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세종 때에 한 재상이 있었는데 성은 홍씨요 이름은 아무개 였다 대대로 명문 가족의 후예로서 어린 나이에 등과해 벼슬이 이조판서 까지 이르렀다 명망이 조야에 으뜸 인데다 충효 까지 겸비해 그 이름을 온 나라에 떨첬다 그는 일찌기 두 아들을 두었다 맏이는 이름이 인형 인데 본처 유씨가 낳은 아들이고 둘째는 이름이 길동 으로서 侍婢(시중 드는 여자 종)춘섬의 소생 이었다 길동이 태어나기전 公이 낮잠이 들었다가 꿈을 꾸었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진동 하며 청룡이 수염을 곤두 세우고 공을 향해 달려 들기에 놀라 깨어나니 꿈이었다 공은 마음 속으로 크게 기뻐하며 생각했다 ' 용 꿈을 꾸었으니 반드시 귀한 자식을 낳을것 이다 ' 하고 즉시 내당 으로 들어가니 부인 유씨가 일어나 맞이했다 내낮 인것을 생각하지 않고 공이 잠자리를 청하니 부인은 정색 하며 말했다 " 상공 께서는 위신을 생각지 않으시고 어찌 어리석고 경박한 사람 처럼 행동 하려 하십니까 ?첩은 차마 따를수 없습니다 " 부인은 말을 마치고 손을 떨처 버렸다 공은 몹시 무안해 외당 으로 나와 부인의 지혜롭지 못함을 탄식했다 이때 마침 시비 춘섬이 들어와 차를 올리는데 그 자태와 얼굴 생김이 고운지라 조용히 때를 틈타 춘섬을 협실(작은방)로 이끌고 들어가 바로 잠자리를 가졌다 그무렵 춘섬의 나이 열여덟 살 이었다 춘섬은 한번 몸을 허락한 후에는 문밖에 나가지 않고 몸 조심을 했다 공은 이러한 춘섬을 기특 하게 여겨 애첩으로 삼았다 과연 춘섬은 그 달 부터 태기가 있어 열달만에 옥동자를 낳았는데 아이의 기골이 비범해 실로 영웅호걸 기상 이었다 공은 한편으로 기뻐 하면서도 정실 몸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길동이 점점 자라 여덟살이 되자 총명함이 보통 사람을 뛰어 넘어 하나를 들으면 백 가지를 깨우치는 지혜가 있었다 공은 길동을 애지 중지 하였으나 출생이 천해 . 길동이 호부호형 하면 즉시 꾸짖어 그렇게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 따라서 길동은 열살이 넘도록 감히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 이라 부르지 못했다 길동은 종 으로 천대 받는 것을 뼈에 사무치게 한탄 하면서 마음 둘바를 몰라 했다 추구월에 달은 고요하고 가을 바람 소슬해 사람의 심회(마음 속에 품고 있는 생각 이나 느낌)를 돋우었다 길동은 서당 에서 글을 읽다가 문득 책상을 밀어 내고 탄식 하며 말했다 "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서 孔,孟 (공자와 맹자) 을 본받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병법 이라도 익혀 대장인(장수의 신분을 나타내는 도장)을 허리춤에 비껴 차고 동정서벌(여러 나라를 정복) 해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이름을 만대에 빛냄이 장부의 할 일이 아니겠는가 ! 나는 어찌하여 일신이 적막하고 부형이 있는데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 이라 부르지 못해 심장이 터질듯 하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 ! "
