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돌싱
신외숙
“언니, 저 왼쪽 끝에 있는 저 언니말예요, 돌싱이래요.”
“돌싱이라니? 돌싱이 뭔데?”
“한번 결혼했다가 돌아온 싱글을 돌싱이라 하잖아요.”
“그래?”
금시초문이었다. 오랜 세월을 마음 닫고 귀 닫고 살다보니 생소한 말과 단어가 너무나 많았다. 돌싱이라는 단어 앞에 나는 잠시 아연함을 느꼈다. 일인 일 가구 독신의 수가 증가하면서 결혼률이 낮아지고 이혼율과 자살률은 IOC 국가 중 최고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얼마 전 사촌 여동생이 한 말이 생각난다.
여동생은 30대 중반으로 딸과 아들을 두었다. 친구들 중 반 정도 결혼했는데 그중에서 절반은 이혼을 했거나 이혼 소송 중이라고 했다. 요즘 여자들은 참고 살지 않는다. 옛날 며느리들의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시집살이 이야기를 하면 설마 하고 거짓말로 여긴다. 경제의 발달은 개방 바람을 타고 많은 고학력 여자들을 양산했고 일부종사의 의미조차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 여자들은 가정을 위해 인생을 올인하지 않는다. 수틀리면 이혼하는 것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능력에 따라 재혼 삼혼도 마다 않는다. 희생을 거부하는 풍조는 돌싱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집안마다 돌싱이 하나 둘 있기 마련이라고 한 어느 목회자의 말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이혼한 대학 친구 영실이도 돌싱이었단 생각이 든다. 영실이는 가문의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친정 아버지와 명문가의 외아들인 의사 남편 사이에서 어지간히 마음 고생을 했다. 남편이 결혼할 때 혼숫감 이야기를 꺼내면서 장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진즉에 끝내려고 했으나 아들이 고3인지라 차일피일 미루다 합격통지가 떨어지자마자 이혼 도장을 찍었다. 영실이의 친정 아버지는 처음에는 이혼을 목숨 걸고 반대했다. 집안에 이혼한 케이스가 하나도 없는데 장녀가 이혼녀가 되는 건 자신의 체면을 구긴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딸의 마지막 말 한마디에 이혼을 허락하고 말았다.
“아빠의 저 잘난 의사 사위가 그러잖아, 너네 아버지 무능하다고, 외제 자동차 한 대 안 사주고 병원도 못 지어준 힘없는 늙은이라구.”
“뭐야?”
“장인 욕하는 그런 놈하고 내가 끝까지 살아야겠어? 나도 체면이 있지, 차라리 돌싱이 되는 게 나아.”
“아이구, 우리 집안에 어쩌다 그런 놈이 들어왔냐.”
영실이는 돌싱이 되기 위해 있지도 않은 거짓말까지 꾸며 친정식구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이혼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남편의 여자관계였다. 그 문제를 놓고 이혼서류를 꾸몄다가 친정의 반대에 부딪쳐 무산된 적이 여러번 있었다. 여자문제쯤 참고 살아라가 이유였다. 그러나 친정, 그것도 장인에게 험담하는 가짓수를 늘어놓자 180도 바뀐 것이다.
“장인에게 험담하는 그런 놈하고는 못살지.”
“옛부터 아내나 남편은 의복이라 했다. 그건 바꿀 수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부모는 다르다. 항상 부모가 먼저인 게야.”
영실이는 아들을 데리고 대학가 근처에서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며 살았다. 7080 세대를 겨냥한 커피숍은 그런대로 수지 타산이 맞았다. 성공한 중년층 고객이 단골로 잡히면서 가끔씩 대학 동창들이 몰려오기도 했다. 어느날 커피숍 한켠에 작은 무대가 마련됐다. 대학 가요제에 참가한 적이 있는 영실이가 직접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영실이는 가끔씩 내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참관을 요구했는데 내가 병중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삼가는 눈치였다. 나는 남편과 이혼한 뒤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아이가 없는 건 천만다행이었지만 건강에 심각한 이상 증세가 발생한 것이다. 신장 투석을 받다 혼수상태에 빠진 적도 여러번 있었고 갑자기 폐가 나빠지는 바람에 지방의 한 도시에서 요양 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세월을 흘려보내고 죽은 듯이 살다 어느날 기적처럼 회생되었다. 기력이 소생되면서 의식에도 파란 신호등이 켜졌다.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의지가 마음 한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오랜 세월을 병동에서 갇혀 지낸 탓인지 현실 인식도 부족했고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도 없어 돈벌이 하기란 쉽지 않았다.
더 심각한 건 기억의 회로장치에 문제가 발생했는지 깜빡 하고 혼동이 왔다. 하긴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도 벌써 이태가 지나 있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병원 신세까지 졌으니…… 더구나 도처에 백수가 넘쳐나는 세상이었다. 학력 건강 나이 다 뒤로 하고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동안 가족들이 나를 위해 쏟아부은 병원비만도 엄청났다.
죽지 않는 한 살아있는 흉내라도 내야 했다. 돈을 번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요 가치를 나타내는 척도와 같았다. 세상은 모든 가치를 경제능력에 두고 우선 순위를 정했다. 무능력이란 곧 세상 밖으로의 이탈이었고 돈이 안 되는 건 효용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찾아낸 게 설문조사 아르바이트였다.
아무리 단순노동이라 해도 힘든 일은 감당할 수가 없어 고심 끝에 찾아낸 알바 자리였다. 언젠가 TV 연속극에서 본 기억이 난다. 컴퓨터 앞에서 헤드폰을 끼고 열심히 대화하는 여자들의 모습이. 그들은 읍소하듯 열심히 대화하다 일순간 실망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자판을 두들겨 글자를 입력했다.
때마침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있어 리서치 조사가 매일 이루어졌다. 아침을 느지막이 먹고 출발해도 시간은 항상 넉넉했다. 복잡한 출근 시간을 지나 10시면 회사에 도착했다. 출근 명부에 기록을 하고 나면 곧바로 설문조사에 들어갔다. 대부분 부재중인 곳이 많았지만 어쩌다 받아도 거절인 경우가 더 많았다.
