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 종군위안부 결의안통과 지지서명 캠페인 www.weeklyus.net
전세계 한인사회 적극 참여가 결의안 통과에 결정적 영향
"본국과 전세계의 한인들 , 모두 서신 캠페인에 참여합시다"
글 : 海里 이선명 주간한겨레 주필
"전 역사의 산 증인입니다. 제가 겪은 일들을 꼭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 1928년 대구에서 태어난 저는 유모로 일하는 어머니 대신 동생을 돌보며 공장에 다니다가 16세가 되던 1944년 군 위안부로 대만에 끌려갔습니다. 일본군들은 개 돼지보다도 더 추악했어요 . 그런 만행을 저지른 일본은 종전 60년이 넘도록 그 자명한 사실을 계속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폭력 만행을 뿌리 뽑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사죄를 꼭 받아내야 합니다"
이것은 미국 하원 외교위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가 지난 2월15일 오후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캐피톨 힐에 위치한 하원 레이번 빌딩 2172호실에서 개최한 2차대전 일본군 정신대에 관한 청문회에서 울려 퍼진 이용수 할머니의 피 맺힌 절규였다. 이날 미 하원은 일제가 한국, 중국, 필리핀 ,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어린 소녀들을 납치해 성노예를 만든 사실을 아직도 부인하고 있는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절차의 하나로 당시 종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던 할머니 3명을 출석시킨 가운데 사상 첫 청문회를 열어 "하루에도 수 십 명의 군인들로부터 동물적인 폭행을 당한" 제 1인칭의 증언을 청취했다.
200여 좌석을 꽉 메운 이 청문회에는 이용수 (79), 김군자(81) 할머니, 그리고 네덜란드 출신 얀 러프 오헤른(85) 할머니 등 3명이 증인으로 나와 종군위안부로 끌려가게 된 경위와 일본군들로부터 겪은 수모와 강간 등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체험을 실토했다 .
소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일제 시 강제 동원된 약 30만 명의 종군 위안부가 종전 62년이 지나면서 거의 다 타계했고,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건강과 기억력이 비교적 좋아 증인으로 채택된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는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지옥보다 못 한 삶이었다"며 당시의 악몽을 되새겼으며 네덜란드 국적인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도 "일본은 과거의 만행을 시인하고 과거의 잘 못된 역사를 뉘우치고 되풀이 하지 안으려면, 그 과오를 학교에서 똑바로 가르쳐야 한다" 고 역설했다.
이날 청문회는 1월31 일 일본계 민주당 하원의원 마이클 혼다의 발의로 민주당 의원 5명과 크리스토퍼 스미스 등 공화당 의원 2명 등 공화 양당 의원 7명이 공동 제출한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를 촉구한 결의안의 토의에 앞서 소집된 증언 청취를 위해 개최되었다 . 이 결의안(H. Res 121)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존재를 공식 인정하고 아베 신조 총리로 하여금 공식 사죄할 것 등을 촉구하고 있다.
청문회 직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마이클 혼다 의원은 "지금 우리가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일본 정부가 위안부들이 당한 고통에 대한 책임을 시인하도록 할 역사적인 기회를 잃고 말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명확한 사과가 진정한 화해를 향한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의 정략적 로비의 하수인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이날 청문회에서 미 의회 우파 공격수를 자임한 공화당의 다나 로라바허 의원은 "일본은 결의안이 요구하고 있는 사과 등 조건을 이미 충족했다"며 "앞선 세대의 과오로 일본의 현세대가 처벌받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 , 혼다 의원과 논란을 벌였다.
