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다 왔... 습니다.>
"아~ 드디어 숲에서 빠져나가는구나~!"
"휴우! 죽는 줄 알았어......."
"그러게나 말이야. 이제 숲을 지나서 가자고 하면 난 결사반대 할거야."
카렐과 세르를 만나서 동행한 지 여섯 시간만에 산맥에서 벗어나 비샤스 왕국 검문소가 보이는 곳에 다다르게 되자 사람들은 다들 한마디씩했다.
"아... 이렇게나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니까. 다시는 마이티한테 길안내를 맡기지 말아야지."
"뭐라고? 왜 나 때문인데? 이건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고! 자연재해였단 말이야!"
"호오, 그러셔요?"
"아씨! 아까 저 정령이 하는 말 못 들었어? 숲이 커져서 그런거라고 했잖아!"
미카의 빈정거림에 마이티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대로 용병단과 카렐이 길을 못 찾은 이유는 그들의 탓이 아니였다. 아니, 애
초에 길을 잃었다는 것도 잘못된 말이었다. 최근 몇달간 산맥을 이루는 숲의 일부가 비정상적인 속도로 넓어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오스 산부터 비샤스 왕국에 걸친 숲은 4달 만에 전보다 1.2배나 넓어져서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최소 하루에서부터 최대 닷새가 늘어났다. 그 떄문에 기존의 지도와 과거에 했던 유희를 바탕으로 카렐이 예상한 시간보다 시간이 더 걸린 것이다.
"그래, 그래. 그렇다고 하겠지. 세르, 넌 마이티처럼 책임을 떠넘기는 사람이 되면 안된다. 알았지?"
"이익! 미카, 이 망할 여자가......."
"... 마이티, 너 요즘 실력 많이 늘었나보지? 이 누님에게 그런 싸.가.지.없.는. 말도 할 수 있는 걸 보면?"
"누님은 무슨! 나이도 얼마 차이 안나는 것이......"
'스윽'
"... 뭐라고?"
미카가 싸늘한 말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허리춤에 있는 레이피어를 뽑아 마이티의 목을 겨누었다. 일련의 행동이 얼마나 빨랐는지 레이피어가 닿지도 않았는데도 뽑으면서 생긴 검풍으로 마이티의 목에 한줄기 혈선이 그어졌다.
"어디~ 다.시.한.번. 말.해.보.시.지? 아까 뭐라고?"
"자, 잘못했어. 사, 살려주세요, 누님......"
"자자, 다들 그만 하고 비샤스 왕국으로 들어가자고. 여기서 이러고 있다간 여관방 못 잡고 오늘도 노숙을 해야할 지도 모른다는 거 알잖아?"
단장인 필의 말에 미카는 레이피어를 거두고 홱 돌아섰다. 그녀가 돌아서자 마이티는 겨우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카렐의 눈동자엔 놀라움과 경계심이라는 감정이 나타났다.
'저 여자......'
카렐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매우 놀랐다. 미카의 매끄럽고 흠잡을 곳 없는 발검 실력이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경지였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용병으로 보였지만 지금 미카가 보인 실력은 어지간한 왕실 기사들을 가볍게 이길 정도의 실력이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상당한 양의 마나......
'설마...!'
몸에 있는 상당한 양의 마나, 전력을 다 한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검술 실력, 그리고 몸에서 조금씩 느껴지는 잘 갈무리 된 기세. 이 모든 것을 한번에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설마... 소드... 마스터?'
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인간들......'
처음 보았을 땐 잘 느낄 수 없었지만... 지금와서 다시보니 이 용병들 모두 몸에 상당한 양의 마나가 내재되어 있었다. 마법으로 치면 대략 6클래스 급. 검술로 보면...... 최소한 소드 마스터 하급... 특히 필과 페그온은... 소드 마스터 중급 정도 되는 마나량을 보유하고 있다니......
'대체... 뭐하는 용병들이지?'
카렐이 복잡한 눈으로 앞서가는 용병들을 보고 있을 때, 세르는 처음 보는 검문소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옆에 있는 미카에게 말했다.
"미카언니, 저게 뭔지 아세요?"
"응? 저거? 설마 검문소를 물어본 거니?"