지역에 따라 조사결과도 천차만별이었다. 상가나 회사가 걸리면 그날 조사는 물 건너 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설문조사란 말만 해도 전화를 끊어버렸다. 대도시에 비해 지방은 조사가 잘 이루어지는 편이었다. 수고한다고 덕담을 하기도 하고 정치 평론을 끝없이 펼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정치 불신에 대한 분노를 쏟아 놓으며 욕설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특정 정당을 편들거나 원색적인 비난과 악담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 종일 컴퓨터 전자파 앞에 몹시 피곤했지만 그런대로 일은 할만 했다. 알바생들 가운데는 가정주부와 돌싱들이 많았다. 눈빛도 순하고 너그럽고 착한 편이라 웃음이 끊일 새가 없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서면 바나나와 과자 음료수를 여기저기서 건네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꼭 같이 기다려 주었고 조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그럴 때도 있다며 위로해 주었다. 한번도 큰소리 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알바한 지 2주 만에 급료를 받았다. 비록 적은 액수였지만 살아있다는 표시 같아 마음이 훈훈했다.
총선이 끝날 때까지 적지 않은 액수가 통장에 입금되었다. 그리고 나서 설문조사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다. 휴식 기간에 들어간 것이다. 얼마 안 가 나는 컴퓨터 그래픽 학원에 등록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 전문적인 지식을 쌓는 게 내 목표였다. 취직할 일터는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영실이의 친척이 충무로 근처에서 디자인 사무실을 하고 있었다. 표지 디자인과 교정 교열 윤문을 동시에 하는 곳이었다. 책자와 브로슈어를 주로 했고 가끔씩 정부 홍보물도 만들었다. 경우에 따라 카피 문구도 만들었는데 어린 여직원보다 나이 든 직원이 낫다고 하여 내가 선택된 거였다.
업무야 하다보면 익혀지겠지만 그래도 기초는 마스터해야 했다. 여고 때 진로문제를 놓고 고민할 때였다. 미대는 환쟁이들이나 가는 거라며 끝까지 반대하는 게 우리집 분위기였다. 이 21세기 시대에 화가를 환쟁이라고 하는 집은 우리집 말고는 없을 터였다. 실상은 학비문제에 있었다. 그림 그리는 데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아버지는 문인화를 그렸던 증조부의 영향을 받아 그림에 특출난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원통해 했지만 그 역시 할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아버지보다 엄마의 극력적인 반대로 나는 미대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예능 하는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게 엄마의 지론이었다.
어쨌든 나는 컴퓨터 디자인 공부를 하면서 원없이 재능을 발휘했다. 포토샵은 기능 면에서 많이 딸렸지만 일러스트에서는 디자인과 색깔을 병행해 누구도 선보이지 못한 작품을 연거푸 쏟아냈다. 디자인 계층은 젊은이들이 많았지만 미적 감각은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우와! 아줌마 대단하다. 혹시 미대 나오셨어요?”
“아니 소싯적에 그림 좀 그렸지. 사생대회에 나가면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었지, 사실은 화가 되는 게 내 꿈이었는데.”
나는 과장에서 거짓말까지 보태서 실컷 잘난 척하고 말았다. 인디자인에 가서는 더 마음껏 기량을 뽐낼 수 있었다. 속성 과정을 마치고 나는 그래픽스 시험에도 당당히 합격했다. 그건 내게 가능성을 일깨운 실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내친 김에 글 2007과정도 마쳤다. 시험 삼아 교정 교열을 보았는데 많은 착오가 발생했다.
기본적인 문장 구성이 안 됐고 맞춤법도 F12를 눌렀는데도 잘못된 결과가 자주 나타났다. 띄어쓰기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사전을 뒤져가며 공부를 하는데 정신에 빨간불이 몇 번씩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영실이의 친척이 하는 사무실은 쌍룡빌딩을 한참 지나 퇴계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트럭이 골목길을 오가며 짐을 부려놓고 대형 컴퓨터 인쇄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출판사를 겸한 인쇄소가 많았다. 현상소를 겸한 사진 촬영소도 보였고 가끔씩 제본소도 눈에 띠었다. 빌딩 골목 샛길을 돌며 재활용품을 걷으러 다니는 사람들도 보였다. 시멘트 건물 사이로 비스듬히 자라고 있는 초록 잎사귀는 도시의 낭만처럼 보였다.
베레모를 쓰고 담배를 꼬나문 남자들이 예술가 흉내를 내며 걸어가는 모습도 이따금씩 눈에 띄었다. 왜 옛날부터 예술가들은 꼭 베레모를 쓰고 다니며 티를 냈을까. 거기에다 파이프 담배를 꼬나무는 걸 특유의 멋처럼 생각했다. 좁은 아스팔트 길을 건너 카메라 전문점을 지나면 곧바로 낡은 타일로 지은 건물이 나타났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계단을 지나 3층으로 올라서면 사무실이 보였다. 철제 출입문에 “위대한 땅‘이란 제호가 보였다. 진초록 카펫에 작업실이 4군데 사장실과 맞닿은 곳에 커다란 공간이 있었다. 사무실에서 만들어 낸 브로슈어와 책자 광고 전단지와 홍보물이 화려한 색상으로 벽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디자인 사무실 ‘위대한 땅’에는 나 포함 여직원이 7명이었다. 사장은 나와 동갑으로 아이 둘 딸린 돌싱으로 주로 영업과 직원교육을 담당했다. 얼굴과 몸매가 뛰어난 그녀는 완벽주의자였다. 타고난 감각과 빠른 두뇌 회전으로 별명이 칼이었다. 아침 8시 출근인데 그녀는 보통 7시 반이면 나와서 업무를 시작했다.
