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력동심이 바로 천하무적이더라
솔향 남상선/수필가
고향에 가기로 날을 잡았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셋째를 도와주고 싶어서였다. 동생은 행정공무원 서기관으로 퇴임했지만 몇 년이 되지 않아 농사꾼 뺨치는 선수가 다 되었다. 마침 제수씨한테 들깨 모종할 것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우들과 상의 끝에 가서 일을 같이 해주기로 했다. 형제들이 작심하고 2박 3일 숙식을 같이 하면서 밭일을 했다. 서울, 대전, 살고 있는 형제들과 고향을 지키고 있는 서기관 동생이‘힘을 합치고 마음을 함께 하는 육력동심(戮力同心)’이 밭이랑에서 시행되고 있었다.
말로만 듣고 책에서만 읽었던 육력동심(戮力同心)이 밭이랑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농사꾼이 다된 셋째 동생은 경운기로 로터리를 친 다음 관리기로 두둑을 만들었다. 동생들과 나는 한 이랑씩 맡아서 그 위에 호미로 흙을 파서 들깨모를 심으며 북을 주었다.
부모님께서는 나를 장남으로 존재가치를 느끼며 살게 하셨지만 농사일하는 데는 동생들을 형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았다. 형제들이 힘을 합하고 한 마음이 되어 얼굴에 땀방울을 흘리는 육력동심의 모습은 천하무적이 따로 없었다. 우리 형제들이 바로 천하무적의 주인공임에 틀림없었다.
구슬땀을 흘리며 들깨 모종을 하는 우리 형제들의 모습은 장관 중에서도 일품이 아닐 수 없었다. 육력동심으로 하나가 되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진풍경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듯했다. 부모님의 핏줄이 사랑으로 이어져, 형님, 아우, 하며 우애를 다지는 모습은 골동품으로 남기고 싶을 진풍경이었다. 밭이랑 두둑 위에서는 형제들이 ‘힘을 합하고 마음을 함께하는 육력동심’을 연출하고, 흙 속에서는 들깨모의 잔뿌리들이 어떻게든 살겠다고 이리 얽히고 저리 설켜 힘을 다하는 모습은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우애가 무기인 우리 형제들에게 하늘에서도 천심(天心)이 동했는지 들깨 모 이식을 마치자마자 비가 내렸다. 자고 일어나 보니 시들했던 들깨 모가 싱싱하게 살아났다. 형제들이‘힘을 합하고 땀 흘리며 마음을 함께하는 육력동심(戮力同心)’에 하늘이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아 힘이 났다. 이런 때에 의기충천(意氣衝天)이란 말을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감사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고,
챙기려하지 말고 조금 손해 보는 듯이 살아라.
육력동심에 답게 사는 삶이면 하늘도 도와준다.
근본을 잊지 못해하는 수구초심(首丘初心)에 고향을 찾게 되고,
게다가 핏줄을 사랑하는 형제애(兄弟愛)가 육력동심까지 연출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귀향길이 아디 있으며 아름다움이 어디 있다 하리오!
‘나’라는 사람은 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 한답시고 고향을 떠난 지 수십 년이 되었다. 강산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도 객지가 고향이 되다시피 살았다. 하지만 고향을 지키고 있는 앞·뒷산의 나무들은 누구도 얘기한 적이 없건만 시종 일편단심(一片丹心)이었다. 어릴 때 애송이었던 소나무 아카시아 갈참나무는 몰라보게 장성하여 위용으로 뽐내고 있었다. 또 밭머리 도랑 옆 논밭을 지키며 묵묵무답(黙黙無答)으로 일관하던 밤나무도, 감나무도, 경쟁이라도 하듯 많이 커 있었다. 이해타산에 주판알을 튕기는 사람과는 다른 자연의 모습이었다. 성자(聖者)같은 나무들이어서 그런지 반성되는 것이 많았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육력동심이 바로 천하무적이더라.’
사랑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하나 되는,
트집 잡을 수 없는 우리 형제들이니
두려울 게 없는 천하무적이어라.
들깨 모 옮겨 심는 형제들의 땀방울에
힘을 합하고 마음을 함께 하니
천하무적은 바로 이것이더라.
형제애의 육력동심, 천하무적은 바로 이것이더라.
첫댓글 형제분들이 육력동심으로 함께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다만 요즘은 출산율이 너무 저조하여 형제는 커녕 아이도 없는 세상이 되어 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 보던 밤새 볏단을 서로 옮겨다 놓는 형제애 같은 모습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내 일이 아니지만 진한 감동에 가슴이 벅차 울컥하네요.
젊은이, 중년, 장년도 아니고 거의 노년에 접어든 형제분들이 이렇게 발벗고 한 이랑 씩 나누어 구슬땀 흘리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 아닐지요?
요즘 피를 나눈 형제라고 다 이런 모습일까요?
선생님을 중심으로 한 너무나 아름다운 형제애에 많은 것을 배우고 저 자신 부끄럽고 뉘우쳐집니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우애는 찾아보기 힘들지요.
존경 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