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창작 강의 / 박정규 (시인)
시론 13. / 시 창작의 바탕은 상상력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시 창작의 바탕을 튼튼히 하려면 자각하고 있어야 할 일이 있다. 자신의 체험과 기억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상상력을 일깨우는 일이다. 사람의 사고와 생각의 틀은 체험(교육, 훈련, 사색의 종류)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현재까지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이다. 지금 어떤 사물(대상)을 마주했다고 하자. 그 형상을 보고, 듣고, 느끼고 또 거기에 대해서 말한다고 가정해 보자. 여태껏 그런 사물을 보고, 듣고, 느낀 경험에 구애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자기 경험의 범위 안에서만 사고(思考)와 상황에 대한 인식작용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게 하는 것이 상상력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독서를 권장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교육적 바탕의 틀을 넓혀주기 위한 이유에서도 그렇다. 하물며 시인에게는 어떻겠는가. 언어(문자)를 다루는 작업을 하는 입장이니 더 많은 양의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독서의 양이 많을수록 경험의 범위는 커지게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직접 경험하지 못했더라도 독서를 통하면 상황에 대한 간접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다만 읽기에 게으를 뿐. 부디 그런 게으름은 무찔러버리시라. 우리가 얻은 이런 체험의 기억들이 시 창작에서는 어떻게 작용할까. 단순하게 말해보겠다. 기억은 체험의 저장고 같은 것이다. 체험의 기억은 저장고 안에서 숙성되기도 하고 때로는 부패되어버리기도 하는데…. 이 숙성되는 것과 부패되는 것들을 길게 얘기하지 않겠다. 재미 하나도 없는 정신 분석학 따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앞에서 말한 체험, 기억, 상상력 중에서 제일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상상력이다. 시는 물론 예술의 어느 분야에서든지 창조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상상력은 이 모든 분야에서 이제까지 해 온 개인의 경험과 훈련받아온 것들을 변모시킨다. 그 경험과 훈련받은 것들을 새롭게 만들고 또 다른 가치와 또 다른 세계로 창조해낸다. 시 창작에 있어서 상상력은 이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덧붙인다면, 시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충분히 구현된 모든 예술작품에서는 윤기가 난다는 것도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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