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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7: 13 두려워하므로 - 요 7: 18 보내신 이의 영광
요 7: 13 두려워하므로 -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 )
명절에 모인 무리들이 예수님에게 대하여 말하기를 조심하였다. 그 이유는, 종교 지도자들의 의견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까닭이었다.
1]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당시의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적극 배척하였으므로 만일 아무라도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면 그는 유대 공동체 사회에서 지목받아 쫓겨나거나 출교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 요 9: 22 -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2]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
그들은, 예수님에게 대하여 옳은 의견도 공적으로 발표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진리보다 사람을 더 무서워한 잘못이다.
요 7: 14 명절의 중간 -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
초막절은 7일간 지킨다.
* 레 23: 34 -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연중 3대 절기인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에는 모든 남자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께 경배하여야 했다.
* 출 23: 17 -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예수께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가 초막절 중간에 성전에 들어가셨다. 여기에서 성전은 성전의 뜰을 가리킨다. 일반 사람들은 성전 뜰에서 하나님께 경배하였고, 성소 안에는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성전 뜰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유대인들은 그에 대해 기이히 여기며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고 말했다.
성경이 증거 하는 대로,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혹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로 불렸다.
* 마 13: 55 -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 막 6: 3 -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그는 어릴 때부터 집에서나 회당에서 배운 것 외에 따로 배우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가르칠 능력은 누가 주시는가?
* 출 4: 11-12 -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안다면 그의 지혜로운 가르치심에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를 하나님의 지혜와 힘으로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의 교훈은 곧 하나님의 교훈이다. 그는 하나님의 특별계시 중 특별계시이다.
* 히 1: 1-2 -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그의 말씀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의 말씀들보다 더욱 권위를 가진다. 그는 자신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여러 번 말씀하셨다.
* 요 8: 28 -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 요 12: 49-50 - 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 요 14: 10, 24 –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1] 명절의 중간이 되어
이 명절 기간은 한 주간이었다.
* 레 23: 36 -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이제 그 중간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였을 것이다.
2]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이 때에 예수는 가르치기를 시작하셨다.
예수가 성전에서 가르치심으로 유대인들 가운데서 이 사람은 정규 랍비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가르칠 수 있느냐?
이제 예수의 가르치심에 대해서 시비함으로 예수가 자기의 가르침은 랍비식의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제자가 또 자기의 제자에게 전달하는 식의 그런 가르침이 아니고 직접 하나님으로부터오는 계시임을 밝힌다.
곧 자기의 가르침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때문에 이 가르침은 하나님을 순종하려 하는 자만 이해하는 것이다.
* 요 17: 8 –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유대인들이 만약에 그들의 율법을 의도상 정확히 이해했고 그 율법을 정확히 순종하면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진리임을 알 터인데 그렇지 못했다.
곧 율법이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또 그의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사실을 보여주는데 유대인들은 깨닫지 못한다. 이 말은 그들이 사실은 자기들의 율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순종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요 7: 15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
성경에는 예수가 유대의 지도자나 랍비로부터 교육을 받았다는 사례가 없다.
1]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놀랄 수밖에 없다.
* 마 7: 28-29 –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여기서 "글"이란 말의 헬라 원어(*)는, 문자를 의미하기도 하고, 성경을 의미하기도 하나, 여기서는 학문을 가리킨다(W. Hendriksen).
* 갈 6: 11 -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 딤후 3: 15-17 –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유대인들의 이와 같은 의문은, 그의 교훈이 권위(權威)가 있기 때문이었다.
* 마 7: 28-29 -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요 7: 16 내 교훈은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
예수는 이러한 말씀을 여러 차례나 하셨다.
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예수님께서 만일 자기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라고 하셨더라면, 서기관들은 그를 가리켜 속이는 자라고 하였을지 모른다(Bernard).
2]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는,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교훈을 그대로 말한다고 하신다.
그는 나면서부터 아는 이라고 하기보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것을 말씀하시는 이시다.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 아버지를 계시(啓示)하시기 위하여, 또는 아버지의 뜻을 대언하시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요 7: 17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
예수님의 교훈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 수 있는 길이 있다. 사람의 본성은 무지와 죄악 때문에, 사람이 자기 뜻대로 살면 죄악 되고 허무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뜻 즉 경건과 의와 선을 구하면 자신의 죄악 되고 허무함을 깨닫게 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교훈이 하나님의 교훈인 줄 알고 그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간절히 구하고
* 잠 2: 4-6 - 4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6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자기 속에 하나님의 원하시는 의(義)가 없음을 깨닫고, 애통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할 때
* 마 5: 3-6 -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예수님 앞으로 나오게 되고, 그를 알고, 그를 믿고, 확신하고,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또 거짓 교사와 참된 교사를 분간할 방법을 알려 주셨다. 그것은 말하는 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가를 확인해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지 않고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신의 영광만 구할 것이다.
거짓 교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된 교사이시다. 그는 그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며 그 속에 불의한 것이 없으시다.
여기에 참 제자의 모습도 있다. 참 제자는 자신을 부정하고 주 예수님을 따른다.
* 눅 9: 23 -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1]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방법에 관하여 말한다.
그 방법은, 사람의 지능(知能)을 첫째로 하는 것이 아니고 종교 윤리와 관련되어 있다. 그의 말씀을 행하려고 하는 자는 그 말씀이 하나님의 것인 줄 알게 된다.
크로솨이데(Grosheide)는 말하기를,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의 교훈을 알 수 있는 자는 지능의 인물이거나 혹은 통찰력의 소유자가 아니고, 그 말씀을 행하려는 자라고 하셨다. 영적 지식을 얻는 방법에는 이렇게 종교 윤리적인 것이 먼저 관계된다."라고 하였다.
2]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이론이 첫째가 아니고 순종이 첫째이다.
무디(Moody)는 말하기를,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좋은 학교이다."라고 하였다.
요 7: 18 보내신 이의 영광 -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
1]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즈안(Zahn)은 여기 "스스로 말하는 자"란 것은 그 때의 불신하는 유대인을 가리키고,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란 것은 예수님을 가리켰다고 하였다.
불신하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지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생각하며 말하였다.
그들은 구약 성경을 존중히 하는 듯하며 그것에 기준하여 말하는 듯하면서도, 실상은 그것을 자기들의 사욕을 위하여 그릇되이 이용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율주의 자들임을 면치 못하였다.
2]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시는 처지(보내심을 받은 처지)였으니 만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만 대언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은 참되고 그의 행동 원리에 불의가 없다. 그는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명대로 순종하시니, 그 사실(보내심을 받은 사실) 앞에서 참되시고 또 불의함이 없다.
일반인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생활을 하는 자라면 비교적 참되고 불의함이 없다. 그 이유는, 그는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히 행하기 때문이다.
* 요 8: 29, 49-50, 54 –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4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 도다. 50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 요 16: 32 –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참되고 불의가 없는 생활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경건이다. 그것은 예수님과 및 그를 믿는 사람의 생활이다. 그러나 참되지 못하고 불의한 생활(불의로 진리를 막는 생활)은 모든 경건치 못한 자들의 것이다.
* 롬 1: 18 -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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