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00X66>
꿈속의 해바라기
기네비아
미오코는 수면 중에 구토증세를 일으켰다. 모로 누워있던 미오코의 입에서 희고 묽은 우유가 주르르 흐른다. 볼록한 뒤통수는 참 예쁘다. 내 유전자 덕이다. 원생들은 나의 두상을 부러워하곤 했다. 나는 머리숱도 많고 그 빛도 검다. 창백해 보이는 하얀 피부와 길고 가는 목선, 곱게 자란 부잣집 딸 같다는 이미지가 이런 것일까. 추스려 한 갈래로 묶어 올리면 퍽 우아해 보인다. 생후 삼 개월의 신생아는 두발도 많고 머리색도 까맣다. 미오코의 두상은 확실히 나를 닮았다. 아기의 뒷모습이 어릴적 나의 모습을 아프게 닮아 있다.
토사물로 한 쪽 베갯잇이 축축이 젖었다. 미오코는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얼굴이 벌겋다. 비단 얼굴만이 아니다. 육십 센티미터 가량 되는 작은 몸은 열꽃이 피어 뜨끈뜨끈한 고깃덩어리 같다.
아기는 여느 아가들과는 조금 달랐다. 사 주 가량 익숙했던 모유를 끊을 때도 어찌된 일인지 떼쓰지 않고 분유에 순응했다. 평생 성장의 기초는 초유로부터 시작된다고 굳게 믿고 있던 아사히는 출산 전부터 나의 젖을 미오코에게 먹이고 싶어했다. 덕분에 나는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지 않았다. 임신 때부터 생활하던 아파트에서 조리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히 갈 곳이 없는 나로서는 꽤 다행스러운 일이다. 단체 생활이라면 정말이지 신물이 난다.
미오코는 2.2키로의 작은 몸으로 태어났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음식을 즐기지 못했다. 식욕이 왕성한 다른 산모들과는 달리 숙주의 몸으로도 까다로운 식습관은 마음처럼 쉽게 고쳐지질 않았다. 신생아들의 몸무게는 보통 3킬로그램이 넘는 것이 평균이다. 그에 비하면 아기는 저 체중으로 인큐베이터 신세를 질 만도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기계가 필요하진 않았다. 기생해야 하는 달수, 이백팔십 일을 뱃속에서 정확하게 채우고 나온 것이 그 이유였다. 태아가 작아 순산할 것이라는 의사의 예상과 나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분만 일을 떠올리면 내가 받은 사천만원은 그야말로 껌 값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정일을 3일 정도 앞둔 11월 9일, 나는 저녁을 먹고 베토벤의 교향곡 제 5번을 들으며 느긋이 빈둥대고 있었다. 자궁을 대여하고 난 후부터 아기의 엄마가 될 아사히 사케의 몇 가지 준엄한 지침들을 나는 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클래식 듣기로 거실 중앙의 미니 컴퍼넌트는 쉬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매일 수행했다.
베토벤의 운명은 들을 때마다 사람의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어느 날은 도입부의 장중함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서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것은 뭐랄까, 사람들의 가벼운 언어로는 표현해 내기 어려운 클래식한 감수성이었다. 격렬한 긴장감으로 시작되는 1악장, 비올라와 첼로가 유니즌으로 노래를 하고 이어 현악 전체가 받는 자유로운 변주곡 형식이 지나면 곡은 절정을 향해 간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저음으로 이끌다가 바이올린으로 옮겨지며 반복 연주되는 3악장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마치 곡 전체가 흐느끼는 단조 특유의 선율로 모든 분위기를 장악해 버린다. 알레그로 템포의 음표들이 사방의 스피커에서 중앙의 나를 향해 쏟아지는 느낌은, 마치 죽은 베토벤의 혼이 공기에 실려 덩실 덩실 춤을 추며 부유하는 것 같은 일종의 소름이었다. 음악가의 거센 숨결이, 갈등이, 슬픔이, 좌절이, 환청처럼 통곡하듯 들려 어느새 나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어찌 이런 곡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 그는 분명, 신에게 선택받은 인물인 것이다. 선택 받는 다는 것은 어떤 것일가.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던데 버려지는 것만큼이나 잔인한 삶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혼자서 이런 감상적 상념에 빠지며 운명만을 리플레이로 듣던 중, 문득 -왜 이런 류의 갑작스러움이 있지 않은가- 어울리지 않게 목욕이 하고 싶어졌다.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욕실에서 마구 나를 당긴다고 할까. 몸의 구멍이란 구멍들이 합창하듯 방긋 열리고 분비물이 일제히 분출되는 듯한 불결한 촉각.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무조건적으로 옷을 훌러덩 벗고, 뚱뚱한 배를 껴안은 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더운물을 머리서부터 발 끝까지 쏟아 붓게 만드는, 그런 이상하고도 급작스러운 욕구가 내안에서 치솟아, 나는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당장 발가 벗은채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정성을 쏟았다. 