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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에게 수갑을 채우다! - 최세용 검거記 - 2012년 7월 8일, 태국이민청 협조자인 Ittipol 수사관으로부터 40여장의 사진이 첨부된 이메일이 왔다. 이메일 내용은 제쳐두고 첨부된 사진부터 급히 쭉 훑어 내려가던 중 장발을 한 야윈 얼굴에 뿔테 안경을 쓰고 애써 시선을 카메라로부터 외면하고 있는 중년 한국인 남자의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다. 동시에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확 풀어져 의자를 뒤로 젖혀 앉으며 입으론 깊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놈 이었다. 최. 세. 용.
드디어 악마의 최근 행적을 발견한 것이다. 2007년 안양환전소 여직원 살인사건의 주범이자 2008년~2011년간 필리핀내에서 발생한 10여건의 아국인 납치강도 및 살인 범죄 조직의 수괴. 경찰청 인터폴에서 수배 중이던 중요 국외도피사범 리스트의 첫 번째 인물.
수배전단의 사진보다 다소 늙고 여윈 모습에 나름대로 변장을 하였지만 틀림없는 최세용 이었다. 경찰청으로부터 수배전단이 하달된 지 2년여, 최세용의 처 S가 필리핀에서 태국으로 출국하였다는 첩보가 필리핀 주재관으로부터 통보되어 온 지 1개월여 만 이었다.
이보다 앞서 1주일 전, 이미 태국 이민청 협조자로부터 최세용의 처 S가 2012년 2월초 태국북부 미얀마 접경지역이며 세계적인 아편생산지로 잘 알려진 이른바 Golden Triangle에 위치한 치앙라이주 메사이 국경검문소를 거쳐 태국을 출입국한 기록을 통보 받았다. 기록 검토 결과, S는 2011년12월 태국에 입국하였고 2012년 2월과 2012년 5월 등 2회에 걸쳐 당일 출입국을 반복하였음이 드러났다. 이른바 비자런(Visa Run)을 한 것이다.
--참고-- 1) 태국은 공항만, 국경검문소를 불문하고 모든 입국자에 대해 안면 사진촬영을 의무화하고 있음. 2) 방콕에서 치앙마이는 700km, 치앙라이는 800km 거리이며 항공기로 1시간여, 차량으로는 10시간 이상 떨어져 있음. 3) 한때 양국은 비자면제협정에 의거, 관광객의 경우 무비자로 입국하여 3개월간 체류할 수 있는 바, 태국 체류 한국인 상당수가 이 규정을 이용하여 정식비자를 획득하지 않고 3개월 체류기간이 지나면 가까운 국경검문소를 통해 잠시 출국하였다가 당일 재입국하여 다시 3개월 무비자 체류자격을 얻는 편법으로 장기체류하고 있는데 이를 Visa Run이라 함.
오랜 경찰주재관 경험상, 태국 거주 한국인이 비자런을 했다는 것은 곧 장기체류 의사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무 연고도 없는, 그 것도 과거 마약왕 쿤사가 지배하던 태국북부 국경 황금의 삼각지대 인근 지역에서 왜, 무엇 때문에 장기체류를 하려고 했던 것인가.
아무리 추정해 봐도 답은 하나. 최세용과 함께 도피, 은신하기 위한 목적임이 분명하였다.
추리는 다시 계속되었다. 외국에 있는 한국인은 가끔씩이라도 반드시 한국음식을 찾는 경향이 있고, 그렇다면 S가 출입국을 반복한 메사이 국경검문소 인근에 한국식당이 있는 곳은 한국인들이 제법 많이 거주하는 치앙라이와 치앙마이 밖에 없으므로 이들 지역에 은신하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클 것이었다. 또한, 가까운 치앙라이 시내만 해도 차량으로 2시간 거리이므로 만약 내 추리가 맞다면 비자런을 함께 다녀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치앙라이 및 치앙마이주에 거주하는 아국인이 대략 2,000명 정도이고 여기를 거쳐 입국하는 한국인 관광객은 소수 이므로 메사이 국경검문소를 통해 입국하는 한국인은 어림잡아 하루 평균 30명 남짓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전수 확인이 가능한 수준 아닌가?
4) [2,000명x4회(1년에 4회 비자런)+4,000명(순수 관광객 추정치, 1년)]÷365일=32.9명
즉시 태국이민청 협조자에게 연락, S가 출입국을 했던 날 같은 검문소를 통해 입국한 모든 한국인 남자의 사진을 보내줄 수 있겠는지 문의하였다. 어렵겠지만 힘써 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 꼭 보내달라고 거듭 거듭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후 1주일의 초조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부탁했던 사진이 왔던 것이다.
최세용이 출입국시 사용한 여권은 2011년말 최세용의 친동생 최세X에게 발급된 여권인 것으로 확인되었고, 기록 조회 결과 최세X는 최근 5년간 한국을 출국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즉, S는 2011년 말 필리핀에서 최세용을 만나 그의 지시에 따라 한국에 입국, 동생 최세0 명의의 여권을 발급받고 다시 필리핀으로 가지고 가서 최세X의 여권을 사용하여 둘이 함께 2011년 12월 방콕을 통해 태국에 입국한 뒤 치앙라이 인근지역에 은신해 있으면서 2012년 2월말과 5월말 2회에 걸쳐 비자런을 해왔다는 추리가 가능했다.
