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敎(종교): 마16:18
宗자를 분리하여 보면 집 면(宀)자와 示자로 구분됩니다. 즉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었다는 뜻입니다. 敎자를 분리하면 十자와 , 그리고 子, 夂자로 나뉘어집니다. 이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아들, 그분은 아버지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성자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마음속에 믿는 것이 바로 宗敎인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가 없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며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기독교만이 참다운 종교라는 가설도 성립하는 것입니다.
宣敎(선교): 막1:1
宣은 베푼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베푼다는 말입니까? 바로 敎를 베푼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敎의 뜻을 앞에서 살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그것을 믿는 우리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닌 믿음(宗)으로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니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우리는 이와 같은 소식을 우리보다 먼저 예수를 믿은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복음의 빚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갚아야 합니다. 아직 예수를 모르는 그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義(의): 벧전 1:19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셨으니 우리의 죄는 도말되었습니다. 즉, 우리는 죄인이 아니고 의인입니다. 義의 한자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義는 양(羊)과 나 아(我)자로 나뉘어 집니다. 여기서 羊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어린 양되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즉, 나 자신이 아무리 똑똑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할 지라도 선한 사람이라는 평가는 받을 수 있을지언정 의인(義人)이 되지는 못합니다. 義란 어린 양되신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羊이 없으면 나(我)만 남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도 없으며 구원도 없습니다. 우리의 생활은 우리의 머리에 있는 뇌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조정합니다.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을 나보다 앞서(위에) 모시고, 예수님의 통제를 받아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남에게 해로운 일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인(義人)입니다.
容恕(용서): 마18:35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도 연약하여 우리에게 조그만 상처를 주어도 그 사람을 원망하고 싫어하게 됩니다. 이래서는 참다운 사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참다운 용서가 없다면 참다운 사랑도 없습니다.
여기서는 용서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容은 사람의 얼굴을 그린 그림문자입니다. 즉, 宀는 머리를 나타내며(꼭 상투를 틀은 우리 조상의 머리모양 같습니다), 丿乀는 우리의 눈썹, 人는 우리의 코 옆의 모습을 말하며, 口는 입을 말하는 것입니다.
恕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으로 분리됩니다. 즉 마음이 같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무엇과 마음이 같다는 뜻일까요? 앞의 단어와 같이 얼굴과 같다는 뜻입니다. 참다운 容恕는 마음으로도 용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얼굴로는 용서하는 것처럼 웃고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나중에 두고보자는 식으로 생각을 한다면 참다운 용서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주 큰 죄를 모두 용서하여 주신 것과 같이 우리도 우리에게 조그만 죄를 진자들을 모두 용서하여야 할 것입니다.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牧師(목사): 사무엘상 6:10-16
엘리 제사장의 시대, 그 아들들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리더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게 되어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쟁에서 죽고 법궤도 탈취당했습니다.
이후 법궤는 블레셋 땅 여러 곳에 거치되었으나 블레셋에 우환이 계속 생기고 역병이 생기자 아무래도 이것은 이스라엘의 성물이기 때문이라 생각이 들어 돌려보내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블레셋 방백들에게 의심이 있었습니다. 법궤가 블레셋 땅에 들어오면서 생긴 모든 우환과 역병 등이 정말 법궤를 탈취해 온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담긴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생긴 것인지 동물을 통해 실험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일단 송아지를 갓 낳은 암소 두 마리가 끄는 수레에 법궤를 실어 이스라엘로 돌려보내면서, 법궤가 이스라엘로 돌아가면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려 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사죄하는 의미에서 금으로 만든 선물도 같이 실었습니다. 그리고 두 암소가 법궤를 끌고 가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방백들은 그 법궤 뒤를 따르며 과연 법궤가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 땅으로 가는지 확인하려고 따라 왔습니다.
에그론에서 벧세메스까지는 당시의 길로는 2-30km쯤 될 것으로 추측합니다. 가는 길에 산과 골짜기가 있고 여러 개의 갈래 길이 있었는데 이 두 암소는 울면서도 좌우로 치우지지 아니하고 그 길을 끝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소에서 제물이 되어 죽었습니다.
牧師(목사)의 牧(목)은 벧세메스로 가는 소를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귀한 사명을 받은 목사님은 마치 벧세메스로 가는 소와 같이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師(사)는 일 事(사)를 사용하지 않고 스승 師(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시는 목사님은 존경받아 마땅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 비 교
-. 檢事(검사), 判事(판사),
-. 敎師(교사), 看護師(간호사), 醫師(의사), 牧師, 傳道師, 宣敎師
-. 關稅士(관세사), 辯護士(변호사), 稅務士(세무사), 法務士(법무사)
첫댓글 스스로를 점검해보는 기회도 얻었고요...
한자는 내포된 뜻을 이해하면 무척 재미있는 글인거 같아요.
@하리 그러게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