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멀/단편] [정엘+세이] 여긴 어디?! 下-(2)

[바루나]

크로아첸은 집무실 문 앞에 섰다.

여긴 어디?!

[정엘+세이]

by. 바루나

“어머.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씨 아니야? 왜 여기서 자고 있지?”

젠장, 나는 이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크로아첸의 집무실에는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술내음을 풍기며 잠을 자고 있는 이프리트 뿐이었다. 엘뤼엔이 뚫어놓았던 벽은 여전히 휑한 상태였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벌써 없어졌나보네.”

프레이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좀 도와줄까? 신계도 구경해볼 겸.”

“저는 놀러온 게 아닙니다.”

“에이, 튕기기는~!”

프레이아는 귀엽다는 듯, 내 볼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왜 하필 많고 많은 신 중에서 이런 성격의 신과 만나게 되었을까. 더없이 매혹적이고 우아한 성격이라는 프레이아에 대한 문헌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보여줄 수만 있다면 저자들에게 지금의 광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기다리고 있으면 크로아첸 님이 올 겁니다. 그 때 합류하는 게 나을 것 같군요.”

“그러면 크로아첸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

“……네?”

프레이아는 지겹다는 듯 말했고, 나는 멍하니 물었다. 프레이아는 씨익 웃었다.

“내가 돌을 망가뜨렸으니까 특별히 레이뮈스를 찾는 걸 도와줄게. 내가 있는 게 훨씬 도움되지 않을까?”

“…….”

제발 그냥 얌전히 돌아가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프레이아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계속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에……? 세이?”

문 너머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엘이 있었다.

“왜 이쪽으로 오신 겁니까.”

“길을 잃어버려서……. 아하하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건만. 엘은 어색한 웃음을 뱉어내며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하면 이쪽에서 길을 잃을 수 있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결국 그만두었다. 더 머리 아파질 대답이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문득, 엘의 시선이 프레이아에게서 멈췄다. 프레이아는 한쪽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안녕, 엘퀴네스씨. 난 아름다움과 유혹의 여신 프레이아라고 해.”

“아, 안녕하세… 네?!”

엘은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인사를 멈추고 멍하니 프레이아를 바라보았다. 물론 환한 분홍빛의 머리카락과, 길다란 속눈썹, 허니 브론드의 노란색 눈동자는 무척이나 여성스러웠지만 말투나 행동거지는 마치 장난꾸러기 소녀를 연상시켰으니까.

“정말로?”

“당연하지. 날 못 믿는 거야? 너무하잖아~.”

“카노스 같아.”

엘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프레이아는 분홍색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면서 말했다.

“카노스 같다니! 왜 다들 내가 그런 능글거리는 놈이랑 닮았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나랑 카노스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몽땅 다르다고!”

“처음 들어보는 말이 아니었던 겁니까…….”

“게다가 무엇보다도 수행천사한테서 도망치고 숨는 능력은 내가 카노스보다 강하단 말야! 카노스처럼 장난질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할 뿐이지.”

“도대체 왜 그런 거에 경쟁심을 느끼는 겁니까….”

“신계에는 싸이코가 너무 많아.”

프레이아의 말에 나와 엘이 번갈아가며 중얼거렸다. 우리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프레이아는 또다시 생글생글 미소를 지었다. 제발 이 이상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렬해지는 순간이었다. 카노스가 어떤 성격의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내 머릿속에서 또다시 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내 착각일 지도 몰라, 라고 마음 한구석으로 생각하면서도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프레이아 님.”

“응? 왜 그래?”

“당신은 ‘진짜 프레이아’가 아니죠?”

“무슨 소리야, 세이?”

순간적으로 프레이아 아니, 가짜 프레이아의 눈에 당혹감이 일렁이는 것을 놓치지 않은 나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속으로 확신했다. 이렇게 허무할 줄이야. 나는 실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주시죠, 레이뮈스 님.”

“레이뮈스?”

엘이 멍하니 그 이름을 되짚었다. 프레이아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에잇, 들켜버린 건가. 모처럼 재미있었는데 말이지.”

