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1915163_thumb.jpg)
겨울의 후원을 거닐다
창덕궁의 업무공간인 궁궐 구역을 두루 둘러보고 나면 왕들과 그 직계 가족들이 거닐었을 후원을 볼 차례다. 창덕궁의 궁궐은 예약 없이도 볼 수 있지만, 후원은 미리 예약을 하거나 판매되지 않은 표를 당일 현장 구매하여 입장할 수 있다. 창덕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소중한 문화재기 때문에, 후원의 보존을 위해 인원을 제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후원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문화재임에도 입장료가 5,000원으로 다른 문화재 관람료보다 약간 비싼 편이다.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224497_thumb.jpg)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224931_thumb.jpg)
미리 예약한 내역을 후원 입구에 보여주면 창덕궁 표와 다른 후원 입장이 가능한 표를 받을 수 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주변에 있는 창덕궁 매표소가 아닌 후원 입구에 있는 매표소에 가야 후원 입장권을 발급받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후원 입장 시간은 계절과 요일에 따라 다르지만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 정각이다.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동선을 따라 관람하는 것이 원칙이고 자유 관람은 제한적으로 허용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자유 관람이 활성화되고 여유롭게 창덕궁 후원을 관람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209246_thumb.jpg)
후원은 창덕궁의 역사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해도 충분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왕들이 머리를 싸매며 궁궐에서 국가를 운영한 뒤, 정치에서 벗어나 머리를 식히며 휴식을 취하고자 할 때 찾는 공간이 후원이었기 때문이다. 다소 삭막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경복궁과 비교하면 왜 왕들이 창덕궁을 선호하였는지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이후 무너진 궁궐을 재건할 때 경복궁 대신 창덕궁을 먼저 복구한 건 경복궁이 터가 안 좋다는 설을 믿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창덕궁이 왕들이 지내기에 훨씬 편안한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야기 05 - 창덕궁 후원
부용지는 후원의 첫 번째 중심 정원으로, 휴식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다. 300평(약 1000㎡) 넓이의 사각형 연못인 부용지를 중심으로 여러 건물이 세워졌다. 주합루 일원의 규장각(奎章閣)과 서향각(書香閣) 등은 왕실 도서관 용도로 쓰였고, 영화당(暎花堂)에서는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영화당은 동쪽으로 춘당대 마당을, 서쪽으로 부용지를 마주하며 앞뒤에 툇마루를 둔 특이한 건물이다.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부용정은 연못에 피어 있는 한송이 꽃의 형상을 하고 있다. 행사가 치러지던 영화당은 연못에 면해 있으며, 학문을 연마하던 주합루는 높은 곳에서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나하나의 건물도 각각 특색 있고 아름답지만, 서로 어우러지면서 풍경이 되는 절묘한 경관이다.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148393_thumb.jpg)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148514_thumb.jpg)
애련지는 부용지를 지나 오른쪽 길을 따라 걸어가면 나오는 또 다른 연못이다. 1692년(숙종 18)에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 그 섬은 없고 정자는 연못 북쪽 끝에 걸쳐 있다. 연꽃을 특히 좋아했던 숙종이 이 정자에 ‘애련(愛蓮)’이라는 이름을 붙여, 연못은 애련지가 되었다. 숙종은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라고 새 정자의 이름을 지은 까닭을 밝혀 놓았다. 애련지 서쪽 연경당 사이에 또 하나의 연못이 있는데, 원래 이곳에 어수당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어졌다. 1827년(순조 27) 효명세자는 애련지 남쪽에 의두합을 비롯한 몇 개의 건물을 짓고 담장을 쌓았다. 현재‘기오헌(奇傲軒)’이라는 현판이 붙은 의두합은 8칸의 단출한 서재로, 단청도 없는 매우 소박한 건물이다. 바로 옆의 운경거(韻磬居)로 추정되는 건물은 궐 안에서 가장 작은 한 칸 반짜리 건물이다.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131074_thumb.jpg)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128951_thumb.jpg)
관람지 일대는 후원 가운데 가장 늦게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모습은 네모나거나 둥근 3개의 작은 연못들이 있었는데, 1900년대 이후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관람지라고 부른다. 연못을 중심으로 겹지붕의 육각형 정자인 존덕정, 부채꼴 형태의 관람정(觀纜亭), 서쪽 언덕 위에 위치한 길쭉한 맞배지붕의 폄우사(砭愚榭), 관람정 맞은편의 승재정(勝在亭) 등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을 세웠다. 폄우사는 원래 부속채가 딸린 ‘ㄱ’자 모양이었으나 지금은 부속채가 없어져 단출한 모습이고, 숲 속에 자리 잡은 승재정은 사모 지붕의 날렵한 모습이다. 1644년(인조 22)에 세워진 존덕정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관람정과 승재정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116323_thumb.jpg)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1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116308_thumb.jpg)
옥류천은 후원 북쪽 가장 깊은 골짜기에 흐른다. 1636년(인조 14)에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깎아 내고 그 위에 홈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어들여 작은 폭포를 만들었으며, 곡선형의 수로를 따라서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벌이기도 했다.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 세 글자는 인조의 친필이고, 오언절구 시는 이 일대의 경치를 읊은 숙종의 작품이다.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농산정(籠山亭), 취한정(翠寒亭), 청의정(淸漪亭) 등 작은 규모의 정자를 곳곳에 세워, 어느 한곳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는 정원을 이루었다. 작은 논을 끼고 있는 청의정(淸漪亭)은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초가이다. <동궐도>에는 16채의 초가가 보이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청의정만 궁궐 안의 유일한 초가로 남아 있다.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1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101130_thumb.jpg)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1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101247_thumb.jpg)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1828년(순조 28) 경에 창건했다. 지금의 연경당은 고종이 1865년쯤에 새로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지만 내부는 연결되어있는 점도 유사하다. 그러나 일반 민가가 99칸으로 규모가 제한된 데 비해, 연경당은 120여 칸이어서 차이가 난다. 서재인 선향재(善香齋)는 청나라풍 벽돌을 사용하였고 동판을 씌운 지붕에 도르래식 차양을 설치하여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후원 높은 곳에 있는 농수정(濃繡亭)은 마치 매가 날개를 편 것같이 날렵한 모습이다. 안채 뒤편에는 음식을 준비하던 반빗간이 있다. 고종 이후 연경당은 외국 공사들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서울 시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설국, 후원