영업에도 귀재여서 기존 거래처는 물론이고 타 영업점 단골도 곧잘 빼앗아 왔다. 재치있는 말솜씨와 친절 모드로 게다가 외모까지 뛰어나니 웬만한 남자 고객은 안 넘어오고는 못 배겼다. 게다가 신용 또한 철저하여 업계에 소문이 나 있었다. 정치 시즌이면 수억의 매출액을 올린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사장을 포함한 여직원 모두 돌싱이라는 걸 알았다. 외모나 능력, 성격에 있어도 별 문제점은 없어 보이는데 돌싱이라니 이해가 안 갔다. 암튼 돌싱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의기투합이 잘 됐고 상처받을 일도 없었다. 자녀가 없는 돌싱은 시간과 돈에 구애받지 않아 편하고 좋았다.
그들은 밤샘 근무도 끄덕없이 해냈고 취미생활 문화생활도 여유롭게 즐겼다. 업무가 일찍끝나는 날이면 우리는 근처 공원으로 가 산책하며 수다를 떨었고 쉬는 날이면 재래시장으로 영화관으로 서울 근교의 유흥지로 여행을 떠났다. 몸만 건강하고 약간의 여윳돈만 있어도 싱글은 결코 외롭지 않고 세상만사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세히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두 상처투성이였다.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해서 그렇지 한두 가지씩 병도 떠안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나름대로 관심사를 밖으로 돌리고 있었다. 퇴근 후에는 명동 근처 포장마차에서 모이곤 했는데 그때마다 직원들의 신세타령이 이어졌다. 제일 먼저 화두는 사장에 대한 험담이었다.
“사장은 그 많은 돈 모아서 뭐에 쓰려는지 몰라.”
“뭐에 쓰긴, 애들 사교육비에다 들어가는 돈이 좀 많아? 또 조기 유학 보내려면 모르긴 몰라도 지금보다도 한참 더 벌어야 할 걸.”
직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한미령은 비꼬듯 말했다. 그녀는 그래픽 디자인 방면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고 있었다. 환상적인 분위기와 본능적인 색감에다 기량까지 갖추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시각디자인과 출신인 그녀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일에 있어서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열성을 다했다. 마음도 그만하면 친절하고 착한 편이었다.
그녀는 미대 출신답게 옷도 화장도 장신구도 화려한 편이었다. 옷 한가지를 사도 디자인과 색상이 잘 어울렸고 구두도 독특한 것만 신었다. 부러질 듯한 칼힐에다 고가임에 틀림없는 명품도 곧잘 입었다. 버는 족족 몸치장에 다 쏟아붓는 것 같았다. 어쩌다 돌싱이 되었는지 몰라도 성격도 원만해 보였다. 그녀는 여러 곳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는 눈치였다.
그러나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돌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면접할 때 담당자가 전 남편 사이에서 아이는 없었느냐며 이혼사유까지 캐묻는다고 했다. 그것도 대부분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맘 편한 게 제일이다 싶어 그냥 꾹 눌러 앉고 있다며 한미령은 웃었다. 사무실에서 나를 제일 많이 도와주는 사람도 그녀였다.
그녀가 나를 도와주는 이유는 딱 한가지였다. 나는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잘 들어주었고 위로와 칭찬을 아끼지 않고 해주었다. 그녀에게 있는 많은 장점을 부각시키며 내게도도움을 주어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위로를 받았다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간신히 병마에서 벗어나 천신만고 끝에 들어간 직장이었다. 백수를 탈출하고 나자 저절로정신이 완전무장 되었다. 난 필살기를 다했다. 더 이상 과거의 아픔에 묶여 미래를 망가뜨릴 수 없었다. 의지도 회복해 성과를 향해 나아가야 했고 감정도 추스러 평안도 되찾고 싶었다. 돈도 열심히 벌어 좋은 일에 쓰고 싶었다.
올해 36세인 노인경은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남편상을 치른 유일한 과부 돌싱이었다. 엄청난 충격을 간신히 신앙으로 극복한 그녀는 겉보기에는 양순하고 소심해 보여도 내면은 튼실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아프리카 선교 지망생으로 여유만 생기면 다시 신학교에 복학해 아프리카 케냐로 가기 위한 미션에 돌입할 거라 했다.
꿈과 목표가 확실한 그녀는 초인적인 인내심과 의지가 있었다. 생전에 남편이 이루지 못한 선교사의 꿈을 자신이 두 배로 이룰 것이라 했다. 그것도 아프리카 원주민 선교사의 꿈을. 그녀는 남들 다하는 군것질이나 영화 관람조차 않고 돈만 착실히 모으고 있었다. 선교 미션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여직원 중 그녀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렇게 열심히 돈만 모으다 어느 놈에게 몽땅 떼이고 말지.”
“인생 나 위해 살지 누구 위해 살아? 아프리카 선교사를 지망하기 전에 차라리 후원회원이 되어 헌금하고 봉사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제법 의견을 내놓는 축도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얼마 전, 카톨릭에서 영세받은 장경자였다. 그녀의 나이와 이혼 사유는 일급 비밀 사항이었다. 그에 관한 한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전 남편과 연락을 주고받는 눈치인데 몹시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등 비밀 사항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직원들은 그녀를 아예 제외시키고 있었다.
성격은 긍정적인 면이 많아서 항상 현재적인 즐거움에 집착했다. 돈을 버는 족족 옷에다 화장품에다 여행과 취미생활로 다 날려버렸다. 내일을 모르는 인생, 현재가 더 중요하니 하루를 살더라도 즐겁게 살다가겠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었다. 집안도 잘 사는 편이어서 그녀의 의견은 별로 나빠 보이지 않았다.
이제 막 40대로 들어선 강현숙은 장애인 선교회의 기둥을 맡고 있었다. 그것도 어린 아동들의 치료를 힘써 돕는데 천사도 그런 천사가 없었다. 그녀는 버는 돈을 장애인 선교비로 내놓는 것으로도 모자라 외국인 아동 천사 돕기에도 나서고 있었다. 아마 그녀만큼 내세를 위해 확실하게 투자하는 사람도 없을 거였다.