머리를 세 번이나 감고, 비누를 듬뿍 묻혀 온 몸을 비비고, 문지르고, 두드리며, 지칠 때까지 닦아내기를 반복했다. 한 달 치의 목욕을 한꺼번에 다 한 듯해 진피까지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허벅지의 치골이 알이 밴 듯 아프기 시작하더니 배가 뭉치면서 진통이 시작 됐다. 첫 통증은 스멀스멀 잠 속으로 기어 들어와 곤한 잠을 깨우더니 곧 이어 십오 분 간격으로 반복해서 나를 두드려 댔다. 나는 아기가 나오려고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한 번 시작된 진통은 점점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으며 이내 십분 간격으로 나를 괴롭혔다. 가진통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강도가 높았다. 나는 어서 날이 밝기를 마음속으로 재촉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아직 양수가 터지지 않아 아침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난생 처음 겪어 보는 분만의 과정은 고통보다 공포감이 나를 선점했다. 나는 임신 후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터져 버릴 듯 부풀어 오른 배꼽 주위,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꾸물꾸물 요동치는 뱃속, 얇아 질대로 얇아진 위태로운 피하지방을 뚫고 금방이라도 태아가 나와 버릴 것 같은 공포가 무겁게 나를 눌렀다. 검댕이 같은 어둠은 더디게 대기 중에 흩어졌고 설익은 푸른빛이 대지를 감쌀 때 나는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무거운 몸을 비틀대며 택시를 향해 손을 들었다. 네 대의 택시가 보호자 없이 혼자 서 있는 나를 지나쳤다. 다리가 후둘 거렸다. 모퉁이에서 다섯 번째 택시가 돌아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저 차마저 놓치면 길바닥에서 혼자 애를 낳고 스스로 그 애를 받아야 할지도 몰랐다. 나는 뒤뚱거리며 인도에서 내려 차도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미오코를 원했던 다마자키 오사루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다. 일본의 동경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독일로 유학을 가 그곳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한 재원으로 모국으로 돌아와 모교에서 철학 강의를 하고 있었다. 십사개월 전, 소공동 호텔에서 나에게 옷을 벗어보라며 제법 유창한 한국어로 남자는 토막토막 자신을 소개했다. 이미 내가 모두 알고 있는 것 들 이다. 피차간의 기본적인 신상명세서는 소개소에서 사전에 전달해 주고 있었다. 그런 것은 감춘다고 해서 감춰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빠른 브로커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전적으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소개소와 고객이 쿵짝으로 합작한 위조된 이력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다. 나는 단추를 풀고 쟈켓을 벗었다. 폴리우레탄의 검은 원피스가 볼륨 있는 바디 라인을 숨김없이 드러내었다. 신장 167 센티미터. 10센티미터가 넘는 하이힐까지 신고 있었다. 서류상의 전신사진으로 가늠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고 느낄 것이다. 남자의 입 꼬리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대게 키가 작달만한 일본 사람들은 신장 때문에 한국 여자들을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덕분에 다분히 동양적인 나의 얼굴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외꺼풀의 긴 눈이나 남자는 쌍꺼풀의 동그란 눈이었다. 원피스를 벗기 위해 목 뒤로 손을 돌렸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뒤에 섰다. 지퍼를 내리는 순간은 더디 갔다. 조금씩 벌어진 지퍼는 나의 목에서부터 등을 지나 허리에 닿았고 엉덩이에 이르러 완전히 벌려졌다. 남자는 잠깐 동안 그대로 나의 뒤에 서 있었다. 불편한 침묵이다. 이 무거운 공기를 무엇으로든 휘휘 저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냉큼 이불 속으로 숨었다. 실내등이 꺼졌다.
굳은살이 없는 남자의 손은 무척 보드라웠다. 능력이 뛰어난 아버지나, 성품이 부드러운 어머니, 똑똑한 누나, 친분이 두터운 사촌, 영향력 있는 스승, 생의 전범(典範)을 지척에 두고 삶의 방향을 일찍이 세우며 남자는 성장했을 것이다. 이력은 당당해지고 눈높이로 퍽 괜찮은 환경의 배우자를 선택했겠지. 이세가 태어난다. 유전자가 좋은 아이는 다시 좋은 환경에서 비슷한 순환 고리로 성장한다. 그들만의 안정적인 싸이클 이다.