그 순간,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는 크로아첸이 숨을 몰아쉬며 집무실 안쪽으로 들어왔지만 프레이아 아니, 레이뮈스를 중심으로 뿜어져 나온 안개가 내 시선을 사로잡아 버렸다. 짙은 안개 때문에 레이뮈스의 인영만 흐릿하게 보였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더 길어지고, 키는 조금 커지는 변화는 알아볼 수 있었다. 이윽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안개가 확 걷혔다. 그리고 여신의 모습을 한 레이뮈스가 있던 자리에는 원래의 모습을 드러낸 레이뮈스가 서 있었다.

허리를 덮는 길고 새하얀 순백의 은발. 하늘빛의 눈동자와 여자라고 착각할 정도로 수려한 이목구비. 단정한 두루마기 복장과 잔잔한 미소가 그려진 얼굴이 마치 신선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갑자기 하늘색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기운도 느끼지 못하는 클로네가 내 정체를 알아챌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어떻게 한 거야?”

나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누군가가 레이뮈스님을 ‘카노스 다음으로 신계 최강’이라고 평가하시더군요. 당연히 카노스님과 닮았다,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우 그거 가지고 신을 몰아붙인 거야?”

“왠지 미의 여신이 아닌 것 같다는 제 느낌도 있었고요.”

“헤에……. 결론은 반쯤은 찍었는데 맞았다, 라는 건가.”

레이뮈스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프레이아’의 모습으로 있을 때의 짓궂은 미소와 같은 의미인 것 같았지만, 마치 속세의 일을 벗어난 듯한 모습 때문인지 신비한 느낌을 주는 미소가 그의 얼굴에 그려졌다. 그리고……

“레이뮈스…….”

순식간에 달려온 크로아첸이 레이뮈스의 멱살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원한이 가득했다.

“저번에도 그렇고, 그 때도 그렇고, 매번 이렇게 도망 다닐래. 너 때문에 진짜……”

“재미있었지?”

“그 시간동안 밀린 서류 처리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이 자식아!”

멱살을 잡힌 처지임에도 레이뮈스는 태평한 얼굴이었다.

“술 한잔 어때?”

“닥쳐!”

“쳇, 모두 모인 김에 모처럼 아껴뒀던 녀석으로 데리고 왔는데.”

어느새 크로아첸의 손에서 벗어난 레이뮈스는 크로아첸의 책상에 걸터앉은 채, 동령풍의 술잔에 술을 한잔 따르고는 한 모금 음미했다. 과일주의 향기가 집무실을 가득 채웠다.

“역시 최고야. 이프리트씨가 깨어있었더라면 같이 또 한잔 했을 텐데. 아직 어려서 그런지 너무 술이 약하다니까. 안타깝게도.”

“이프리트를 이렇게 만든 게 당신이었어?!”

엘이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레이뮈스가 술을 또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물론이지.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근데 금방 곯아떨어져서-”

“말 돌리지 마!”

크로아첸이 소리쳤다.

“이런 식으로 말 돌려서 은근슬쩍 빠져나간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쳇, 뒤끝이 왜 이렇게 긴 거야.”

“니가 당해봐라!”

“근데 근데 집무실 꼴이 왜 이래? 저기 벽에 구멍 뚫려 있는 거. 크로아첸 네가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또 엘뤼엔이 그런 거야?”

“어……. 이프리트가 신계로 오자마자 엘뤼엔에게 갔는데 그거 관리 못했다고 제대로 응징했지.”

“설마 너까지 당한 거야?”

“휴우, 진짜 엘뤼엔 그 자식은!”

신계 최강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절실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레이뮈스에게 표출하던 크로아첸의 분노는 어느새 엘뤼엔에게로 옮겨가 버렸다. 레이뮈스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크로아첸의 어깨를 토닥이며 술 한잔을 권하고 있었다. 나와 엘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래도 금새 나았잖아? 역시 마신의 능력이란 대단하다니까?”

“훗, 이 몸이 조금 대단하긴 하지.”

어느새 그 둘 사이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크로아첸은 기분 좋게 레이뮈스가 따라주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레이뮈스는 크로아첸의 비위를 맞춰 주며 즐겁게 웃고 있었다. 크로아첸의 얼굴이 술기운에 달아오르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 맞다. 너 이름이 세이였지? 차원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했었던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뮈스는 술을 또 한잔 따랐다. 크로아첸에게 그렇게 먹이고도 아직도 술이 남아있는 것이 신기했다. 레이뮈스는 술잔을 나에게 건넸다.

“죄송하지만 저는 아직 술을 못 마십니다만.”

