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창작 강의 / 박정규 (시인)
시론 8. 시인의 척도 *앞 단원에서는 기술(記述)하는 용어를 경어(敬語)로 썼습니다. 이 단원부터는 말 그대로 논술하는 형식의 일반적인 방법을 사용하겠습니다. 부디, 집중해서 독파한 다음 쓰는 일에 깊은 내공을 얻기 바랍니다. 요즘을 흔히 인터넷 시대라고 한다. 여러 가지 편리한 기능이 제공된다. 또 이를 통해 문학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도 좋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글이 빠르고 쉽게 올려지는 만큼 작품의 질에 대한 검증이 매우 미흡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주관적 소견일 수도 있지만, 문학 ‘사이트’에 올려지는 많은 글들 중에서도 어설픈 관념주의 혹은 감상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내용에는 어쭙잖게 얕은 교훈까지 끼워 넣어서 읽는 이를 억지로 설득하려는 모습도 흔히 본다. 이런 특징이 나타나는 글을 관념적 감상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사물의 본질에 정확히 접근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기 바란다. (이 부분을 설명하며 단락을 길게 늘어뜨린 것을 만연체(蔓衍體)라고 하는 것도 알아두시라. 이런 문장구조는 읽는 이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도.) 각설하고, 앞에서 말한 관념적 감상주의에 물들어 있는 글들이 사물의 본질에 접근한 것이 아니라면 그 정체는 무엇일까?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그런 것을 가리켜 ‘요상스런 말장난’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 가지 또 놀랐던 사실은, 그런 글 올리는 사람들의 정서에는 무슨 그리움과 슬픔이 그렇게 많은 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떤 글을 보면 마치 그걸 하소연하고 싶어서 환장한 것 같았다. 자기들의 경험과 거기서 나오는 그리움, 후회 때문에 그런 글이 나온다면 그때의 상황에 책임과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그리움과 후회가 남았다. 그런데 만약 그런 정서에는 접근해 본 적도 없이 그런 글을 썼다면, 그건 거짓 글이니 금방 바닥이 들어날 것이다. 이를 테면 허위의 글이다. 아니면 혹시 그런 경험을 슬쩍 맛본 바탕에서 쓴 것들일까. 그렇더라도 거기에 대한 자기 인식이나 반성도 없이 그리움, 슬픔에 대해서만 타령하고 있으니 거기에 무슨 진정성이 있겠는가. 깊이를 갖추지 못한 억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애쓴다한들, 거기에서 정서적 공감대 형성이 어려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주 많이 봐준다 해도 기껏해야 감상주의에 대한 동조 표시, 뭐 그런 정도 아닐까. 왜 이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있느냐 하면, 사실은 이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이런 정서는 시의 재료로서 적당하지 않다는 것. 물론 자기세계가 구축된 다음에는 누구도 이러쿵저러쿵 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자기 시세계가 튼튼히 세워져 있지 않다면, 그런 부분에서는 유의했으면 좋겠다는 말씀. 부연설명을 해야겠다. 소설은 이야기를 만들어서 쓰는 것이다. 말하자면, 꾸민 이야기를 정말처럼 설득하는…. 그렇다면 시는 무엇일까. 대꾸가 없으시군. 이왕 떠들었으니 그것도 말해보겠다. 시는 자기경험, 사물에 대한 관찰, 혹은 깨달음, 이런 것들에 대해서 반응하는 내면세계의 감수성과 진정성의 나타냄이다. 이것을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의 깨달음이나 감수성을 절대화하면, 그래서 가르치는 투로 늘어놓으면, 그건 또 시가 아니다. 이를 명심하기 바란다. 일종의 ‘아포리즘’의 포장은 쓸 수 있겠지만 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 부분에 덧붙이자면, 자기 내면에 형성된 주관적 정서(깨달았거나 감각한 사물과 대상에 대한 인식)를 가장 적절한 언어로, 가장 적절한 장소에 배치해서 이를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시인의 힘이다. 말하자면, 정서적 공감대 형성에 있어서 시 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도구는 이 세상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이면 시 창작에 있어서 대상에 대한 인식을 가장 적절한 언어로, 가장 적절한 장소에 놓는 것, 이것을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시인이 갖춘 수업의 깊이와 재능의 높이를 재는 척도가 있다. 바로 이 부분(대상에 대한 인식을 가장 적절한 언어로, 가장 적절한 장소에 놓는 능력)을 얼마만큼 지니고 있는지 가늠해보는 것이다. 오늘 여기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