다마자끼는 조금씩 나의 몸을 파고들었다. 남자와 직접 성관계를 하는 댓가로 나는 웃돈을 얹어 받았다. 상대를 기쁘게 하는 방법 따윈 어렸을 적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혀를 놀리고, 허리를 비틀고, 과장되게 신음했다. 이 순간만큼은 남자의 등을 떠민 아사히 사케를 완전히 잊은 듯 했다.
병원에서 내 마음은 조급했다. 묵직한 이 유기물을 한시라도 빨리 끄집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사정은 나의 맘처럼 진행되진 않았다. 태아는 자궁 속에서 이틀을 더 머물렀다. 아기는 나오고 싶어 하는 것이 역력했다. 발로 배를 쿵쿵 차기도 하고, 부르르 떠는가 하면, 손바닥 자국이 짧은 순간 뚜렷이 보일 정도로 안간힘을 써대며 자궁벽을 밀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내 몸은 열리지 않았다. 오 센티미터가 벌어진 골반은 거기에서 그만 딱 멈추었다. 태아가 나오려면 십 센티미터 이상 벌어져야 가능하다. 아기의 몸부림은 자궁 속에서 매 시간마다 과격해져 갔다. 산모가 느끼는 고통은 진전 없는 골반 뼈완 무관하게 계속되었다. 나는 의아했다. 내 몸의 뼈들도 독립된 의지가 있는 것일까. 나는 그들의 항거를 이해할 수 없었다. 태아는 갇힌 채 절규를 했고 나는 뼈마디가 벌어지는 고통으로 악악 거렸다. 그것은 참으로 기이한 경험이다. 뼈들은 이편의 진을 몽땅 빨아대고 저편의 기력을 전부 쏟아내도록 통제 불능의 잔인함을 발휘했다. 마침내 양쪽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비로소 길을 열 듯 입구를 벌렸다. 나는 산파를 향해 벌거벗은 양 다리를 촤악 벌리고 모든 힘을 아래로 집중시켰다. 누워있는 나와 다리 끝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산파의 눈이 마주쳤다. 산파가 신호를 보내자 간호사가 구령을 붙였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고 동시에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아는 쉽게 산도를 통과하지 못했다. 거듭된 몇 번의 시도는 산모와 태아와 산파와 간호사를 지치게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수술해주세요,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간호사와 산파가 다시 한 번 눈짓을 교환하더니 동시에 힘차게 구령을 붙였다. 마지막이다. 나는 내 안의 모든 힘을 자궁을 향해 모았다. 무언가가 쑤욱 움직거렸다. 힘과 함께 정신까지 빨려가는 것 같았다. 나는 까물거리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며 눈을 한 번 껌뻑였다. 찰나가 이렇게 길다니. 모든 것이 슬라이딩 모션처럼 망막에 인식되었다. 세상은 너무도 조용했다. 공기에도 질감이 있구나. 허공 속을 부유하듯 내 몸이 붕실 차 오르는 것 같았다. 내가 눈을 한 번 더 깜빡 거렸을 때 찢어지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질 듯이 고막을 후비고 쳐들어왔다. 생존을 향한 동물적인 울음이었다. 그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썻지만 울음은 곧 아스라이 귓가에서 멀어져만 갔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조금 전 까지 나에게 구령하던 간호사도 산파도 모두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난생 처음 보는 여자가 젖은 눈으로 나를 멀건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퍽 젊은 여자다. 여자는 또 한번 슬픈 눈으로 눈을 맞추곤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여자를 잡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목은 굳게 잠겨 아무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빛이 너무 눈부셔 스르르 눈이 감겼다.
내 나이 스물 셋, 처녀의 배에 수술자국을 남길 수는 없었다.
풍천고아원 원장선생님의 별명은 뱀눈이었다. 원생들끼리 쉬쉬하며 부르는 칭호인지라 자신의 별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뱀눈은 언제나 소리도 없이 미끄러지듯 원내를 소요했다. 오십대 중반의 원장은 키가 작고 뚱뚱했으며 두꺼운 눈꺼풀의 소유자였다. 쭉 찢어진 눈매를 이리저리 굴리며 원생들을 훑어보곤 했는데, 고아원을 방문하는 외부인을 접견할 때는 돗수 없는 뿔테 안경을 하루 종일 착용하곤 했다.
