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 중지론적 관점(리챠드 게핀)
나는 요한복음 3장 8절에 계시된 말씀에 근거하여 성령의 역사는 주권적이며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믿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령의 변덕"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 리가 알 것은 성령은 성경의 틀 안에 자신을 가두기로 작정하셨다. 즉, 성령은 결코 성경의 진리 를 떠나서 혹은 어긋나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I. 이차적체험
1. 오순절은 왜 유일무이한가?
오순절의 놀라운 사건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받고 체험해야만 하는 것의 모델이 될 수 있는가? 은사주의자들은 이 대답에 긍정적인 답을 내린다..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도행전에서 계시되고 있는 모든 이적과 기사 그리고 그외의 본문에서 언급된 기적의 은사들 은 결코 이차적인 체험이나 사도행전 이후에도 계속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유는,
1) 오순절은 유일 무이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즉, 사도행전의 구속사적 구조와 관점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행전의 서술적인 내 용에서 교리적인 찾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엄연히 잘못된 것이다.
2) 오순절은 구원의 순서가 아닌 사건이다. 오순절의 역사는 예수님의 구속사 완성의 절정이다. 즉, 예수님의 구속사 성취의 완성은 오순 절의 성령강림에서 찾을 수 있다. 때문에 오순절의 역사는 구원의 역사이다. 즉, 단회적이며 유 일한 역사이다. 반면 이 역사가 각 시대마다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구원의 순서이다.
누가는 누가복음 3장 16절에서 세례 요한의 선포를 통해 예수님의 사역은 불과 성령으로 설명 되어진다고 말하였다. 즉, 불과 성령이 바로 메시야 사역의 인증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가는 오순절의 역사(불과 성령)는 메시야 사역의 완성으로 보고 있다.
부활-승천-성령 강림으로 이해되어 져야 한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이 단회적적인 구원의 역사이기에 당연히 오순절의 성령 강림도 단회적인 유일무이한 구원의 역사인 것으로서 이해해야 한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의 말씀을 통해 성령의 세례는 모든 사람이 받았음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가는 순간 받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로 보건대 오순절의 역사는 결코 이차적인 체험도 아니며 그 이후에 다시 이차적인 체험으 로 반복되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오순절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사역을 완성시킨다.
2. 그러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차적 체험은 무엇인가?
사도행전 전체는 유일무이하다.
즉, 사도행전은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누가가 기록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행전은 완성된 역사, 구속의 역사상 유일무이한 신기원 - "땅 끝까지" 이루어진 일회적이고 사도적인 복음의 확산 - 을 기록하기 위한 의도를 담고 있다.
때문에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증거들의 본문에서 계시된 체험들은 모두 사도들의 시대라는 특이한 상황에서 주어진 단회적인 역사이다. 또한 일부 사도들이 아닌 자들이 행한 역사 역시도 사실 "사도들의 우산" 아래에서 행해진 것들이다.
더욱이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체험들은 균일하지 못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부인할수 없는 사실은 우리는 오순절로 인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은 신자들 안에 풍성하고 심오한 체험적 실제를 창조하시는 분이시다.
성령님은 모든 기독교적 체험의 원천이시다.
II. 은사 중지론
- 핵심은 어떤 은사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가이다.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 등장하는 기적의 은사들은 유일 무이하고 완성된 사도적 복음의 맥락 에서 보아야 한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도의 표'이다. 때문에 사도가 없는 시대인 지금에 도 기적의 은사들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특별히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할 부분은 모든 계시적 은사 곧 말의 은사이다.
계시적 은사는 에베소소 2장 11~21절의 말씀을 교회와 사도성의 구속사적 이해의 관점에서 바 라 볼 때 계시적 은사는 중단되었다.
바울은 자신의 서신에서 선지자와 사도는 교회의 터라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터'라고 말한다. 정리한다면 그리스도는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 교회의 터이다. 그리고 선지자와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공인된 증인이라는 측면에서 교회의 터이다.
이런 특별한 사도들의 증언은 그리스도의 단회적인 사역에 대한 단회적인 증언으로서 이 단회 적인 증언에 수반되었던 사도의 표로서의 모든 계시적인 은사는 단회적이며 사도가 없는 시대에 는 당연히 중단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만약 사도가 존재하지 않는 지금도 예언적인 은사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완성된 계시인 성경의 권위와 긴장 관계에 놓이게 되며, 성경의 충족된 권위를 상대화 시키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정리하면 사도는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고로 사도를 통해 역사되었던 모든 계시적인 은사 도 중단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은사주의자들 자신도 이 부분에 일치되지 못한 모습들을 표출하고 있다.
종합하자면, 신약 성경 기자들은 우리가 성령의 선물(단수)과 성령의 선물들(복수)의 차이를 이해하기 원한다. 즉 모든 신자가 공유하는 종말론적 선물인 내주하시는 성령 자신과, 그 어떤 것도 모든 신자가(말하자면 믿음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고전 12:28-30) 다 받는 것이 아닌 성령의 비종말론적인 은사들의 차이점을 간과하기 원하지 않는다.
III. 오늘날의 교회 은사 중지론의 입장이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하여 몇 가지 일반적인 수준에서 영적인 은사들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1. 모든 은사가 중지된 것은 아니다. 즉, 사도적 교회 수립의 시기에 있던 은사(하지만 지금 은 중단되 은사)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은사에 대한 분별과 확인이 필요하다.
2. 우리는 영적인 은사의 넓은 폭을 인식해야 한다. 바울은 결혼과 관련하여 영성과 성생활이 깊은 연관이 있음을 말하였다.
3.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영적인 은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의 중요한 측면 을 요약한다. 즉, 은사의 사용은 교회를 세우는데 있다는 사실이다. = 사실 이것은 바울의 입장 과도 같은 관점이다(고전 12~14장).
4. 나의 영적인 은사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한가지 권면할 것은 베 드로전서 4장 11절의 두 가지 측면(말의 은사, 행위의 은사)을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예수 그 리스도의 복음이 증거가 되고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IV. 우리가 피해야 할 위험
은사 중지론의 입장에서 신자들 안에서나 그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참 된 성령의 역사를 간과 하거나 평가절하하기가 매우 쉽다. 또한 성령의 측량할 수 없는 역사에 대한 열심을 망각할 개 연성 등의 위험을 피해야 한다.
우리는 말씀과 성령의 불가분성, 즉 성령의 역사와 기록된 말씀의 끊을 수 없는 결합을 옹호 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기억하고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 외에는 아무것에도 귀를 기울 이지 않기로 결심히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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