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리 들길을 걸어
새벽에 잠을 깨 전날 동선을 따라 생활 속 남기는 글을 워드로 입력해 나갔다. 대개 1~ 2 시간 걸려 쓰는 원고가 마무리되어가는 즈음 무슨 키보드를 잘못 건드려 저장이 안 된 상태에서 날아가고 말았다. 컴퓨터 바탕 화면에서 되살리려 아무리 노력해도 내 수준으로 해결할 수 없어 똑같은 내용을 다시 써나가야 했다. 처음 썼을 때만큼 시간이 걸려 탈고를 했더니 날이 밝아왔다.
아침 식후 평소보다 느긋하게 아파트단지 인근 수요 장터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수요일과 토요일 오전 농협 마트에서 채소와 과일 장터를 열어 시장을 봐 올 일이 있어서다. 집에는 산나물을 뜯어 놓아 채소는 필요 없고 간식 삼아 먹는 고구마가 동이 났다. 장터를 여는 시각에 맞춰 고구마를 한 상자 사 집으로 옮겨다 놓고 철이 지난 옷을 세탁소로 보내면서 산책 걸음을 나섰다.
집 근처에서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소답동에서 내렸다. 이번에는 동읍이나 대산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아닌 김해로 가는 140번 버스를 탔다. 창원과 김해는 대중교통 환승이 되어 이용자 부담을 덜게 된다. 용강고개를 넘은 버스가 용잠삼거리까지는 1번 노선과 겹쳤다. 동읍 지구대를 지난 남해고속도로 동창원 나들목에서 진영읍이 시작된 김해 구간으로 접어들었다.
금산과 좌곤리를 지난 읍내 거리 삼성아파트단지에서 내려 대산 방향 들녘으로 가려고 무작정 북녘으로 걸었다. 작은 개울을 따라가니 신도시로 건설된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고 단독주택도 지났다. 아파트단지 사이에 규모가 큰 초등학교가 나왔다. 울타리에 인근 시골 초등학교에서 자가네 학교로 다니면 모두 주인이 되는 학생이라며 취학을 권유하는 펼침막을 내걸어 눈길을 끌었다.
예전 벼농사를 지었을 들판은 대규모 택지로 바뀌어 구 진영 시가지보다 거주자가 많은 인구 밀집 지역이었다. 택지를 벗어나자 국도 25호와 4호선 옛길이 나뉘는 주천강 교차로가 나왔다. 주남저수지에서 시작되는 주천강은 진영읍에서 우암 들판으로 흘러가 유등 배수장에서 낙동강에 합류했다. 주천교를 건널 때 냇바닥을 내려다보니 수면 위 어리연이 잎을 펼쳐 동동 떠 자랐다.
국도가 부산 기장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새로운 찻길 굴다리로 가는 천변에 지천으로 자란 야생갓은 유채처럼 노란 꽃을 피웠다. 우리 지역에서 겨울이면 초본은 거의 시드는데 갓만이 파릇하게 월동하는 천변 풍경을 흔히 본다. 김치로 담가 먹는 재배 갓과 잎줄기가 비슷하나 억세고 쓴맛이 강해 식용으로 삼기는 적합하지 않다. 가시박과 같은 생태계 교란 식물로 취급받지 않는다.
찻길 굴다리를 지나자 대산 우암 들녘이 펼쳐졌다. 벼농사 뒷그루 비닐하우스에 멜론을 키웠는데 지난해 모든 과일이 흉작이라 올봄 출하가 되면 귀한 대접을 받을 듯했다. 일부 농지엔 꽃을 가꾸는 화훼재배 비닐하우스단지가 나왔다. 안개꽃은 인부들이 꽃꽂이용으로 자르느라 손길이 분주했고 장미도 꽃봉오리를 맺어갔다. 가정의 달에 많이 찾을 카네이션도 잘 자라고 있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시야가 흐려왔는데 들녘 한복판으로 가나니 황사 농도는 점점 짙어 비가 올 운무를 보는 듯했다. 네이버 지도 검색에서 본 우암 들녘 야트막한 동뫼산에는 통신사에서 세운 시설물이 보였다. 들녘 농로를 따라 우암리에서 제동리로 건너가 가술 국숫집에서 점심을 때우고 행정복지센터로 가서 잠시 쉬다가 오후에 대산파출소로 나가 내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했다.
가술 국도에 육교가 걸쳐져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육교에 올라서니 오동나무가 피운 꽃이 바라보였다. “동구 밖 산기슭에 한 그루 오동나무 / 신록이 번져갈 때 보라색 꽃을 피워 / 봉황은 기품을 알고 나래 펼쳐 찾을까 // 나무를 잘라 쪼아 거문고 울림통 짜 / 백아를 떠올리며 둥기둥 줄을 켜면 / 그 시절 종자기처럼 들어 줄 이 있을까” ‘오동꽃 앞에서’ 전문이다. 24.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