유년 시절, 나는 먹는 것을 유난히 힘겨워했다. 매 식사시간 마다 원생들을 나누어 주기 위해 산처럼 쌓여 있는 밥이며 빠지면 죽을 것 같이 출렁이는 거대한 국통을 보면 식욕은 커녕 현기증부터 일었다. 고춧가루가 범벅이 되어 있는 김치며,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오뎅볶음들을 식판에 받아들 때마다 나는, 조금만 주세요, 입 밖으로 뱉지 못하는 말들을 독백처럼 반복했다. 덕분에 식사시간 때가 되면 의례 나의 주변은 내 몫의 찬들을 탐내는 친구들로 주변이 복작거렸다.
아귀처럼 먹어대는 고아원의 또래 원생들에 비해 그러나 나는 그들보다 키가 컸다. 그것은 일종의 미스테리였다. 나는 거의 매일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는데 어느 때는 산속에서 유유히 산행을 즐기다 밑도 끝도 없이 짠, 하고 나타난 짐승에게 쫓기어 낭떨어지에서 똑, 떨어지는가 하면,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는 비행기의 일등석을 타고 근사한 옷차림의 숙녀로 변신해 우아를 떨고 있다가도 예기치 못하게 불어오는 난기류에 휩싸여 몇 천 피트 상공의 비행기에서 역시나 뚝, 떨어지곤 했다. 꿈속에서의 추락은 긴 것이어서 나는 떨.어.진.다.는. 것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고 그 때마다 경기를 일으키듯 사지를 움찔거리며 공포에 떨었다. 그런 일련의 꿈의 경험으로 나는 시작이 근사한 꿈을 꿈 속 에서조차 믿지 못했다.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해바라기 모양 쭉쭉 자라는 나를 매우 부러워했다. 자라는 것은 신장만이 아니었다. 큰다는 것을 고통스러워하는 나의 마음과는 전혀 딴판으로 하루가 다르게 나의 몸은 조금씩 여자의 몸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봉긋한 가슴은 매일매일 부풀어 올랐고 골반도 리듬을 타듯 균형을 맞추어 곡선을 그렸다. 나는 습관처럼 한 손을 가슴께로 올리곤 했는데 그것은 타인의 시선이 나의 몸을 더듬을 때마다 순결한 마음은 본능적으로 불편해 했기 때문이다.
원장은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조회시간마다 인간애를 침이 튀게 설교하곤 했다. 원생간의 우애와 이곳 어머니들과 원생간의 인연, 믿음, 사랑 뭐 이런 레파토리를 여러 일상적인 삽화에 끼워 넣어 각색한 것으로 매우 빤한 통속적인 이야기였다. 조회가 끝나 면, 직접 사륜 구동의 차를 몰고 일주일 치 장을 보러 흥얼거리며 시내로 나가곤 했다. 얼마 전부터는 시내에 대형마켓이 들어섰다고 들었다. 시골 사람들에게 그것은 생활의 편리이자 동시에 신기한 볼거리이기도 했다. 원장을 그 즈음 원생들을 번갈아 가며 그의 애마에 태워 그만의 외출에 대동하곤 했다. 마켓을 구경 시킨다는 것이 뱀눈의 명분이었다.
나는 물건들이 천장까지 켜켜이 쌓여 있는 거대한 마켓 안에서 식사 때 마다 느끼던 현기증을 동일하게 느꼈다. 그것은 일종의 숨막히는 공포였다. 꿈에서 나를 괴롭히던 추락의 공포는 형태를 변형하여 눈부시게 환한 마켓 한 가운데에서 동일하게 나를 덮쳤다. 나는 마치 방향을 잃은 소인국의 계집애인 양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해져서 고개를 숙인 채 쇼핑이 끝날 때까지 내내 바닥만 보고 걸었다.
고아원으로 돌아오는 귀가 길에서 뱀눈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지배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
차가 운전하던 중앙 대로에서 벗어난 것은 식료품을 싣고 첫 시동을 건 후 이십오 분 정도 지난 뒤였다. 폭이 좁고 비포장인 산길로 접어들자마자 철컥 하며 내 편의 차문의 걸쇠가 자동으로 걸렸다. 나물 좀 캐고 가자, 뱀눈은 오프로드를 하 듯 덜컹거리며 나무로 빽빽한 검은 산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았다.
결국 그날, 나는 뱀눈의 봄나물이 되었다. 원장은 외진 곳 깊숙이 차를 멈춰 발악하는 계집을 어렵지 않게 힘으로 제압하고 산나물의 뿌리를 뽑듯 나를 통째로 뽑아 버렸다. 내 몸 위에서 몇 차례 부르르 떨던 원장이 바지를 챙겨 입고 등을 보이며 차로 돌아갔을 때 나는 피를 흘린 채 널브러진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 두 팔로 모아 안았다. 저절로 눈물이 났다. 알몸으로 쏟아지는 오월의 바람은 참 건조했다. 세상이 참 건조했다.