“괜찮아. 이걸 마시고 나면 꿈에서 깰 테니까.”

레이뮈스가 말했다. 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레이뮈스에게 되물으려고 했지만, 강한 어지럼증과 동시에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이! 세이!”

탈리스? 멍하니 몇 번 눈을 깜빡였다. 클로네들이 나를 둘러싼 채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내가 눈을 뜬 것을 보고는 탈리스가 말했다.

“다행이다. 계속 잠에서 안 깨길래 어디 아프기라도 한 줄 알았어.”

“네가 아프면 모든 일이 물건너가니까 몸 관리 좀 하라고. 사내자식이 그렇게 비실비실해서야……”

“라스리프! 제발 그 입 좀 닥쳐주세요. 세이 님은 당신처럼 무식하게 힘만 센 인간이 아니라고요.”

익숙한 얼굴, 익숙한 목소리들이 나를 둘러싸고 재잘거린다. 방금의 그 ‘꿈’이 현실 같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꿈같은 몽롱한 기분이었다. 멍하니 재잘대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나에게 에페스가 다가왔다.

“에페스.”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꿈을 꾸었습니다.”

울부짖는 ‘그녀’가 없는 꿈을.

“알고 있다.”

에페스가 말했다.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필요해서’가 아니었다. 왠지… 자연스럽게 지어지는 미소였다.

“어째서 꿈이라고 최면을 건 거죠?”

엘이 물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세이에게 정이 든 건지 그의 표정에는 약간의 섭섭함이 묻어나 있었다. 레이뮈스는 술을 병채로 몇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신계와 정령계의 일들이 인간계로 흘러가면 곤란해지잖아?”

“그럴 거면 뭐하러 데리고 왔어.”

크로아첸이 말했다. 혀가 조금 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이를 정령계에 데려다 놓은 건 너 같은데. 내가 틀렸나?”

“아니, 정답이야.”

레이뮈스는 생긋, 한번 웃으며 말했다.

“그냥, 여기저기 얽혀있는 복잡한 현실에서 일탈을 맛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사람이라는 건 가끔씩 그런 게 필요한 거야.”

“흐음…….”

“더군다나 ‘그 아이’에게는.”

레이뮈스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 술병을 집무실 한쪽에 던졌다. 맑은 소리를 내며 병이 굴렀다. 그는 조용히 질문했다.

세이라키아 로비니아. 정말 재미있었어. 넌 어땠어, 즐거웠니?

“어땠었나.”

에페스가 물었다. 나는 잠시 꿈에서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정령계, 엘, 이프리트, 트로웰, 미네, 신계, 크로아첸, 엘뤼엔, 마신전, 프레이아, 레이뮈스……. 모든 잔상이 순식간에 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꽤… 즐거웠습니다.”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어쩌면 다시 한번, 그런 꿈을 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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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따위 멍멍이나 줘버려야지.

[잎샘]

왓! 첫댓인가여 헤헤 크로아첸 엘뤼엔의 전철을 밟아가는...?? 쨋든 재밌었습니다!!>< 대반전이였귀!!

[바루나]

키킥.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칭찬 댓글 감사합니다~!!><

[티아]

홀....결론: 이건 꿈이다...인가요...쿨럭...이런 결말이라니 뭔가 허무하네요ㅠㅠ레이뮈스 이남자 능글맞은게 꼭 카농군 같은 겁니다ㅠㅠㅠㅠ뭔가 괜찮은 녀석(?)이다..라는 느낌이네요!

[바루나]

티아님 말씀처럼 유희까지 떠났더라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말이죠ㅠ 시간이 없어서ㅠㅠ

[따앙코옹]

카..카노스같아!!헤에...결말을 꿈인건가요? 흠...그래도 세이가 즐거웠다니 좋네요~!^^&

[바루나]

카노스 같지만, 사실 본 성격은 더 4차원입니다. 레이뮈스가 꿈이라고 최면을 걸어놓은 거고요ㅠ

[셀루]

뭔가 허무하지만... 재밌게 잘 보고갑니다~^^

[바루나]

감사합니다~!

[QWER]

카..카노스의 분신...덜덜덜
잘보고갑니다^^

[[M]世]

검사 완료:)☆

[심심한1人]

스스로 도망치고 숨는 능력이 카노스보다 강하다니...그건 별로 자랑할만한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V]흑영]

좀...허무하지만.....재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