"저게 검문소라는 거에요? 헤에~ 신기하게 생겼네요."
"... 저기, 세르?"
"왜요, 언니?"
"너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니?"
"지금까지요? 음......"
미카의 말에 세르는 지금까지의 생활을 쭉 되짚어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수련하고, 아침먹고, 공부하고, 점심먹고, 아빠랑 대련하고, 저녁먹고, 또 공부하다가 잤었지, 아마? 가끔 호수로 놀러가기도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던 세르는 미카에게 말했다.
"전 그냥 평범하게 살았는데요?"
"그, 그러니?"
"네. 그런데 뭐 이상하나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하하하......"
"???"
어색하게 말하는 미카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세르의 시선을 피하며 미카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세르는 저 나이를 먹도록 집에서만 자랐나?'
그럼 지금까지 세르에게서 느껴지는 이상한 점을 설명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세르와 이야기를 나누며 미카가 느낀 것은 세르는 지식으로 따지자면 미카 자신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세르가 알고 있는 것은 단지 지식일 뿐, 실제로 경험한 것은 너무나도 적은 것 같았다. 마치 집안에서 책만 읽으며 자란 아이처럼.
'그렇다면 저 카렐이라는 사람, 혹시 엄청난 팔불출?'
처음 카렐을 보았을 때 미카는 카렐의 날카로운 인상에 그를 얼어붙은 심장을 가진 냉혈미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팔불출이라고 생각하자 그의 날카로운 인상은 사라지고 못말리는 풀불출 유부남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뭐......
'푸훗! 너무 안 어울리잖아~!'
미카가 카렐에 대해 즐거운 상상을 하며 피식거리고 있을 때, 일행들은 검문소에 다다랐다. 검문소를 지키며 서있던 경비병들이 그들을 보자 허리춤에서 작은 석궁을 꺼네 그들에게 겨누며 외쳤다.
"멈추시오!"
"신분을 증명할 것을 보이시오!"
검문소의 경비병답지 않게 꽤나 정중한 말이 나오자 단장인 필이 앞으로 나왔다.
"저흰 용병들입니다. 그리고 이건 용병패."
필이 작은 금색의 패을 꺼네 건네주자 경비병들은 그것을 받아 꼼꼼히 살폈다. 잠시 메달을 살피던 경비병들은 용병패의 정체를 알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 용병패는... 설마 당신들이!"
"네. 저희가 바로 블랙 라이트 용병단입니다. 그럼 들어가도 될까요?"
"아, 당신들은 들어가도 좋소. 그런데 저기있는 두 사람은 누구요? 내가 알기론 블랙 라이트 용병단은 여섯 명이라고 알고 있는데."
경비병 1 이 용병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있는 카렐과 세르를 가르키며 말했다.
"아, 그게......"
"혹시 일행이요?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일행이라도 신분을 증명할 수 없다면 들여보낼 수 없소."
"에, 그러니까...... 카렐 씨, 혹시 신분을 증명할 뭔가가 있습니까?"
필의 물음에 카렐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 있습니다. 저나 제 딸 같은 여행자에게 그런건 필수품이죠.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카렐은 경비병에게 다가가며 품안을 뒤지더니 작은 매달을 꺼냈다.
"자, 이거면 되겠습니까?"
"음? 이건......"
경비병이 그가 내민 매달을 보려는 순간, 카렐은 마법을 사용했다.
'[정신 제압]'
그의 눈에서 기이한 광채가 어른거리자 경비병의 눈이 슬며시 풀렸다.
"그럼, 우리도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예... 들어가십시오. 저희 나라에서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자, 어서 들어가죠."
카렐과 세르도 허가를 받자 일행들은 검문소를 지나 바샤스 왕국으로 들어갔다.
"와아~"
검문소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자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활기찬 마을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 여긴 어디에요? 여기가 마을이라는 건가?"
"그래. 여기가 마을이란다. 여긴 작은 축에 속하는 마을이지."
"헤에~ 그렇구나. 이 마을 이름이 뭐에요?"
"아까 표지판을 보니까 레이나라고 하던데?"
"역시, 세르는 집에서만 자란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다면 마을을 처음 봤을 리가 없지."