그런 천사를 버린 남자는 어떤 류의 인간이었을까. 사람들은 소설을 쓰고 또 써댔다. 나쁜 놈의 새끼가 악마의 이빨과 주먹을 휘둘렀거나 그렇지 않으면 여자를 데리고 나타나 이혼을 강요했을 것이다. 수많은 추측 끝에 나온 그녀의 대답은 역시나였다.
“세 살 어린 남동생이 뇌성마비였어요, 거기다 뇌병변까지…… 결혼 후 임신을 했는데 남편이 끝까지 유산을 강요하는 바람에 헤어지게 되었어요, 장애아가 태어나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될까봐서라고 했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었어요, 결혼 전부터 사귄 여자가 있더라구요, 죽으면 죽었지 이혼은 안 된다고 하자 나중에는 주먹질까지…… 그 바람에 아이는 유산되고 도장 찍어주고 말았어요.”
어쩐지 장애인 선교에 목숨 건다 했더니…… 숙연함과 함께 이해의 공감대가 흘렀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의 여동생도 장애인이었다. 후천적이긴 해도 척수장애인으로 휘일체어에 몸을 의지해 살아가는, 그 몫은 어머니가 담당하고 있었다. 여동생은 몸은 불편해도 밖으로 나도는 걸 좋아해 하루도 집에 있지 않고 전동 휘일체어를 타고 시장과 백화점, 심지어 놀이공원까지 안 가는 곳이 없었다.
그 바람에 어머니는 허리와 목에 디스크가 와 자리에 몸져 누울 지경이었다. 그런대도 동생은 끝까지 자기 고집만 부렸다. 요즘에 와서는 결혼이 하고 싶다며 언니를 수도 없이 졸라댔다. 그녀는 모든 게 자기 팔자소관이고 운명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제 동생도 사람인지라 결혼해서 남편사랑 받고 싶겠지요, 왜 그런 마음이 안 들겠어요,전 동생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요,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전 사지육신이 멀쩡해서 마음대로 걸어 다니기라도 하잖아요.”
그녀는 끝까지 동생 편만 들었다.
근래 들어 심하게 우울증을 앓는 채현경은 올해 나이 39세로 직원들 중 나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그녀는 유난히 말수가 적고 얼굴도 새카맣고 못생겼다. 나이도 40대 중반으로 보일만큼 늙어 보이고 몸집도 유난히 커서 여자다운 매력도 없어 보였다. 그녀는 한번도 자기 신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혼 사유에 대해서도 한번도 들어본 일이 없었다. 그녀가 돌싱이라는 것도 사장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어쩌다 하는 회식도 빠지기 일쑤였고 이유를 물으면 항상 가정사에 있었다. 동생이 아파서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서 등등. 채현경은 필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상처나 장애를 앓고 있는 게 분명했다.
모두 자신의 신상명세서를 내놓는 상황에서 특별히 속이고 말고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직원들은 한편으론 이해가 가면서도 너무 몸을 사리는 그녀에게 서운함도 토로했다.
“혼자 끙끙대지 말고 털어나 봐요, 모두 한 식구나 마찬가진데 처음이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털어놓고 나면 서로 좋은 의견도 나올 수 있고.”
그러나 그녀는 입만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마감 날이 임박해 모두 한참 작업 중인데 그녀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핸드폰을 받은 그녀의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사장에게 다가가 뭔가 이야기하는 눈치더니 곧바로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집안에 변고가 생긴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래요?”
한미령이 묻자 사장은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남동생이 병원에서 사고 쳐서 급하게 가봐야 한다나봐.”
“병원요? 무슨 병원인데요?‘
“용인에 있는 정신병원.”
“네?”
그제서야 모두는 수수께끼가 풀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30대 중반에 들어선 고정란은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그림과 글을 겸비한 그녀는 직원 중 가장 이기적이었지만 상처 또한 많아 보였다. 그녀의 정신은 늘 열정과 포기 사이를 오갔다. 극단적인가 하면 우유부단 하고 냉정한가 하면 한없이 다정했다.
그녀는 회식 때마다 술에 취했다 하면 한풀이 섞인 말을 끝도 없이 늘어 놨다. 어린 시절, 자식들에게 모든 분풀이와 한풀이를 한 부모에 대한 원망과 헤어진 남편에 대한 극한 분노가 있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상처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었다.
“지옥 같은 집구석이 싫어 결혼하면 달라질까 싶어 했더니 더 큰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남편은 백수건달에다 손버릇까지 나쁜 최악이었어요, 이혼도 엎드려 애원해 간신히 했어요. 정신병동에 들어가지 않는 것만도 감사해요, 참 별 더러운 감사도 다 있지.”
그러자 노인경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미에는 십만 명의 어린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생활하며 성적노리개로 학대당하며 살고 있대요, 구 소련권에서는 자녀를 낳으면 국가에서 삼천달러를 양육비로 주는데 문제는 양육비가 떨어지면 아이를 갖다 버리는 거예요, 그러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또 아이를 낳고…… 지옥이 바로 그런 곳이 아닐까요, 왜 하나님은 그런 상황을 방치하시는 걸까요?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러자 강현숙이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인도나 아프리카에는 많은 어린아이들이 총알받이 병사가 되거나 술과 마약에 취해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경우도 있대요ㅡ 태어나면서부터 에이즈에 걸리고 한번도 양말을 신어 보지 못한 불쌍한 아이들, 어린 나이에 창녀로 팔리고 그것도 자신을 길러준 부모에 의해서 말이죠, 그런 아이들을 위해 목숨 걸고 자신의 일생을 희생하는 선교사들은 이 시대 마지막 희망인지도 몰라요, 선교사들은 2대 3대를 거쳐 봉사를 해요, 부모가 풍토병에 죽고나면 대를 이어 봉사하는 거죠. 참혹한 그들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서가 이유라고 해요, 사람은 누구나 편하게 즐겁게 살고 싶어 하는데 그들은 왜 고통을 자처하면서 희생 하는 걸까요? 세상은 온통 부정 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는데.”