그 후, 가끔씩 원장이 원생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면 뱀눈은 어김없이 나의 옆자리를 탐했다. 그는 그날 특찬으로 나온 제 몫의 돈가스를 내 식판 위에 얹어주었다. 나는 원장의 유치한 속내를 밥알을 씹으며 비웃었다. 테이블 밑으로 축축한 손이 나의 허벅지를 더듬었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저 밥알을 계속 씹었다. 밥알은 나의 구강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짖이겨 졌다. 한참동안 허벅지 위에서 원을 그리며 테이블 위의 눈치를 살피던 손이 순식간에 나의 작은 팬티 속을 쑤욱 헤집고 들어왔다. 씹히던 밥은 죽이 되어 침과 함께 입 속에서 돌고 돌았다. 원장은 국 속에 있던 홍합을 건져내어 나의 수저위에 올려주었다. 벌겋게 익은 홍합이 나를 향해 제 몸을 쩍 벌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의 원생은 열심히 수저를 놀리며 음식을 먹어대고 있었다. 음식 앞에서 행복해하는 친구를이 새삼 부러웠다. 나는 숟가락 위에 놓인 홍합과 뱀눈을 잠깐 동안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리고 찬과 함께 고여 있던 밥을 천천히 삼켰다. 나는 테이블 아래 그의 손가락이 더 잘 움직일 수 있도록 가랑이를 깊게 벌려주었다.
임신 때부터 생활하고 있는 아파트 안에는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다. 수도를 틀면 항상 더운 물이 흘렀고 씨디장에는 클래식을 비롯하여 재즈까지 열을 맞춘 음반들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 냉장고 안에는 맛있는 재료가 가득했고 아기의 시선은 온 종일 나를 향해 있었다. 나도 어엿한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된 듯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간이 천천히 가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소망은 그저 소망으로 끝나곤 한다. 아파트를 벗어나는 순간, 아기와 관련된 것은 전부 폐기처분 될 것이다. 그저 나는 이전처럼 내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나는 결심했다. 삶에서 사라지는 것이 구원인 사람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저주 따윈 무섭지 않다.
일 주일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고 있던 중이었다. 이른 저녁, 이른 식사를 마치면 낮 동안 아기를 위해 듣던 모차르트를 씨디플레이어에서 걷어내고 나 자신을 위해 베토벤을 걸었다. 17평 푸르지오 아파트에서 아기와 함께 하루 이틀 지내다 보니 어쩌면 나의 인생도, 푸르게 변해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조금은 믿고 싶었을 것이다.
베토벤의 운명을 들으며 아기의 목욕준비를 했다. 유아용 욕조에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섞어 따뜻한 물을 만들고 수중온도측정계를 사용하여 35도를 확인했다. 푸른색의 유아용 욕조는 장난감 같다. 하늘빛의 욕조그물도 소꿉장난 같기는 매한가지다. 한쪽 귀퉁이에 붙은 헝겊라벨이 눈에 들어왔다. 바바라 칠드런. 아가가 입었던 배넷저고리나 내의에도 동일한 알파벳이 수놓아져 있다. 한국으로는 수입이 되지 않는 유명 브랜드라고 한다. 짱구 배게에서도 본 적이 있다. 젖병, 모빌, 방수요, 체온계, 기저귀, 면봉에 조차 명품 브랜드의 이니셜은 선택된 자의 구원마크처럼 새겨져 있었다. 유명 브랜드 속에서 아기는 명품으로 자랄 것이다.
미오코는 목욕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튜브형 방수 배게를 베고 그물 위로 눕히면 싱그러운 표정으로 물의 질감을 즐기듯 쉴 새 없이 조막만한 손을 첨벙거렸다.
그 때, 전화가 울렸다.
벨소리는 하이 소프라노의 강렬함으로 베토벤을 관통했다. 순간 나는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계속해서 손으로 물을 떠 미오코의 몸을 적셔주었다. 요사이 텔레마케팅이 극성이다.
나를 향해 벙긋거리는 아기의 눈동자는 검고 참 맑다. 아기가 웃음소리가 없어요, 비시지(BCG) 예방 접종을 받던 생후 삼 주, 어두운 표정으로 내가 물었다. 의사는 소시지 같은 미오코의 팔뚝에 주사침을 푹 쑤셔 넣었다. 신생아들은 소리 내어 웃지 못합니다, 주사기의 피스톤을 누르자 미오코는 자지러지듯 울어댔다. 백일이 지나야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주사침 자리를 약솜으로 누르며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의사는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머리 가누는 것도 백 일이 지나야 가능합니다.
