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투둑투둑 창문에 부딪히던 빗방울이 어느덧 폭우가 되어 쏟아지고 있었다. 한아는 은은한 향을 풍기는 커피를 들고 창가로 다가섰다. 어느덧 어둠에 둘러싸인 병원.
곧 있으면 하민 어머니의 수술시간이다. 원래 3시간 전에 수술을 해야 했는데, 이사장 선출 문제로 심히 바쁘신 강순철 과장이 수술 일정을 미뤄버렸다. 보호자의 동의도 없이 자기 멋대로. 자신이 집도하겠다고 나서는 한아에게 화를 내면서까지 말이다.
입에 대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수술실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선생님! 응급환자예요!"
한아는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응급실로 뛰어갔다. 수술이 잡혀있다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다른 선생에게 맡기더라도 급하게 응급처치는 해야 했다. 환자는 10대 여학생으로, 자살 추정이라고 한다. 다행히 숨은 붙어있었다.
"하 형사, 이쪽이네."
응급처치 후 막 수술실을 등졌을 때, 한아는 동료형사와 함께 뛰어오는 도윤과 마주쳤다. 순간의 정적. 하지만 두 사람에게 그 정적의 의미는 달랐다. 한아는 언제나처럼 갑작스러운 도윤의 등장에, 도윤은 반가움으로 인한. 도윤이 먼저 가볍게 웃으며 정적을 깨뜨렸다. 그는 한아에게 한 걸음씩 다가오며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이번엔 한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 학생 담당 형사예요?"
차분한 한아의 목소리. 도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에 뛰어들었다고 했죠. 저 학생의 경우 물속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했고... 환자 몸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예요. 환자의 의지에 따라... 좌우될 거예요. 처치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니까요."
도윤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한아의 말이 끝나기를 얌전히 기다리던 도윤은 이번에는 자신이 사건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 정황을 좀 더 알려주면 수술이나 치료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한아 입장에서는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거기다 학생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수술실 앞으로 뛰어왔다.
“뒷일을 부탁해요.”
“... 아, 네.”
도윤은 어딘지 찝찝한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은 자신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바삐 가버리는 한아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수술실에 도착했을 때, 하민과 그의 연인으로 보이는 민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한아를 보자마자 하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한아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처연했다. 환자의 가족들은 모두 그러한 눈을 가지고 있다. 희망을 간신히 잡고 있는 듯한 모습.
"서,선생님! 잘 되겠죠? 제 어머니 수술 잘 되겠죠?"
"하민아..."
수술실로 들어가려는 한아를 붙잡고 하민이 애처롭게 물었다. 그러자 민지가 그를 잡아끌었다. 한아는 하민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대답한 후,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수술실에 들어서자, 수술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수술실 안은 언제나 그렇듯이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환자는 수술대 위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수술보조 간호사가 세척된 장갑과 수술용 고글을 한아에게 끼워주었다. 한아는 강순철의 눈을 바라보았다.
"복강 내 2차 출혈입니다!"
보조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수술을 주관하고 있던 강순철의 입에선 힘겨워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아는 환자와 강순철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수술 도구를 잡은 강순철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한아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확 좁히며 수술대로 다가갔다. 어째서인지 강순철은 다음 순서를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아가 강순철을 대신해 소리쳤다.
"흉강 드레인(튜브삽입)!"
간호사가 재빨리 세트를 준비했고, 주위에 있던 보조의가 튜브삽입을 시도했다. 실제 집도의인 강순철의 위치가 무안해질 만큼 한아가 수술을 집도하고 있었다. 강순철은 한 발자국 물러난 상태에서 큰 호흡을 내쉬었다. 한아의 행동이 괘씸하게 느껴졌지만, 안심도 되었다. 어차피 이 수술은 자신의 이름으로 집도 된 수술이기에 잘 되면 그 공은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는 없었다. 솔직히 수술성공에 대한 자신도 없던 그였다.
"산소포화도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보조의의 말에 한아가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요? 튜브삽입 했어요?"
"예, 했습니다...!"
"근데 왜…. CT 준비!"
