅 19:41-44)
호세아 11:8-11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4. 예수님의 십자가는 진정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전시대를 통하여 모든 상황아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동하셨는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더없이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에 대하여 증거하는 책입니다."(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구약은 오해받는 하나님에 대하여 기술한 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철저히 오해받았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잘 알았던 자들 몇몇 사람들과 선지자들을 제외하고는 주변 이방신처럼 취급받으며 오해받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해받는 그 하나님이 직접 자신을 들어내신 사건이 예수님 탄생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오해를 풀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신약의 예수님과 구약의 하나님이 같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마 22:29)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하시니라”(막 12:27)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은 사람을 죽이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죽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 하나님은 사람을 괴롭히는 하나님이 아니다.
●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람에게 보복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 너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람에게 화를 내는 하나님이 아니다.
● 하나님은 사람을 죽이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여기 결정적인 증거를 보십시오. 주님께서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예수께서 사람에게 조롱과 멸시와 중상과 비방과 끔찍한 고통을 당했을 때도 단 한번도 이성을 잃지 않고 악의적인 말로 반응하거나 화를 내지 않으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제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러한 상황에서도 아무도 보복하거나 죽이거나 하지 않았다면
그분은 결코 사람에게 진노하여 사람을 괴롭히거나 보복하는 신이 아니며 사람을 죽이는 신이 아니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결코 십자가에서 행하셨던 것처럼 결코 다르게 행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말 3: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1)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신입니다.
(2) 하나님은 사람을 섬기는 하나님이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눅 12:3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