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5일 연중 제23주일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신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잘 듣고 잘 말하기 위해서
생활 속에서 귀 먹고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괴로움입니다. 천둥소리를 못 듣는 정도의 난청을 가진 사람들이 겪는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들을 수가 없으니 말도 잘할 수 없습니다. 오래전 20대 초반 나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국구화학교(韓國口話學校) 졸업식에 참석하였는데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주 힘겹게 말을 배워서 졸업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한 학생이 졸업생을 대표해서 답사를 할 때 아주 어렵게 또박또박 힘주어 떼어 놓은 말은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하는 말을 듣지도 못합니다. 그렇지만 저를 낳아주시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저희들 때문에 아파하시며 말을 가르쳐주신 엄마, 아빠,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 말을 하려고 어머니, 아버지, 선생님, 그리고 하느님을 천 번도 더 불러보았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속에 뜨겁게 박힌 쟁쟁한 그 답사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때 하느님은 참 공평하신 분이라는 것을 느끼고 그 자리에 참석하고 있던 부모님들과 선생님들과 같이 참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수화로 통역을 하던 자매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쉽게 부를 수 있고 힘들지 않고 말하는 ‘엄마, 아빠, 선생님, 하느님’을 불러보기 위해서 천 번도 넘게 연습하였다니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고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어렵게 말 하나 하나를 배우며 피눈물 나는 연습으로 노력하는지 알았습니다. 3중고의 고통에서도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킨 헬렌켈러와 설리반을 생각하면 우리는 늘 감사해야하지만 그 감사를 잊고서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기사를 보면서 조금은 화가 났습니다. 장소를 옮겨가면서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잡혀 들어 왔습니다. 그 중에는 주부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주부는 몇 천만 원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도박장을 찾아다니면서 도박을 하고 있었습니다. 영상 경마장이나 인터넷 게임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땀 흘려 일하기보다 일확천금(一攫千金)을 얻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을 수수방관하고 사행성만을 조장한 우리 사회도 문제이지만 이는 우리 모두 책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행성으로 가득한 사회에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정치가들이나 고위직 관리들의 교만이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옳고 그름의 가치관이 없어졌다는 것이 더 큰 사회적인 악으로 정의에 귀 기울여 경청하는 자세가 아쉽기만 합니다.
오늘 주님은 귀를 열어주시면서 삶의 현장에서 울리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경청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당신의 손가락을 우리들의 귀에 넣어주십니다. 아담을 빚으시고, 무수한 환자들을 고쳐주신 사랑의 손가락을 열쇠처럼 귀에 꽂아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혀를 풀어주시기 위해서 혀에 손가락을 넣어 주십니다. 세상에 정의를 말하고,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할 말은 하고, 용기를 내어 바르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귀와 입이 제대로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영광과 찬미와 정의를 말하라고 당부하시고, 당신의 공치사로 돌리지 말도록 당부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 한일도 공치사를 하는 동안에 모두 사그라집니다. 주님은 마땅히 찬미 받아야 합니다.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는 말이 있지요. <관을 덮고서야 사람의 가치가 판정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죽은 다음에 정의로우신 하느님께서 이 모든 일을 전부 판정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관을 덮기 전에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잘한 공치사는 뒤로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복음을 세상에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2,1-5
1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2 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합시다.
3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 한다면,
4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5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축일9월 5일 성녀 데레사(마더) (Teresa(Mother))
신분 :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 지역 : 콜카타(Kolkata)
활동 연도 : 1910-1997년
같은 이름 : 테레사, 테레시아
성녀 마더 테레사(Mother Teresia, 또는 데레사)는 1910년 8월 26일 터키가 점령 중이던 알바니아(Albania)의 스코페(Skopje)에서 알바니아계인 아버지 니콜라 보약스히야(Nikola Bojaxhiu)와 어머니 드라네 보약스히야(Drane Bojaxhiu)의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다음날 곤히아 아녜스(Gouxha Agnes)라는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녀가 태어난 지 2년 뒤인 1912년 알바니아는 터키로부터 독립했지만 스코페는 여전히 알바니아의 영토가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8년 스코페는 세르비아를 모태로 탄생한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고, 현재는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한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수도이다.
어려서부터 유복한 가정에서 신심 깊은 어머니로부터 철저히 신앙교육을 받은 그녀는 9살 때 건축업자였던 아버지를 갑자기 여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소녀 시절부터 성인전과 선교사들의 이야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18세 되던 1928년 어느 날 그녀는 기도 중에 평소 선교에 대해 갖고 있던 관심이 자신을 수도성소에로 부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예수회원인 본당신부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 그 해 11월 29일 인도의 콜카타에서 전교 중인 아일랜드 더블린(Dublin)의 로레토 수녀회(Sisters of Loreto)에 입회하였다.
