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편지 102신]북미대륙을 종횡무진하는 '헝그리 울프'에게
헝그리 울프, 자네는 누구인가?
하지만 자네가 누구이든 무슨 상관인가.
우리와 같이 동시대 한 고등학교 교문을 나왔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지.
캐나다 이민 20년이 되었다고?
40t 대형트럭을 몰고 북미대륙을 종횡무진 달리는 ‘슈퍼 트러거’라고?
세상에나, 당연히 그런 직업도 있을 터, 그것을 우리 친구가 하고 있다고?
솔직히 많이 놀랐다네.
오늘 새벽 자네의 블로그(http://blog.daum.net/truckerhungrywolf)에
들어가 ‘Hell's Gate'와 ’히치하이커 개‘이야기를 읽었네.
그리고 ‘한 감동’한 덕분에 알지 못하는 동창, 자네에게 편지를 쓰네.
언제나 이 인터넷 공개편지를 자네가 읽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지난 6월 토론토에 9박10일 갔었네.
그곳에서 만난 한 선배가 밴쿠버로 이사를 한다더군.
큰 짐은 다 DHL로 다 부치고 자동차는 팔기가 마땅찮아 운전해 가는데, 보름을 잡더군.
그것도 대학생 아들과 교대로 운전한다는데, 5000km가 된다던가.
그런 장거리 운전을 직업으로 밥 먹듯이 하는
자네의 ‘위대한 도전’(Great Adventures)은 우리로서는 상상이 안되네.
‘플라이 낚시’를 좋아한다고 했던가?
가족끼리 한 행복한 캠핑사진도 엿보았네.
몇 년이나 되었는가? 할만 하던가?
자네의 글을 읽을수록 정말 궁금한 것이 많네.
언젠가 우리 텔레비전에서 다큐물로 ‘화물트럭 운전사의 25시’를 본 적이 있었네.
열악한 근무환경, 부족한 잠,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꾸리기 어려운 점들을 리얼하게 찍었더군.
당연히 그곳에서도 그러겠지.
어디 서울에서 부산거리이던가. 그까짓 거야 400km나 될까. 정말 ‘새발의 피’겠네.
3000km는 단거리로 보통일 테니까 말야.
어찌 해보지 않은 사람이 짐작이나 하겠는가?
참으로 대단허이. ‘거리의 달리는 철학자’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했네.
엊그제 나의 편지(출판기념회에 온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한 ‘은행잎 편지 99신’)에
고맙게도 댓글을 달았더군. 3년여 동안 우리 홈피를 ‘눈팅’만 했다고?
쌍륙절행사, 삼김집 벙개, 육산회 등을 그래서 다 알고 있다고?
너그는 죽었다 깨나도 나의 ‘절대고독’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하루종일 말 한 마디 내뱉지 못하고 오직 앞만 보고 핸들을 돌리다보면
혀가 굳어지는 느낌이라고? 모국어와 친구들이 그리워 미쳐 폴짝 뛰다 죽을 지경이라고?
왜 아니겠는가? 혹자는 ‘위대한 모험’ 그러니까 얼마나 낭만적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생업(生業)으로 하는 그 쟙(job)이 어디 즐겁기만 할 것인가?
그러나 자네는 그 속에서 ‘낙수’(落穗)를 모으고 있었구만.
‘생활의 이삭’말일세. ‘지옥의 문’과 ‘히치하이커 개, 윌슨’의 이야기는 너무 재밌었네.
글도 아주 심플하게, 요즘 네티즌들의 입맛에 맞게 잘 쓰더군.
자네의 25편의 글을 통독하면서,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조금만 정리하여
책으로 묶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네.
한 귀로 흘리지 말고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보게나.
얼마나 그 일을 계속 할지 모르지만, 언젠가 ‘끝’이 있을 것 아닌가.
또 한국에도 올 날이 있을 테지. 그때 우리 만나세.
나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
책을 펴내세.
주소를 알려주면 나의 졸문을 엮은 수필집 '나는 휴머니스트다'를 보내주고 싶네.
yrchoi@skku.edu나 goodjob48@hanmail.net으로 답신을 보내시게.
자네가 찍고 생각하고 겪은 광활한 북미대륙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어쩌면 그렇게 ‘고상한 취미’를 가졌는가.
낚시, 모험, 사진찍기, 글쓰기, 거기에다 예쁜 아내와 미인인 두 딸까지.
이제 슬슬 자네가 몇 반이었고 이름이 무엇이며 고향은 어디인지 궁금해지네.
난 이래서 전라고 6회 우리 동창들이 하염없이 좋다네.
왜 그렇게 재주많은 친구, 풍류친구, 술친구, 등산친구들이 많은지, 신기할 정도라네.
그중에서도 자네는 단연 ‘킹왕짱’(요즘 유행하는 ‘캡’이라는 단어라네)이네그려.
자네의 모험담을 계속 듣고 싶지만, 그걸 바라는 게 좀 잔인하다는 생각도 드는군.
장기간 트럭운전은 몸 상하기 십상이라고 들었네.
