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 괜찮아 보였다. 사실 나는 떼로 배우는 학원보다 피아노, 바이올린을 배울 때처럼 개인 레슨이 더 좋았다. 안 그래도 지금 학원은 애들도 마음에 들지 않고 선생님들도 별로였다. 공대 다니는 수학 과외 선생님, 근사했다. 짝꿍 정희가 배우는 선생님인데 한 자리가 비었다고 했다. 나까지 하면 딱 셋. 정희와 같이 찍은 사진을 보니 스타일도 좋았다. 인기 선생님이라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걱정 말라고 하고 서둘러 집으로 왔다.
집에 들어설 때부터 분위기를 조장했다. 내가 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엄마 아빠가 깨닫고 긴장해야 했다. 들어오자마자 곧장 내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곧 문을 두드릴 것이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으면 약간 시간을 끌었다가, 나 학원은 도움이 안 되네, 그래서 과외 하려고, 이렇게 말문을 트면 된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살짝 예상이 빗나갔지만 조금 더 기다렸다. 식탁 유리에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혼자 밥 먹나? 설마. 평소 같으면 딸 뭐 해? 왜 안 나와? 등등의 레퍼토리를 쏟아내야 했다. 엄마가 요즘 왜 저럴까. 곧 싱크대에 물 쏟아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벌써 다 먹었나? 억지로 문을 열고 나가 밥을 먹다가 결국 숟가락을 탁 놓고 일어서야 효과가 좋은데. 슬슬 열이 올랐다. 나는 화장실 가는 척 밖으로 나왔다. 엄마가 밥그릇을 씻고 있었다.
“혼자 먹었어?”
“너 안 나와서. 먹을래?”
“안 먹어.”
엄마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뒤돌아 나머지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곧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괜히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나왔다. 닫힌 안방 문에 귀를 대 보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정희한테 오늘 밤에 말해 주겠다고 했는데. 방문을 살짝 열었다. 슬쩍 간 보고 아니다 싶으면 내일 아침으로 미룰 참이었다. 엄마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
“엄마, 자?”
“아니, 왜?”
“할 말이 있어서.”
“들어와.”
엄마가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왜? 하고 물었지만, 나는 한껏 뜸을 들였다. 상당한 고민 끝에 힘겹게 하는 말이라고 암시해야 했다. 괜히 머리도 뒤로 넘겨 보고 한숨도 깊게 쉬었다. 그런데 그사이에 엄마가 먼저 말했다.
“할 말 없으면 나가.”
나가...라고? 뭐야 재수 없게. 갑자기 웬 어울리지도 않는 근엄. 웃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할 말을 빨리 해 버렸다. 나도 빨리 나가고 싶었다.
“나 과외 받을 거야.”
“통보니?”
통보? 이 또한 엄마가 잘 쓰지 않는 말이었다. 그래, 통보야. 내가 지금 과외를 하겠다고. 하마터면 바로 맞받아칠 뻔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진 엄마 말에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대체 너는 무슨 근거로 그렇게 당당하니?”
이쯤 되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뭐야, 저 말투와 확신에 찬 얼굴은. 최근에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교통 카드 충전한 걸로 뭐 사 먹은 거? 얼마 전에 충전해 놓고 아니라고 박박 우긴 거? 어보통 때 엄마라면, 요즘 사정이 안 좋은데 과외를 꼭 지금 해야겠어? 조금만 더 생각해 볼래? 그런 식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뭘 잘못했기에 저러는 걸까?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자기 일만 딱 하고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았다. ᄄᆞᆯ이 부족한 것이 있어서 좀 더 배우겠다는데 왜 저래? 내가 놀겠대? 공부하겠다고.
“내가 당당하지 못할 게 뭐가 있는데?”
“너는 너를 무엇으로 증명해 봤니?”
“뭐라고?”
“니가 뭔데 네 결정을 부모한테 함부로 통보해. 명령이야?”
“그래, 명령이야! 엄마가 마음대로 낳았으니 당연히 책임도 져야지!”
“어떤 생명도 지가 승인하고 태어나지 않아. 니 말대로라면, 내 마음대로 낳았으니 니 생명권도 내가 쥔 거니? 죽여도 돼?”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죽여도 돼? 우리 엄마가 맞는데 엄마가 아닌, 우리 엄마가 아닌데 엄마가 분명한, 이상한 상황이었다. 너는 너를 무엇으로 증명해 봤니? 실은 거기서부터 나는 이미 말이 꼬였다. 나는 ....했다. 혹은 ....이다,에서 당당하게 가운데를 채울 말이 없었다. 분명 늘 뭔가를 했는데 왜 저 공백을 채울 근거가 없는 걸까.