“하느님은 악을 방치하고 외면하시는 게 아니고 우리가 그들을 돕고 사랑하길 원하시는 걸 거예요, 악을 선으로 어둠을 빛으로 이끌어 내는 동역자가 되길 원하고 계세요.”
“그래요, 인도에는 데레사 수녀가 빈민층의 아이들을 돌보았다면 중국이나 러시아권에서는 탈북자들을 돕는 단체가 있어 수많은 사람들을 자유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있대요, 얼마 전, 언론 보도에서 들었는데 탈북자들을 돕다 도끼에 맞아 죽은 분도 계시고 끌려가 고문 당하다 순교하신 분도 있대요, 그런 분들로 인해 지구는 희망이 있어요.”
거창하게 지구까지 끌어들이며 강현숙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 인과응보라는 말을 믿지만 현실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행위와 복은 별개처럼 보여 어떨 땐 하느님을 원망하기까지 한다니까요ㅡ 하지만 하느님은 선하신 분임을 믿어요, 성서에도 나와 있잖아요, 하느님 외에는 선하신 분이 없으시다.”
그러자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채현경이 청천병력 같은 말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검은 얼굴이 더 새카맣게 보였다.
“저희 집안은 대대로 중독증세가 심해요, 할아버지 때부터 술중독 도박중독 심지어 여자 중독까지, 아버지 남동생도 똑같아요, 남동생은 재작년에 정신병원에 입원했어요, 평생을 지옥 악다구니 속에서 살았는데 나중에는 엄마까지 술중독에 빠진 거예요, 술 외에는 의지할 데가 없다면서, 그 꼴을 보고 산 것도 모자라 결혼했는데 남편까지 그 꼴을 반복하는 거예요, 결혼 6개월 만에 이혼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채현경은 얼마 전부터 툭하면 자포자기를 밥먹듯 했다. 해결을 위한 노력보다는 안 된다는 부정 의식이 강했다.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어요, 그건 팔자나 운명 탓으로 돌려야 해요.”
“중독은 신적인 능력으로 끊어야 해요, 물론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신의 의지가 중독의 영을 이길 수 있어요.”
노인경은 선교사 지망생답게 말했다.
“그리스도의 사랑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사랑과 의지로 관심을 가지고 환자를 끝까지 돌봐주어야 해요. 아니면 악마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채현경은 피식 웃었다. 당해 보지 않으니 저런 말을 하지. 어두운 얼굴 위로 비웃음이 감돌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모종의 결심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사무실 직원들은 모두 가족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대로 잘 견디는 눈치인데 채현경은 몹시 힘들어 했다. 우울증도 점점 심화되는 것 같았다. 저러다 일내지. 노인경은 불안한 눈빛으로 내게 그녀를 위한 특별 중보기도를 제안했다. 나는 대답 대신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에 우리집에 온 하얀 페르시얀 고양이가 있어요, 이제 3개월 됐는데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하루종일 뛰어 다니고 누워서 그루밍하고 쓰담쓰담은 물론이고 부비부비도 잘해요, TV 동물농장에서 고양이 소리가 나면 저도 따라서 야옹! 하면서 가족들을 웃겨요, 그애 말고도 러시안 블루 고양이도 있는데 그앤 약간 개구져요, 온 집안을 헤집어 놓고 높은 곳에 올라가 숨어 있는 걸 좋아해요.”
“둘 중 한 마리를 채현경씨에게 주자 그 말씀인가요?”
“네, 우울증엔 애완동물 기르는 게 좋다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요. 페르시얀 고양이가 고급 외래종이라 비싸긴 하지만 채현경씨도 좋아할 거예요, 제가 한번 물어 볼까요?”
“그러세요.”
원하는 대답이 안 나오자 노인경은 약간 실망한 투로 말했다. 채현경은 고양이라는 말에 처음에는 뜨악한 표정이었으나 페르시얀 아기 고양이라고 하자 아! 그 털 하얀 고양이 말이죠? 하고 좋아했다.
“잘 키울 수 있겠어요? 아직 어린 아이라 손도 많이 가는데, 먹이는 사료 사다 주면 되고 프라스틱 통에 모래를 담아두면 제가 와서 볼일을 봐요. 쓰담쓰담 예뻐해 주면 고양이는 사람에게 즐거움도 주고 아주 사랑스럽고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네, 주세요 제가 한번 잘 키워 볼께요.”
기도 대신 고양이로 낙찰을 본 나는 때때로 채현경으로부터 덕담도 들었다.
“아이가 하루종일 뛰어 다니며 노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잘 때도 꼭 제 이불 위로 올라와 자고 먹이가 떨어지면 제 밥그릇을 발로 차고 야단이 나요, 그러다 마음 내키면 제게 와 부비부비도 잘해요.”
그녀는 어느새 내 말투를 흉내 내고 있었다. 퇴근하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 고양이와 노는 눈치였다. 사람들이 왜 애완동물을 사람처럼 의지하고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고양이가 먹는 사료 외에 통조림과 장난감도 사가지고 와서는 좋아라 했다. 얼굴도 예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밤중에 자려고 누웠는데 채현경에게서 급한 전화가 왔다. 고양이가 아프니 빨리 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사는 곳은 우리집과는 극과 극인 마천동이었다. 전철로 가도 1시간 20분이 넘었다. 시계를 보니 12시 10분이었다. 이 시간에 동물 병원이 문을 열었을 리도 없고 또 내가 수의사도 아닌데 가봤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나는 울며 보채는 채현경을 겨우 달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 악몽을 꾸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니 예감이 안 좋았다. 불안한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8시가 지나 있었다. 사장의 인상이 울그락 푸르락이었다. 그녀는 시간 약속 안 지키는 걸 제일 싫어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채현경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왜 사장이 그토록 화가 났는지 알만했다. 오늘까지 브로슈어 제작이 마무리돼야 하는 곳이 세군데였다. 그런데 한사람 결근에다 사장은 외부에 나가야 하니 차질이 생길 게 뻔했다. 약속 기일을 지키지 않는 건 이제껏 지켜온 신용에 빨간불이 켜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오늘까지는 마무리해야 하니까 모두 야근할 각오하세요,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결근할 게 뭐람.”