그렇다면 다음 번 비자런은 3개월 후인 8월말경이 될 것이었다. 즉시 태국경찰청 인터폴과 이민청에 최세용에 대한 인터폴 적색수배 영장과 함께 용의자가 치앙마이 또는 치앙라이 인근에 거주하고 있으며 8월 중 비자런을 위해 메사이 국경검문소를 방문할 가능성이 크므로 발견시 체포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하였다. 이어 치앙마이 및 치앙라이 한인회와 동 지역에 있는 모든 한국식당에 수배전단 통보와 함께 발견시 즉시 공관에 신고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2012년 8월 중순, 최세용의 비자런 날짜가 다가옴에 따라 함께 근무하던 경찰주재관으로 하여금 최세용 체포를 위한 치앙마이 출장을 지시하였지만 공교롭게 같은 시기에 예정되어 있던 공관장의 푸켓 출장에 해당 주재관의 동행 출장이 계획되어 있어 부득이 이틀을 늦추어 치앙마이로 가게 되었는데, 최세용과 S가 예상보다 2주일 정도 빠른 날짜에 이미 비자런을 다녀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쉬웠다. 출장비용 및 출장기간을 여유 있게 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되어 나름대로 예상날짜에 맞춘 출장이었는데 허를 찔린 것이었다. 무엇보다 주재관의 거듭되는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메사이 국경검문소 측에서 최세용이 비자런을 다녀간 것에 대해 통보해 주지 않은 점이 매우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지난일. 국경검문소 근무자들로서는 최세용 검거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최세용이 추적을 눈치 챈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직은 실망하기엔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최세용이 눈치를 챘다면 애당초 비자런을 다녀가지도 않았을 것이 아닌가.
주재관으로 하여금 이왕 출장을 간 김에 다음 번 비자런 예상 날짜인 11월에는 반드시 검거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단단히 하고 올 것을 거듭 당부하면서, 특히 국경검문소 책임자를 만나 모든 검문소 직원에 대해 최세용과 S의 사진을 책상위에 붙여 놓고 항시 확인할 수 있도록 적극 요청할 것을 지시하였다. 무엇보다 용의주도한 최세용이 S로 하여금 먼저 국경을 통과하도록 시키고 자신은 S가 체포되는지 여부를 지켜본 뒤 S 보다 뒤에 국경을 통과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 국경검문소 근무자들로 하여금 S 혼자 국경을 통과할 경우 바로 검거하지 말고 그녀를 미행하여 최세용을 검거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5) 태국에는 2명의 경찰주재관이 근무 중인 바, 2명이 동시에 자리를 비울 경우 여타 사건사고 처리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감안, 일과시간 중 적어도 1명은 항시 공관에 위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음. 6) 태국은 출입국관리업무(이민청)도 경찰이 담당함. 7) 당시 S씨도 최세용의 동생 최세X의 여권을 발급받아 최세용에게 전해준 혐의 등으로 수배된 상태였음.
주재관은 몇 번의 식사와 음주 등으로 친숙하게 어울리는 기회를 만들어 내가 지시한 모든 조치를 훌륭히 수행하였고, 아울러 1주일 동안 치앙마이에 더 머물면서 지역내 모든 한국식당과 렌트카 업체 등을 대상으로 탐문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최세용의 행적을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또 다시 지루한 기다림이 계속되었다. 그동안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각 지역 교민회와 교민잡지 등을 통해 수배전단을 홍보함과 아울러, 시간 날 때마다 치앙라이 이민청 및 메사이 국경검문소에 서신과 전화를 통해 최세용 검거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고 적극 협조해 줄 것을 거듭 요청하는 것뿐이었다.
2012년 11월 3일 17:00경. 토요일 이었지만 잔무 처리를 위해 잠시 사무실에 나왔다가 15:00시 경 귀가하던 중 대사관의 사건사고 담당 태국인 행정원 ‘똠’ 한테서 전화가 왔다. 휴일인데 전화하는 것을 보니 또 무슨 사건사고가 생겼구나 하는 생각으로 받았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방금 메사이 국경검문소 Saichon 경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금일 10:00경 S가 비자런을 위해 버스를 타고 검문소에 나타났는데 일단 출국스탬프를 찍어 출국시켜 준 뒤 직원 2명을 사복 차림으로 대기시켰다가, 13:00경 S가 다시 입국하는 것을 보고 입국스탬프를 찍어 준 뒤 대기했던 사복 직원 2명이 S가 타고 온 버스를 타고 미행하는 중이랍니다” 라는 보고였다.
즉시 ‘똠’으로 하여금 Saichon 경사에게 전화하여 감사 인사를 전하고 눈치 채지 않도록 S를 미행하고 최세용을 발견하기 전 까지는 절대 체포하지 말도록 강조 요청할 것“을 지시하고 바로 차를 돌려 사무실로 되돌아 왔다.
초조한 마음으로 연신 ‘똠’에게 전화를 걸어 결과를 독촉하던 차에 18:30경 드디어 희소식이 왔다. 미행에 나선 사복직원 2명이 18:00경 치앙마이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뒤 S가 치앙마이 시내 커피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 들어가 S를 만나는 최세용을 발견, 신분을 밝힌 뒤 여권제시를 요구하였고 최세용이 송동환(가명) 명의의 위조여권을 제시하자 최세용의 사진이 첨부된 인터폴 수배전문을 제시한 뒤 위조여권 제시 혐의로 18:30경 체포하였다는 것이다.
마침내 악마에게 수갑을 채웠다.
8) 최세용은 현재 태국내에서 위조여권 행사 및 밀입국, 공문서허위기재 등으로 9년10개월의 형이 확정되어 복역 중인 바, 필리핀내 범죄 피해자 및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감안하여 하루빨리 한국으로 강제송환하기 위해 한태범죄인인도조약에 따른 임시인도를 요청하여 현재 범죄인인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음.
-- 악마에게 수갑을 채우신 경찰관들 정말 수고 많으셨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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