카렐과 세르의 대화를 들으며 미카는 작게 중얼거렸다.
"자, 마을에 도착했으니 여관부터 잡자고."
"여관방을 잡을 수 있으려나?"
"그러게나 말이야. 여긴 휴양지로 유명해서 사람들이 많다던데."
그 때 단장인 필이 지나가던 사람 하나를 붙잡고 뭔가를 물어보더니 다시 돌아와서 말했다.
"저기 여관들이 대여섯개 정도 있다는데? 일단 그쪽으로 가보자고."
필이 마을 중앙에서 그들이 들어온 곳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난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가 가리킨 길을 따라가자 그의 말대로 여관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보였다.
"아빠, 아빠."
"왜 그러니?"
"여관이 한두개가 아닌데 어떤 여관으로 들어가야 해요?"
"그건 말이다, 여행을 다니면 좋은 여관을 구별하는 법이 차츰 생겨. 어디 보자... 흠! 저기 보이는 깨끗한 건물은 최근에 새로 지은 건물인 것 같구나. 새로 지은 건물이면 다른 곳 보다 깨끗할테니 저 여관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니?"
카렐이 늘어서있는 여관들 중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음... 네."
"역시 그렇지? 하지만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란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고 그러면 저런 여관은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겠니? 그러니 저곳은 빼는 편이 낫단다. 여관의 외관은 약간 지저분해도 상관없어. 너무 지저분해도 곤란하지만 말이야."
"아아, 생각해보니 그렇겠네요."
"그렇지? 그리고 다음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빗자루질을 한 흔적이 남아있는 곳, 그런 곳은 주로 단골들이 자주 오는 곳일 확률이 높단다. 그런 곳은 음식 맛도 괜찮고 주인도 평판이 좋은 경우가 많아. 그리고 3층 이상의 건물이 여관일 경우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피하도록 하는 것이 좋아. 그런 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밤에 잘 때 시끄럽고 식당엔 사람이 많아서 식사를 하려면 줄을 서야할 지도 모르니까."
잠시 주위를 둘러본 카렐이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가 가리킨 것은 그리 크지 않고 건물벽은 그다지 깨끗하진 않지만 그래도 정성들여 여러번 손질한 흔적이 남아있는 2층짜리 여관이었다.
"그러니 저렇게 작고 아담한 곳이 제일 적당해. 사람이 적어서 얼굴도 익히기도 쉽고 사람이 많더라도 작은 여관에서라면 부대끼는 맛이 있거든. 하지만 반드시 명심해둘 건 이렇게 말을 해도 제일 좋은 방법은 일단 물어보는거지. 그게 제일 빠르고 정확하단다. 알았니?"
"알겠어요. 여관 고르는 데도 상당히 많은 걸 고려해야 하네요."
"그렇지?"
"오오~ 카렐 씨, 상당히 그런 쪽으로 박식하시군요? 정말 대단하시군요!"
옆에서 그의 말을 경청하던 필이 감탄하며 말했다.
"뭐, 여행을 오래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실이죠. 그리 대단한건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대단한 건 대단한 겁니다. 그럼 카렐 씨 말대로 저 여관으로 가보도록 하지. 다들 반대 없지?"
"네이,네이."
"아무 여관이나 들어가서 빨리 쉬자고."
"저도 빨리 씻고 싶네요. 먼지가......"
"가자, 세르."
"네!"
그렇게 그들은 여관으로 들어갔다.
첫댓글 드뎌나왔네요ㅋ어젠삐곤해서일찍잤거든요수고하셨어요
늦게 올려서 죄송해요. 하하하...... 아무튼 감사해요
다음편 기대되요~
기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드래곤의 딸 - 여행 - 11 편이 제가 금년에 올리는 마지막 글이 될 듯 싶네요. 이유가 알고 싶으시다면 자유게시판에 제가 최근에 써놓은 글 읽어보시면 될겁니다. 아무튼 죄송합니다. 또 감사했습니다.
재미있네요 ㅎㅎ
재밌으셨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다음편이 제가 금년에 올리는 마지막 글이 될 듯 싶네요. 이유가 알고 싶으시다면 자유게시판에 제가 최근에 써놓은 글 읽어보세요. 아무튼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