하고 뜰에 내려와 검술을 익히고 있었다 이때 마침 공은 달빛을 구경 하러 나왔다가 길동이 배회 하는것을 보고 즉시 불러 물었다 " 너는 무슨 흥이 있어서 밤이 깊도록 잠을 자지 않느냐 ? " 길동은 공경 하는 자세로 대답했다 " 소인은 달빛을 줄기는 중 입니다 그런데 만물이 생겨 날때 부터 오직 사람이 귀한 존재 인줄 아옵니다만 소인 에게는 귀함이 없아오니 어찌 사람 이라 하겠습니까 ! ? " 공은 그 말뜻을 짐작 했지만 짐짓 책망 하는채 하며 말했다 " 그게 무슨 말 이냐 ? " " 소인은 대감 정기를 받아 당당한 남자로 태어 났습니다 또 父生母育之恩 (아버지는 낳으시고 어머니는 기르신 은혜 )깊사 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 이라 부르지 못 하오니 어찌 사람 이라 하겠습니까 ? " 길동은 이렇게 말하고 눈물을 흘렸다 공은 길동이 불상 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마음을 위로 하면 마음이 방자 해질까 염려 되어 크게 꾸짖어 말했다 " 재상 집안에 소생이 너뿐만이 아닐진데 너는 어찌 이다지 방자 하게 구느냐 ? 앞으로 다시 이런 말을 하면 내 눈 앞에 서지도 못하게 하겠다 " 길동은 감히 한 마디도 더 하지 못하고 다만 땅에 엎드려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공이 물러가라 하자 그제야 길동은 침소로 돌아와 슬퍼해 마지 않았다 길동은 본래 재주가 뛰어나고 도량이 활달해 마음을 가라 앉히지 못했다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 하더니 하루는 모친 침소에 가 울면서 아뢰었다 " 소자와 어머님이 전생의 연분 으로 금세에 모자가 되었으니 그 은혜가 지극 하옵니다 그러나 소자의 팔자가 기박해 천한 몸이 되었으니 품은 한이 깊사 옵니다 장부가 세상을 살면서 남의 천대를 받을수는 없는 지라 설움을 억제 하지 못하고 어마님 슬하를 떠 나고자 하오니 옆드려 바라건데 어머님 께서는 소자를 염려 하시지 마시고 귀체를 잘 돌보십시오 " 길동의 모친은 듣고 나서 크게 놀라며 말했다 " 재상가에 천한 출생이 너 뿐이 아닌데 어찌 마음을 좁게 먹어 어미 간장을 태우느냐 ? " 길동이 대답 했다 " 옛날 장충의 아들 길산은 천한 출신 이었지만 열 세살에 그 어머니와 이별하고 운봉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 이름을 후세에 전했습니다 소자도 그를 본 받아 세상을 벗어 나려고 하오니 어머니는 안심 하시고 후일을 기다리십 시오 근간에 곡산댁의 눈치를 보니 상공의 사랑을 잃을까 하여 우리 모자를 원수 같이 여기는듯 하옵니다 잘못하면 큰 화를 입을듯 하오니 어머니는 소자가 나아감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 길동의 말에 춘섬은 슬픔을 억 누르지 못했다 원래 곡산댁은 곡산 지방의 기생 으로 공의 첩이 되었던 것인데 이름은 초란 이었다 초란은 교만 방자해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공에게 고자질을 일 삼아 집안에 폐단이 무수 했다 이런 가운데 자신은 아들이 없는데 춘섬은 길동을 낳아 공 으로부터 늘 귀여움을 받으니 속으로 시기해 길동을 없애 버릴 마음만 먹고 있었다 하루는 초란이 흉계를 꾸미고 무녀를 불러 말 했다 " 내가 편히 살려면 길동을 없애는 수밖에 없다 만일 내 소원을 이루어 주면 은혜를 후 하게 갚겠다 " 무녀가 듣고 기뻐하며 말했다 " 지금 흥인문 밖에 관상을 잘 보는 여자가 있는데 사람의 상을 한번 보면 전후 길흉을 판단 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청해 소원을 자세하게 말 하십시오 그뒤 공께 소개해 그녀로 하여금 전후사를 자신이 본듯 이야기 하게 하면 공이 속아 넘어가 갈등을 없애고자 할것 이니 그 때를 틈타 이리 이리 하면 어떻겠습니까 ? " 이에 초란은 크게 기뻐하며 먼저 은 오십냥을 주고 관상녀를 불러 오도록 했다 이튼날 공이 내실에 들어와 부인과 더불어 길동의 비범함을 이야기 하면서 신분이 천함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때 한 여자가 들어와 마루 아래서 인사를 하자 공은 이상히 여겨 물었다 " 너는 누구 인데 무슨 일로 왔느냐 ? " " 소인은 관상을 보는 사람 이온데