눈 덮인 창덕궁의 궁궐도 아름다웠지만, 후원의 겨울 풍경은 서울에서 제일갈 정도로 아름답다. 후원의 연못과 전각에서 인공미를 느끼고, 후원을 이루고 있는 숲을 통해 자연미를 느낀다. 하얀 길을 걸어 후원의 상징인 부용지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몇몇 사람들은 영화당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사색을 하고 있다. 옛날 왕들은 자신들의 개인 공간인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궁금증이 떠오른다.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1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039316_thumb.jpg)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1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039357_thumb.jpg)
부용지 북쪽 계단 끝에 위엄 있게 서 있는 건물은 왕실 도서관인 주합루와 서향각이다. 주합루 위에 올라서서 하얀 눈이 덮인 부용지를 바라보는 것도 멋질 것이라 상상하지만 아쉽게도 주합루는 관람 제한구역이라고 한다. 평소에는 관람이 제한된 주합루도 봄이나 가을 책 읽기 좋은 계절에 한시적으로 개방하는 때가 있다고 하니 이 기회를 노려봐야겠다.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1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257264_thumb.jpg)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16](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257509_thumb.jpg)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17](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308111_thumb.jpg)
부용지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또 다른 연못인 애련지가 나온다. 숙종이 연꽃을 너무나 사랑해 후원에 또 다른 연못을 만든 것이 시초라고 한다. 얼마나 연꽃을 좋아했으면 연못의 이름 또한 애련지 (愛蓮池)라고 지었을까. 나는 단풍나무를 가장 좋아하니 연못을 만들면 그 주위로 온통 단풍나무를 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애련지 주위에도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의 풍경 또한 이쁘다고 하니 내년 가을에 다시 한번 찾기로 결심했다.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18](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013508_thumb.jpg)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19](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014409_thumb.jpg)
후원의 마지막 연못은 관람지다. 궁궐과 멀수록 만들어진 시기가 늦다고 보면 되므로 관람지가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연못이다. 후원의 건물 중 인조 재위 시절에 세워진 존덕정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나머지 건물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관람지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연못임에도 겨울의 아름다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연못을 바라보는 승재정(勝在亭)에는 눈으로 만든 오리가족이 줄지어 걸어가고 있어 웃음을 더한다.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20](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000897_thumb.jpg)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2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2001470_thumb.jpg)
관람지를 지나 천천히 걸으면 애련지 서쪽의 연경당이 나온다.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에게 존호를 올리는 의례를 행하기 위해 지은 연경당은 궁궐의 부속 건물이라기보다 양반이 살았던 한옥처럼 보인다. 거대한 규모의 연경당은 현재도 창덕궁의 행사가 가끔 열리고 있다. 주변이 온통 숲인 연경당에서 하루를 보내면 얼마나 멋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출구로 향했다.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22](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1943515_thumb.jpg)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2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1943625_thumb.jpg)
창덕궁 출구로 가는 길은 창덕궁의 서쪽 담장을 따라가는 길이다. 아침 10시에 와서 그런지 눈 쌓인 길에 남겨진 발자국은 얼마 되지 않았다. 곧 없어질 내 흔적이지만 의도적으로 발자국을 남기며 창덕궁의 겨울 풍경을 감상했다.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24](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1930884_thumb.jpg)
![제5화 - 조선 왕들이 사랑했던 공간, 창덕궁 후원25](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s%3A%2F%2Fstorage.doopedia.co.kr%2Fupload%2F_upload%2Fimage5%2Ftravel%2Feditor%2F2022%2F07%2F31%2F20220731221931112_thumb.jpg)
창덕궁의 설경을 본 뒤 경복궁의 설경 또한 보러 갔지만 창덕궁에서 느낀 감동만큼은 아니었다. 경복궁의 경회루는 왕이 주관하는 연회를 열기에 알맞은 거대한 목조 건물이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창덕궁의 후원이 선사하는 자연과의 조화는 대한민국 전통 건축물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며, 눈 쌓인 설경은 덕유산의 설경과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계절마다 바뀌는 창덕궁의 모습을 눈에 담는 건 수도권에서 살아가는 큰 재미 중 하나임을 깨달았기에, 단풍이 붉게 물드는 가을에 다시 한번 창덕궁을 찾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