사장은 벌레 씹은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채현경이 안 보이자 더 마음이 불안해졌다. 공연히 고양이를 주었다가 감당 못할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무슨 연락이 있을 법도 한데 채현경한테서는 문자 한통 없었다. 워낙 일이 밀린 상태라 정신없이 마무리 작업을 하는데 여기저기서 독촉 전화가 빗발쳤다.
채현경의 몫까지 해야 하니 바쁜 건 불을 보듯 훤했다. 밤 11시가 넘어 겨우 일을 끝낸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다 말고 고꾸라질 뻔했다. 현기증이 온몸을 휘감고 지나간 상태였다. 이러다 병 재발하는 거 아닌가 순식간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간신히 몸을 추스러 전철에 올라탔는데 채현경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언니, 고양이가 죽었어요 미안해요, 허무해서 미치겠어요.”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나 역시 허무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순간 나는 핸드폰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고양이가 죽었다고 회사까지 결근한 그녀다. 앞으로 채현경이 어떻게 나올지 가상 시나리오가 써졌다. 더구나 그녀는 우울증 환자였다. 어떤 책임감이 느껴지면서 나까지 우울증이 재발하는 건 아닌가 머릿속이 혼미해졌다.
채현경이 아무 연락도 없이 무단 결근한 지 한달이 넘어서고 있었다. 사장은 그녀의 퇴장을 자동 퇴사로 간주하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업무상 일처리도 시원치 않았고 무성의하고 개념도 없는 그녀를 평소에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노인경을 제외한 다른 직원들도 그녀의 퇴장에 대해 아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우울한 낯빛을 더 이상 대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몇 번인가 연락을 취하려다 그만 두었다. 제 쪽에서 먼저 연락을 취하는 게 예의지 내가 뭐가 아쉬워 자꾸만 연락을 취한단 말인가.
남의 고양이 데려갔으면 잘 키울 것이지 죽일 게 뭐람. 공연히 주어가지고 생목숨 끊은 것 같아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귀여운 아기 고양이가 내게 다가와 부비부비 하는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채현경에 대한 원망이 치솟기까지 했다.
창밖은 여름 햇살이 거리를 환한 색채로 물들이고 있었다. 담쟁이 넝쿨 장미가 담벼락과 공원을 새빨갛게 타오르며 진한 향기를 토해놓고 있었다. 각종 언론 매체와 인터넷에서는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의 비리와 악행에 대해 연일 빠르게 보도하고 있었다. 어린 청소년들의 가증한 죄악상과 친딸을 성폭행한 패륜현상도 낱낱이 까발려지고 있었다.
자살률도 덩달아 오르는지 자고나면 죽음에 대한 소식이 일상사처럼 전해졌다. 그런가 하면 좌파 종북세력의 국회 입성을 막아야 한다고 일간지마다 톱기사로 다루고 있었다. 연변지역에서 탈북자들을 돕던 선교사가 의문사를 당한 기사도 신문 한쪽 지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에도 독침 테러를 당했다고 했다.
세상은 악이 승하고 불의가 득세하는 것처럼 보여도 정의와 진리는 살아 숨쉬고 있었다. 강한 어둠이 자유의 탈을 쓰고 민심을 도적질하는 순간에도 빛은 승리의 깃발로 타오르고 있었다. 종말론은 이제 이단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일본을 강타한 지진과 어린 생명을 무참히 도륙한 중동의 세기말적 죄악상에 세상은 서둘러 종말론을 꺼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고정란에게서 문자가 왔다. 유명 문예지에 소설을 응모했는데 최종 심사에서 아깝게 낙선했다는 것이었다. 자랑인지 안타까움인지 억울함인지 도무지 헷갈렸다. 그녀는 상처를 사람들로부터 받는 인정으로 카버하려 들었다. 틈만 나면 자기 자랑을 했고 은근히 남을 무시하는 행동도 곧잘 했다.
어릴 때 받은 상처와 전 남편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로 원한에 찬 욕설을 내쏟다가 느닷없이 자신의 의(義)를 주장하며 울부짖기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인경은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정란씨는 전문적인 상담기관에 가 치료를 받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주변사람도 힘들어져요.”
사장은 회식 때마다 고정란은 제외시키고 싶어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술만 취했다 하면 눈물바람이니 아예 자리를 따로 마련하던가 해야지 원. 짜증나서.”
상처는 전이현상을 일흐키는 모양이다. 이혼이라는 공감대 속에서도 상흔은 서로의 마음을 찌르고 있었다. 자기 혼자만 이혼했나? 누군 상처가 없어서 가만있는 줄 아나. 힘들어도 다 내색 않고 참는 거지. 직원들은 고정란에게 말없이 눈총을 주었다.
“상처의 가장 좋은 치료약은 사랑인데 고정란씨도 어서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네요.”
강현숙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한번도 남에게 상처주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다. 배려와 이해심이 항상 그녀의 말 속에 숨어 있었다. 반면에 장경자는 눈쌀을 찌푸리고 혼잣말로 욕까지 했다.
회사 안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은 더위가 막 기승을 부릴 무렵이었다. 이제껏 한번도 말썽 일흐키지 않고 수금이 잘됐었는데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번번이. 거래처에서 부도 위기설이 솔솔 퍼져 나온 것은 결코 헛소문이 아니었다. 수금이 안 되니까 자연스럽게 일에 차질이 생기고 급기야 사장의 입에서 죽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그 비용이 엄청나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설마 했었다. 그런데 상상 이상이었다. 사교육비에다 두 딸 치장하는데 들어가는 용돈도 엄청났다. 사업 수완은 있어도 자녀 교육은 엉망이었다. 딸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돈타령을 한다 했다.
