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창작 강의 / 박정규 (시인)
시론 17. / 자동화(습관화)된 인식을 버려라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떤 상황 앞에 맞닥뜨렸는데 벌써 그 일의 진행과 결과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예측되어지는 것 말이다. 매일 경험하다시피 숱하게 겪는 일들은 또 마주친다 해도 아무렇지 않다. 낯익게 길들여졌고, 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생각까지도 그 일의 진행과 결과가 어찌 나타날지 자동적으로 감각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자동화된 사고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의식 속에는 시적 상상력이 비집고 작동할 틈이 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얽매어있는 고정관념적인 사고의 틀을 깨지 않으면 경험 속에 잠재해 있는 상상력은 튀어나올 길이 없다는 말이다.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기도 어렵다. 시 쓰는 일에 있어서 이런 상태를 관찰하고 극복해보려는 이들을 ‘러시아 형식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사람들이 언어를 다루는 일 중 하나에는 ‘낯설게 하기’라는 것이 있다. 시 창작에 있어서 이것이야말로 언어를 다루는 솜씨의 교범이라고 하면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하여튼 자동화된 인식태도, 관습적 태도를 벗어버리려는 그 순간 대상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 발견을 위한 접근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중의 하나로서 연상(聯想)훈련이라는 것이 있다. 연상이란 하나의 관념이 다른 어떤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심리적으로, 혹은 마음에 자극을 받았을 경우 거기에 관련하여 떠오르는 반응어라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서, 지금은 계절이 여름이다. 이 ‘여름’이라는 자극어를 앞에 두면 어떤 연상 작용이 생길까. 강한 햇살, 소나기, 바닷가 등등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니까 이 강한 햇살, 바닷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등이 여름이라는 자극어에 대해서 반응하는 ‘반응어’라는 것이다. 이해했을 것으로 믿는다. 의식의 세계는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항상 움직이며 변화한다. 때문에 사물이나 언어에 대한 연상도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이 자유로운 의식이 바로 상상력을 추진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연상훈련은 각기 다른 사물이 지닌 유사성을 발견해 내는 데 있어서도 훌륭한 구실을 한다. 첫째로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들에서도 유사성을 찾도록 도와준다.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준다는 뜻이다. 둘째는 이 연상 작용은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잠재된 체험의 기억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이것들이야말로 상상력의 요소이며 바탕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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