“나도 열심히 했어. 결과로만 얘기하지 마.”
“결과적으로 완성된 사람들 겉으로 흉내만 냈지. 그들이 병신같이 몰두하는 과정은 병신처럼 무시하고. 그런데 넌, 병신처럼 몰두해도 안 돼. 그냥 평범한 애거든. 너 전혀 특별한 살마 아니야. 명심해.”
나는 그대로 안방을 나왔다. 진정이 되지 않았다. 옷장을 차고 책상에 놓인 거울을 집어 던졌다. 자기가 특별하지 않게 낳아 놓고, 특별한 애가 아니니까 명심하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평범하게 나 죽었소, 하고 살라고? 그게 엄마라는 사람이 할 말인가. 나는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 언제와? 왜? 빨리 와! 왜 그래? 엄마가 이상해. 왜? 몰라! 저 끔찍한 모습을 아빠도 봐야 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빠가 왔다. 보자마자 고자질하듯 빨리 말하려고 했는데, 아빠가 잠깐만, 하고 뒤로 미뤘다. 그사이에 엄마가 식탁에 저녁을 차렸다. 아빠가 손을 씻고 나왔고, 나와서는 엄마를 살폈다. 아직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일단 나도 밥을 먹으며 분위기를 살폈다.
“다 먹고 치워.”
엄마가 드디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작은 소리로 아빠에게 말했다.
“봤어? 엄마가 언제 다 먹으면 치우라고 한 적이 있냐고.”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은 그랬지. 그게 이상하다는 거야?”
“아니. 나를 죽여도 되냐고 물었어.”
“뭐라고?”
“엄마가 날 낳았으니까, 죽일 권리도 있다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엄마가 그랬다고?”
아빠는 믿지 않았다. 당연하다. 저런 말을 의심하지 않을 아빠는 세상에 없다. 그런데 아빠, 나는 그 얘기를 면전에서 들었다고. 믿어져? 특별하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너는 매우 평범한 애라고, 엄마가 그런 말까지 했다고 하니 아빠가 대답 없이 한동안 밥만 먹었다.
“너 엄마한테 잘못한 거 있어?”
“없어. 나 지금 기분 진짜 엿 같아.”
“아빠가 엄마하고 얘기해 볼게.”
아빠가 밥을 다 먹고 그릇을 싱크대에 넣었다. 그리고 잠깐 동안 멈칫 서 있더니, 먹고 치워라, 라고 엄마와 똑같은 말을 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씨발.... 열 받았는데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나 먼저 위로해 줘야지. 엄마가 딸에게 죽여도 되는지 물었다. 아빠라면 응당 숟가락을 던지고 엄마에게 달려가야 했다. 그런데 내 잘못을 먼저 물었다. 그러곤 밥상을 치우라고. 서운하고 억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닫힌 안방 문 앞에 섰다. 두 사람이 나에 대해 하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들으면 안 되는 말으 듣고 말았다.
당신은 쟤가 정말로 특별하다고 생각해? 쟤는 평범보다 한참 아래야. 평범하기에는 너무 게으르거든. 우리가 물려줄 재력도 없고, 그렇다고 특별한 재능이나 타고난 인물도 없어. 특별하지 않은 애를, 넌 특별하다 특별하다 하니까, 정말로 특별한 줄 알잖아. 자기 우물에서만 특별하지. 우물도 되게 좁고 얕으면서. 바로잡아야 해. 당신도 알잖아, 돈, 재능, 인물 셋 중 하나라도 가지고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셋 중 하나가 있으면 나머지 둘을 얻을 확률도 높아.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런 거 없어. 당신도 공범자야. 알잖아, 쟤 아무것도 아니라는거. 없어. 특별한 곳에 쟤 자리는 없어. 쟤는 알아야 해. 그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기 위해 얼마나 열심인지. 그런데 그런 모습조차 무시해. 건방이 도를 넘었어. 내가 그렇게 키웠다고? 내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면서 키웠어. 쟨 안 돼. 싫어. 건방 인형을 데리고 사는 것 같아.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나한테 손가락질해. 내가 그렇게 키웠대. 쟨 그렇게 태어났어. 환경에 따라 조금 양호해지거나 더 심각해질 뿐이야. 정신 나간 애가 좋은 부모 만난다고 성인군자 안 돼. 성인군자가 정신 나간 부모 만난다고 미친놈 안 되듯이. 쟤 그나마 내가 키우지 않았으면 벌써 미친년 소리 들었어. 당신 없었을 때, 쟤 없었을 때, 나는 누구에게도 손가락질당해 본 적 없어. 당신이 당신 부모한테 함부로 하는데, 왜 다들 나한테 손가락질하지? 당신은 나 만나기 전부터 부모를 무시했고, 결혼하고도 변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결혼한 뒤로는 다 나한테 책임지라고 하지? 살고 싶지 않아.