일이 안 되려니까 거래처마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상태로 나가다간 감원사태까지 날 게 뻔했다. 월급 지급일이 늦어지면서 직원들의 불평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참을성 없는 한미령이 제일 먼저 사직서를 제출했다. 자칫하면 월급을 떼일까봐 미리 겁먹고 선수 친 것이다.
그녀는 미지급된 급여액과 퇴직금까지 동시에 요구했다. 사장은 은행에 가 카드를 긁어 그녀의 요구분을 해결해 주었다. 직원들 중 그녀의 월급이 제일 많았다. 그래서인지 사장은 그녀의 퇴장에 대해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한미령이 나가자 장경자와 고정란도 움직이는 눈치였다.
고정란은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눈치였지만 쉽지 않은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장경자도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눈치였지만 그 역시 쉽지 않았다. 어린 신세대들이 뛰어난 감각으로 좋은 자리는 미리 다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현숙은 끝까지 버틸 작정이었고 노인경은 신학교 복학 준비를 서두르는 눈치였다.
사장은 자식들 사교육비 대랴 생활비 마련하랴 허리가 휠 지경이라며 날이 갈수록 죽는 소리를 했다.
그 소리가 직원들 귀에는 빨리 알아서 나가 달라는 뜻으로 전해졌다. 고정란은 타 직종으로라도 가야겠다며 인터넷 구직 사이트마다 이력서를 올리고 백방으로 뛰는 눈치였다. 나는 나이도 많은 데다 정말 갈 데가 없었다. 다시 리서치 조사나 할까 고민하는데 노인경이 의외의 제의를 해왔다.
“이제 ‘위대한 땅’도 얼마 안 갈 것 같네요, 아까 사장님이 통화하는 내용을 들으니 부도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어요, 내 생각으론 규모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알바를 쓰든가 할 것 같아요, 우리도 빨리 결정을 해야 퇴직금이라도 받아 나갈 텐데.”
“전 아직 일 년이 안 돼 퇴직금은 상관없지만 지난달 급여를 못 받아 걱정이에요.”
“컴퓨터는 어느 정도까지 할 줄 아세요? 문서작성이나 액셀 가능한가요?”
“그 정도는…… 그런데 그건 왜요?”
“제가 가는 신학교에서 직원을 뽑는대요, 나이는 상관없고 성실하고 믿음만 좋으면 된대요.”
“네?”
나는 약간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그녀야말로 ‘위대한 땅’에 끝까지 남아서 생사를 같이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 역시 살길을 모색하며 나까지 동참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긴 사장과 피붙이도 아니고 그 역시 예정된 길을 가는 것 뿐이리라.
“학교는 어디쯤에 있는데요?”
“방배동요. 이참에 민혜씨도 신학공부 하는 게 어때요?”
“네에? 무슨 그런 말씀을 말도 안 돼요.”
놀라움에 소리를 빽 질렀다. 그나저나 퇴사를 하려면 먼저 영실이에게 의논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사장이 영실이와는 이종사촌 지간이어서 전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업계에 벌써 소문이 돌았는지 일거리도 떨어져 할 일도 없었다. 영업의 귀재라던 사장도 거래처의 부도로 돈을 떼일까봐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녔다.
이대로 나가다간 두 달 째 급여가 밀릴 판이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퇴근하는데 장경자가 노인경에게 할 말이 있으니 커피숍으로 가자고 했다. 나보고도 합류하자고 해 무슨 중요한 이야기가 있나보다고 따라 나섰다. 대로변을 지나 을지로 쪽으로 걷던 장경자는 초록색 영어간판이 달린 커피숍으로 앞장 서 들어갔다.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은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전 내일이면 ‘위대한 땅’을 떠나요.”
“다른 직장에 가기로 결정 됐나 봐요, 부럽다.”
나는 짐짓 넘겨짚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고요, 내일 제가 안 보이더라도 찾지 마시라고요, 그보다도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뵙자고 했어요.”
무슨 중요한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노인경과 나는 바짝 긴장해서 물었다.
“무슨 말인지 해보세요.”
“저 같은 사람도 하나님 믿을 수 있을까요? 전 지독한 죄인이거든요.”
너무나 뜻밖의 말에 노인경과 나는 질식할 듯이 놀랐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에요,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예수님의 보혈이 필요한 거 아니겠어요, 믿기만 하면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귀한 권세도 얻는 답니다.”
말은 주로 노인경이 하고 나는 옆에서 듣는 입장이었다. 장경자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러나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씻지 못할 많은 죄를 지었어요, 그걸 감추기 위해 미친 듯이 이를 악물고 살았어요, 사실 이혼한 것도 제 잘못이 커요, 남편에게 상처주고 온갖 못된 말 하고, 전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입장이에요, 이혼도 제가 억지로 우겨서 한 거예요. 사실 결혼 전에 유부남을 좋아한 적이 있었는데 엄청난 상처를 받고 말았어요, 그 상처를 남편에게 대신 갚아버린 셈이에요, 남편도 제가 먼저 유혹해서 임신했다고 속여서 결혼한 거였어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루도 마음 편히 살지 못했어요.”
뒤통수에서 탕!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장경자에게 그런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었다니.
“헤어질 그때 당시만 해도 잘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엄청난 후회가 되는 거예요, 자책감도 들고 어떻게 하면 속죄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평생 독신으로 살기로 결심했어요.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요, 그런데 언젠가 두 분 말씀하시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어요.”
이 부분에서 나는 바짝 긴장했다. 지금까지는 노인경 혼자 대답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어쩐지 내 차례 같았다.
“용서에 대한 말씀이었어요,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전 도무지 제 자신이 용서가 안 되는 거예요. 어쩌면 그렇게 잔인하게 다른 사람을 욕보이고 상처를 줄 수 있었는지 제 자신이 미워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저도 제 자신을 용서하고 싶은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누구한테 용서를 빌어야 하죠? 전 남편은 아직도 저와 재결합하기를 원해요, 가끔씩 꽃을 들고 저를 찾아오기도 해요.”
저런 등신 같은 놈, 나는 터져 나오려는 욕설을 간신히 눌러 참았다.