가토 료조 주미 일본 대사도 소위에 서한을 보내 일본은 이미 위안부 문제에 대해 책임을 인정했다면서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간단한 성명을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표명했으나 앞서 일본 총리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행한 언급을 들어 일본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 조치를 취해왔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일부 일본측에 대한 두둔에 대해 혼다 의원은 "결의안이 중요한 미일관계를 저해하는 과거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일부 인식을 알고 있다 "고 전제한 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화해가 역사적 불안감을 해소함으로써 지역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본은 사과는커녕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저지 하기 위한 로비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4월에도 거의 같은 내용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미 하원에 제출돼 9월 하원 국제관계위에 만장일치로 통과됐으나 일본의 '돈봉투 ' 로비에 밀려 본회의 상정에 실패하고 12월 미 하원 109대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었다. 일본측은 이번에도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의 '주구' 로 알려진 토머스 폴리 전 하원의장 등 정치적 영향력이 큰 로비스트를 고용, 필사적인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이 지난 월요일(2월19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의 발언을 통해 일제의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명확한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안이 미국 하원에 제출된 데 대해 '유감 '을 표명했다. 교도 통신에 의하면 아소 외상은 예산안 심의 중의 한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 이 결의안은 전혀 구속력이 없다"고 말하고 "일본 정부로서는 일본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얻기 위해 노력을 해 나갈 것"이라고 일본의 입장을 밝혔다 .
일본 정부는 최근 고이케 유리코 안보 담당 보좌관을 워싱턴에 급파, 백악관과 미 의회 친일 인사들을 동원 , "이 결의안이 통과되면 미일 친선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 "고 협박하면서 친일 네오콘 조지 부시 대통령 행정부를 설득하고 있으며 지난 18일에는 세코 히로시게 홍보담당 보좌관, 금주에는 나카야마 교코 납치문제 담당 보좌관이 워싱턴을 방문 의회의 결의한 통과저지를 위한 대미 설득에 나서고 있다 .
특히 세코 보좌관은 워싱턴포스트, 뉴욕 타임스 등 미 주요 언론과 싱크탱크 및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미 의회의 위안부 결의안에 대해 "우리는 이미 공식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는 일본의 입장에 대한 설득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
정통한 도쿄의 소식통에 의하면 "위안부 문제는 거짓 "이라는 일본의 극우파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아베 총리는 매주 몇 차례씩 우파 지식인들과 모임을 갖고 대응 방안에 대한 조언을 듣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진실을 가리기 위해 아무리 발광을 한들 손바닥으로 햇볕을 가릴 수 없을 것이다. 여기 통한의 증언이 있다 .
◆ 이용수 할머니: "나는 1944 년 16세(미국나이 14세) 때 집 앞에서 일본군에 끌려가 기차와 배를 타고 대만의 일본군 전선에 보내졌다. 일본군들이 배에서부터 나를 강간했으며 너무도 치욕적이어서 죽으려고 했으나 일본군에 들켜 죽도록 맞았다 . 몸은 완전히 망가졌지만 살아서 일본군의 이러한 가혹행위를 알려야겠다는 일념이 생겼으며 집에 돌아와보니 아버지는 화병으로 중풍에 걸려 있었고 어머니는 자신이 죽은 줄 알고 제사를 지내는 등 실성해 '죽은 딸이 귀신으로 나타났다'며 나를 깨물었으며 아버지는 그 해 숨지고 말았다.
일본 정부는 사과했다고 주장하나 나는 단 한번도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 . 세계의 성폭력 만행을 뿌리뽑기 위해서라도 일본은 반드시 사죄해야 한다." 일본군에 의해 '도시코'라 이름 붙여진 이 할머니는 강제 성추행을 거부하다 전기 고문을 당했고 , 한국말을 할 때마다 잔인하게 구타당했다며 치를 떨었다.