우연히 상공 댁에 오게 되었사옵니다 " 공은 여자의 말을 듣고 길동의 장래를 알고 싶어 즉시 길동을 불러서 보였다 여자는 길동의 상을 보다가 놀라며 말했다 " 이 공자의 상을 보니 천고 영웅이요 일대 호걸 이지만 지체가 부족 하니 다른 염려는 없을듯 합니다 " 하고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주저 하기에 공과 부인이 크게 의심이 나서 재촉했다 " 무슨 말인지 바른 대로 이르라 " 관상녀는 마지 못하는척 하며 주위 사람들을 내보내고 말했다 " 공자의 상을 보니 마음 속에 조화가 무궁하고 미간에 산천 정기가 영롱해 실로 왕이 될 기상 입니다 장차 장성하면 온 집안이 멸 하는 화를 당할 것이오니 상공 께서는 유념 하십시오 " 공이 듣고 나서 놀란 나머지 한참 동안 이나 묵묵히 있다가 마음을 진정 시키고 일렀다 " 사람의 팔자는 피하기 어려운 것이니 너는 이런 말을 어디에도 누설 해서는 안된다 " 이렇게 말 하고는 돈을 주어 보냈다 그 뒤로 공은 길동을 산에 있는 정자에 머물게 하고 행동 거지 하나 하나 를 엄하게 감시했다 길동은 이런 일을 당하자 설움이 더욱 복받첬지만 육도 삼략(중국의 오래된 병서) 병법과 천문 지리를 공부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공은 이 사실을 알고 크게 근심하며 말했다 " 이놈이 본래 재주가 있으니 만일 분에 넘친 마음을 품게 되면 관상녀의 말과 같이 될것 인데 이를 장차 어찌 하랴 ? " 이때 초란은 길동을 없애고자 거금을 들여 자객을 매수 했는데 그 이름이 특재였다 초란은 특재 에게 전후 사정을 자세히 알려 주고는 공에게 가서 아뢰었다 " 며칠전 관상녀가 얘기한 것이 귀신 같으니 길동의 앞일을 어떻게 처리 하려 하십니까 ? 저도 놀랍고 두려우니 길동을 일찍 없애 버리는 것이 나을듯 하옵니다 " 공은 이말을 듣고 눈섭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테이니 너는 번거롭게 굴지 마라 " 초란을 이렇게 야단 치고 물리치기는 했으나 공은 마음이 산란해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 하더니 병이 나고 말았다 부인과 좌랑 인형이 크게 근심 되어 어찌 할바를 모르고 있는데 초란이 곁에서 모시고 있다가 말했다 " 상공의 병환이 위중 하심은 길동 으로 인한 것입니다 저의 좁은 소견 으로는 길동을 죽여 없애면 상공의 병환도 완쾌 되실 뿐만 아니라 가문도 보존 할것 이온데 어찌 이점을 생각하지 않으시는 지요 ? " 부인이 말 했다 " 듣자오니 특재 라는 자객이 있는데 사람 죽이기를 주머니 속 물건 잡듯 한담니다 그에게 거금을 주고 밤에 들어가 해치게 하면 상공이 아셔도 어쩔수 없을 것이오니 부인은 잘 생각해 보십시오 " 부인과 좌랑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이는 차마 못할짓 이지만 첫째는 나라를 위함 이오 둘째는 상공을 위함 이며 셋째는 홍씨 가문을 보존 하기 위함 이니 너의 생각 대로 하려므나 " 초란은 크게 기뻐하며 특재를 불러 사정을 자세히 이여기 하고 오늘 밤에 급히 일을 행하라 했다 특재는 이를 수락하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한편 길동은 원통한 마음에 산속 정자에 잠시도 머물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상공의 명이 지엄 하므로 어쩔수가 없어 밤마다 잠을 설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밤 촛불을 밝혀 놓고 - 주역 - 을 읽고 있는데 까마귀가 세번을 울고 가는것 이었다 길동은 이상한 예감이 들어 혼잣말을 했다 " 까마귀는 본래 밤을 꺼리거늘 저렇게 울고 가니 매우 불길한 징조 로다 " 길동은 잠시 주역 의 팔괘로 점을 처 보고는 크게 놀랐다 책상을 밀치고 둔갑법 으로 몸을 