“남편 분은 경자씨를 진심으로 사랑했나 보군요.”
“사실 그 사람에게도 상처가 있었어요, 초혼이었던 아내에게 상처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럼 너의 둘은 쎔쎔이었구나. 나는 여전히 속으로만 말했다.
“그런 상처 많은 사람에게 제가 거듭 거듭 상처주고 못 되게 굴었으니…… 이 죄를 다 어떻게 감당하죠, 제 자신이 도저히 용서가 안 돼요, 전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녀는 심한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수님 십자가 보혈 앞에 죄 짐을 내려놓고 용서를 구하세요.”
내 입에서 거침없는 말이 튀어 나왔다. 말해 놓고 나서 나는 스스로 놀라 부끄러웠다.
“두 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수 있나요? 전 너무도 부끄러워 오늘 회사를 그만두면서 두 분께만 특별히 말씀드리는 거예요.”
노인경과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핸드백 안에 있던 핸드폰에서 요란한 울림이 있었던 것은. 나는 핸드폰 액정화면을 보자마자 감전된 듯 전율이 느껴졌다. 거기에는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고 미워하던 이름이 보였기 때문이다. 전 남편, 그가 이혼 전 풀지 못했던 재산 문제를 두고 끈질지게 합의를 요구하고 있었다.
내가 병동에 갇혀 있었던 세월 동안에도 친정식구들을 어지간히 괴롭히더니 이젠 내가 살만하다는 소식을 들은 걸까. 또 합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반반씩 나누든가 아니면 자기에게 몽땅 넘기라는 것이리라.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나는 그만 밧데리를 빼 버렸다. 잊고 있던 지옥 같은 기억이 되살아날까봐 핸드폰 자체를 없애버리고 싶었다.
갑자기 귓속에서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뭔가 알 수 없는 폭음 같기도 하고 욕설과 싸움소리 같기도 하고 알코올 중독자의 취한 목소리 같기도 했다. 정수리에 무언가가 콱! 꽂히는 것 같은 아픔도 느껴졌다. 기억의 회로를 타고 별별 잡음이 다 들려왔다. 사기꾼에다 싸움 전문인 그는 좋은 집안에서 자라난 이단아였다.
결혼 전에 관계한 여자 수만도 수십 명이라며 입만 열면 자랑했다. 사탄에게 미혹되었는지 툭하면 거짓말과 속임수를 썼다. 그러더니 어느날 전화를 걸어 이제야 말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다며 그녀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중이라 했다. 온갖 악의 대명사가 그였다. 그런데 이제 간신히 정신 차리고 살아가는 내게 그가 또 마수를 뻗칠 모양이다.
나는 치가 떨려 도저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분노로 턱이 덜덜 떨렸다. 눈앞이 핑그르르 돌면서 착시현상마저 일었다. 출입문 쪽에 그가 악마의 모습을 하고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눈길을 노인경과 장경자에게 돌렸다. 노인경은 오랜만에 만난 어린양에게 구원의 복음을 한참 전하고 있었다.
물 만난 고기가 이제 수면을 향해 막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들 앞에 웬 남자가 와 섰다. 손에 꽃바구니를 든 남자는 장경자에게 허리를 숙이더니 옆에 있는 나를 바라보더니 사색이 되었다.
“당신 당신…….”
나는 순간 좀 전에 밧데리를 빼두었던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남자를 향해 힘껏 던졌다. 핸드폰은 남자의 정수리를 조금 벗어나 바닥에 그대로 떨어졌다. 장경자와 노인경이 당황한 눈빛으로 어머! 어머!를 연발했다. 나는 그들의 외마디 소리를 뒤로 하고 커피숍을 빠져나와 그대로 찻길을 향해 냅다 뛰었다.
뒤에서 차량들이 질러대는 경적 소리가 귀에 따갑게 들려왔다. 퇴근 시간을 벗어난 시간인데도 차량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찻길을 건너 지하도로 들어서자 소름 끼치는 냉기가 내 얼굴을 확 덮쳐왔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나는 핸드백을 뒤져 교통카드를 꺼내 지하철 판독기에 댔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자마자 이제 막 도착한 전철을 향해 몸을 강하게 들이 밀었다. 또다시 소름 끼치는 냉기가 내 얼굴과 전신을 덮쳐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핸드백을 뒤지는데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다. 아까 커피숍에서 두고 그냥 나온 것이다.
90만원도 넘는 산 지 얼마 안 된 스마트폰이었는데 후회가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전철이 터널을 통과하고 있었다. 더위에 지친 승객들은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면 각종 정보에 눈과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나 역시 무언가에 계속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건 내 마음을 창조한 절대자의 음성이었다.
그때였다. 귀에서 들러오던 수많은 잡음이 사라진 것은.
이튿날 노인경에게 연락이 왔다. 핸드폰을 보관하고 있으니 방배동 근처에 만나자고 했다. 내친 김에 면접도 함께 보러 가자고 했다. 나는 흔쾌히 허락하며 약속 시간을 정했다. 정장을 꺼내 입고 화장을 고치면서 나는 내 앞에 펼쳐진 시온의 대로를 보았다. 그건 새롭고 산 길이신 신의 의지였다.
거리로 나서는데 뜨거운 열기가 내 정신과 몸속으로 빨리 듯이 들어왔다.
끝
첫댓글 소설 속 노인경님 같은 분이 있다면, 우리 목사님께 소개해 주고 싶네요.^^우리 목사님도 원주민 선교에 관심이 많으셔서 지구촌 오지만 골라 다니셔서 어느 지역에 선교사가 절실한지 알고 연결해 주시는 분이시라서요!
'돌싱'분들의 삶을 작품으로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싱이라는 단어는 사전에 없을 터 그런 말도 배워주시니 감사. 여자들아 돌싱되지 말고 남자 잘 모시고 고분고분하고 사랑받으면 안 될까?
저도 알바하다가 처음 들은 말입니다. 워낙 돌싱이 많은 세상이다 보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