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시의 언어 2 / 이종수 (시인) 시인이란 본래부터 남의 말을 듣는 사람이다. 남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 이야기꾼이다. 그런 점에서 모국어를 가장 맛깔나게 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냥 놓칠 뻔한 절묘한 문장을 끌어다 쓰면 그것이 모여 경전이 되기도 한다. 정사보다는 야사를 쓰는 사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우리말(모국어)을 잘 써서 감동을 줄 줄 안다. 나생이는 냉이의 내 고향 사투리 울 엄마도 할머니도 순이도 나도 나생이꽃 피어 쇠기 전에 철따라 다른 풀잎 보내주시는 들녘에 늦지 않게 나가보려고 조바심 낸 적이 있다 아지랑이 피는 구릉에 앉아 따스한 소피를 본 적이 있다 울 엄마도 할머니도 순이도 나도 그 자그맣고 매촘하니 싸아한 것을 나생이라 불렀는데 그때의 그 ‘나새이’는 도대체 적어볼 수가 없다 흙살 속에 오롯하니 흰 뿌리 드리우듯 아래로 스며드는 발음인 ‘나’를 다치지 않게 살짝만 당겨 올리면서 햇살을 조물락거리듯 공기 속에 알주머니를 달아주듯 ‘이’를 궁글려 ‘새’를 건너가게 하는 그 ‘나새이’ 허공에 난 새들의 길목 울 엄마와 할머니와 순이와 내가 봄 들녘에 쪼그려앉아 두 귀를 모으고 듣던 그 자그마하니 수런수런 깃 치는 연둣빛 소리를 그 짜릿한 요기尿氣를 - 김선우, <나생이> 냉이를 강원도에서 ‘나생이’라 하는데 시인이 한 번 불러주니 여러 시인들이나 독자들이 그것으로 된장에 썸벅썸벅 무쳐 먹기라도 하듯 군침을 흘린다. 할머니 따라 엄마 따라 나간 들녘 흙두덕에서 끼쳐오는 냉이 냄새를 맡기라도 한 듯 설레는 것이다. 자연스레 우러나온 모국어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오늘은 심심하여 학교를 갔다. 그런 즉 한 시간도 공부하지 않고 우리 선생님은 중학교를 갈 아이들을 데리고 가셨다. 아이들이 선생과 중학교를 가는 것을 바라볼 때 무엇보다도 눈물이 앞을 가려서 나의 마음은 어찌할 줄 모르고 분함을 참지 못하여 날뛰며 한없이 울어본들 나의 피눈물과 쓰라린 속은 그래도 풀어지지 않았으랴. 그러자 나는 우리 집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며 바람 불고 서늘한 밤, 나무 밑에 가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세계를 원망하며 아, 이 두려운 세상, 이 넓은 이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만 살며 공부를 하나, 아, 쓸쓸한 세상, 무정한 이 천지에 사람이라는 것으로 한 번 났다 한 번 죽으면 그만인데, 나는 이 넓은 세상에 여자로 태어났을망정 소학교만 졸업하고 중학교를 못 가서 이름을 한번 빛내보지 못하고 이대로 영원히 자취를 버릴 것이 내가 살아 무엇하랴. 내 당초에 죽어 황천에 가서라도 공부하여 이름을 빛냈으면 하는 마음은 자연이 마음속에 가득 찼다.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고 다만 학교가 눈에 어렸다. 생각할수록 눈물은 더욱 쏟아지고 길고 긴 이 날을 눈물로 해를 보내는 이때, 희망을 부르짖어보아도 나의 눈물겨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갔다. - 이종수, <여자로 태어났을망정> 시적으로 갈무리되었든 그렇지 않든 짠하게 다가오는 문장들에는 깊은 밤 벌레 울음에도 가슴이 떨리는 자잘한 감동이 숨어 있다. 우리 할머니의 빠꼼살이 소꼽동무, 욕쟁이 전댕이 할머니, 20리 떨어진 전댕이 觀音寺에 가서 곁눈질하며 죙일 절하다가, 그 절 바로 밑에 있는 욕쟁이 할머니의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이쿠 내 강아지’ 일방 내 손에 콩강정을 쥐어주시며 ---개지랄두 퍽 혀이? 무슨 천만년 영화 보구 살것다구 핏덩이 앞세우구 여그꺼정 오구 지랄이랴? ---에이구 저노무 주뎅이, 그저 한 톨두 버릴 게 읎는 종잔디 저 주뎅이루 복 다 까불러 먹지, 그저…… 인사부텀 걸지던 동무들. 