그대로 지갑만 들고 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알잖아, 쟤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혹시 모르잖아. 나도 모르는 재능이 어디에 숨어 있을지. 그걸 부모가 찾아 줘야 하는 거잖아. 다른 부모들 다 그렇게 하잖아. 여태 잘 그래 놓고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사실은 나도 내가 형편없는 애일까 봐 매일매일 조마조마한데, 그래서 이것저것 자꾸 해 보는 건데 가망 없는 거였어? 내 부모가 나를 그렇게 진단하고 있었다니. 여기저기 헤매다가 친구 보라의 연습실로 왔다. 피아노로 예고 입시를 준비 중인 보라가 자기네 집은 방음이 안 된다며 한 달씩 요금을 내고 빌려 쓰는 연습실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같이 피아노를 쳤는데, 나는 손이 작아 중도에 포기했다. 아니, 갈수록 재미도 없고 나보다 남들이 더 잘 치는 게, 맨날 혼나는 게 싫어서 그만두었다.
“연습실 얻어 줬어? 니네 엄마 끝내준다. 구경 가도 돼?”
“거기 방 되게 작아.”
“잠깐 구경만 할게.”
주제에 웬 연습실? 그래서 따라가 본 거였다. 노래방처럼 연습실 방이 쪼르륵 있었다. 어딘가에서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기타 소리, 피아노 소리도 시끄럽지 않게 들렸다. 보라가 쓰는 방은 아주 작았다. 피아노와 벽에 걸린 에어컨이 전부였다. 제자리 운동도 하기 힘들 만큼 작은 방. 그런데 왜 그렇게 배가 아팠을까. 나도 계속 피아노 할걸. 아니면 바이올린이라도.
“너 뒷사람은 언제 와?”
“없어. 나만 써. 고시원 같은 거야. 어쩔 땐 여기서 자고 바로 학교로 가.”
우리 집보다 더 잘살지도 않았다. 단지 나보다 피아노를 조금 잘 칠 뿐이었다. 중간에 그만둬서 그렇지 나도 계속했으면 실력은 비슷했을 것이다. 나는 그만두었고 보라는 그만두지 않았을 뿐인데 차이가 그렇게 컸다.
“미진아, 나 연습해야 해.”
가라는 말이었다. 더럽고 치사해서 간다. 그날 그렇게 엿 같은 기분으로 돌아왔었다. 그런데 오늘, 나도 모르게 이 연습실로 오고 말았다. 다행히 입구에서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때 보라가 방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도 봤었다. 보라가 있으면 그냥 놀러왔다고 하고, 없으면 내가 누르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똑똑. 노크해도 반응이 없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보라는 없었다. 의자에 보라의 악보만 놓여 있었다. 나는 그제야 다리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다른 방에서 노래 연습하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비로소 울음이 터졌다. 태어난 게 너무 억울해서, 남들보다 잘난 게 없는 내가 불쌍해서, 능력도 없으면서 믿어 주지도 않는 내 부모가 너무 싫어서 울었다. 죽여도 되냐고? 그래 죽여! 다시는, 당신들 안 봐....
내가 연습실에서 몰래 지내는 것을 들킨 것은 꼭 일주일 만이었다. 밤에 우유와 빵을 사 가, 보라가 있으면 주려고 왔다는 핑계를 대려고 했는데, 다행히 없어서 내가 먹고 잤다. 집에서 나올 때 지감만 챙겨서 가방조차 없었다. 다이소에서 이천 원 주고 산 무릎 담요를 쇼핑백에 넣어 다녔고, 휴대전화도 없어 아무하고도 연락하지 않았다. 낮에는 지하철을 타고 나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나 홍대 놀이터 근처를 돌아다녔다. 돈이 떨어져 알바를 하려고 해도 마땅한 곳이 없었다.