한아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자 스텝들이 일제히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안정했던 수술실의 분위기가 한아로 인해 차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수고했네. 오늘 수술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사람 일은 정말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가 없다니까."
수술을 마치고 강순철은 스텝들을 모아놓고 자랑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아무도 그의 말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스텝이 하하 호호 웃으며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인상을 찌푸리거나 무표정으로 있는 스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한아만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소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수술 도중 알게 된 사실로 하민의 어머니는 위암이다. 한아가 아니었으면 그 사실조차 모른 채 지나갈 뻔했다. 암이라니.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이다. 하지만 하늘의 가호가 있었는지 진행상태는 초기 단계였다. 그래서 별 탈 없이 수술에서 종양을 제거했지만 한꺼번에 많은 곳을 손봤기 때문에 환자가 수술 후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오한아 선생, 얼굴이 왜 이렇게 어둡나. 피곤해서 그래?"
친절한 말투로 다가오는 강순철. 그러나 한아의 머릿속엔 온통 환자 생각뿐이었다. 암 환자를 한 두 번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CT 사진에 찍힌 하얀 점들. 그것들은 폐에 미세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한아는 혹시 폐에 암이 전이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스텝들이 하나둘 수술실을 빠져나가자 한아는 강순철에게 조용히 자기 생각을 전했다.
"뭐? 전이?!"
강순철은 기가 막힌다는 듯 한아의 얼굴을 노려봤다. 잘된 밥에 재를 뿌리냐는 듯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신경 쓰입니다. 다시 한번 정밀검사를..."
"이봐, 오한아 선생. 이제 막 수술을 끝내서 스텝들도 환자도 모두 지친 상태야. 여기서 정밀검사를 하면 환자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고."
"하지만 폐에 전이가 됐다면 더 큰 문제 아닙니까?"
"전이라니! 저건 CT 촬영 중 이물질이 끼었거나 환자 몸에 나타난 단순한 합병증 상태야!"
강순철이 괜히 발끈하며 소리쳤다. 한아가 다시 입을 열려 하자 강순철 과장은 소리를 지르며 그녀의 의견을 묵살시켜버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일이나 보게!"
한아는 불안했다. 그래서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한아가 강순철의 뒤를 쫓아 나갔다.
"과장님!"
한아가 다급히 그를 불렀지만, 그는 이미 밖에서 하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아는 더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도 아니고, 이제 겨우 안심한 가족의 심장을 곧바로 추락시키고 싶지 않다. 강순철은 가식적인 미소를 한껏 띠고 있었다. 한아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꼭 정밀검사를 하게 하리라.
"자세한 이야기는 오한아 선생님께서 해주실 겁니다.“
그렇게 말한 강순철은 쏜살같이 자리를 벗어났다. 한아는 하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하민에게 어머니가 위암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에 충격을 받은 하민은 한 손으로 눈을 가리며 감정을 다스리려 했다. 수술이 잘 됐다는 한아의 말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한아는 자신이 이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아무래도 다시 한번 강순철에게 가야겠다.
강순철에게 가는 길, 한아는 잠시 응급실 옆에 있는 수술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까 그 여학생의 수술결과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수술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한아는 그 여학생이 끝내 사망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마음이 착잡했다. 아직 인생의 반도 못 산 어린 학생인데 왜 그런 무모한 짓을….
"에이씨! 그러니까 이건 자살이 아니라니까요! 아 진짜 내 말 못 믿어? 어이 박 형사! 나랑 일 한두 번 해?!“
도윤은 영안실 건물 앞에서 흥분하며 동료 형사들을 달달 볶고 있었다. 도윤은 고인의 부모를 만나 조서를 써야겠다 우기고 있었고 동료 형사들은 그를 말리고 있었다.
"이봐 하 형사! 왜 이래! 이미 자살이라고 결론지었잖아!"
"아니요. 우선 학생 엄마 이야기부터 듣자고요."
"가뜩이나 자식 잃은 슬픔에 젖어있는 사람한테 뭐 하는 짓이야!"
