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렁뚱땅, 충동적으로, 계획도 없이 무턱대고 일을 저질렀다.
5월 8일에 6월 6일자 인천-파리(프랑크푸르트 경유) 항공권 3장을 덜컥 예매했다.
1인당 왕복 80만원이 안되는 가격이 매력적이라 그 매력/유혹을 떨칠 수 없었다.
사실, 아주 오래 전부터(십 수년 전부터) 유럽 자동차 여행이 내 삶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마침, 올해는 결혼 25 주년, 구실, 핑계 거리 충분했을 뿐이다.
아내가 내 명의로 든 적금 만기가 다가온다. 3년짜리...아내도 유럽 여행에 흔쾌히 동의했다.
난 프리랜서라 원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 사소한 것(돈벌기)만 포기하면 된다.
그러나 이번 유럽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난관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내가 운전할 수 있는 차량
(핸드컨트롤러 장착 차량)을 찾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그런 차량을 찾기는 했으나(파리 허츠, 프랑크푸르트트 아비스) 차량이 너무 작은 데다
조건 또한 터무니없거나(파리 허츠) 가격이 너무 비싸(프랑크푸르트 아비스) 결국 포기했다.
그리고 여행마저 포기하려 했다. 그러나 항공권 취소 수수료(무려 1인당 190유로)가 아까워 포기하지 못했다.
우여 곡절 끝에 포터블 핸드컨트롤러를 장착해 운전해도 좋다는 렌트카 회사를 찾았다(알라모).
이번 여행은
기간: 6월 6-30일
인원: 3명(나, 아내, 딸)
예상 경로: 파리-브뤼셀-암스테르담-독일 여러 곳-스위스-파리
실제 경로: 파리(3)-브뤼셀-암스테르담(2 잔세스카스 풍차마을)-몽샤우(독일-벨기에 국경마을)-아헨(1)-쾰른-카셀(2)-드레스덴-프라하(2)-잘츠부르크(1 잘츠카머구트의 볼프강)-인스부르크-콘스탄츠-취리히(1)-루체른-인터라켄(2, 융프라우, 피리스트, 라우트브루넨, 뮈렌)-밀라노(2)-제네바(1)-하이델베르크(1)-라임스(1)-파리(1)-프랑크푸르트(1)-서울
예상 경비:
2.
드디어 6월 6일 출국날이다. 이틀 전 예약해둔 행복콜(교통약자를 위한 밴택시)가 아침 일찍 집앞에 도착했다.
케리어 3개에 작은 배낭 둘을 매고 차에 오른다. 고민하다 목발은 두고 휠체어를 타고 가기로 했다.
(다음에 나이가 더 들어 여행할 경우를 대비해 휠체어로만 이동해 보기로 했다)
휠체어 리프트가 장착된 밴은 편했다. 휠체어에서 내릴 필요도 휠체어를 분리해서 실을 필요도 없었다.
집에서 KTX역까지 요금은 겨우 4700원. 일반 택시의 4분이 1 정도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AC4F3359A389122E)
우리나라 모든 역, 모든 승강장에 있는 휠체어 리프터...
필요하면 사전에 매표소나 사무실에 말하면 이용할 수 있다.
내릴 때는 코레일에서 알아서 연락해 대기하고 있다.
스위스 인터라켄 지역 산악열차가 다니는 역에도 비슷한 게 있더라...
![](https://t1.daumcdn.net/cfile/cafe/99DB313359A3892522)
서울에서 혼자 사는 딸은 공항에서 JOINT하기로 했다.
딸이 대학 4학년,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휴학을 했다.
2학년 마치고 한 학기를 휴학한 터라 코스모스 졸업이 싫다며 한 학기를 쉬고 있다.
그런데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는데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다....
딸 여권 유효 기간 만료된 걸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수년 전에 엄마랑 함께 여권을 만들었기에 당연히 유효기간도 같은 줄 알았는데...
(그 때 딸은 중학생 미성년자라 10년짜리가 아니라 5년짜리 여권을 발급받았는데...)
내가 해외 여행 초보라....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다.
딸을 두고 둘만 떠나라는 뜻인가? 안 그래도 딸 한테 함께 가자고 하기는 했지만...
딸도 나도 함께 가면 싸울 거라는 걸 불보듯 뻔히 알고 있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함께 가기로 했다...싸울 때 싸우더라도...
그간 부녀 간에 맺힌 것을 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어쩌면 딸이 대학 졸업하고 나면 다시는 함께 여행할 기회가 없을 거라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두려움 아닌 두려움 때문에...
3.
그래도 방법은 있었다. 공항에서 단수 여권을 발급 받는 방법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 오늘이 휴일(현충일)이라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딸을 달래고 우리 부부만 먼저 비행기에 올랐다.
딸은 항공권 날짜 다음 날로 변경하고(수수료가 무려 130유로, 17만원) 내일 공항에 나와
단수여권을 발급받아 출국하기로 했다(여권이 나올지는 항공사 직원도 확답하지 못했다).
4.
a. 김천 집에서 아침 8시 20분에 집을 나섰다.
b. 인천 공항에서 오후 2시 45분 비행기(루프트한자)를 탔다.
c. 프랑크푸르트에 저녁 6시 50분에 내렸다.
d. 프랑크푸르트에서 다시 8:25에 비행기를 타고 파리 드골공항에 9:45에 내렸다.