“몇 학년이에요?”
“고2요.”
“진짜? 중학생 같아 보이는데. 근데, 오전부터 일할 수 있다고요?”
“네...”
“연락처 주고 가면 나중에 연락할게요.”
“연락처 없는데, 제가 내일 다시 오면 안 될까요?”
“미안해요, 우리는 안 되겠어요.”
돈이 거의 다 떨어져 컵라면도 사 먹을 수 없었다. 지갑에 몇천 원 있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쓰지 않았다. 오늘도 없겠지, 하고 빈손으로 연습실 문을 열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보라는 밤 10시까지만 연습하고 간다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늘 11시에 연습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날은 보라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 너 마침 있었네. 놀러 왔지.”
“이 밤에? 나 10시에 간다고 했잖아.”
“혹시 해서 왔지.”
“나 다 알아.”
“뭘?”
“니네 아빠한테 전화 오고, 니네 담임한테도 불려 갔었어.”
“보라도 이틀째는 눈치채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사흘째부터 음식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저는 기껏해야 물이나 우유, 과자나 먹는데 컵라면 같은 냄새가 났다는 거다. 환기가 되지 않는 방이라 음식 냄새가 나면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나를 의심했다고 했다.
“미안하다.”
“근데 미진아, 너 여기 계속 쓰면 안 돼. 방 비밀번호 바꾸려고 했는데, 말하고 바꾸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기다렸어. 너도 피아노 쳐 봐서 알잖아. 신경 쓰이면 연습 안 되는 거. 우리 엄마도 여기 되게 힘들게 얻어 준 거거든.오늘만 자고가. 내일 번호 바꾼다.”
보라가 그렇게 말하고 나갔다. 친구라는 년이 어쩌면 저럴 수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걱정부터 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면 나도 내 부모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속풀이라도 했을 텐데. 내 연습 방해되니까 너 오지 마. 야, 너 무슨 친구가....하고 따질 수가 없었다. 사실은 진짜 친구가 아니니까. 어렸을 때 같은 피아노 학원에 다닌 사이. 그리고 중학교에서 다시 만난 사이. 나한테 보라는 별것도 아닌 게 콩쿠르에서 몇 번 입상한 뚱땡이일 뿐이다. 그런 애한테 저런 말을 듣다니. 더러워서 나간다! 해야 했는데, 더러워도 갈 곳이 없어, 아무 말도 못 한 나도 바보 같았다.
“어디 갔다 왔니?”
“내 물건만 가지고 다시 나갈 거야.”
“아빠랑 얘기 좀 하자.”
“할 얘기 없어."
“앉아.”
아빠가 소파에 억지로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지금 약 먹고 잠들었다고 했다. 엄마가 아프다고. 나도 아파. 그렇게 퍼붓고 나보다 더 아파? 따지고 싶었으나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아빠가 하는 말을 듣기만 했다. 엄마는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다. 긴 시간 꾹꾹 눌러 참은 것이 누적된 우울증. 현재 매우 심각하다고 했다.
“그렇게 말 잘하는 우울증도 있어? 신기하네.”
“계속 참으면서 좋은 말만 해 주다가, 이제는 그동안 하지 못한 독한 말만 남은 거지. 그런데 성정이 독한 말을 잘 못 하는 사람이라서, 하고 난 뒤에는 또 그것 떄문에 아프다. 엄마 아주 위험한 상태야.”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와 아빠의 불화도 늘 엄마가 중재했고, 내 진로 때문에 큰소리를 치는 아빠도 늘 엄마가 막았다. 그리고 나의 온갖 짜증 역시. 어쩌면 그래서 더 충격이었는지 모른다. 아빠가 그랬다면 일기장에다 욕하고 끝났을 일인데, 엄마가 그러니까 어이가 없었다. 만만한게 무시한 만큼 충격받은 것이다. 그리고 아빠는 의사 말에 충격 받았다고 했다. 가족들이 어쩌면 이렇게 둔감할 수가 있죠? 그동안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은 것 같은데, 체중 변화도 못 느끼셨나요? 아빠는 내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따.
“언제는 살찐 적 있었어?”
“우리가 이랬구나. 이랬어.”
“내 걱정은 안 해?”