숨긴채 동정을 살폈다 사경(새벽 한시 에서 세시)쯤 되자 한 사람이 비수를 들고 천천히 방문으로 접근 하는 것이다 길동은 급히 몸을 숨기고 주문을 외웠다 홀연 방안에 한 줄기의 음산한 바람이 일어 나면서 집은 간데 없고 첩첩 산중이 되었다 크게 놀란 특재는 길동의 조화 인줄 알고 비수를 감추며 피하고자 했으나 갑자기 길이 끊어 지면서 층암절벽이 앞을 가로 막아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사방 으로 방황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들리기에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어린 소년이 나귀를 타고 오다가 피리 불기를 그치고 꾸짖었다 " 너는 무슨 일로 나를 죽이려 하느냐 ? 무죄한 사람을 해치면 어찌 천벌이 없겠느냐 ? " 하고 주문을 외우니 홀연 검은 구름이 일어나며 큰 비가 쏟아지더니 모래와 자갈이 날리었다 특재가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 보니 길동 이었다 길동의 재주가 대단 하다고는 여기 면서도 ' 어찌 나를 대적 하리오 ' 하고 달려 들면서 소리첬다 " 너는 죽어도 나를 원망 하지 말아라 초란이 무녀와 관상녀를 시켜 상공과 의논하게 하고 너를 죽이려 한것이니 어찌 네가 나를 원망 하겠는가 ? " 길동은 분함을 참지 못해 요술로 특재의 칼을 빼앗아 들고 호통을 첬다 "네가 재물을 탐내어 사람 죽이는 것을 능사로 여기니 너 같이 무도한 놈을 죽여서 후환을 없애겠다 "
하고 한번 칼을 휘두르니 특재의 머리가 방 가운데 떨어졌다 길동은 분노롤 이기지 못해 이날 밤에 관상녀를 잡아다가 특재가 죽어 있는 방에 집어 놓고 꾸짖었다 " 너는 나와 무슨 원수를 졌기로 초란과 짜고 나를 죽이려 했느냐 ? " 하고 칼로 목을 베니 그모습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이때 길동은 두 사람을 죽이고 하늘을 살펴보니 은하수가 서쪽으로 기우러 지고 달빛이 희미하고 삭풍(겨울철 북풍)이 불어 대므로 마음이 더욱 울적 해졌다 길동은 분함을 이기지 못해 초란 마저 죽이려 하다가 상공이 사랑하는 여자 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칼을 던지고 달아나 목슴 이나 건지기로 마음 먹었다 바로 상공 침소로 가 하직 인사를 올리고자 하는데 마침 공도 창 밖의 인기척을 이상히 여겨 창문을 열고 살펴보니 길동 이었다 공은 길동을 불러 말했다 " 밤이 깊었거늘 네 어찌 자지 않고 이렇게 방황하고 있느냐 ? " 길동은 땅에 엎드려 아뢰었다 " 소인이 일찍 부모님 께서 낳아 길러주신 은혜를 만분지 일 이라도 갚을까 했는데 집안에 불의한 사람이 있어 상공께 참소 하고 , 소인을 죽이고자 하기에 겨우 목슴은 건졌으나 상공을 오래 모실 길이 없어 오늘 상공께 하직을 고 합니다 " 공은 크게 놀라 물었다 " 무슨 변고가 있기에 어린 아이가 집을 버리고 나가 겠다는 거냐 ? " " 날이 밝으면 자연히 아시게 되려니와 소인의 신세는 뜬 구름과 같사옵니다 상공의 버린 자식이 어찌 갈곳을 두겠습니까 ! " 길동은 두 줄기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루지 못했다 공은 그 모습을 보고 불상한 마음이 들어 타일렀다 " 내 너의 품은 한을 짐작 하겠으니 오늘 부터는 호부호형을 허락 하겠다 " 길동이 절하고 아뢰었다 " 소자의 한 가닥 지극한 한을 아버지 께서 풀어 주시니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 아버지 께서는 만수 무강 하시옵소서 " 이렇게 말하고 하직 하니 공은 붙잡지 못하고 다만 무사 하기만을 당부 했다 길동은 또 어머니 침소로 가서 작별 인사를 올렸다 " 소자는 이제 슬하를 떠나려 하오나 다시 모실 날이 있을 것이니 어머니는 그사이 귀체를 보존 하소서 " 춘섬은 길동의 말을 듣고 무슨 변고가 있음을 짐작 하나 굳이 묻지는 않고 하직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통곡 하며 말했다 " 네 어디로 가려 하느냐 ? 