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 이야기94 -
인디언들도 상투를 했다 - 인디언들의 scalper와 우리 민족의 단발령 -
지난 주말 우리집 뒷 정원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아는 후배들과 함께 바베큐 파티를 열었다. 나무 덱(deck)에 둘러 앉아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상투 이야기도 나오게 되었다. 특히 인디언들의 상투문화는 우리나라 전통 상투와 비교가 된다.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를 우리나라 문화와 유사한 수많은 것들 중에 인디언들도 상투를 튼다는 사실은 상당수 한국인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우리 민족만이 상투를 트는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상투문화에 대하여 신기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제목이 좀 특이한 것으로 보이리라. 오늘은 인디언들도 상투를 했다는 것과 더불어 scalper와 우리나라 역사의 단발령을 비교해 보려 한다.
머리털을 길게 하는 민족은 아무래도 동양에서도 우리민족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청나라 때의 변발은 이른바 돼지꼬리(pig tail)만 남겨두고 머리를 밀었고, 일본인들은 사무라이들에게서 보듯이 이마로부터 머리의 중앙을 넘어 면도를 해버려 머리털을 없애는 중국과 궤를 같이 했다.
그러나 청나라 이전의 중국은 우리나라처럼 장발이었며 추마계(말에서 떨어진 듯한 모양), 고계(높이 틀어올린 모양), 쌍환(양쪽에 둥글게 모은 머리, 어린이 머리모양) 등의 머리 스타일을 했다가 청나라 시기에 남자들은 변발을 하게 된 것이다.
중동인들은 전통적으로 머리에 모래먼지를 막기 위하여 터번을 썼지만 이집트에서는 신분이 높으면 머리를 다 밀어버리고 가발을 여러개 번갈아 쓰기도 했다. 영화 <십계>에 나오는 파라오의 머리털은 마치 청나라의 변발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중세이래 남자의 머리는 짧고 여자의 머리는 길게 규정했다는 면에서 중국과 일본에 연결되지만 면도를 한 것은 아니었다. 서양인들은 20세기 들어와서 여자들도 단발을 하게 되었다.
1994년이래 태국의 북부 ‘치앙마이’ 지방에 고구려 후손이 산다는 소개가 된 후 치앙마이 사람들은 절구나 디딜방아는 물론 상투를 하고 있기도 하여 대단히 놀라운 관심을 끌기도 했다. 같은 아시아권에서만이 아니라 한민족의 상투문화는 동아시아에서 건너간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서도 발견된다는데서 흥미로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멕시코 시티의 챠풀테팩 인류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에 가면 인디언들이 상투를 한 내용들을 전시하고 있다. 멕시코 시티의 조칼로 광장 옆의 마요르 신전 박물관에도 인디언 상투의 모습을 전시해두고 있다. 남아메리카의 잉카문명에도 상투문화는 전달되어졌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 있는 황금 박물관(Museo de Oro del Peru)에도 상투튼 남자상이 있다.
아메리카 인디안 Blackfoot족의 상투 이 사진은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책 [Indian by William Brandon, Houghton Mifflin Co. Boston, New York, 1961, P. 320에 나오는 사진이다.
TMI number 00455 참고: http://www.omaha.lib.ne.us/transmiss/congress/blackfoot.html 인디언들의 상투 모양이 너무 투박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대 상투는 이와 비슷했다는 것을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각저총 벽화에서 씨름하는 장면은 Blackfoot 인디언 상투와 유사하게 투박하다.
안악 3호분 전실 동쪽 벽면에 있는 수박놀이하는 역사(力士) 벽화. 상투를 머리 뒤로 묶고 아랫도리 일부만을 가리고 있다.
이런 면에서 고구려 고분 벽화의 장사, 신장의 상투는 서역지방에 원류하는 것으로 특히 힘센 장사 또는 역사의 계양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바이블 구약에 다윗의 아들로 아버지에게 대항하다 도망하는 중에 상투가 참나무에 걸려 죽은 압살롬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서 '상투'가 과연 어떤 의미로 번역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유태인들이 머리 스타일에서 상투와 유사한 머리 매무새를 했을 개연성은 있다.
그러나 그 상투문화를 가장 오래도록 지켜온 민족은 우리 민족이며 그 상투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발견되는 것은 특이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한민족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상투를 튼 것은 삼국시대에 깃털을 머리에 꽂는 절풍 문화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머리에 깃털 꽂는 것과 같은 맥을 가지고 있다. 고구려 각저총의 씨름하는 힘센 역사상은 머리를 빗어 올려 상투를 틀었다. 상투에는 정수리에 한 개의 상투를 트는 것이 일반적이나 머리 좌우에 쌍상투를 틀어 올리기도 했다.