“했다. 처음 며칠은 친구네 있겠지 했어. 그런 말 듣고 니 마음이 안 좋았을 테니까. 이제 실종 신고하려고 했다. 와서 다행이다. 잘 왔어. 전에 엄마가 죽여되 되냐고 했던 말, 꼭 너한테만 한 말이 아니었어.”
“그럼?”
“우리 가족 모두일 수도 있었다.”
아빠는 당장은 친구가 더 위로가 돼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연락만 되면 억지로 들어오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며칠 친구와 함께 지내다 오라고. 그러나 나는 친구와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내 친구라고 나서는 아이가 없었다. 제 번호는 맞는데, 미진이하고 친하지가 않아서요. 학원 친구라고 들었는데 혹시.... 미진이랑 같은 학원에 다니는 건 맞는데요, 저하고 친구는 아니에요. 혹시 미진이하고 친한 애 좀 알 수 있을까? 전 잘 모르겠는데요. 아빠는 사라진 딸과 아픈 아내 사이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한 사람인지 그제야 깨달았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 집에 매우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구나. 아내는 집에서, 딸은 밖에서, 자살할 것만 같았다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아빠는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떤 며칠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평범한 가장으로 집에는 아내와 딸이 있던 그때로.
“나 밖에서 생각해 봤는데, 학교 그만두려고.”
“진지하게 생각한 거야?”
“어. 후회되면 다시 복학할게. 믿어 줘.”
“그러자 그럼. 그래도 집에서 며칠 더 생각해 봐.”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면서 엉엉 울었다. 막상 나가 보니 가출 청소년인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몇 번이고 돌아오고 싶었다. 잘난 것도 없어 보이는 애들이 교복 입고 떼로 몰려다니며 웃어 젖히는 모습도 보기 싫었다. 나도 며칠 전까지는 그랬는데. 학원은 가기 싫고, 정희가 난 과외 해, 하는데 왜 그렇게 폼 나 보이던지, 나도 그러고 싶어서 엄마에게 통보했었다. 과외 할 거야. 하구언비의 네 배 이상을 내야 하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었다. 바닥을 기는 내 성적이 과외 한다고 오를 일도 없었다. 어차피 재미로 받는 과외, 재미만 있으면 끝이었다. 나도 잘못하긴 했지.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집에 오는 순간 반성은 싸악 사라지고, 너무나도 싫은 엄마 아빠만 있었다. 엄마가 마음의 병에 걸렸다고? 나도 마음이 아프다고 씨발! 실종 신고를 한 것도 아니고 하려고 했다니.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주 간단한 대답을 들었다. 그러자 그럼. 어쩌면 그토록 간단하게 말할 수 있어, 아빠. 한 번쯤은 교과서적인 충고라도 해야지. 네 인생을 생각해 봐라. 그런 말이라도 해야지. 나 진짜 아무것도 아닌 애 맞구나? 온몸에 비누를 칠하고 바닥에 앉아 펑펑 울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한동안은 집에만 있었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했고, 무엇도 할 것이 없어 괴로웠다. 학교 다닐 때는 영어 학원을 다니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서 학원을 등록하려니 뒤가 뜨거웠다. 잘 모르겠는데요? 학교 다닐 때는 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내가 모르겠다는데 뭐? 하고 건방을 떨었다. 그런데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 잘 모르겠다는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영어 학원을 그만두었다. 영어 학원은 아빠의 권유로 다녔던 거다. 학교는 다니지 않아도 외국어 하나쯤은 공부해 두는 게 좋다고 해서. 그래서 만만한 영어로 덜컥 등록했는데, 학교에서 배운 것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나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없었다. 배울 생각이 없었다. 영어 선생님이 꼴불견이었다. 선생님이 재수 없으니까 그 공부는 안 해도 되는 거였다. 다음에는 중국어 학원에 등록했다.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알파벳보다 더 짜증 나는 한문이 있었다.
“아빠는 그래도 대학가지 간 머린데, 왜 안 물려줬어?”
“대학가지 갈 머리가 아니었는데 대학까지 가려고 죽도록 노력했지.”
“나도 노력했어.”
“노력은 니가 한 양만 따지는 게 아니라 남이 한 양과 비교해서 따지는 거야. 니 소주잔이 꽉 차면 뭐하냐? 남의 맥주 컵 반도 안 되는데.”