한 집에 있어도 거처 하는 곳이 멀어 늘 보고 싶었는데 이제 너를 정처 없이 보내고 어찌 잊을수 있겠느냐 부디 쉬이 돌아와 만날수 있기를 바란다 " 길동은 하직 하고 문을 나와 멀리 바라보니 첩첩 산중에 구름만 자욱 했다 정처 없이 발길을 옮기는 모양이 가련했다 한편 초란은 특재 에게서 소식이 없음을 이상하게 여기고 사람을 시켜 사정을 알아 보았더니 길동은 간데 없고 특재와 관상녀의 시신만 방안에 있더라는 것이었다 이에 혼비백산 하여 부인 에게 달려가 알리니 부인이 크게 놀라 좌랑을 불러 이 일을 말하고 공 에게도 전했다 공은 대경 실색 하여 말했다 ' 길동이 밤에와 슬피 하직 하기에 이상하다 여겼더니 결국 이런 일이 벌어 졌구나 " 이에 좌랑은 감히 숨기지 못해 초란의 계교를 아뢰었다 공은 더욱 분노해 초란을 내 쫓고 조용히 두구의 시체를 없앤 후에 종 들을 불러 이런 말을 입밖에 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무렵 길동은 부모와 이별하고 정처 없이 떠 돌다가 어떤 경치 좋은 곳에 이르렀다 인가를 찿아 점점 들어가니 인가는 없고 큰 바위 아래 돌문이 닫혀 있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넓은 평원 광야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수백호의 집들이 줄비하게 늘어서 있고 여러 사람이 모여 잔치를 벌이며 줄기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도적의 소굴 이었다 길동이 그들 앞에 나타나자 한 사람이 길동을 보고 예사롭지 않다는듯 반겨 말했다 " 그대는 어떤 사람 이기에 이곳을 찿아 왔소 이곳은 여러 영웅이 모여 있으나 아직 우두머리를 정하지 못하고 있소 그대가 만일 용력(용맹 스런 힘)이 있어 참여할 마음이 나면 저 돌을 들어 보십시오 " 길동은 도적의 말을 듣고 다행히 여기며 절하고 말 했다 " 나는 한양 홍 판서의 서자 길동 인데 집에서 천대 받기 싫어 아무데나 정처 없이 다니다가 우연히 이곳에 들어왔소 마침 모든 호걸이 나와 동료가 되기를 바라니 반갑기 그지없거니와 장부가 어찌 저 만한 돌 들기를 걱정 하겠소 " 하고 곧바로 천근 이나 되는 돌을 번쩍 들어 수십보를 걷다가 던지니 그 광경을 지켜본 도적들이 일시에 칭찬하였다 " 과연 장사로다 우리 수천명 중에 이 돌을 드는 자가 없었는데 오늘 하늘이 도와 장군을 보내 주셨구나 " 그들은 길동을 윗 자리에 앉히며 차례로 술을 권하며 백마를 잡아 그 피로 맹세 하면서 언약을 굳게 맺었다 이에 모든 무리가 일시에 응낙하고 온종일 즐기며 놀았다 그뒤 길동은 여러 사람과 더불어 무예를 닦아 수개월 안에 군법을 엄히 세웠다 하루는 여러 사람들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 우리는 예전부터 합천 해인사를 처 재물을 빼앗고자 했으나 지략이 부족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는데 장군님 의견은 어떠 하신지요 ? " 길동이 웃으며 말했다 " 내가 장차 출동할 것이니 그대 들은 내 지휘 대로만 하라 " 하고 푸른 도포에 겸은 띠를 매고 나귀 등에 올랐다 " 내가 그 절에 가서 동정을 살펴 보고 오겠다 " 이렇게 말하고 가는 뒷 모습은 완연한 재상가의 자제 였다 길동은 절에 들어가 주지 에게 먼저 말했다 " 나는 한양 홍 판서댁 자제요 이 절에 공부 하려 왔는데 내일 백미 이십석을 보낼 것이니 음식을 깨끗이 장만 하시오 당신들과 함께 먹겠소 " 하고 절 안을 두루 살펴보며 뒷날을 기약하고 동구를 나오니 모든 중이 기뻐했다 길동은 돌아와 백미 수십석을 보내고 부하들을 불러 말 했다 " 내가 아무날 그 절에 