◆ 김군자 할머니: "나는 16세 때인 1942년 강원도 철원에서 심부름을 갔다가 일본군에 붙들렸다. 일본군에 끌려 중국 훈춘으로 간 뒤 위안소에서 하루 평균 20명 , 많게는 40명까지 일본군을 상대하는 지옥 같은 생활을 했다. 일본군들은 작은 칼로 내 몸을 조금씩 찌르고 옷을 마구 찢는가 하면 콘돔도 쓰지 않은 채 덤벼들곤 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지만 일본군이 지키고 있어 그럴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다 . 1945년 8월 종전이 되자 일본인이 '무조건 나가라'고 해 동료 8명이랑 밭의 배추를 뽑아 먹으며 한 달 넘게 걸어 집에 도착했다 . 위안소 도착 첫날 저항하다 맞아 왼쪽 고막이 터져 한쪽 귀가 멀었고, 몸에도 너무 많은 흉터가 남아 있다. 일본군들은 인간의 탈을 쓴 늑대보다 더 못한 놈들이었다. "
◆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난 나는 19 세였던 1942년 자바 섬에서 일본군에 끌려가 2년 반 동안 일본군의 성노리개 생활을 했으며 그들은 잔인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일본군은 내 청춘을 무참히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끌려간 첫날 밤 일본식 꽃 이름이 들어간 이름을 받고 , 대머리 일본군 장교가 기다리는 방으로 끌려갔다. 그는 칼을 뽑으며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한 뒤 옷을 몽땅 찢고 가장 잔인하게 나를 강간했다. 그날 밤 몇 번이나 강간을 당했는지 모른다 . 함께 끌려온 네덜란드 소녀들과 3년 반 동안 매일 이런 만행을 당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며 짐승 같은 생활을 했다.
나는 더럽혀진 몸과 치욕을 씻어버리기 위해 욕실에 들어가 씻고 또 씻었으나 치욕이 없어지지 않았다. 일본군의 잔인한 행위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종전 뒤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두 딸을 두었다. 그 동안 위안부 사실을 감추고 살았으나 지난 92년 한 한국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을 듣고 고백을 결심했다.
나의 위안부 사실을 딸들에게 알렸을 때 한없이 쏟아져 내린 눈물을 닦느라 티슈 한 통을 다 쓰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우리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일본이 사과할 때까지 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잔학 행위를 시인하고 참회를 행동으로 보여야 하며 후세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 미 의회가 종군위안부 결의안을 반드시 통과시켜 이미 세상을 떠난 위안부들의 한을 풀어달라."
이들은 청문회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70∼80대인 생존자들이 일본의 공식 사과 없이 죽어가고 있다" 며 "우리들은 인권남용의 생존 피해자로서 전쟁 범죄자들이 전쟁 중 혹은 전후 여성들에게 가하는 모욕의 사슬이 끊어지기를 원한다 "고 말했다.
청문회를 진행한 에니 팔리오마베가 아태소위 위원장(민주.사모아 )은 "나는 한 평생 영어를 써 왔지만 오늘 증언을 들으니 그 비통함을 무슨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할머니들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본 기자가 접촉한 의회 소식통은 "이번 청문회에서 일본군 만행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특히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사죄 해명이 거짓임이 드러났으며, 이것은 향후 결의안 통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과 톰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이 종군위안부 결의안에 우호적이어서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반대 로비가 만만치 않고 미국 행정부는 물론 의회에서도 선거자금 등 일본의 지원을 받고 있는 우파세력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낙관은 금물이다 "며 결의안 통과 전망에 대한 전반적인 분위기를 설명했다.
종전 직후 열린 동경전범재판에서 정신대 문제를 포함하여 일제의 대한제국 국권침탈과 36년간의 수탈과 만행에 관한 국제법적 해결을 통한 보상의 기회를 전승국인 미국이 당시 정의 실현보다는 중국의 득세가 미국의 국익에 불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일본의 전후 복구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전후처리를 포기함으로서 상실했던 점을 감안하면 혼다 결의안의 미 의회 통과는 큰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될 것이 자명하다 .
본 기자와의 통화에서 혼다 의원은 결의안을 3월 말까지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하여 혼다 의원 사무실의 아야미 나가타니 입법 사무원은 "시민들이 적극적 지지를 보일 때 결의안 통과의 가능성은 높아진다"고 말했다.
<주간한겨레>는 차제에 '혼다결의안 미 의회 통과 지지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이 결의안을 미 의회에서 기필코 통과시킬 수 있도록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한인동포들이 이번 기회에 대동단결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지지서신 보내기 운동에 참가해 줄 것을 호소한다 .
지지 서신은 www.weeklyus.net 에서 다운로드 받아 저희본사 주소로 발송하거나 본사의 팩스 (703) 207-0997로 보내시거나 게시판에 올려주시면 본사의 대표와 이선명 주필님과같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방문하여 직접 전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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