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경여고 2학년이던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나선 이상화(21·한체대)는 여자 500m에서 5위에 올랐다. 앳된 얼굴에 아쉬움과 속상함의 눈물이 고였다. 그리곤 ‘난 아직 어리잖아. 다음 올림픽에선 꼭 해내고 말거야’라고 굳게 다짐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가 20일 태릉선수촌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4년 뒤 이상화는 ‘샛별’이란 수식어를 떼고 대표팀의 간판으로서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조준하고 있다. 20일 서울 태릉선수촌 국제스케이트장에서 만난 이상화는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 우승의 기세를 이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상화는 지난 17일 일본 오비히로에서 끝난 스피드스케이팅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158.58점으로 여자부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는 단거리 선수에게는 올림픽 다음 가는 규모의 대회다. 이 큰 대회에서 한국 여자선수로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 올림픽을 3주 남짓 남겨두고 열린 대회에서 여자 500m 세계 최강 예니 볼프(독일)를 꺾은 점도 고무적이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은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2개의 메달을 땄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 남자 1000m 은메달리스트 김윤만, 2006년 토리노 대회 남자 500m 동메달리스트 이강석(25·의정부시청)이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둘은 모두 남자다. 이상화가 이번 올림픽에서 동메달만 따도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최초의 여성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역사에 남게 된다.
이상화는 대표팀 막내로 토리노 올림픽에 출전한 이후 각종 국제대회에 대표팀 에이스로 나서며 엘리트 코스를 걸었다. 2007년 토리노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국제대회 첫 우승을 거머쥔 데 이어 장춘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500m)과 동메달(1000m)을 목에 걸었다. 큰 부상이나 징크스 없이 꾸준히 성적을 내왔다. 2009~2010 시즌에는 월드컵 1, 2차 대회에서 부진했지만 3, 4차 대회 이후로는 꾸준히 3위 안에 입상했다.
이상화는 이규혁(32·서울시청), 이강석 등 남자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고 있다. 국내 여자선수 중에 적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오빠들과 함께 타는 것만으로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며 훈련 방식에 만족해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최단거리인 500m에서 메달을 노리고 있는 이상화는 현재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여자 500m 세계랭킹 3위(505점)를 달리고 있다. 이강석과 이규혁이 남자 500m에서 1, 2위인 데 비하면 순위가 낮다.
그러나 대표팀 맏형 이규혁은 “색깔은 어떨지 몰라도 우리 대표팀에서 메달이 가장 확실시되는 후보가 이상화”라고 말한다. 남자 500m에서는 7~8명의 선수들이 3개의 메달을 두고 박빙으로 대결하고 있지만 여자 500m는 이상화 등 3명 정도가 메달 색깔을 놓고 경쟁하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이상화가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서는 세계신기록(37초0)을 보유한 볼프와 2위 왕베이싱(중국)을 꺾는 게 과제다. 이상화의 최고기록은 37초24. 체력이 우세해 마지막 100m 성적이 좋지만 초반 100m 기록은 볼프에 비해 0.2초가량 뒤진다. 남은 기간 초반 스피드에 강한 이강석과 함께 훈련하며 약점을 보강하는 게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