아빠와는 위로나 응원 따윈 어떤 필터로 싸악 거른 듯한, 냉담하고 현실적인 대화만 오고 갔다. 짜증이나 투정은 작은 온기라도 있어야 가능한 거였다. 이토록 차가운 집에서는 내뱉은 투정조차 뾰족한 고드름이 되어 다시 내 입에 꽂혔다. 닥쳐. 눈감다 주고 물러나 주는 일은 더는 없었다. 아이고, 딸 딸 딸! 엄마 속 좀 그만 썩이지? 하고 엉덩이를 탕탕 내려치던 엄마는 이제 가만히 앉아만 있다. 짜증 나게 왜 이래? 결국 나한테 넘어올 엄마라는ㄴ 것을 알아 늘 만만했다. 이제 그런 엄마는 없다. 낳았으니 키우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 엄마 아빠는 나를 싫어하고 있었다. 나의 거대한 착각이 무너진 것이다. 부모는 제 자식이 살인자라도 아끼고 사랑한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그 부모를 욕했다. 자식이 남을 죽이든 말든 자기 눈에만 예쁘면 되냐고. 그래 놓고 내 경우에는 말이 달라졌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내 부모는 나를 미워할 수 없다. 부모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부모도 자식을 싫어할 수 있었다. 못나서 부끄러운 자식이 아니었다. 싫은 자식이었다. 내가 뭘 어쨌는데. 왜 다 내 탓이야? 엄마는 이제 전처럼 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미진아,라고 또박또박 불렀다. 딸이 아니라 그저 같이 사는 미진이라는 아이를 부른느 것 같았다.
“미진아, 물 떨어졌다. 주문 좀 해.”
엄마는 오로지 약을 먹고 잠들기 위해 물만 찾았다.
“엄마, 내가 학교 그만둔 건....”
“알아서 했겠지.”
그러던 어느 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시골 할머니네서 연락이 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자살이었다. 나와 엄마는 내려가지 않았다. 아빠만 혼자 갔다가 올라왔다. 시골에서 돼지를 키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는 그 정도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별 느낌도 없었다. 그래도 아빠의 아버지가 죽었으니 집에 뭔가 다른 기운이 생길 줄 알았다. 그러나 어떤 변화도 없었다.
“넌 왜 남들처럼 학교도 못 다니니? 남하고 비교하는 거 싫지? 그런데 니가 남하고 비교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니?”
엄마는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이상한 말도 자주 읊조렸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식을 사랑해야지. 남들은 다 욕해도 부모는 그러면 안 되지. 자식은 부모를 사랑해야지. 어떤 부모라도 무조건 존경해야지. 남들이 다 욕해도 자식은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엄마 옆에 있으면 더 심해질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 싫어? 그렇게 절망스러울 만큼?
“아빠, 시골에서 사는 할머니, 이제 혼자 살아?
“응.”
“내가 할머니하고 같이 살게.”
“거기 힘들다.”
“나 거기서 복학해서 학교 다니려고.”
“엄마 너 때문에 그렇게 된 거 아냐. 우리 모두 때문이지.”
“알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더는 돼지를 키우지 않는다고 했다. 할머니 혼자 키울 기운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축사를 소독하고 볏단을 덮어도 끔찍한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겨울에는 좀 나았지만 봄이 되면 냄새도 풀리는지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바로 복학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두 해나 뒤처졌다. 그러나 힘든 것은 학교도 돼지 냄새도 아니었따. 동네사람들이었다. 내가 여기에 온 날부터 신기한 동물 구경하듯 나를 구경하러 왔다. 쟤가 동주 딸내미여? 먼젓번에는 왜 안 왔대? 하이고야, 저렇게 큰 딸이 있었네. 니 엄마는 얻다 버리고 혼자 왔냐? 집에 사람만 잘 들어왔어도 그런 사달 안 났지, 암. 아들이 지랄이면 며느리라도 찬찬한 게 왔어야지. 할아버지의 자살이 왜 엄마 탓이지? 찬찬한 여자가 미쳤다고 지랄맞은 남자와 결혼하나? 씨발....
“시끄러워 진짜!”
나는 마루에서 밥을 먹다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야, 야, 저 가시나 승질 있다. 가시나가 동주 놈 승질까지 빼닮았네. 가자, 가. 돼지야, 우리 간다이. 그러고 갔다가 다음 날 다시 왔다. 너 밥은 먹었냐? 네. 뭐랑 먹었냐? 대충 먹었어요. 대충 뭐?
“대충이 대충이지 뭐가 어딨어요?”