백 일! 아기를 받아 안으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본격적인 한 생의 출발 테잎을 끊는 것이다. 이 주 후면 미오코는 백 일을 맞이한다.
전화벨은 찢어지는 소음으로 질기게 울려댔다. 나는 마지못해 종종걸음으로 욕실을 나왔다. 두어 번 에둘러 뿌린 손에서는 방울방울 물이 떨어졌다. 상대만 확인하고 바로 끊어야지, 번호를 어찌 알고 전화질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여보세요?
수화기를 들자마자 저편에선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추 화연씨 부탁드립니다,
더블베이스의 굵고 낮은 목소리였다.
-네, 제가 맞는데요. 누구세요?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남자의 낯 선 목소리는 침묵과 함께 알 수 없는 무게감이 더해져 공연히 나를 긴장시켰다.
-저는 다마자키 오사루씨의 대리인 입니다.
대리인? 상대의 소개를 듣자마자 나는 수화기를 오른 손으로 바꿔 쥐었다.
관계를 맺고 난 이후부터 다마자키나 아사히가 제 삼자를 통해 컨텍해 온 적은 없었다. 입고 있던 티셔츠에 젖은 손을 쓱쓱 문질렀다. 그렇지 않아도 진작부터 이상한 생각이 들 긴 했다. 아사히는 산모인 나보다 분만을 더 초조히 기다렸다. 아기의 이름도 아사히가 지었고 분만 이후에는 초유공급을 감시하느라 한 달간 틈틈이 한국을 다녀갔다. 그녀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은 지가 거진 두 달이 넘고 있었다. 연락이 없기는 다마자키도 마찬가지였다.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였다.
남자는 아기의 안부는 묻지도 않은 채 즉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상대의 한국어는 한국인인 나보다도 유창해 보였다. 문장의 쉼표와 마침표의 쓰임새를 적절히 사용하는 말씨가 방송국의 아나운서처럼 적확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유감스러운 일입니다만... 다마자키 내외 두 분이 차량 사고로 사망하셨습니다. ...
남자의 말이 아득히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쥐고 있던 전화기가 손안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툭, 바닥에 떨어졌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아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저편에서 나의 이름을 몇 번 부르는 듯 도 했다. 그러나 나의 귀로는 사.망. 이라는 단어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욕실에서 칭얼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물이 식는 모양이다. 바닥을 뒹구는 수화기와 수화기 속의 남자는 터져버린 수도관처럼 말을 멈추지 못하고 줄줄 말을 흘렸다.
추돌사고는 미오코를 데려가기 위해 오사카 공항으로 출발한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고 했다. 그리고 저편은 다마자키 내외의 장례며 기타 주변정리가 완전히 끝이 난 상태였다.
-열 흘 안으로 아파트를 비우십시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열.흘. 안으로 아파트를 비우셔야 합니다.
나는 떨어뜨린 수화기를 다시 집었다.
-계약 기간이 이미 한 달을 초과한 상태입니다.
전화선을 타고 숫자들이 이편과 저편을 발 빠르게 넘나들었다.
미오코의 울음소리가 욕실을 가득 채웠다.
나는 항의 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상대의 책임이 컷다.
- 그 점을 감안했습니다. 이미 지불한 계약금과 분만 후 지급하기로 되어있던 약속 이행금을 계약서대로 지불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불행으로 인한 위로금과 사후 처리금으로 한화 이 천 만원을 내일까지 계좌로 입금시키겠습니다.
미오코의 비명소리는 금세라도 터질 듯 날카로왔다.
나는 침묵했다. 언제부터 내가 돈 앞에서 고민하는 사치를 부렸던가. 나는 모든 것을 잘 이해했다고 대답 했고 남자는 예상했다는 듯 나에게 행운을 빈다는 인사를 건넸다.
저편에서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간난 아기의 통곡 소리는 욕실을 넘고 주방으로 흘러 베란다, 거실, 안방 집안 곳곳에 가스처럼 스며들었다. 숨이 막혔다. 집안의 창이란 창을 활짝 열었다. 지상으로부터 이십사 층. 컴컴한 도시의 하늘은 빛을 잃은 지 오래다. 땅 위의 차의 행렬이 점처럼 그 빛을 대신하고 있었다. 꼬리를 이은 미등의 불빛은 멈출 것 같지 않았다.