우리나라에서는 자네가 말하는 ‘트럭스탑’(truck stop, 화물트럭 휴게소)에서
고독한 트럭 드라이버들을 위한 ‘모포부대’들이 있다고 들었네.
'모포부대’가 무슨 뜻인가 아는가?
'절대고독’과 스트레스에 몸살을 앓는 운전자들이 잠시잠깐 ‘객고’를 푸는 것이지.
그쪽은 그런 경험이 없는가? ㅎㅎ
하여간, 무조건 건강하고 씩씩하소.
벌써 새해가 밝은지 3일이나 됐구만.
언제 집에 들어갈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자네의 건강을 기원하는 고등학교 동창친구가 있다며 안부도 전하시게.
틈나는 대로 우리 홈피에 어떤 글이든 올리며 외로움을 달래시게나.
여기에는 우리들의 희로애락이 다 녹아 있다네.
그렇지 않은가.
자네도 많이 생각했겠지만, 사는 게 뭐 별 거란 말인가.
스킨십이 중요한 것은 소통(疏通)때문이라네.
혼잣말이라도 많이, 자주 하소. 자칫 모국어까지 망각하면 큰일아닌가.
헝그리 울프, 무엇 때문에 자네는 ‘배가 고픈’ 늑대가 되었는가.
아직도 배가 고픈가?
그 배는 죽을 때나 되어야 포만을 느낄 것인가?
자네의 건투와 건강, 그리고 건필(健筆)까지 기원하네.
아자 아자 파이팅, 우리들의 헝그리 울프여.
2009. 1. 3
자네의 낯 모르는 고등학교 동창친구 우천 합장
102신의 답신: 우천의 편지는 가문의 영광
알록달록 우천 벗에게
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네. 인터넷 게시판을 통한 공개편지를 받는 기쁨을 뭐라 표현할까? 한마디로 가문의 영광일세!
전라고 출신에 명필이 많은 것은 당연. 구름재 스승님 그리고 사자성어를 구수하게 이야기로 풀어주신 한문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생각하네.
트럭 안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쓴 것이 ‘지옥의 문’이고, 이 글은 2008년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와 캐나다한국일보가 공동주최한 신춘문예에 가작으로 입상돼 캐나다한국일보에 9일 동안 연재되는 행운을 누렸다네. 졸지에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으로 승격되고 말일세. 문학적 넒이와 학문적인 깊이에 비하면 문인협회 회원은 과분하다네. 어디 우천 자네와 비교라도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나는 무조건 읽기 쉬워야 한다고 생각하네. 물론 북미서 트럭운전 중에 겪는 일들을 사실적으로 쓴다네. 그리고 재미가 있어야 하고, 거기에 뭔가 하나라도 기억에 남을 만한 내용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고...
자네의 제언은 고맙네. 잘 새겨 둠세. 글을 계속 쓰다보면 언젠가 책으로 엮어낼 좋은 글들이 모이겠지. 자랑할만한 글재주는 아니지만, 심심할 때 읽어보라는 뜻으로 한 편씩 올려볼까 하니 즐감하시게나. 우리 홈피가 있어 외롭지 않다네. 우천의 백수일기부터 직딩일기, 우천산고, 은행잎 편지 그리고 수많은 글들, 구수한 우리 전라도 사투리는 나의 고향, 할머니의 냄새를 느끼게 했네.
어디 그뿐인가? 상암의 연극 열정, 엄주훈 대대장의 시, 원촌의 기지가 번뜩이는 유머의 글들, 육산회의 등산일기, 우보의 몽골여행기.... 그리고 여고생들의 보석같은 수필, 이게 가장 부럽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이라네. 모든 행사에 형수님들이 함께 한다는 사실 말이네. 부부간의 애정을 친구들의 우정과 함께 이어간다는 게 어디 보통일인가? 정말 대단한 동창들일세.
트럭커는 조금 이색적인 직업일 뿐, 낭만적이거나 돈을 버는 직업은 아니네. 북미에는 3백만명의 트럭커가 있고, 나는 그중의 한 사람일 뿐이고. 한 마리 자유로운 새처럼 북미대륙을 훨훨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헝그리 울프는 내가 가장 춥고 배고픈 시절에 트럭운전을 시작했기에 그때의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타고 다니는 트럭에 지어준 이름이엇는데, 어찌하다가 그것이 내 아이디가 돼버렷다네. 흐흐흐
새해에 뜻밖의 은행잎편지를 받고 한없이 기쁜 마음으로 답신을 보내네. 다시 한번, 우천 그리고 회장단을 비롯하여 동창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2009년 1월 4일 아침
헝그리 울프 씀
*부기: 그해 쌍육절 행사에 맞춰 헝그리 울프는 23년만에 귀국을 하였다. 물론 우천이 부림출판사에 섭외하여 발간된 그의 에세이집 출판기념회도 겸하여 그의 옆지기와 같이 온 것이다. 무의도 여행에 동참중 느닷없이 그의 빙장어른이 익산에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의도하지 않게 '효도'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