그녀는 더블린에서 집중적으로 영어를 공부한 후 1929년 인도(India)에 도착하여 히말라야 산맥 근처에 있는 다르질링(Darjiling)에서 수련기를 시작했다. 1931년 5월 24일 첫 서원을 하면서 후에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된 리지외(Lisieux)의 성녀 테레사의 이름을 자신의 수도명으로 택했다. 그 후 7년간 테레사 수녀는 로레토 수녀회가 운영하는 콜카타(옛 지명은 캘커타, Calcutta)의 성모여자고등학교에서 지리와 역사를 가르쳤다. 1937년 5월 24일 그녀는 종신서원을 했고, 1944년에는 그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1946년 9월 10일 연례 피정 참석차 다르질링으로 가는 기차 속에서 테레사 수녀는 그녀 스스로 후에 ‘부르심 속의 부르심’이라 묘사한 놀라운 체험을 했다. 그녀는 수도회를 떠나 가난한 사람들 속에 살며 그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소명을 들은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녀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교황청의 특별한 허락을 받아 1948년 수도회 밖에서 수도자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전통적인 서구식 수녀복장이 아닌 인도 여성들이 평상복으로 입는 사리를 수도복으로 택한 그녀는 우선 성가정 병원에서 속성으로 기초 간호학을 이수한 후 콜카타의 빈민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49년 3월 19일 성모여자고등학교 출신 제자인 슈바시니 다스가 찾아와 아직 형성되지도 않은 수도회에 받아주길 간청해 첫 지원자로서 마더 테레사와 합류했다. 그리고 1950년 10월 7일 가난한 이들을 위해, 가난한 이들과 함께, 그들 안에서 살고자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Missionaries of Charity)가 교황청으로부터 승인을 받고 처음부터 함께한 12명의 회원들이 수련기를 시작했다. 1952년 8월 22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임종자의 집을 열었는데, 문을 열자마자 정원까지 아픈 이들로 꽉 들어찼다.
1953년 사랑의 선교회 본원이 설립되었고, 이어서 빈민굴의 고아들을 위한 집과 콜카타 외곽에 나환자들을 위한 자립 센터도 열었다.
1965년 2월 1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는 사랑의 선교회가 세계교회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승인해 주었다. 교구 설립 수도회로서 지역 주교의 관할 안에서만 활동하던 사랑의 선교회가 이제는 세계 어디서나 선교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 이미 사랑의 선교회에는 3백여 명의 수녀들이 여러 개의 시설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베네수엘라(Venezuela)에 해외 첫 분원을 연 이후 아프리카, 호주, 유럽 등 여러 대륙에 진출했다. 교황 성 바오로 6세는 마더 테레사의 적극적 후원자가 되어 그녀가 선교 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바티칸 시민권을 수여했다. 이렇게 해서 1971년에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 50여 개의 분원을 갖게 되었다.
1969년 3월 26일 ‘사랑의 선교회 협조자회’가 교황청으로부터 회칙을 인가 받아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이 협조자들은 세계 곳곳에서 사랑의 선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마더 테레사와 사랑의 선교회 활동이 세계 곳곳에 알려지면서 그녀는 여러 국제적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1979년 12월 10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마더 테레사는 그 상을 자신이 온 삶을 바쳐 섬기고 사랑한 가난한 이들의 이름으로 받았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후 사랑의 선교회는 더욱 놀라운 속도로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갔다.
1970년 이후 마더 테레사는 알코올 중독자와 마약 중독자들을 치료하고 사회 복귀를 돕는 치료 센터를 여러 곳에 열었다. 또한 나환자 병원과 나환자들을 위한 재활 및 사회 복귀 시설을 운영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보호 시설과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 그리고 결핵 환자들과 영양실조 걸린 이들을 위한 치료소 및 요양소들도 설치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활동도 시작했다.
1990년 4월 16일 마더 테레사는 건강을 이유로 총장직에서 물러났으나 같은 해 9월 총장직에 다시 선출되었다. 1997년 9월 5일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이며 세계 모든 이들의 영적 어머니인 마더 테레사는 87세를 일기로 콜카타에서 선종하였다. 그녀의 선종 소식에 종교와 이념, 민족과 인종을 초월해 전 세계가 한결같이 ‘인류의 참 어머니’를 잃었다며 애도하였다.
2003년 10월 1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살아서부터 ‘성녀’로 추앙받았던 마더 테레사 수녀의 시복식을 선종 6년 만에 거행했다. 교황은 30여만 명의 순례자들이 모인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오늘 하느님은 우리에게 마더 테레사를 새로운 거룩함의 모범으로 제시해 주셨다”며 그녀의 시복을 선언했다. 그리고 2016년 9월 4일 같은 장소에서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은 그녀를 성인의 품에 올렸다. 교황은 시성식 강론에서 온 생애를 통해 특별히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풍성히 나누어준 성녀를 기억하며, 성녀를 통해 이해와 자비를 바라는 인류에게 희망과 기쁨이 함께하길 빌었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더 데레사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