상투를 한 아메리카 인디언 Blackfoot이란 이름은 그 종족이 발을 검게 칠하고 다닌다 하여 서양인들이 그렇게 닉네임을 붙인 것이고 상투를 튼 인디언 자신들의 이름은 Siksika라고 불렀다. 그 이름을 가만히 필자가 생각해보니 상투를 틀면 성인이 되는 것이고 결혼을 했다는 면에서 '씩씩한 사나이' 기분을 주는 '씩시카'라는 음운상의 유사성은 더욱 흥미를 끈다. '씩시카' 인디언들은 주로 옐로우스톤 국립공원과 사스캐치완(Saskatchewan)북쪽으로 글레이셔 국립공원을 넘어 카나다 쪽까지를 중심무대로 하고 활동했다.
씩시카(Siksika) 인디언들은 약 6000명정도가 남아 있다. 그들중 1900명은 현재 몬타나주 인디언 보호지역에 거주하고 나머지는 카나다 지역에 연하여 살고 있다. Blackfoot 인디언과 가까운 종족은 아라파호 족(Arapaho Grosventres)과 사르시 족(Sarsi)이 있다. 씩시카 인디언들은 영화 Dances with Wolves에 보는것처럼 말을 타고 버팔로를 사냥하는 면에서 그리고 동물가죽으로 만든 티피를 짓는다는 면에서 쿄와(Kiowa) 족속과 유사한 면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전에는 땋은 머리고 결혼 후에는 상투를 트는데 비하여 씩시카 인디언들은 상투를 틀고 머리 양옆으로 땋은 머리를 늘어트린다. 씩시카 인디언들은 키가 상대적으로 큰 종족이었고 농사는 짓지 않으며 말을 타고 사냥을 하는 종족이었다. 근대 이전의 헤어스타일은 그 나라 문화를 가장 구별하는 특징이 되기도 했다. 상투를 튼 모습은 우리 민족의 상징적 머리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을미사변후에 단발령으로 상투를 잘랐다. 단발령을 대단히 어렵게 받아들였던 것은 삼국시대 이래 수천년동안 유지되어 왔던 상투 헤어스타일을 갑자기 무너트리는 것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조선조 5백년동안의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불감상해면 효지시야라'라는 유교적 전통에서 '신체의 모든 터럭과 그 일부를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근본'으로 여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발령은 고종임금이 먼저 서양식으로 이발을 하고 내부대신 유길준이 앞장서서 백성들의 상투를 강제로 자르도록 주도했다. 당시의 반일감정 속에서 단발령은 강력한 반대를 받았고 당시의 최익현 같은 선비는 '내 상투를 자르려거든 내 목을 잘라라'고 한 것은 유명한 말이다.
옆의 사진은 을미개혁 때 단발령을 발표한 공문이다. 강제적으로 집행된 이러한 단발령은 당시의 김홍집 내각이 친일내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던 터라 단발령이 일본의 입김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더욱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이것은 의병을 일으키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민족적 수치를 참지 못한 것이다.
물론 단발령은 상투를 한 남성에게만 해당되었다. 일반적으로 세계 문화 속에는 여자들 머리는 길게 하고 남자들은 짧게 했지만, 우리나라 문화 속에서는 남녀가 모두 결혼 전에는 머리를 길게 땋았다가 여자도 남자도 그 긴 머리를 머리 위로 쪽져 올리거나 상투를 틀어 올렸다.
다만 이때 아무리 신체발부를 상하게 하면 불효라 하지만 남자들이 상투를 틀 때는 한꺼번에 머리가 많아져서 갓을 쓸 때 무리가 없도록 상투를 올릴 부분의 정수리 머리털을 잘라낸다. 변발은 아니지만 머리털의 일부를 밀어낸다는 면에서 일종의 변발이라 할만하다.
이러한 상투 틀기 위한 정수리 머리털을 잘라내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상투 그 자체를 잘라내는 것은 마치 인디언들이 적에게 패하여 머리털을 피부 채로 벗겨지는 이른바 scalper에게 당하는 것과 같은 수치와 죽음으로 받아들였다. 인디언 종족들 가운데는 적의 머리털 가죽을 벗겨 적개심을 표현한 것은 어쩌면 적의 상투(scalp-lock)를 잘라 그 수치를 가하는 것에 기원을 두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특히 고대 동아시아에서 건너간 아메리카 인디언이라면 상투 보전의 문화는 대단히 중요한 머리털로 귀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인디언 상투에 대하여서는 다소 알려져왔지만, 필자는 여기에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scalper와 우리 민족이 당했던 단발령과의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강조해 둔다.
*To see more images from the Indian Congress in 1898, visit the Indian Congress Photo Gallery. This collection includes over 500 photographs of Native Americans, including portraits of individuals, group photos of families and photographs of various activities. The library also has the original "Secretary's Report" from the TransMississippi Exposition. This document includes a section on the The Indian Congress by Mr. W. V. Cox, Secretary of the Government Exhibit Board. It also contains the Report of Captain Mercer, manager of the Indian Congress.
출처: 까페 조선. 컴 드림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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