학질에 걸려, 오뉴월 염천에 솜이불 쓰구 북어국을 먹어 땀을 내구 겨우 살아나서두 입은 더 걸어져 조선 참견을 죄다 욕으루 푸시던 전댕이 할머니. 세상 거칠 게 없는 무자식 상팔자라며 ‘휴우’ 숨을 몰아쉬던 전댕이 할머니. 그래두 소문난 전댕이 상일꾼에다 40년 병 수발을 해온 할아버지를, 매일 새벽 치성을 올리며 새신랑처럼 모셨다는 전댕이 할머니. 그예, 할아버지 돌아가시구, 사십구잿날 당신두 돌아가시며, 화장해서 뼛가루를 금강에 훨훨 뿌려주되, 이것만은 꼭 할아버지 산소 발치에 묻어달라고 부탁했다는, 좀이 다 슬고 누렇게 빛이 바랜, 50년 전 전댕이 할머니의 친정 엄마가 신행길에 주셨다는, 광목 배내옷 두 벌. - 윤중호, <전댕이 할머니> 어느 마을을 지날 때 나의 전생 같기도 하고 누이 같기도 한 사연들을 가진 ‘전댕이 할머니’를 전혀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도 공동체 속에 살던 정서가 불러일으킨 것이다. 어머니 손맛을 찾아다니는 식객들이나 산을 오르내리면서 “수고하십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나누는 타자(他者)들을 보라. 남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져 술잔을 건네고 밉지 않은 참견을 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 욕쟁이 할머니에게 욕을 퍼대기로 먹어도 뭐가 좋다고 나래비를 서가며 먹는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비설거지할 참도 마다하고 곰새 내렸다, 히뜩 골안개만 피우고 사라지는 여우비 처럼, 황망하게 가셨네. 개갈 안 나는 세상이라구 비죽이 웃으시드니, 슨상님 혼자 손 털고 뒷짐 진대유? 세상은 여적 그 세상인디…… - 윤중호, <나헌티는 책음감 있이 살라구 허시등만-이문구 슨상님께> 이쪽 저쪽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던 이문구 소설가 또한 사투리가 질박한 고향 동네 이야기로 문학적인 업적을 평가받았다. 이문구 슨상님이라 부르는 시인의 말투에는 짚새로 엮은 달걀 한 줄을 들고 찾아가는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관계에 대한 염원이 그대로 묻어있다. 촌에서 말이지유 하이타이 대신 고쟁이 빨아 햇살에 헹구는 깡촌에서 말이지유 꼭 어머니덜같이 생기셨어 칠십 여남은 된 시골 할매 서울 아들네 댕기러 왔단 말유 원래 어머니덜 늙어 할매 될수록 거시기를 밝히잖남유 뭘 밝혀? 그게 아니구 아들 아들 헌다구유 여하튼, 이 노인네가 다섯 살 먹은 손자 고추를 보고 신통방통 얼마나 대견했던지 아이고, 내 새끼 고추 참 잘 생겼구먼 했단 말유 요새 다섯 살이먼 소젖 먹어서 그런지 수도꼭지 빨아서 그런지 좀 까졌남유 아, 어린것이 대뜸 헌다는 소리가 할머니, 그럼 형아 꺼는? 하고 묻더란 말이지유 그건 좀 크니까 잠지지 그럼 아빠 꺼는 큰 잠지여? 그건 좆이여 그만 물어봐 얼결에 딸꾹 딸꾹 대답하고 보니 시골 할매 며느리 옆에서 슬몃 부끄러웠던규 그만 물어봐 손사래를 치넌디 어린것이 영악허기두 허지 그럼 할아버지 꺼는 뭐라고 해? 할아버지 꺼? 꼭 어머니덜같이 생기셨어 할아버지 꺼는 뭐라 했겄유? ……호호호홍, 그건 좆도 아녀 삶은 감자에 옥수수 수박 한 통 뻐개놓은 평상, 쌀값 내려서 웃을 일 없다고 약 좀 한번 팔아보라는 부추김에 시답지 않게 이빨 풀어내니 검버섯 채송화로 핀 얼굴들 단호박처럼 둥글어진다 좆도 아닌 건 아니구 생김새가 빠진 좆같지는 허지, 늘어진 쌀값 마냥 - 차승호, <쌀값> ‘삶은 감자에 옥수수 수박 한 통 뻐개놓은 평상’을 떠올려보라. 단박에 둥글어지는 얼굴들, 공광규 시인이 ‘얼굴반찬’이라고 했듯 그리워지는 나만의 시어들이 생겨난다. 