한국과 유럽의 시차가 7시간(서머타임 때문에 한 시간 줄었다)이나 집 떠난지 19시간 25분만에 파리에 도착했다.
내 실수로 딸을 두고 온 부담감인지 스트레스인지 기내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평소에 소화가 잘 안 되고 멀미가 심한 아내는 잘도 먹던데...(돌아올 때는 정반대였다)
11시간 넘게, 저 졻은 좌석에 앉혀 놓고 때마다 먹을 것을 주면서 거의 사육하는 느낌...
프랑크푸르트에서 파리로 가려고 환승하려고 기다리는데 어떤 신부님이 우리를 보더니
"서울에서 오셨어요?"라고 그것도 유창한 한국어로 물어보신다.
서울 대치동 성당에서 외국인 미사를 집전하는 이탈리아 신부님인데 이름을 잊어버렸다.
70대 중반이신데, 1969년에 한국에 오셔서 여태껏 한국에 살고 계신다고 한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인데.. 70대 중반인데 은퇴도 하지 않고....
피렌체인가 어딘가에 가족들이 살고 있어 휴가차 가족들을 만나러 가신다고 했다.
이런 분들 보면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그냥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했다.
5.
a. 공항에 내려 예약한 렌터카 업체를 찾아갔다(알라모).
b. 헉...그런데 직원이 없고 텅 비어 있다(혹시, 우리를 안 기다리고 퇴근한 건가...)
c. 옆 다른 렌트카 직원에게 물으니 9층으로 올라가란다. 차고 옆 사무실에서 일을 처리하는듯...
d. 9층 사무실에 찾아 올라가니 머리를 곱게 땋은 흑인 아가씨가 우리를 기다린다.
핸드컨트롤러 사용시 보험 문제를 확인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다.
한국 지사에 이메일로 문의를 했지만 정확한 확답은 받지 못한 상태라 현지에서 다시 확인했다.
보험에 문제가 있을 경우 사고나면 집 팔아야 한다고 했더니, 직원이 그럴 필요 없을 거란다.
렌트비는 보험료 합해서 1590 유로(200만원 정도). 보험료가 절반이다.
그런데 얘네들 우리가 예약한 차량(스탠다드 왜건)이 없단다.
그러면서 가져온 차량이 9인승 밴이다(카니발 9인승 정도). 너무 크다.
오르 내리기도 힘들도 주차도 힘들겠다. 차량이 없단다.
그래도 이 차는 도저히 안되겠다며 휠체어 싣고 다녀야 하니
긁히고 흠집난 차가 좋다고 했더니 20분 지나 아래 사진에 보이는 차를 가져왔다.
동급 차량인데 세단이다(그랜저 급). 여기 저기 긁힌 데가 많다.
주행거리도 45,000KM가 넘은...이 쪽 렌트카 바닥에서는 퇴물이다.
반납할 때 뭐라할까봐 긁힌 데 사진도 찍어두고 직원이랑 확인도 했다.
직원 왈 "완전히 찌그러뜨려 놓지만 않으면 OK, no problem"이란다.
차를 받아 짐을 싣고, 예약해둔 가까운 호텔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차량은 요렇게 개조...
왼쪽 깜빡이는 직접 만든 봉을 이용해 오른쪽으로 옮기고...
장착과 탈착이 자유로운 포트블 핸드컨트롤러를 설치했다...
(휴대용 핸드컨트롤러는 사전에 구입에 내 차에 장착해 1주일 정도 연습했다.)
그러나 아내가 주 운전자, 나는 보조 운전자..
아내가 피곤할 때나 장거리 고속도로 운전 때만 잠시 내가 운전...
(나는 고속도로 주행시는 정속주행 기능, 즉 크루즈컨트롤 기능을 주로 이용했다)
아무래도 휴대용 컨트롤러라 고정식에 비해 어색하다...
그래도 다음에 혼자 해외에 나갈 때를 대비해 이런 차선책을 마련해 두었다는 게 중요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ED353359A3899F45)
![](https://t1.daumcdn.net/cfile/cafe/99B3D83359A389CD27)
자동차 앞유리에는 우리나라 장애인 주차스티커를 붙이고 그 아래 장애인 표지를 하나 더 붙였다.
주차할 때 대쉬보드에는 해당국가 언어로 된 장애인 차량 안내 문구를 인쇄해 놓아두었다.
다행인지, 덕분에 주차위반 딱지는 한 번도 떼지 않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14A03359A389E119)
뒤쪽에는 이렇게 장애인 운전자 표시를 붙이고(핸드 코팅으로)![](https://t1.daumcdn.net/cfile/cafe/990B1D3359A389F226)
첫댓글 멋집니다. 저도 내년 1월에 이태리가는 데 로마에서 나폴리로 이동할때 장애인 랜터카를 이용하려는 데 걱정입니다. 알라모는 포터블 핸드콘트롤러를 허용하나요? 로마에서도 적용될지 걱정입니다. 사실 지난 여름 홋카이도에서는 장애인 전용 랜터카를 도요타에서 이용했거든요. 상세한 정보를 주시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