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1.
오늘은 2022. 7. 22. 금요일.
오후에 여름비가 내린다.
주룩주룩.
오전에는 고구마를 씻었고, 작은 냄비 안에 넣고는 물 부어서 삶았다.
설익힌 상태에서 가스렌지를 껐다.
덜 익힌 상태로 그냥 놔두면 자연스럽게 다 익는다.
가스를 절약하는 방법이다.
주방 뒷편에서 감자를 보았다. 오래 전에 사 둔 감자에 싹이 자꾸만 트고, 탱글탱글했던 상태가 시간이 갈 수록 변색되고 진기가 빠지기에 허드레 수돗가에서 솔로 문질러서 깨끗이 씻었다.
나중에 아내가 요리할 게다.
고구마 씻은 물, 감자 씻은 물을 헌 그릇에 담아서 한 구석에 놔두었다.
나중에 화분 식물한테 조금씩 나눠 줄 생각이다.
물을 아끼는 방법이다.
1.
비가 내리는 날에는 바깥에 나가지도 못한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서호 쉼터로 바람 쐬러 나가지도 못한 채 그냥 책상 앞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서 문학카페에 들렀다.
어떤 시를 보았고, 어딘가가 어색하기에 조금만 퍼 온다.
사랑 향기 세상 노크한다.
위 글에서 '노크'라는 낱말은 우리말은 아니다. 외국어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인터넷 어학사전으로 검색했다.
노크하다 [knock--]
1. (사람이)실내에 들어가기 전에 가볍게 문을 두드리다
2. (사람이 문을)실내에 들어가기 전에 가볍게 두드리다
'노크'가 우리말로는 ' 두드리다'의 뜻인가 보다.
그렇다면 위 시에서는 '사랑 향기 세상 두드린다'로 표현할 수 있겠다.
우리말이 있는데도 구태어 외국어/외래어로써 표현해야 되는지...
외국어를 쓰면 그만큼 유식해 보이고, 뜻이 명확해지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내가 외국어 즉 영어를 처음 배운 때는 1962년 봄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독일어는 고등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했고, 대학시절에도 이어졌다.
일본어는 대학교에서 3년간 배웠다.
프랑스어는 대학교 다닐 때 혼자서 익히다가 그만 두었다.
중국 한자는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부터 배우기 시작했으며, 중고교 대학시절에도 한자 공부를 더 해야 했다.
한자에 대한 내 경험이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돌집손자, 돌집아들'이었다. 대전 할아버지 방에서는 갓 쓰고 도포 입은 한문쟁이 영감들이 붓으로 한자 비문(碑文)을 쓰는 것을 숱하게 보면서 자랐다.
문종이에 쓴 한자 비문을 빗돌에 붙이고는 쇠정(釘)으로 한자를 하나씩 쪼아서 새겼다. 나도 작은 쇠망치로 정수리를 때려서 한자를 각자(刻字)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도 한자를 어느 정도껏은 안다는 뜻이다.
취직시험에는 영어가 꼭 들어가기에 사설 영어학원에 다녔고, 직장 다니면서 한국외국어대학교 연수원에서 영어교육를 두 차례나 이수했다. 또한 중앙공무원 연수기관에서도 영어를 배웠고, 직장 업무상 해외 수출업무를 6년간 담당해야 했기에 50살까지 영어사전을 펼쳐보아야 했다. 외국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과 이따금 접촉해야 했다.
국내 업무로 보직이 바뀐 뒤 50살이 지난 뒤에는 영어사전에서 손을 떼고는 대신에 우리나라 말과 글이나 제대로 하자면서 우리말글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노크'는 영어이다. 그렇다면 영어 이외의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인도어 등 세계 주요 언어로는 '두드리다'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묻고 싶다. 영어에 능통하다면 우리말 우리글자로 된 문학 -글을 영어로 번역해서, 책으로 발간해서 해외에 내보냈으면 싶다. 한국문학 위상을 드높일 수 있도록. 고작 몇 개의 외국 낱말로 글 쓰는 게 전부라면 내 눈에는 별로이다.
내 어린시절, 중고교시절에는 노동자들이 일본말을 무척이나 많이 썼다.
* 1945년 8월에 해방이 되었고, 1960년대에도 일본어투가 무척이나 많이 활용되고 있었다.
하급 노동자 틈에서 자랐던 나는 일본 낱말을 숱하게 귀로 들었으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는 일본어를 거의 다 잊어버렸다.
나한테는 언어순화가 자연스럽게 되었다는 뜻이다.
현재 내 나이는 만73살.
내가 외국어 낱말을 더 익혀서 무엇에 쓸 것인데?
지금에는 전혀 없다. 자꾸만 눈도 나빠지고, 귀도 잘 들리지 않고, 등허리도 활처럼 굽어져서 걷기에도 힘이 든다. 이제는 괴기한 외국 낱말을 읽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한다.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자면 그저 우리말, 우리글자로 언어생활이나 제대로 했으면 싶다.
당신들은 왜그리 그 어려운 중국 한자말, 알아듣기 어려운 외래어, 괴상하게 만든 신조어를 많이 쓰는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생각을 지녔으면 싶다.
차제에 우리말과 우리글자를 더욱 발전시켰으면 싶다.
내 손녀 손자의 국어실력은 어떠할까?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친손녀, 초등학교 1학년인 친손자도 알아듣는 그런 말을 하고 싶다.
초등학교 입학하지도 못한 유치원생도 읽을 수 있는 우리글자(한글)로 문학-글 쓰고 싶다.
나를 반성하고자 이런 글 쓴다.
1.
오후에 소낙비가 그치기에 우산을 챙겨서 손가방에 쑤셔넣고는 아파트를 벗어나서 바깥으로 나갔다.
송파구 석촌호수 서호 쉼터에는 장기 바둑을 두는 영감들이 그래도 있었다.
장기를 두는 두 영감들. 정말로 하수들이다. 찌질이 장기에 고개를 흔든 뒤에 자리를 떠났다.
구경꾼도 고개를 흔들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장기 하수인 두 영감탱이만 남아서 장기를 계속 둔다.
바둑 한 판이 끝나려면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리기에 구경하는 것조차도 지루했다.
잠깐만 구경하다가는 운동기구 앞으로 나갔다.
철봉에 매달려서 굽은 등허리를 펴려고 애를 썼다.
힘이 하나도 없는 요즘이다. 나날이 등허리가 활처럼 굽어간다. 철봉에 겨우 매달려서 허리를 펴는 체를 하다가는 이내 귀가했다.
몸은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서해안 산골마을에 내려가 있다.
텃밭에서 무엇이라도 꼼지락거리면서 일하고 싶다.
서울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내가 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머저리, 등신, 바보, 멍청이가 되어서 ...
2022. 7. 22. 금요일. 비 내린다.
나중에 보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