도윤은 막무가내로 영안실 안으로 들어가려 했고, 동료 형사들은 필사적으로 그의 몸을 막아섰다.
도윤은 이 사건이 자살이 아님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고인이 된 여학생은 어마어마한 유산을 상속받을 예정이었던 외동딸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계모가 있다. 요즘 드라마에서도 안 쓰이는 뻔하디뻔한 스토리가 상상이 되지 않는가? 더욱이 그 계모는 간통죄로 두 번이나 고소당한 적이 있다.
학생도 지극히 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관심을 못 받는 아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따돌림이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 아녔다. 평생 먹고 살아도 남아돌 돈. 비록 친부모는 없지만, 계모의 말을 잘 따랐고, 부족하지 않게 살아온 아이. 그런 아이가 자살할 이유가 있다면 파고 또 파서 원인을 찾을 것이다.
도윤은 새벽 내내 어떻게 틈을 노려 영안실에 들어갈까 머리를 굴려봤지만, 동료들은 쥐구멍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구시렁거리며 계모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때 도윤의 눈에 한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퇴근을 하는 모양이었다. 쭈그려 앉아있던 도윤은 한아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도 오래 앉아있었더니 다리가 찌릿찌릿 저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도윤은 자기도 모르게 한아에게 뛰어갔다.
"어이, 오한아 선생님!“
도윤이 반가운 목소리로 한아를 불렀다. 택시를 잡으려던 한아의 시선이 도윤에게 옮겨졌다. 도윤은 아까 같은 정적이 흐르지 않게 얼른 입을 열었다.
"이 시간에 퇴근은 너무한데요? 아무리 괴팍해도 선생님도 여잔데 위험한 거 아닌가."
"뭐래요. 아직 안 가셨네요?"
한아의 태도는 의외로 부드러웠다.
"아직 해결 못 한 건이 있어서…. 여기서 집 멀어요? 택시를 타고…. 택시 꼭 앱으로 불러요. 지나다니는 거 타지 말고.“
한아는 눈을 말갛게 뜬 채 도윤을 올려다봤다. '이 남자가 뭐라는 거야?'라는 눈빛. 한아의 눈빛을 읽은 도윤은 자신이 쓸데없는 말을 했다는 것을 느끼고 헛기침을 했다. 이상하게 긴장이 된다. 손에 진땀도 나는 것 같다. 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빤히 바라보는 한아의 눈빛 하나로 분위기가 급하게 어색해졌다.
"퇴근 안 하세요? 힘드시겠다.“
한아 역시 분위기를 환기하려 도윤에게 물었다. 도윤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뒤를 슬쩍 돌아봤다.
"누구 좀 만나려고요. 아,"
그때 도윤의 눈에 계모의 모습이 들어왔다. 한아가 마지막 인사를 하려 입술을 움직였지만, 눈을 크게 뜨며 '잠시만요' 하고선 뛰어가는 도윤 때문에 궁금증이 도졌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를 바라봤다.
계모는 도윤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그들에게 감사하다 인사를 하며 흰 봉투를 내밀었다. 계모의 표정엔 슬픔과 비통함이 담겨있었지만, 새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과 그 손에 들린 봉투를 보자마자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수고하셨어요. 이만 돌아가셔도 됩니다. 장례는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형사들은 손을 저으며 봉투를 받지 않았고, 계모는 작은 성의라며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한아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그곳에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계모가 자꾸만 봉투를 내밀자 도윤이 그것을 확 낚아챘다. 그 모습에 한아도 형사들도 눈을 크게 떴다.
"이, 이봐. 하 형사...!”
도윤의 불법행위에 형사들이 소리쳤다. 그러나,
"씨발... 진짜 뭐 같네."
쫙 소리와 함께 도윤의 손에서 봉투가 반으로, 그리고 또 그 반으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산산조각이 난 종이는 계모의 앞으로 뿌려졌다.
"아직 이 사건 자살로 판명 난 거 아니니까 서로 가서 조서 좀 꾸밉시다."
"뭐예요?!“
계모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바뀌었다. 그에 못지않게 도윤의 표정은 한아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가웠다.