그날 밤부터 미오코는 온몸에 열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칠 일 동안 매일 같은 꿈을 꿨다. 꿈 속에서 나는 작고 따뜻한 물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신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했다. 어머니는 스무 살의 미혼모였고 나의 아버지는 사십 오세의 유부남이었다. 이 십여 년의 나의 하루하루를 떠올리며 꿈속에서도 나는 흔들림 없이 빛 보다 수장을 택했다. 그러나 꿈에서 깨면 나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숨 쉬고 있었다. 인간의 의지를 묻는 신 따위는 자궁 안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현실에서도 사라져 버렸다. 자동차의 미등이 별빛을 대신 할 때 신은 하늘의 별과 함께 인간에게 내쫓겨 버렸다.
미오코의 구토 증세는 멈추지 않았다. 토유는 아까보다 좀 되직하다. 고개를 다시 모로 돌리다가 양편 모두 축축했던지 천장을 향한다. 미오코의 눈은 다마자키를 닮았다. 나의 커다란 눈과 남자의 쌍꺼풀을 가져갔고, 반듯이 높은 내 코 선을 취했고, 남자의 조막만한 입술을 빼박았다. 아마도 자라서 예쁜 여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를 원했던 아사히 사케도 부드럽고 인자한 엄마가 됐을 것이다. 이력이 당당한 다마자키도 능력있는 아빠가 됐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미오코가 그 들의 딸이 되길 바랬다.
미오코는 계속 우유를 게워 냈다. 나는 천장을 향해 있는 미오코의 머리를 그대로 고정시킨다. 잠깐이면 된단다. 아주 잠깐이면. (끝)
첫댓글 독자로서 협소한 의견 내봅니다. 잔인한 이야기를 잔인하도록 차분하게 그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뚜렷함 없이 마치 안개 속을 보는 듯한 모호한 느낌은 왜 일까요? 기네비아님의 글은 구름솜이불에서부터 비극적인 사건이 개입되는데요. 자살 같은 암튼... 제가 한번 밖에 읽지 않아서 그런지 교통사고가 난다는 부분에서 좀 의외였던 것이 앞에 복선이 뚜렷하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로인해 약간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삶이 그토록 불행했던 여자가 모순되게 아이를(대리모) 갖게 되는 뚜렷한 내적 갈등이 미약해 보입니다. 삶을 부정하는 그녀가 왜 아이를 낳았을까? 아이를 자신이 책임져야 할 상황이 오자 극단적인 행동을 취했을 정도인데...(저는 이렇게 해석 했습니다.) 돈 때문에? 자신이 책임지지 않고 자신과 다른 유복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인가, 그러니까 자신의 불행한 삶을 답습하지 않고 또 하나의 자신으로 살아 갈 자기 회복의 희망으로?
이런 의문들이 들었고요. 좀 더 집요하게 인물에게 파고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안정돼 보이는 글발에 부러움도 느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자세히 읽어야 하겠습니다. 건필 하세요.
오랜만에 기네비아님의 글이 올라와서 반가운 마음에 읽어봅니다. 여전히 잘 지내고 계시군요.^^ 글 얘기를 좀 해볼까요? 일단 데미안님께서 말씀해 주셨듯이 문체는 언제나 안정적이군요. 좋아요 ㅋㅋ 주인공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고아원 출신의 오갈데 없는 주인공이 돈을 벌기위해 대리모를 해 주는 것으로 말입니다. 단지 생계를 위해 한 행위였을 뿐, 자기 안의 생명을 오롯이 인식한 주인공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갈등없이 몸을 빌려 줄 수가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난자 속에 잉태된 생명이라면 아기에 대한 애착을 좀 더 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아예 난자도 미오코의 것으로
하고 단지 주인공은 자궁만 빌려주는 식의 설정도 좋았겠지요. 그리고 주인공은 어린시절 고아원에서의 성적 학대를 받고 자란 인물입니다. 그 인물이 차갑고 일그러진 세계관을 갖게 될 수도 있고, 종국에는 그것을 극복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건 작가의 의도에 달린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의 성향은 전자쪽에 가까운 듯 싶습니다. 문제는 그런 성향의 강도가 좀 약하단 것이겠지요.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좀 더 차갑거나 회의적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좀 미지근한 분위기를 주는군요. 또한 주인공의 성적 학대시 주인공이 받는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이 좀 느슨하게 처리된 감이 있
구요. 마지막에 결국 아기를 살해(?)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는데요, 위에 나온 미지근한 인물이 살해라는 극단적 행위를 저지른다고 보기엔 필요조건은 만족시키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자신의 아기를 살해하리라는 가능성은 있지만 필연성은 부족하다는 말이지요. 살인을 필연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인공의 정신적 상태를 더 치열하게 묘사해 주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사소한 것들을 좀 짚고 넘어갈게요. "아직 양수가 터지지 않아 아침까지는 버틸 수 있었다." 터지는건 양수가 아니라 양수와 태아를 담고 있는 양막이랍니다.^^
"난생 처음 겪어 보는 분만의 과정은 고통보다 공포감이 나를 선점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문장이긴 합니다만, 왠지 깨끗하지 못한 것 같아요. ~은 과 ~이 가 동시에 나오는데서 비롯된 문제일 수도 있고, 선점이라는 단어의 부적절성 때문에 나타난 문제일 수도 있겠지요. "나는 산파를 향해 벌거벗은 양 다리를 촤악 벌리고 모든 힘을 아래로 집중시켰다" 한국 병원에서 분만했을텐데... 산파가 있나요...(제가 알기론 없는데... 병원에서 산파 보셨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아귀처럼 먹어대는 고아원의 또래 원생들에 비해 그러나 나는 그들보다 키가 컸다."역시 이해는 갑니다만 부정확한 문장인 듯 싶어 지적합니다.