“하이고 가시나, 떽! 그러면 못써! 어른이 묻는데.”
꼬부랑 할머니가 날마다 꼬부랑길을 넘어와 트집을 잡았다. 산속에 할머니 혼자 산대서 조용히 간섭 안 받고 살수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빽빽하게 사는 우리 아파트보다 더 말이 많았다. 어떤 할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말을 걸었다. 어디 가? 어, 저기 장독 좀 알아보려고. 주둥이 나간거? 잘 댕겨와. 너는 댓바람부터 어디 가냐? 조합에 일이 있어서요. 그려, 저 참외밭 아래 수로 좀 손보라고 해라. 예.
“어이? 이 가시나, 니 인제 핵교 댕기나?”
“네.”
“할머니는 어짜고?” “그럼 할머니를 학교에 데리고 가요?”
정말 대단한 마을이었다. 그런데도 여기가 집보다는 나았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마주 보고 짜증 내는 것보다 떨어져서 그리워하는 게 차라리 나은 것 같았따. 졸업하면 졸업장 들고 엄마한테 가야지. 나도 평범한 애들처럼 학교 잘 다녔다고 해야지. 나는 뭐 못해서 안 하는 줄 아나. 가끔 아빠에게 전화해서 엄마 안부를 묻기도 했다.
“아빠, 엄마는?”
“잘 있어. 너는 거기 어때?”
“괜찮아.”
“다행이다. 그래도 힘들면 다시 와.”
“응.”
솔직히 이제는 엄마가 무섭다. 예쁘네, 잘했어, 했던 말들이 다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예쁘지 않았고, 잘 하는 것도 없었다. 솔직히 나도 알고 있었다. 순진한 엄마 눈에 딸 콩깍지가 씐 덕에 무조건 좋게 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했다. 씨발, 소름 끼쳤다. 그동안 내가 연기한 것까지 다 알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아기처럼 굴면서 휴대전화를 바꿔 달라고 한 것, 울면서 피아노를 그만 두겠다고 한 것, 초라한 표정으로 아이패드를 사달라고 한 것 등등. 뭔가를 잘하려면 병신처럼 그것만 파야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 일인지 잘 알아서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다. 적당한 쇼 몇 번이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하나. 처음부터 지적했으면 내가 그런 생쇼는 안 했을 것 아닌가. 쪽팔려서 엄마를 볼 수가 없었다. 홧김에 가출했다가 자퇴까지 하고 말았다. 학교 애들은 내가 집에서 공주처럼 사랑받는 줄로 아는데, 그래서 제멋대로 싸가지 없이 군다고 뒤에서 욕하는 것도 아는데, 가출로 다 들켜 버렸다. 여기 와서 좋은 것은 더는 학교에서 공주짓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공주가 불치병에 걸려 공기 좋은 곳으로 왔다고 뻥치기에는 내가 너무 건강했다. 게다가 어디 어디 폐축사라고만 해도 할머니네 집을 다 알았다. 할머니 연금과 아빠가 보내 주는 생활비까지 하면 둘이 사는 데 큰 불편은 없다. 그래도 곧 굶어 죽을 것처럼 아예 가난한 척했더니 마음은 더 편했다. 내 나이가 많아서 시비 거는 애도 별로 없었다. 나중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피곤해서 앞일까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지금은 저 돼지 똥 냄새와 싸워야 하고, 밤에 불을 켜는 것 때문에 할머니와 싸워야 하고, 녹슨 대문에 파란색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 더 급하다. 내일은 옆 동네에 장이 선다. 창고를 살펴봐야겠다. 이번에는 뭘 내다 팔까. 페인트를 좀 넉넉하게 사서 이왕이면 벽도 칠하면 좋은데. 팔리지도 않는 나물은 왜 그렇게 가져다주는 걸까. 잡곡이 무거워도 국내산이라 값은 더 좋은데. 가끔 찾아오는 관광객들도 잡곡은 한 되 두 되 잘 사 간다. 보니까 회관 뒤 들깨밭은 벌써 깨 털기가 끝났던데, 누구네 밭이었더라. 먹어 보라고 가지고 올 때가 됐는데. 내일은 약콩이나 가지고 가야겠다. 가방에 책 대신 콩 자루를 넣어 가면 된다. 할머니 약값 때문에 오후에 장에 나강챠 한다고 하면 담임도 별말 없이 조퇴를 시켜 준다. 아주 거짓말은 아니다. 장에 갔다가 올 때는 박카스라도 꼭 사 오니까. 내 미래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꾸는 꿈은 있다. 낡아 빠진 이 집을 구석구석칠하고 예쁘게 만드는 것이다. 자야겠다. 아까부터 할머니가 불 끄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있다. 끈다고 했잖아요!