못 생겨도 만나면 반갑고 저절로 오지랖이 길어지게 하는 사람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신문 지국을 하는 그와 칼국수 한 그릇 할 요량으로 약속 시간 맞춰 국숫집 뒷방 조용한 곳에 자리 잡고 터억하니 두 그릇 든든하게 시켜놓고 기다렸는데 금방 온다던 사람은 오지 않고 국수는 퉁퉁 불어 떡이 되도록 제사만 지내고 있는 내 꼴을 때마침 배달 다녀온 그 집 아들이 보고는 혹 누구누구를 만나러 오지 않았냐고 은근히 물어오길래 고개를 끄덕였더니만 홀에 한 번 나가보라고는 묘한 미소를 흘리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마당을 지나 홀 안을 빼꼼 들여다보니 아연하게도 낯익은 화상이 또한 국수를 두 그릇 앞에 두고 자꾸만 시계를 힐끔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안상학, <안동 숙맥 박종규> 말끝마다 깐두루 깐두루 하는 그 분은 하여간 성이 정씨인 퇴임 신부라니깐두루 그러니깐두루 깐두루 신부, 깐두루 신부 하면 모르는 사람은 그저 세례명쯤으로 알아도 할 수 없다니깐두루 어찌됐건 전쟁 때 고아가 되었다는 그 깐두루 신부 곁에는 멧돼지 덫에 발 한쪽 잃고도 잘도 뛰어 다니는 반달이라는 개 한 마리 있다니깐두루 반달이 전에 개는 달이라고 불렀다는데 하여간 달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지만 어찌나 명랑하고 귀여웠던지 그렇게나 깐두루 신부를 아비처럼 따랐다고 하더라니깐두루 몰라서 하는 소리지 이쯤에서 끝날 이야기가 아니라깐두루 깐두루 신부 통나무집에서도 한참 먼 골짝 문씨 성을 가진 집에도 세 발 가진 개 한 마리 살고 있는데 사연도 그렇고 생긴 것도 그렇고 천상 달이를 쏙 빼닮았다니깐두루 그 동네 이름? 허허, 봉화하고도 비나리라니깐두루 - 안상학, <깐두루 신부님> 이것은 곧 오랜 세월 살과 이야기를 맞댄 삶의 체취가 스며있는 시어들을 낳게 된다. 대구를 덤벙덤벙 썰어 국을 끓이는 저녁이면 움파 조곤조곤 무 숭덩숭덩 붉은 고춧가루 마늘이 국에서 노닥거리는 저녁이면 어디 먼 데 가고 싶었다 먼 데가 어딘지 몰랐다 저녁 새 벚나무 가지에 쪼그리고 앉아 국 냄새 감나무 가지에 오그리고 앉아 그 먼 데, 대구국 끓는 저녁, 마흔 살 넘은 계집아이 하나 저녁 무렵 도닥도닥 밥한다 그 흔한 영혼이라는 거 멀리도 길을 걸어 타박타박 나비도 달도 나무도 다 마다하고 걸어오는 이 저녁이 대구국 끓는 저녁인 셈인데 어디 또 먼 데 가고 싶었다 먼 데가 어딘지 몰랐다 저녁 새 없는 벚나무 가지에 눈님 들고 국 냄새 가신 감나무 가지에 어둠님 자물고 - 허수경, <대구 저녁국> 대구 덤더벙 국 끓이는 저녁 움파 조고곤 무시 숭숭덩 불근 고추가리 마늘 국에서 노닥 눈 헛파는 저녁이면 어디 먼 데 가고 자파 먼 데 어느 멘지 몰로라 저녁 새 벚나무에 쪼그리고 대누어 국 냄새 감나무 가대어 오그리고 대누어 그 먼 적 대구국 기리는 저녁, 마흔뎅이 가시나 한 것 저녁 적 도다닥 찬데리여 그 흐저다한 혼이라는 것이 말종이 먼재도 길 타서 타박타박 나배도 달녁도 낭구도 마다코 걸어다미는 이 저녁 새 대구국 기리는 저녁센테 어디 먼 데 먼 데 어딘지 몰라라 저녁 새 벚낭구 가지에 눈님 새울고 국 냄새 간 감낭구 가지에 어둠님 눈구구 가고 - 허수경, <대구 저녁국-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같은 시를 사투리를 살려 쓴 시와 빗대보면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 다르다. 어데 먼 데로 가고 싶던, 그래서 고향을 떠나와 타지를 떠돌면서도 끝내 돌아가 눕고 싶은 곳은 ‘대구국 기리는 저녁’이고 ‘국 냄새 감나무 가대’이지 않은가. 일찍이 오장환 시인이 “어메야! 온 세상 그 많은 물건 중에서 단지 하나밖에 없는 나의 어메! 지금의 내가 있는 곳은 광동인(廣東人)이 싣고 다니는 충충한 밀항선. 검고 비린 바다 위에 휘이한 각등(角燈)이 비치울 때면, 나는 함부로 술과 싸움과 도박을 하다가 어메가 그리워 어둑어둑한 부두로 나오기도 하였다. 어메여! 아는가 어두운 밤에 부두를 헤매이는 사람을. 암말도 않고 고향, 고향을 그리우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모두 깊은 상처를 숨겨가지고…… 띄엄,띄엄이, 헤어져 있는 사람들”(<향수(鄕愁)> 부분)이라고 내뱉은 시에도 절절하게 묻어있지 않은가. 