가 이리 이리 할것이니 그대들은 뒤를 따라와 이리 이리 하라 " 했다 그 날이 닦아와 길동은 부하 수십명을 데리고 해인사에 당도했다 중들은 길동을 반가이 맞이했다 길동은 노승을 불러 물었다 " 내가 보낸 쌀이 부족 하지는 않았소 ? " " 어찌 부족 하겠습니까 너무 황감 했습니다 " 길동은 맨 윗 자리에 앉아 모든 중들을 청해 각기 상을 받게 하고 먼저 술을 마시며 차례로 권하니 모든 중이 황감해 하였다 길동은 음식을 먹다가 모래를 슬그머니 입속에 넣고 깨물었다 그 소리가 크게 나니 중들이 듣고 놀라 사과를 했다 길동은 일부러 화를 내어 꾸짖었다 " 음식을 어찌 이다지도 깨끗하지 않게 했소 ? 이는 반드시 나를 깔보고 업신 여기는 짓이오 " 길동은 부하들을 시켜 모든 중을 한 줄에 결박해 앉혔다 중들이 겁이 나서 어쩔줄 몰라 했다 이때 도적 수백명이 일시에 달려들어 모든 재물을 제것 가져가듯 했다 중들은 보고 입 으로만 소리 지를 뿐 이었다 마침 외출 했던 불목하니(절 에서 밥 짓고 빨래 하는 사람)이 돌아 오다가 이 사태를 보고 관가에 일렀다 이에 합천 원은 관군을 뽑아 도적들을 잡아오게 했다 군관 수백명이 도적을 쫓다가 문득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송낙(여승이 쓰는 모자 )을 쓰고 장삼을 입은 중이 산에 올라가 외치고 있었다 " 도적이 저 북쪽 으로난 작은 길 쪽으로 가고 있으니 빨리가 잡으시오 " 관군 들은 그 중이 말한 대로 북쪽 작은 길 쪽으로 쫓아 갔지만 도적을 잡지 못하고 날이 저문 후에야 돌아갔다 길동은 부하들을 남쪽의 큰길로 보내고 홀로 중의 차림으로 관중을 속여 무사히 소굴로 돌아왔다 부하 들은 이미 재물을 가져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부하들이 모두 일어나 사례 하자 길동은 웃으며 말했다 " 장부가 이만한 재주도 없어서야 어찌 여러 사람의 우두머리 가 되리오 " 그뒤 길동은 이 도적을 일러 활빈당 이라 칭했다 활빈당은 조선 팔도를 다니며 각 고을 수령이 불의로 모은 재물이 있으면 탈취했다 그리하여 가난하고 의지 할데 없는 사람이 있으면 구제 하되 선량한 백성의 재물은 하나라도 범하지 않고 나라의 재산 에는 추후도 손을 대지 않았다 부하들은 길동의 이러한 뜻을 알고 감복해 맞이 않았다 어느날 길동은 활빈당을 모아 놓고 말했다 " 탐관 오리인 함경 감사가 백성을 착취해 백성이 견딜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그대로 둘수 없으니 그대 들은 나의 지휘대로 하라 " 하고 아무날 밤으로 약속을 정하자 각자가 몰래 들어가 남문 밖에 불을 질렀다 감사는 크게 놀라며 불을 끄라 하니 관리며 백성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불을 끄고 다녔다 이때 활빈당 수백명이 성 안으로 달려 들어 창고를 열고 곡식과 무기를 찿아내 북문으로 달아나니 성 안이 물 끓듯 시끄러웠다 감사는 뜻밖의 변을 당해 어쩔줄 몰라했다 날이 밝은 후에 살펴보고 난 후에야 창고의 무기와 곡식이 없어졌음을 깨닫고 크게 놀라 도적 잡기에 전력을 기우렸다 그런데 홀연 북문에 방이 붙었는데 더음과 같은 것 이었다 " 아무날 성안의 돈과 곡식을 훔친자는 활빈당 당수 홍길동 이다 " 이를본 감사가 군사를 징발해 도적들을 잡으려 했다 한편 길동은 여러 부하와 함께 곡식을 많이 훔첬으나 행여 길 에서 잡힐지 염려해서 둔갑법과 축지법을 써서 처소에 돌아오니 날이 새고 있었다 길동이 하루는 여러 부하를 모아 놓고 말했다 " 이제 우리가 합천 해인사에 가 재물을 탈취한 일과 또 함경 감영에 가 돈과 곡식을 훔첬다는 소문이 파다 하니 나의 이름이 감영에 붙었으니 오래지 않아 잡히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마음 쓸 것이 없으니 이제 나의 재주를 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