"사건을 정확히 조사하기 위해 따님의 몸을 부검했으면 좋겠는데요."
도윤의 예상치 못한 발언에 동료들이 눈을 크게 떴다. 한아도 마찬가지였다. 계모는 미친 듯이 날뛰며 도윤에게 욕을 퍼부었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부검은 죽은 영혼을 또 한 번 죽이는 일이었다. 죽어서도 칼로 몸을 베야 하는 고통. 계모는 길길이 날뛰며 절대 안 된다며 소리쳤고, 동료들 역시 지나치다며 도윤을 나무랐다. 귀가 찢어질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는 계모의 앞에 도윤이 바짝 섰다. 키가 큰, 거기다 덩치가 제법 있는 남자가 바짝 다가서면 긴장할 법도 한데, 계모는 오히려 그를 무섭도록 올려다봤다.
"다른 부모들은 자식이 죽으면 타살이라고 주장하는데, 당신은 자살을 주장하고 있네요?”
그 말에 시끄럽던 공기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잠깐 당황하는 듯했던 계모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그랬잖아! 자살이라고! 내가 지금 어떤 심정인 줄 알아?! 근데 부검이라니...!”
“억울하게 죽었으면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분명히 밝혀내서 억울함을 달래줘야죠. 당신 저 아이의 부모잖아요. 딸이 어쩌다 죽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위와 폐에 물이 차서 죽은 거라고 의사들도 말했잖아! 왜 그쪽이 더 난리지?! 이봐요, 이 사람 경찰 맞아요?!“
동료 형사에게 화살을 돌린 계모의 앙칼진 말투에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고 계모의 눈을, 마치 뚫어지기를 바라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점점 투박하고 메마르게 변해갔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말이야...”
“듣기 싫어! 비키지 못해?!”
쫙! 계모가 도윤의 뺨을 후려쳤다. 그냥 때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후려쳤다. 그에 한아는 입에 손을 올리며 경악했고, 형사들이 재빨리 계모를 말렸다. 몇몇은 도윤의 얼굴을 살피러 다가섰지만, 도윤은 꿈쩍하지 않았다.
“사람의 몸은 폐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공기 통로를 막아버려. 그래서 질식하게 되는 거야."
도윤의 손가락이 계모의 배로 향했다.
"폐에 들어있는 물만 분석하면 결과는 바로 나와요. 당신의 무죄를 증명하고 싶으면 부검을 하는 게 좋을 거야. 난 이미 당신이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도윤과 물리적으로 떨어지게 된 계모는 입술을 덜덜 떨었지만, 끝까지 자신은 무고하며, 부검은 안 된다고 발악을 하다 사라졌다.
며칠 뒤, 역시나 그 사건의 범인은 계모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계모와 그의 내연남이었다. 도윤의 추리가 맞았다. 아니, 너무나도 뻔한 전개였을 뿐이다. 한 건 했다며 회식하자는 동료들의 제안을 거절한 도윤은 그 학생의 화장터에 와 있었다. 이 어린 학생의 마지막을 지켜봐 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들었기에. 도윤은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씁쓸한 얼굴을 했다. 그때 간 줄로만 알았던 한아가 다가왔다. 한아 또한 혼자 갈 아이를 생각하여 온 것이었는데, 도윤이 있어 반가웠지만 반가움을 티 내지는 앉았다. 작은 아이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엄숙한 자리였기에.
"… 추리 멋지던데요."
"추리가 아니라... 뻔한 거였죠."
"어쨌든요."
두 사람의 짧고 간단한 대화가 오갔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한아는 S그룹 사건과 오늘의 일을 떠올리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막돼먹은 인간은 아니구나.'
오늘로써 도윤에 대한 편견은 사라졌다.
첫댓글 이사장 선출 문제로 심히 바쁘신 강순철 과장 <- 말에 뼈가 있는 ㅋㅋㅋㅋㅋㅋㅋ
“사람의 몸은 폐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공기 통로를 막아버려. 그래서 질식하게 되는 거야." <- 이 대사 개멋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