작가소개
김려령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7년 『완득이』로 제 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마해송문학상,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등을 받았다. 2012년 『우아한 거짓말』이 IBBY 아너리스트에 선정되었다.
줄거리
미진은 집에 와 엄마에게 과외를 받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엄마의 반응은 평소와 달랐고 미진은 이에 화가 난다. 이후 아빠가 돌아오고 부부는 안방에서 따로 대화를 한다. 대화의 내용은 미진이 하나도 특별하지 않고 오히려 평범에 달하지도 못하다는 내용이었다. 대화를 엿듣던 미진은 그대로 지갑만 들고 가출한다. 그리고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의 연습실에 몰래 숙박하다 결국 들켜 집에 돌아오게 된다. 아빠는 미진에게 엄마가 꽤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집안의 분위기는 더 싸늘해져간다. 엄마는 더 우울증이 심해져가 날카로운 말을 하고, 아빠도 분위기때문인지 미진과 냉담하고 현실적인 대화만 하게 된다. 이에 지친 미진은 할머니가 계신 시골로 가게 된다.
인물관계
미진 - 철이 없는 여중생으로 단순히 과외 선생님이 근사하다는 이유로 과외를 받으려 한다. 평소와는 다른 엄마의 태도에 위화감을 느낀다.
엄마 - 한동안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우울증을 느낀다. 이 때문에 생각만하던 말들을 실제로 내뱉는다.
아빠 - 엄마의 우울증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우울증의 원인이 자신들의 책임이라 자책한다.
Situation
미진은 단순히 과외선생님이 근사하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과외를 받을거라 통보한다. 그러나 엄마는 평소와 다르게 반응이 차가웠고, 이윽고 돌아온 아버지와 둘이서 대화를 나눈다. 엄마는 아빠에게 미진이 하나도 특별하지 않고 오히려 평범에 달하지도 못하다고 말한다. 그 대화를 엿듣던 미진은 가출을 하게 된다. 친구의 연습실에서 몰래 숙박하던 미진은 들켜 결국 돌아오고 집안이 분위기에 견디지 못하고 시골로 떠난다.
Space
식탁 - 원래는 가족 전부가 모여 밥을 먹는 장소이지만 엄마 혼자 끼니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어 엄마의 마음이 가족에게서 멀어졌음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Stage
엄마와 아빠가 안방에서 나누는 대화
당신은 쟤가 정말로 특별하다고 생각해? 쟤는 평범보다 한참 아래야. 평범하기에는 너무 게으르거든. 우리가 물려줄 재력도 없고, 그렇다고 특별한 재능이나 타고난 인물도 없어. 특별하지 않은 애를, 넌 특별하다 특별하다 하니까, 정말로 특별한 줄 알잖아. 자기 우물에서만 특별하지. 우물도 되게 좁고 얕으면서. 바로잡아야 해. 당신도 알잖아, 돈, 재능, 인물 셋 중 하나라도 가지고 태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셋 중 하나가 있으면 나머지 둘을 얻을 확률도 높아.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런 거 없어. 당신도 공범자야. 알잖아, 쟤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없어, 특별한 곳에 쟤 자리 없어. 심지어 지가 무시하는 거리의 저 사람들, 그 속에조차 쟤 자리는 없어. 쟤는 알아야 해. 그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기 위해 얼마나 열심인지. 그런데 그런 모습조차 무시해. 건방이 도를 넘었어. 내가 그렇게 키웠다고? 내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면서 키웠어. 쟨 안 돼. 싫어. 건방인형을 데리고 사는 것 같아.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나한테 손가락질해. 내가 그렇게 키웠대. ......
- 이 대화를 통해 엄마의 우울증의 원인과 그 정도를 알 수 있다. 미진은 이 대화를 엿듣게 되고 가출하게 된다.
작품의 의도
그동안 부모의 사랑은 당연하고 또 무한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부모도 힘들고 지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울증에 지친 엄마가 딸을 남들보다 더 냉철하게 평가해 평범하지도 않다고 말하는 장면은 공포스럽다. 엄마의 사랑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또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