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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은 바쁘다. 요즘 하루의 대부분을 <날아라 허동구>(이하 <허동구>)를 알리러 다리느라 여념이 없다. 눈에 핏발이 서던 '연산군'이 이젠 초등학생 아들 동구를 위해 사력을 다하는 아버지 진규가 됐기 때문이다.
영화 홍보에 대단히 적극적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에도 단역으로 출연하고 ‘스쿨 어택’이라고 초등학교 시사회 인사도 다니고 다른 영화 때보다 아주 ‘발악’을 하고 있다. (웃음)
이유가 뭔가?
이 영화가 좋다. 사실 <허동구>는 태생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영화가 아니었다. 소재만 딱 보면 뻔할 것 같고 저예산 영화는 아니고, 그렇다고 규모로 어필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아담한 영화다.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였지만 흥행을 바라고 <허동구>를 한 건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은 있다. 사실 요즘 한국영화 중에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영화적인 완성도를 인정받은 작품 중에 극장에 못 걸린 작품이 많지 않나. 언제 상영됐나 싶게 묻혀버린 작품도 많고. <허동구>가 그런 케이스인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영화를 홍보하고 있다.
동구 역의 (최)우혁이가 홍보를 하기엔 너무 어려서가 아니고? (웃음)
그것도 맞다. 내가 뺄 재간이 없다. (웃음) 사실 우혁이가 주인공인 드라마인데 그 아이가 홍보에 나설 수는 없잖나.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내가 해야지.
<허동구>에 유난히 애정을 느끼는 것 같다.
실제로 동구 또래의 자식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 입장에서 좀 더 감정이입이 되는 건 사실이다. 누군가가 그러더라. 당신 얘기니까, 아버지 얘기니까 출연한 거 아니냐고. 그 말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원작이 대만 소설 <나는 백치다>다.
원작 있는 작품은 그 전에 안 본다. 미리 보면 갇혀버린다. 소설과 영화는 다르다. <링> 찍을 때도 일본영화 <링> 안 봤다. 보게 되면 따라하던가 억지로 안 따라하려고 하거나 그렇거든. 그건 답이 아니다. <허동구> 원작도 영화 다 촬영하고 나서 개봉 전에야 봤다. 사실 원작에서 에피소드 두어 개 정도 가져온 거니까 원작이라기보다는 원안이 맞지.
원래 <나는 백치다>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는데.
시나리오 초고 때도 어머니가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내가 캐스팅된 건 아니었다. 조철현 타이거픽쳐스 대표하고는 <달마야 놀자> 시절부터 친하고 박규태 감독도 <달마야 놀자> 때 시나리오작가였는데, 사석에서 시나리오는 보지도 않고 얘기를 하다가 아버지라면 더 좋지 않을까 얘기를 꺼냈다. 일주일 뒤에 아버지로 주인공이 바뀐 시나리오가 나오데. 그러니 출연 안 할 수도 없고 말이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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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성애영화가 일련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고, <허동구>도 그중 하나다.
글쎄. 어머니라면, 좀 더 감정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관계는 아버지에 비하면 정말로 끈끈하다. 그에 반해 부자관계는 투박한 면이 있다. 그래서 아버지로 바꾸면 좀 더 재미있지 않을까 그런 얘기를 한 거다. 요즘 부성애영화가 봇물인데 아버지로 바꾼 게 지난해 2월이니까 시류를 노린 건 아니다.
<허동구>의 아버지는 초라하고 푸념만 늘어놓는 요즘의 소시민적인 아버지들과는 또 다른 면이 있다.
나는 오히려 <허동구>가 아버지영화가 아니라 '짝영화'라고 생각한다. 동구에게도 처음엔 사이가 안 좋았지만 나중엔 친하게 되는 짝이 있고, 진규에게도 매일 치킨 집으로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 진규와 동구도 어느 순간엔 부자라기보다는 짝 같지 않나. 물론 요즘 아버지를 내세운 영화들이 줄줄이 있으니까 그런 경향이 있는 것도 무시할 순 없겠지만.
아버지 진규는 동구를 마냥 과잉보호하지만은 않는다. 지나치게 혼신을 다하는 기성세대형 아버지는 아니다.
이 아버지가 상냥한 성격이 아니잖나.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를 아내 없이 혼자 키운 치킨 집 사장은 자식한테 상냥하지 못하지. 그러면 지쳐서 오래 못 키운다. 한두 해가 아니라 언제까지고 키워야 하는데 적당한 수준의 방치가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믿었고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곰살궂은 사람이 아니었을 거다. 내가 아버지라도 그랬을 거고. 감독은 좀 미안해하더라고. 아버지 역할이 상대적으로 할 게 많은 역할이 아니지 않나. 게다가 분량도 그리 많지 않았고. 사실 배우들은 할 게 많은 역할을 원한다. <왕의 남자>의 연산군 같은 경우는 내가 치고 나가는 역할이라 할 게 많았다. <허동구>의 진규는 동구를 받쳐주는 역할이었지만 나는 좋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받쳐줬나?
