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예사랑교회(김병곤목사)
새벽기도회 후, 발 관리부터 시작했다. 어제 밤에에 요도액으로 소독하고, 바른 연고를 알콜로 씻어내고, 분말용 마테카솔을 뿌린 후, 소독밴드를 크기에 따라 발바닥 앞부분과 발가락에 붙이고, 그 위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보기도 좋지 않고, 공기도 통하지 못하게 할 줄 알면서도, 마찰하게 되면 더 아팠기 때문에 그걸 막기 위해 하는 것이다.
중도에 헤매지 않기 위하여 일정을 확인하다.직산역-(5)- 한국기술교육대학교(제2)-(8)-천안삼거리공원-(18)-전의역에 이르는 30km 여정이 예상되었다.
목사님과 함께 전주집콩나물 국밥을 먹다. 전주집콩나물국밥집은 이른 아침에도 저렴한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주어서 언제나 감사한다.
목사님이 어제의 마침점인 직산역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셨다.
언제나 수더분하고, 겸손하고, 친절하여 정이가는 후배이다.
직산역
버스정류장에서 보니 직산역이 어제보다 더 가깝게 보였다. 문득 직산역으로 가면 기찻길과 나란히 가는 한적한 길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역을 향하여 걸었다.
삼남길 표시
다리를 건너자마자 거짓말처럼 삼남길 표시가 나타났다. 삼남길 표시는 문득 사라졌다가 뜻밖의 시간에, 뜻밖의 장소에서 문득 나타난다.
삼남길 표시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소음과 매연 그리고 위험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기찻길과 나란히; 국도에서 벗어났다는 평안
삼남길 표시를 놓치지 않으려고 좌우를 유심히 보면서 걸었다.
점점 삼남길 표시의 메카니즘을 알게 된다.
모시리교회
교회 이름으로는 정말 안성맟춤이다.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 모시듯 사람들을 모시는 교회. 멋질 것 같다. 한 번 가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좌회전하여 삼남길로 향했다.
토지의 주인
좀 걸으니 형님벌로 보이는 분이 논 두럭의 잡초를 뽑고 계셨다. 내 소개를 하고 길을 묻는 형식으로 잠시 대화하였다. 83세이신 이 형님은 8마지기의 논을 놀릴 수가 없어서 농사를 하신단다. 평생 하신 농사이기에 큰 힘이 들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나 무릎이 불편해 보였다.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었다. 길을 가리켜 주시면서 여행 잘 하기 바란다며 손을 흔들어 주신다.평생 농토를 지키시고 농사하신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이 땅의 주인이며 국민이시다.존경을 받아야 할 분들이다.
한적한 농로
그러나 6.25 전쟁 당시 성환의 미군 초전참전 기념공원에서부터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면서 후퇴하던 미군이 지났을 런지도 모른다.
논과 밭 길이 끝나고 과수원 길이 시작되었다.
레이크골프클럽
남녁에서 서울로 가는 삼남길 표시가 클럽 내부에 있는 것을 보니
상행할 때는 클럽 정문에서 올라오는 것 같다.
한국기술대학교(제2) 켐퍼스 ; 10;55.
두정교에서 본 직산역 방향
두정교에서 두정역방향으로 우회전
두정역을 지나면서부터는 기찻길홴스와 아파트 단지 사이의 도보길이 계속되었다. 유모차로 산책하는 엄마들이 보였다. 기차가 지나가며 내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은근하게 들렸다. 그래서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길 옆 아파트단지, 우리 아기 잘도 잔다."라는 현대적(?) 가사가 떠올랐다.
멀리 보이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천안역, 좌회전하면 천안삼거리로 가게 된다.
역말오거리에서 삼남길 표시를 따라서 횡단보도를 건넜는데, 표시가 보이지 않는다.호두과자가게에서 호두고자를 한 봉지 사면서 천안
삼거리로 가는 삼남길을 물었다. 주인은 삼남길은 모르지만 뒷편의 넓은 중앙로로 가면 천안삼거리로 가게 된다고 하였다. 옆에 있는 다른 가게에 가서 물었더니 같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중도에 두세번 길과 방향을 바꾸고서야 천안대로(1번 국도)로 들어서게 되었다.