마른 저녁 길을 걸어와 천천히 옷 벗어 벽에 걸어두고 쌀통에서 한줌, 꼭 혼자 먹을 만큼의 쌀을 퍼 물에 담가놓으면 아느작, 아느작 쌀이 물먹는 소리 어머니는 그 소리를 쌀이 운다고 했다 - 고영민, <쌀이 울 때> 이것 또한 어머니의 말을 받아 적은 시로 간절히 염원하는 시인의 모국어라고 할 수 있다. 얘야, 밥은 그리 푸는 게 아니지 살살살 뒤집어 돌이켜, 한김 나간 뒤 - 고영민, <한김 나간 뒤> 돼지털 빗자루로 방을 쓸 때나 묵정밭에 고랑을 내고 있으면 듣는 말처럼 여러 시인들이 빌려다 쓰고 있는 시어에 살아있는 것들을 보라. 겨울산을 오르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 배낭 속 휴지를 찾으니 없다 휴지가 될 만한 종이라곤 들고 온 신작시집 한 권이 전부 다른 계절 같으면 잎새가 지천의 휴지이련만 그런 궁여지책도 이 계절의 산은 허락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들려온 시집의 낱장을 무례하게도 찢는다 무릎까지 바지를 내리고 산중턱에 걸터앉아 그분의 시를 천천히 손아귀로 구긴다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이 낱장의 종이가 한 시인을 버리고, 한 권 시집을 버리고, 자신이 시였음을 버리고 머물던 자신의 페이지마저 버려 온전히 한 장 휴지일 때까지 무참히 구기고, 구기고, 구긴다 펼쳐보니 나를 훑고 지나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결이 부들부들해져 있다 한 장 종이가 내 밑을 천천히 지나간다 아, 부드럽게 읽힌다 다시 반으로 접어 읽고, 또다시 반으로 접어 읽는다 - 고영민, <똥구멍으로 시를 읽다> 절박하고 절절해진 순간에야 부드럽게 읽히는 시라고 역설적으로 말해도 좋겠다. 수천 수만 번 물에 담그고 흙에 담근 어머니의 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대낮, 골방에 처박혀 시를 쓰다가 문 밖 확성기 소리를 엿듣는다 계란 …(짧은 침묵) 계란 한 판…(긴 침묵) 계란 한 판이, 삼처너언계란…(침묵)…계란 한 판 이게 전부인데, 여백의 미가 장난이 아니다 계란, 한 번 치고 침묵하는 동안 듣는 이에게 쫑긋, 귀를 세우게 한다 다시 계란 한 판, 또 침묵 아주 무뚝뚝하게 계란 한 판이 삼천 원 이라 말하자마자 동시에 계란, 하고 친다 듣고 있으니 내공이 만만치 않다 귀를 잡아당긴다 저 소리, 마르고 닳도록 외치다 인이 박여 생긴 생계의 운율 계란 한 판의 리듬 쓰던 시를 내려놓고 덜컥, 삼천 원을 들고 나선다 - 고영민, <계란 한 판> ‘계란 한 판’이 새로운 시어 사전에 실리기라도 한 듯 전혀 다른 방향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울림이 있지 않은가. 사투리와 고향의 정서를 가지지 못한 이라면 나비 한 쌍이 춤을 추는 공중에서도 뽑아 올 수 있고, 기운 센 천하장사가 우리 옆집에 살았다 밤만 되면 갈지자로 걸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고철을 수집하는 사람이었지만 고철보다는 진로를 더 많이 모았다 아내가 밤마다 우리 집에 도망을 왔는데, 새벽이 되면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돌아가곤 했다 그는 무쇠로 만든 사람, 지칠 줄 모르고 그릇과 프라이팬과 화장품을 창문으로 던졌다 계란 한 판이 금세 없어졌다 - 권혁웅, <마징가 계보학 -마징가 Z> 에 나오듯 지긋지긋한 이웃 삶에서도 뽑아 올 수 있는, 모국어의 기준을 넓고 깊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 동네에는 두부 장수가/아침에도 오고/점심에도 오고/저녁에도 온다/자전거를 타고 종을 흔들면서 온다// 그러면 사람들이 2천원을 손에 들고/뛰어나온다/나도 두부 한 모 사러 나간다/하얀 비닐봉지에 든 두부 한 모/ 차갑지만 그냥 먹어도 맛있다/솔직히 가게에서 사는 게 더 맛있지만/두부 장수가 파는 거라서 더 맛있어 보인다 - (이나라, <두부 장수> 운천초 4학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