<허동구>는 두 가지가 섞인 영화다. 아버지의 우울한 현실과 동구의 천진난만한 세계. 두 이야기를 모두 가져가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허동구>는 현실이 누락된 동화가 아니다. 동화가 탈각된 극사실주의도 아니고. 현실의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뒤에 경쾌한 동화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모든 얘기가 진짜로 믿어져야 한다. 내가 맡은 역할은 관객들에게 진짜처럼 믿게 하는 것이었다.
아들뻘 배우와 호흡을 맞추니 어떻던가?
우리 아들 단우가 초등학교 3학년이고 동구 역 우혁이는 한 살이 많다. 그래서 연기를 하지 않았다.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우혁이도 나를 아버지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연기지도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처럼 느끼게 한다?
편하게 해줬다. 그렇다고 특별히 잘해주려고 하지도 않았다. 특별히 잘해주는 건 아버지가 아니니까. 뭐 사주고 그러면 안 된다.(웃음) 현장에서는 아이가 귀여우니까 모두 잘해주려고 했다. 그게 우혁이한테 오히려 안 좋을 수가 있다. 그러면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친아빠라고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아버지는 아이가 잘못했을 때 꾸짖기도 해야 하는데.
다그치거나 그런 적은 없다. 아이들은 분위기를 많이 타기 때문에 장면에 따라서 우혁이를 조금씩 눌러놓거나 띄워놓기는 했다. 이를 테면 활기찬 장면 같은 경우, 같이 뛰면서 놀고 마음을 업 시킨다. 반면에 감정이 다운되는 장면 같은 경우는 좀 눌러놓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직접적으로 반응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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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버지를 연기했으니 편했겠다. (웃음)
무지하게 편하게 했다. 연기라는 게 감정을 느끼는 건데 낯선 인물을 맡을 때는 그 감정을 쥐어짜야 하지 않나. 내 안에 있는 하나의 감정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내가 아버지니까 그 감정을 알잖나. 연기할 필요가 없는 거지. (웃음)
같은 아버지라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 아버지의 감정을 드러내긴 쉽지 않았을 텐데.
초산을 앞둔 부모들은 기형이나 장애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한다. 그런데 정말 장애나 기형을 갖는다는 결과가 나와도 그냥 낳자고 하는 게 부모 마음이다. 나는 종교적 순간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부모들은 그런 감정을 한 번쯤은 맛보았을 거다. 그래서 애가 장애가 없거나 사지가 멀쩡하면 순간순간 감사하다. 부모가 아니면 절대 모를 감정이라고 나는 감히 표현하고 싶다. 자식을 낳으면 아이가 존재의 이유가 된다. 아주 절대적인 거다.
현재 배우 정진영의 존재 이유는, 단연 <허동구>인가보다.
개인적으로는 <허동구>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 영화들은 만들어지기도 힘들고 만들어졌다 해도 개봉하기가 힘들다. <허동구>를 찍으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대기업이 투자를 하고 오래 걸렸지만 개봉도 하고 또 반응도 괜찮아서 나는 이미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동구가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을 인간승리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도 의미 있다.
원작도 그렇고 시나리오도 애초에 그런 의도가 없었다. 억지 감동을 주거나 감정을 작위적으로 짜내려 하지 않았다. 일반시사회에 참석하는 관객들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는 것은 이 영화의 테크닉이 뛰어나거나 절대치가 높아서가 아니다. 더군다나 <허동구>가 절대적으로 베스트 필름도 아니고. 다만 이 영화의 진정성이 관객에게 전해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점이 드러나는 건 영화 속에서 동구가 홈런 대신 번트를 칠 때다. 홈런만큼 번트도 의미 있게 다루는 영화의 정서가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지금 결말과 다르게 동구가 치는 번트가 실패하는 버전으로 촬영한 게 있다. 영화적으로는 실패하는 게 균형이 맞았다. 근데 보는 사람들은 너무나 성공을 원한다는 거다. 시사반응을 보니까 동구가 제발 번트에 성공했으면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너무 상투적인 게 아닌가 고민이 들었다. 다행히도 성공한 버전을 붙여놓고 보니까 그게 또 말이 되데. 관객들은 더 이상 동구가 실패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다소 상투적인 장면이지만 그걸 좋아한다는 건 관객의 눈이 낮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동구를 마음속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사진 김병준
허남웅 기자
첫댓글 아아~ 멋지세요 오라버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