뒤에 천안청년회의소가 보인다.
도로원표길에서 천안도로원표를 발견하다.
전시용 정자; 천안동남소방소 직전
대로변이라 먼지가 쌓였다. 그래고 휴대용 자리를 펴고 쉬다. 땀투성이다. 샤워만 할 수 있다면 ㅇㅇㅇ.
삼룡(마틴) 사거리가 보인다.
천안전누에서 전사한 미군24사단 34연대 연대장 마틴 대령을 기념하는 거리가 시작되는 지점이라는데(?). 이제 내가 가는 전위역까지는 미34연대가 악전고투하며 후퇴하던 길일 것이다.
박물관 쪽 산책로
아기자기하게 보이는 야외 산책길에는 가족단위의 관람객들이 더러 보였다.
천안삼거리공원
오늘의 중요 경유지인 천안삼거리 공원. 뙤약빛 때문인지 사람들이 없었다.정자에 앉아서 장구를 치는 중년 남자분이 보였다. 악보를 놓고 연습하는데 소리가 수준급인 것 같아서 대화를 하였다. 나는 장구를 배우는 과정에 대하여 묻고 그는 나의 여정에 대하여 묻고 서로 대답해 주었다
옛 천안삼거리 주막.
천안삼거리 주막집 마루에 앉아서 잠간 쉬었다.
12승 봉고로 삼남매가 부모님을 모시고 천안독립기념관으로 갔다가 귀경하는 길에 이곳에 앉아서 쉬었던 때를 추억하다. 먼저 떠나신 부모님과 남동생 생각이 난다. 그 때 부친이 지금의 내 나이 때였는데.
갈수록 부친 생각이 나고 그리워진다. '너도 나이를 먹어봐라"라는 말이 생각난다.
박물관내부; 사람들이 없다. 자원봉사자께서 반가이 맞아 안내를 자청하신다. 사정을 이야기하고 얼른 둘어보고 나오다.
통일교에서 운영하는 선문대학교; 들어가면 많이 돌 것 같아서 지나치다.
대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물건을 파는 분에게 대학교로 들어가면 길이 연결되느냐고 물었더니 안된다고 하여 계속 갓길을 걸었다.
도리티삼거리를 향하여.
도리티(道理峙) 고개 삼거리. 6.25 전쟁 당시 미군이 공산군을 막다가 실패하고 큰 피해를 입었었다고 한다.
갓길이 좁은 편이라 조심스럽게 걸었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청년에게 물으니 갓길로 쭉 가면 전의역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소정리의 참전 유공자비
1번 국도(경부선)는 삼국시대-고려시대-임진왜란- 6.25 전쟁까지 많은 전쟁으로 수많은 군인들이 죽고, 피난민이 걸어갔던 길이다.소정리-전의 길도 그런 길이다.
소정리사무소
소정면 사무소를 지나면서 다시 도보 속도가 올랐다.
전의역 역사
마침내 전의역에 도착하였다. 역사는 작으나 역사 깊은 역이다. 1.4 후퇴 당시 피난민으로 지났던 곳이기도하다. 또 모친 생각이 났다.
먼저 역전에 맞은편의 전의성결교회를 찾아갔다. 때마침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분이 있었는데 목사님이셨다.. 설교 준비를 마치고 드리이브하려 나가시던 길이란다.
나의 여정을 말하고, 나의 신분을 알리는 명함을 건네 주면서 아무 곳이라도 좋으니 하룻밤 묵어 가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목사님은 5층에 방이 있는데 괜찮으면 사용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관리권사님을 불러서 안내를 부탁해 주셨다.
방은 크고 전망도 좋다.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샤워하고, 발 치료를 시작하였다. 통증이 심하여 혹시 화농된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여유있게 저녁을 챙겨 먹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