안녕하세요, 데미안님 그리고 이프님. 반복되는 일상과 악수하며 잘 지내고 계신지요. 올려주신 소견, 잘 읽어보았습니다. 데미안님, 인물에 대해 치밀하지 못하다 라는 지적과 이프님이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주신 미지근한 캐릭터(트라우마등), 음... 당장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인물에 관해서 좀 소홀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작년에 한참, 방배동의 서래 마을에서 영아 살인사건이 세간에 떠돌았었죠. 그리고 동시에 대리모도 메스컴을 장악했습니다. 두가지를 접목시켜보자, 라며 꿈 속의 해바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만, 진전이 참.... 힘들더군요
시간이 갈 수록 추화연과 하나 되기가 힘들었는데 그런것이 그대로 들어나지 않았나...음... 그리고 쓰는 과정에서 또는 퇴고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는 작품을 너무 많이 되풀이하여 읽어보는 처지인지라 과감성(?)을 발휘하여 생략하고 삭제한 부분이 독자들에게는 필요하다는 거, 하지만, 무엇보다 구성과정에서 쓰고자 하는 것을 충.분.히 사고해볼 필요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음...대리모와 영아살인이라는 소재와 이미지가 잡혀 글쓰기를 덤빌 때 박성원의 유서가 생각났습니다. 유서의 밀도와 어투를 흉내내고 싶었습니다.(이 소재는 그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너무 진전이 없어서, 마음에 안들어서, 신경질이 나서, 내 것을 덮고 유서를 필서 하다가, 그래도 스타일이 안나와 한동안 노트북을 덮고 쳐다도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작품마다 카멜레온처럼 변화하길 원합니다. (습작기인데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문체도, 밀도도, 이미지도!! 마음과는 다르게, 쓰여지는 꼴을 보니 나라는 테에서, 나의 문체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두 분의 꼬릿글을 읽으면서 나의 착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데미안님의 글을 먼저 읽으며 님의 의견을 곱씹어서 생각해보느라 쉬 댓글을 달지 못하고 있던 차에 이프님의 비슷한 지적이 또 나온 것입니다.)
어쩌면 구성단계(인물설정등)에서 치밀성을 발휘하지 못해 파생되는 것이 아니가, 의심해 봅니다. 만일 나의 의심이 사실로 들어나면 저는 조금 더 절망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구성‘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제가 가장 어려운 글자가 구성입니다. 그리고 글쓰기 지침, 뭐 이런 곳에 있는 구성하는 법 말입니다. 거의 와닿지 않습니다. 너무 복잡하구..아님 너무 개괄적입니다. 음...(또 멍청한 거 티냈나...쩝) 어렵다...아무튼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 다른 작품으로 또 스쳐봅시다.그리고, 꼭~ 건강하세요. 마음도, 몸도! ^^
기네비아님 글 잘 읽었습니다. 앞집에 살던 친구 베렐레입니다. ㅋㅋ. 오랫만에 왔군요... 대리모와 영아살해사건...그것을 매치시키는 데는 성공하신 것 같은데요...저 역시도 갑작스런 교통사고가 쫌 걸렸습니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묘사가 약해지는 듯한 느낌도 들었구요. 무게 중심이 앞에 쏠려 있는 듯한 뭐... 암튼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기네비아님,정말 오랫만에 왔네요, 이제 막 읽어보겠습니다..잘 지내셨나요? 저는 무지막지 치열과 처절의 시간속에서 지낸답니다, 아주 아주 바쁘게...
잘 쓰시네요. 디테일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공부하시나요? 그런 것들이 소설을 더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